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58)
첩자의 마교생활-58화(58/350)
58.
#단초를 찾았다 (1)
마이신이 히죽 웃으며 호응하자 사호정은 반색하며 말했다.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이래야 큰형님이지. 좋아. 그럼 나랑 같이 월하촌으로 가는 거다?”
“그래. 그러자꾸나.”
“좋았어. 일단 그럼…… 야. 노비. 가서 내 몸에 맞는 옷 좀 갖고 와. 내 도끼도 내놓고.”
사호정이 노군에게 경박하게 말을 툭 던진다. 하나 노군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있다가 마이신이 해주라고 말하자 도끼를 건네고, 옷을 가지러 갔다.
“하여튼 주인 말은 x나게 잘 듣지. 그럼 형님. 나 일단 눈 좀 붙일 테니까 준비되면 깨워 주쇼. 아, 저 밑에 우리 애들 있는데 걔들도 좀 챙겨주고.”
마이신이 너그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사호정은 피곤하다는 듯 여인들이 많은 방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예의도 없고, 버릇도 없고.
뭐, 마이신으로서는 재밌는 상황이 되어 상관없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네 얼굴을 다 보겠구나. 마오…….”
* * *
– 마해산 호룡당 본관.
크하아아앙-!
호룡당에 쩌렁쩌렁한 범의 노호가 울려 퍼졌다.
진짜 호랑이는 아니고, 화나면 세상 무섭기 짝이 없다는 호룡당주 지대호의 외침이었다.
“다시 말해 보거라.”
호랑이 가죽 융단이 깔린 당주실. 지대호 앞에 선 부관은 차마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처참한 음색으로 말했다.
“사호정을 목전에서 놓쳤다고 합니다…….”
“그전에 말이다.”
“당원 다섯이…… 순교(殉敎)하였습니다.”
크하아아앙!
또 한 번 새끼 잃은 아비 호랑이의 포효가 울렸다. 놓친 것보다 수하들이 당했다는 사실이 분노를 극단으로 치솟게 했다.
“어디서 당한 것이냐.”
“북부 송산 함평촌의 작은 객잔입니다.”
“……놈이 본교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외곽을 철저히 감시하라 이르거라.”
“예!”
부관이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선다. 남겨진 지대호는 풀리지 않는 분으로 커다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잡히기만 해봐라. 머리통을 붙잡아 부숴줄 테다.
하나 그보다 먼저.
“크흠.”
지대호가 멋쩍은 헛기침을 뱉고는 구석 창가로 다가섰다. 그러자 그곳엔 뱀 머리가 조각된 지팡이를 쥐고 서 있는 단신의 노부가 자리해 있었다.
지대호는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송구합니다. 아무래도 놓친 듯합니다.”
“늙었다고 무시하는 겐가? 나도 귀 있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지요. 찾는 대로 마의께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지 당주가 다시 한번 고개를 조아렸다. 그가 이리 예를 갖출만한 존재는 마교에 많이 없거늘. 특히 마의라 불리는 자는 더더욱 그랬다.
굳이 꼽자면 단 하나.
교내의 모든 약을 다루는 독산각의 주인이자 마교 칠장로 중 하나.
독산마의(毒産魔醫) 육장로 사마균.
오직 그뿐이었다.
“그 미혼산을 가져온 놈이 누구라고?”
마의의 물음에 지대호는 입맛을 다셨다.
장로인 그가 호룡당까지 온 이유는 딱 하나. 출처를 알 수 없는 미혼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 지 당주가 공조를 요청한 것.
한데 이를 한 번 맛보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보다 더 조급해하며 이를 조사하고 있었다.
“칠공자 보좌로 재직 중인 장이서라고 합니다.”
“흐음…….”
지대호가 답하자 마의는 침음을 뱉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탁, 탁. 몸을 돌려 밖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디 가십니까?”
“내 놈을 직접 만나봐야겠다.”
“직접 말입니까?”
“쯧, 늙으면 한시가 아까운 법이네. 호룡당이 잡아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관에 먼저 들어가겠어.”
“무슨 그런 말씀을……. 후, 일단 알겠습니다. 원하시면 그리하시죠.”
자존심이 팍 상하지만, 이 상황에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놓친 건 사실이거늘. 게다가 말린다고 들을 양반도 아니다. 워낙 괴짜라.
지대호는 눈으로 그를 배웅하다 그가 문밖으로 나서기 전에 불쑥 떠오른 마지막 인사 겸 청을 건넸다.
“참, 가시는 김에 그 녀석 몸도 한 번 좀 봐주십시오.”
“그 녀석?”
“장이서 말입니다. 칠공자 보좌.”
마의가 힐끗 고갤 돌려 이상한 눈으로 지대호를 살폈다. 제 수하들이면 모를까, 남 걱정은 일절 하지도 않던 이가 웬일로.
“별일이구먼. 당주인 자네가 보좌를 다 챙기고. 설마…… 칠공자님 쪽으로 줄이라도 선 겐가?”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녀석이라.”
“흥, 호랭이 관심을 왜 내게 청하나. 실없긴. 다음에 보세.”
“예. 살펴 가십시오.”
지대호가 포권을 취하자 마의는 손을 휘휘 흔들곤 밖으로 나섰다.
하여튼 참, 말 하나도 곱게 하는 법이 없지.
피식 웃음을 뱉으며 지대호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만큼 뛰어난 의원도 세상에 없으니.”
부디 조금이라도 녀석에게 도움이 되기를. 지대호는 마의가 떠나간 빈자리를 지그시 살폈다.
* * *
– 월광호 취선루.
해가 저문 초저녁. 어둑해져야 할 월광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밝았고, 왁자지껄한 인파로 북적였다.
월하촌에서 도살방과의 대결이 벌어진 지도 어느덧 열흘.
장이서가 예고한 대로 성대한 잔치가 열린 탓이었다.
“와하하하! 그때 갑자기 칠공자님께서 등장하셔서 어찌나 놀랐던지.”
“맞네, 맞아. 이런 말씀도 하셨지. 기억해. 이게 너희가 지켜야 할 나와의 거리다. 껄껄껄! 누가 내 손 좀 펴주게!”
“그만 떠들어, 이 잡것들아!”
“야, 마오. 너 저런 말도 했었냐? 미친 거 아니야?”
“다 닥쳐-!”
벌써 두 번째 잔치라 그런지, 아니면 함께 싸운 추억이 친근감을 높여준 탓인지.
이젠 마오와 월하촌의 사람들이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맹휘도, 흑룡파도 그사이에 끼어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2층 난간에선 장이서가 그런 이들을 지켜보며 훈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기분이 좋으신가 봅니다.”
옆에 앉은 취홍란이 다소곳이 술을 따르며 물었다. 이에 장이서가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저 애들이 이렇게 잘 자라주면 이곳도 살만해질 테니까.”
“많이 아끼시는군요.”
“아끼긴. 그냥 망나니들 갱생해주는 것에 보람 느끼는 거지. 성웅이 되진 못할지언정 살귀가 되진 말아야 하니까.”
장이서의 뜻깊은 말에 취홍란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에 장이서도 그녀를 바라보며 술잔을 들고 마주 웃었다.
한데 어째서 저 웃음에 근심이 섞여 보일까. 이를 한눈에 알아본 취홍란이 나직이 물었다.
“아직 답을 찾지 못하신 겁니까.”
교주가 낸 숙제를 말함이다. 한 달 안에 찾아내지 못하면 미치거나, 죽거나. 미래가 둘 중 하나밖에 없는 숙제.
장이서는 한입에 술을 털어 넣곤, 화끈거리는 열기를 후 불어 날리곤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쉽진 않네.”
말 그대로였다. 맹휘와 마오는 가르칠수록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하고 있거늘, 정작 자신은 지난 열흘 동안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몸의 혈관들은 점점 검게 물들어갔고, 불쑥불쑥 살기가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섰다.
마기의 중독 상태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것.
“이제 열흘 조금 넘게 남았군요.”
취홍란의 말에 장이서가 조금 더 어두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열흘이 지나면 아마 전신이 전부 시커멓게 변색 될 테고, 그땐 답을 찾아도 늦으리라.
한데 아무런 실마리도 보이지가 않으니…….
괜한 잡념에 술만 자꾸 들어간다. 그렇게 얼마나 마셨을까. 저벅, 저벅. 누군가 계단 위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작고 가벼운 걸음.
“진산?”
장이서가 사해령의 다른 이름을 부르며 화색을 비치는 그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낯선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은…….”
오 척(150cm)이 조금 넘는 단신에 뱀 머리로 조각된 지팡이를 든 심술 궂은 인상의 노인.
“네가 장이서라는 놈이렷다?”
“독산마의(毒産魔醫)……?!”
천하에서 손꼽히는 독공의 고수이자 마교에서 유일무이한 약재를 다루는 독산각(毒産閣)의 주인.
2급귀 육장로 사마균이었다.
*
육장로 사마균.
독산마의라는 별호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심술궂은 인상처럼 괴짜로도 유명했다.
특히 사경을 헤매는 환자라도 제 성에 차지 않으면 치료제 대신 독을 주입해 희망을 끊어버렸고, 아무것도 아닌 이라도 뭐 하나에 꽂히면 만년설삼을 구해서라도 어떻게든 구해냈다.
문제는 도대체 그게 무슨 기준인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그를 마의라고 불렀다.
한데 그런 그가 느닷없이 잔칫날 이곳 취선루에 나타나다니.
그것도 장이서를 정확히 지명하고서 말이다.
“흥, 바닥 출신이라더니 꼴에 눈은 달렸구나. 날 알아보는 것을 보니. 요즘 애새끼들은 달고도 보질 못하니 있을 필요가 없는 게 눈이거늘.”
툴툴거리며 다가온 독산마의가 지팡이를 양손으로 턱 짚고는 장이서 한 번, 그 옆에 들어가 있는 의자를 한 번 노려본다.
눈치껏 의자 꺼내라는 얘기.
이에 장이서가 헛웃음을 삼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꺼내 주었다. 그러자 턱하고 그가 자리에 앉는다.
뭐 이런 영감이 다 있나. 황당하기 그지없는 자다.
장이서는 잠시 취홍란에게 빠져 달라 눈짓하곤 자리에 앉아 빈 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설마 절 찾아오신 겁니까?”
“내가 왜. 네까짓 게 뭐라고.”
무례하지만 말은 맞다. 초면인 데다 연결점도 없는 사이.
곁눈질로 1층을 내려 살피자 맹휘와 마오는 장로가 온 것도 모르고 좋다고 뛰논다. 당연히 저 두 공자를 만나러 온 것 역시 아닌 모양.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럼 여긴 왜……?”
“네놈이 도살방에서 가져갔다는 미혼산. 그 귀여운 녀석을 찾아 예까지 왔노라.”
그게…… 귀여운 거였나. 장이서의 미간이 묘하게 좁혀지고, 최대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런 거라면 늦으셨습니다. 호룡당주에게 전부 넘겼으니 그쪽으로 가보시죠.”
육장로. 확실히 첩자로서는 영접하기 힘든 거물이다.
하지만 이미 천마도 봤고, 자신 역시 3급귀 고위직이다. 굳이 저런 불순한 태도를 가진 노인에게 정신력 낭비하며 굽신거릴 필요 없는 일.
장이서가 자작으로 술 한 잔을 털어 넘기자, 독산마의는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지 당주라면 이미 보고 오는 길이다.”
음? 장이서가 빈 술잔을 든 채로 그를 지그시 살폈다.
“그럼 더더욱 여기 오실 일이 없으셨을 텐데요.”
“넌 네가 손에 넣은 미혼산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야…… 환각제 아닙니까. 접하면 헛것을 보게 되는 중독성 강한 독. 뭐 제가 아는 건 그 정도입니다.”
“쯧쯧쯧.”
“틀렸습니까?”
“아니, 바로 맞췄다.”
뭐야, 이 영감. 그러면서 혀는 왜 차. 괴짜라더니 정말 제정신이 아니다. 하긴 마교도 중에 제정신인 자 찾는 게 더 어렵겠지만.
장이서가 어이가 없다는 듯 쳐다보자 독산마의는 정면을 지그시 응시하며 읊듯이 말했다.
“미혼산은 환각제다. 하지만 만드는 자에 따라 제조법이 다르고, 들어가는 재료 또한 다르다. 하여 미혼산이라 통틀어 칭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수백 가지에 이르는 각기 다른 독약이지.”
“그렇습니까?”
“그래. 그리고 네가 손에 넣은 미혼산은 그중에서도 아주 특이한 녀석이다.”
“뭐가 특이한 겁니까? 겉으로 보기엔 그냥 흰 가루던데요.”
“만든 놈이 특이하지.”
제조한 자를 말함인가?
독산마의가 특이하다고 말할 만한 자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