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60)
첩자의 마교생활-60화(60/350)
60.
#단초를 찾았다 (3)
분명 독공이다. 한데 어떻게. 장이서는 정신이 멍했다. 분명 마의는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았었다. 또한 어디를 공격할지 보지도 않았다.
한데 어떻게 손등을 찍을 걸 알고 바로 독공을 펼쳤단 말인가.
마의가 눈을 뜨곤 물었다.
“자, 네가 보기엔 어떠하더냐. 손에 독이 발현된 건 내 의지인 것 같으냐, 아니면 내 독기의 의지였던 것 같으냐.”
쾅! 장이서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뇌리에 천둥이 치는 기분이었다.
내기가 영물이라는 게 그런 뜻이었나.
이건 마오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상처 입은 곳에 저절로 양기가 스며들어 이를 치유하였고, 급기야는 상처를 방지하기 위해 스스로 타격점을 찾아 신체를 방어하지 않았는가.
이를 마의의 말대로 해석하자면 그의 양기가 그만큼 영리하기 때문이다.
마의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몸 안에 도는 독기가 자체적으로 방어 작용을 한 것.
반복된 행위에 스스로 학습해 저절로 반응했던 것이다.
‘역시,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아는구나.’
장이서가 사색에 잠기자 마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가르칠 맛이 난다는 듯 신나게 입을 열었다.
“그래, 네 생각이 맞다. 그리고 네가 얻은 그 내공은 마(魔)의 정점인 천마의 내공. 당연히 그 무엇보다도 영리하겠지.”
“아…….”
장이서의 입에서 진심 어린 탄성이 뱉어졌다.
그리고 내면에 벽이 부서지며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떴다.
‘어쩌면…….’
구규지체를 치료할 방법을 찾은 것 같다.
*
장이서는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표정 변화도 없이 생각에 잠겼다.
마의 역시 이를 보며 말도 걸지 않은 채 홀로 술만 자작했다. 그 역시 깨달음을 얻어 극강의 경지까지 올라간 극소수의 절대자.
지금 장이서가 얼마나 경이적인 순간에 놓여 있는지 익히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술이 여덟 잔째 비워질 무렵.
장이서가 차분히 일어나 공손히 포권을 취하며 인사했다.
“장로님께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은혜 꼭 기억하겠습니다.”
“껄껄, 본교에서 보기 힘든 놈이라니까. 정파가 더 어울렸겠어.”
어울리는 게 아니고 정파 맞습니다. 장이서는 애써 속내를 숨기곤 씨익 웃으며 다시 앉았다.
이에 마의가 모처럼 기분이 좋은지 평소 보이지 않는 잇몸 미소를 보이며 술잔을 따라 건넸다.
“지 당주가 네 몸을 그리 봐달라길래 대체 뭔 놈인가 싶었는데. 이제 보니 다들 널 아끼는 이유를 알겠구나.”
지 당주가 그런 말까지 하였나. 장이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곤 진심으로 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자 또다시 마의는 그의 표정을 읽고 흐뭇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젊은 놈이 배포도 있고 인정까지 빠르면, 뭇 연로한 사내들의 마음을 흔들기 마련이지. 네놈이 딱 그렇구나.”
“그리 좋은 놈은 못 됩니다. 하지만 맡기신 일은 반드시 해내도록 하겠습니다. 설령 치료법을 찾지 못해 죽음을 맞이한다고 해도 일은 끝마치겠습니다.”
“말솜씨도 제법이고.”
뭐지. 말끝마다 금칠을 해주니 묘하게 싸하다. 어디서 비슷한 반응을 봤던 거 같은데.
장이서가 고개를 갸웃하곤 곧장 할 일에 대해 물었다.
“아까 광의라고 하셨지요. 도살방이 가지고 있던 미혼산을 만든 자 말입니다.”
“그래. 아주 특이한 녀석이지.”
“아는 자입니까?”
“놈의 이름은 공손절. 대부분은 그놈을 잘 모르겠지만, 나는 잘 알지. 같은 스승님을 모시고 동문수학한 사이였으니.”
마의의 사형제라.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한 이야기다. 장이서는 자세를 고쳐 앉고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본디 녀석도 실력은 출중했다. 하나 본성이 글러 먹은 녀석이었다. 어떻게 살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해하느냐를 더 좋아했지.”
“그건 육장로께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쯧.”
“아니라면 죄송합니다.”
“맞다.”
대화하기 참 힘든 사람이다. 장이서가 애써 웃음을 지으며 계속하라는 듯 손짓했다.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내키면 온전히 되살려주지만, 그놈은 살려놓더라도 꼭 멀쩡한 사지 하나를 대가로 받아내야 성이 풀렸다. 가령 두 눈이 먼 놈을 고쳐주면 두 다리를 잘라냈지.”
“미친…….”
장이서는 저도 모르게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뭐 그런 미친 의원이 다 있단 말인가.
하나 독산마의는 이런 격한 반응이 썩 마음에 드는지 털털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서 놈의 별호가 광의인 게다. 아주 제대로 미친놈이니.”
확실히 어울리는 별호다. 사지를 대가로 받아내는 의원이라니.
“한데 20년도 더 전에 천마전에서 비법서를 훔쳐 달아난 놈이 이리 다시 모습을 드러냈으니…… 영 개운치가 않아.”
허, 천마전이라니. 정말 제대로 미친 자로구나.
“그에게 다른 의도가 더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걸 이제부터 알아내야지.”
탁. 독산마의가 지팡이를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할 말은 끝났다. 본래 미주알고주알 담소 나누는 걸 즐기는 양반이 아니다.
장이서는 제법 심각해진 얼굴로 일어나 계단까지 그를 배웅했다.
“찾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거라. 한데…….”
독산마의가 계단을 앞에 두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러곤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왜 하필 칠소궁의 보좌인 게냐.”
“그야…….”
암각에서 임무가 그렇게 왔으니까 그런 거긴 한데. 장이서가 환히 웃으며 대답했다.
“왠지…… 칠공자님께서 교의 주인이 되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마의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진심인 게냐? 눈빛으로 전해진 말에 장이서는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 마침 마오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우하하하하! 나는 천재다-!”
장이서가 제 눈 밑을 슥슥 긁었다. 그러자 마의가 진중한 눈매로 말했다.
“가능성이 없는 짓에 헛된 시간을 쓰지 말거라. 다른 자리를 원하면 내 언제든 마련해 주마.”
“하하, 가십시오.”
“늦지 않게 오거라.”
마의가 손을 흔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장이서는 생각지도 못한 마의와의 만남에 얕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곤 본래 자리로 돌아와 털썩 앉았다.
천마와 호룡당주에 이어 육장로라니. 뭐랄까 이제야 비로소 조금씩 진짜 마교에 스며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그게 썩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지만.
“야, 장이서! 봤어? 방금 거기서 육장로 내려왔어! 일단 아무것도 먹지 마. 아무것도. 독살 가능성 농후해. 아니, 이거 독살이야-!”
장이서가 힐끗 난간 밖으로 고개를 돌리자 저 아래서 마오가 양팔을 휘휘 흔들며 호들갑을 떤다. 맹휘는 옆에서 제 입에 손가락 넣고 토하고 있고.
“후, 갈 길이 멀다.”
장이서는 때아닌 뒷북에 고개를 휘휘 젓고는 술잔을 들어 눈인사를 건넨 뒤 한입에 훅 털어 마셨다.
“아, 안 돼-! 장이서가 독살당했다-!”
참으로 요란스러운 하루.
그렇게 두 번째 잔치가 끝이 났다.
*
다음 날.
일찍이 잠에서 깬 장이서는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별관 2층 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어젯밤 불현듯 나타난 독산마의 사마균과의 거래로 얻어낸 말 때문이었다.
‘자연의 영기(靈氣) 중에서도 가장 지고지순한 것만을 골라 닮은 내공이라면. 그것이 영물(靈物)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내기 또한 의지를 갖춘 영물. 그러니까 움직임이 반복되면 내기는 그 길을 기억한다.
그렇다면.
‘만일 천마의 마기가 움직이는 길목을 처음부터 정해둔다면. 그러니까 나만의 운기토납술(運氣吐納術)을 만들어 아홉 구멍에 빠져나가지 않는 길을 만들어준다면. 그럼 문제가 해결되는 것 아닐까.’
바로 이것이었다.
어제 장이서가 찾아낸 해결의 실마리가. 마기에 중독이 되는 것도 모두 구규를 통해 미리 새어나가기 때문.
바꿔 말하자면 이를 막기만 하면 당장 생사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었다.
물론…… 생각처럼 쉬운 일은 절대 아니었다.
‘지금 내 단전은 단소처럼 일렬로 구멍이 난 항아리와 같다. 하여 내공을 밖으로 빼내려면 아홉 개의 구멍을 모두 지나쳐야 하지.’
바꿔 말하면 아홉 개를 다 막지 못하면 내기가 새 나가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내기가 쌓이지 못해 절정의 경지도 오르지 못하는 것이고.
‘게다가 내공은 형체가 없는 빛무리.’
하여 더 많은 내기가 새어나가고, 결국 작은 동작에도 남들보다 소모되는 내공의 양이 훨씬 컸다.
우우웅!
장이서가 양손을 단전에 모아 호흡을 시작하자 몸에서 짙은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대주천을 시작한 것.
그러자 명확히 느껴졌다. 승천하던 내기의 빛무리가 아홉 개의 구멍으로 일부 빠져나가고, 점차 제어를 잃어 안갯속으로 흩어져 사라져버리는 것을.
당연한 일이다.
내기를 잡아둘 수 있는 건 오직 단전과 경맥뿐이니.
‘역시 그냥 내기를 내보내는 방법으로는 빠져나가는 걸 막을 방법이 없다. 하지만……. 다른 길이 생긴다면? 마의의 말대로 천마의 마기가 내 의지를 기억하고 답습한다면. 그럼 길은 곧 내기가 지나간 자리가 되는 거다.’
우우우웅!
장이서가 수인을 그리듯 아랫배에 두 손을 모은다. 그러자 거뭇한 광채가 뿜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하단전에서 뿜어지는 빛이었다.
내기를 끝까지 올려보내지 않고, 아예 첫 번째 구멍으로 자발적으로 모두 내보내 버린 것.
이른바 역발상이었다.
단전 밖으로 나간 내기는 시간이 지나면 제어력을 잃고, 흩어져 사라진다.
하지만 제어력이 있을 때, 끊임없이 내기를 원하는 방향으로 흘려보낸다면.
그래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길을 개척하고 또 개척해 낸다면.
그럼 언젠간 이를 답습하는 천마의 마기가 단전으로 되돌아오는 통로를 만들 수도 있다는 미쳐버린 이론.
“으음…….”
물론 후유증은 심각했다. 곧바로 장이서는 고통에 신음했다.
당연했다.
자발적으로 몸을 마기에 중독시키고 있는 셈이었으니.
두근, 두근, 두근.
전신으로 흩뿌려지는 마기에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뛰기 시작했고, 그리고 힘줄은 점점 검게 물든다.
주룩. 입가에 피까지 흘러내리고, 정신은 갈수록 혼미해졌다.
하지만 장이서의 내면은 이와 달리 웃음꽃으로 가득했다.
처음엔 전신으로 흩어지던 천마의 마기가 조금씩 자신이 만든 길을 따라오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온다. 분명히 뒤따라오고 있다.’
장이서는 이에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내기가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단전 바깥으로 위로 향하는 길을 만들고, 또 만들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이제 곧 있으면 아홉 번째 구멍이다…….’
첫 번째 구멍을 빠져나가 마지막 아홉 번째 구멍으로 되돌아오는 은하수 같은 빛무리의 길을 만든다.
그럼 내기도 더 이상 새 나가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장이서가 생각한 치유의 단초!
그리고 마침내.
단전 밖에 생겨난 빛무리가 비로소 마지막 아홉 번째 구멍에 맞닿았다.
이제 들어가기만 하면 성공이다.
장이서의 얼굴에 홍조가 깃들고, 격한 희열감이 솟구쳐오르는 바로 그때.
퍼어엉-!
내면에서 뭔가가 터져나가는 음색과 함께 대뇌에 커다란 지진이 일었다.
“커헉!”
입에선 피가 분수처럼 토해지고 상체는 새우처럼 구부려졌다. 그리고 부릅떠진 두 눈은 지독한 살광으로 가득 채워졌다.
“어, 어째서?”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