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62)
첩자의 마교생활-62화(62/350)
62.
#광견의 행방 (2)
“으으으…….”
살기는 자욱이 퍼져 어느새 입구 주변은 초상집처럼 어둑해졌다.
문지기들의 동공은 풀린 지 오래고, 누군가는 공포가 심해져 이빨을 쉴 새 없이 딱딱 부딪쳤다.
“이런……!”
그러자 끼이이익! 뒤늦게 수문장이 허둥지둥 성문을 열고 나와 진땀을 흘리며 관등성명을 외쳤다.
“호룡당 5급귀 양호, 큰 실례를 범하였습니다!”
문지기 생활도 오래 하면 기술이 생긴다. 그중 하나가 처세술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타부타 변명 없이 사과부터 올린 건 제법 괜찮은 선택이었다.
‘어차피 나도 크게 키울 마음은 없으니.’
장이서는 한껏 숙인 수문장의 뒤통수 위로 어쩔 줄 몰라 하는 성루의 문지기들을 살폈다.
누구 하나 눈을 마주치는 이가 없고, 하얗게 질린 얼굴이 선명하다.
이 정도면 각인은 되었을 터.
“커헉!”
장이서가 고개를 돌려 살기를 거두자, 성벽 위에서 막힌 숨이 동시다발적으로 토해졌다.
담담하게 답했다.
“보좌 장이서다. 당주님을 뵈러 왔다.”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수문장인 양호가 헐레벌떡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성루 위가 부산스레 들썩인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돌아온 양호가 수하 둘을 대동한 채 힘 있게 답했다.
“당주님께서 바로 모시라 하셨습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장이서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곤 뒤따랐다.
남겨진 호룡당의 무사들은 아직도 여운처럼 남겨진 그의 살기에 간담을 쓸어내렸다.
이내 처음 하대를 친 무사를 향해 독살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아마 그에겐 장이서가 형편없는 보좌에서 평생 잊지 못할 섬찟한 마귀로 재평가되는 순간이리라.
*
“하하, 어서 오게.”
수문장을 따라서 안쪽 건물로 들어서자, 지대호가 당주실 앞까지 나와 장이서를 환영했다.
이에 수문장인 양호는 속으로 매우 놀랐다.
안 그래도 요즘 지대호 심기가 불편해 당내에 호통 소리로 가득했거늘, 저리 기분 좋게 웃어주다니.
‘당주께서 장 보좌와 이리 사이가 좋을 줄이야. 하마터면 줄초상을 치를 뻔했구나.’
새삼 장이서란 인물이 다시 보인다.
“그럼.”
양호가 포권을 취하고 물러가자 장이서는 이에 눈인사를 건네곤 당주실로 들어섰다.
지대호는 곧장 소매를 걷고, 자신의 너저분한 책상에 놓인 백색 주전자와 찻잔 두 개를 들고 와 중앙에 자리를 권했다.
“자네가 날 이리 다 찾아오다니. 혹시 내가 했던 제안 때문인가?”
제안? 장이서가 그와 마주 앉으며 물었다.
“저한테 호룡당에 오라던 그 제안 말입니까?”
지대호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 생각 좀 해봤나?”
“전혀요.”
“그럴 줄 알았네. 그래, 무슨 일인가.”
지대호가 웃음을 거두곤 쪼르르 차를 따라준다. 모락모락 김 하나 없는 식어버린 차. 주변을 살피니 펼쳐진 지도와 널브러진 온갖 서류들. 그리고 얼마나 못 잔 건지 초췌해 보이는 몰골까지.
딱 봐도 가장 바쁜 시기에 찾아온 듯했다.
“이런, 이게 언제 이렇게 식었나. 이거 모처럼 온 손님한테 미안하게 됐군. 다시 준비해 오라 하겠네.”
지대호도 뒤늦게 차가워진 차를 느끼곤 머쓱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에 장이서는 별다른 내색 없이 다시 지대호를 바라보며 고저 없이 말했다.
“육장로께서 월하촌에 다녀가셨습니다.”
“아, 벌써 다녀가셨는가?”
일어나 차를 치우려던 지대호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다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당주님께서 저를 걱정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장이서가 일어서서 포권을 취하자 지대호가 입이 귀에 걸려서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하하! 되었네. 그냥 말 한마디 얹은 것뿐일세. 그래. 마의께서 자네 몸은 좀 봐주셨는가? 어떻다던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쳐진 건 아니지만요.”
장이서가 간결하게 설명을 마치곤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식은 차를 편견 없이 호로록 마셨다.
“맛이 좋네요. 호룡당의 열기도 느껴지고.”
지대호가 일순 멍해졌다가 이내 하하! 하고 활짝 웃었다. 그러곤 장이서를 호감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덩달아 식은 차를 마시며 답했다.
“난 사실 식은 게 더 좋다네. 온통 열받게 하는 놈들투성인데, 뜨거운 것까지 찾아 마셔야겠는가.”
“요즘 가장 열받게 하는 건…… 역시 사씨 형제 때문이겠죠?”
장이서의 물음에 지대호가 찻잔을 입에 문 채로 눈썹을 크게 올렸다. 그러곤 달그락 내려놓은 뒤 말했다.
“티 나는가?”
“뭐, 여기 죄다 그에 관한 얘기뿐이라서요.”
장이서가 주변을 쓸 듯이 살폈다. 바닥에 떨어진 서류며 벽에 붙은 용모화까지. 모든 게 도살방과 사호정에게 맞춰져 있다.
당주실이 이 정도라는 건 그만큼 진심이라는 얘기.
지대호가 본의 아니게 인상을 일그러트리며 솔직히 말했다.
“당원 다섯이 순교했네. 광견이라 제정신이 아닌 건 알고 있었네만, 본산에서 그리 생각도 없이 날뛸 줄이야……. 더구나 실수도 아니었네. 작정하고 도끼를 휘둘렀지. 분통하고 부끄러운 일일세.”
이건 장이서도 생각 못 한 일이었다. 그래서 조금 놀랐다. 설마 다른 이도 아니고 호룡당원까지 죽일 줄이야.
“뒷일은 아예 생각도 안 하는 녀석이군요.”
여기는 마교. 포악한 성미를 가진 미친놈들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본산에서 오룡당까지 해칠 놈은 극히 적었다.
이는 교주인 천마에게 반기를 드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 그러니까 미친놈 아니냐고? 천만에. 미친놈도 분노 조절하게 만드는 이름이 천마다.
“답답할 따름일세.”
지대호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아무튼 상황은 잘 알겠고.
장이서는 곧장 본론을 꺼냈다.
“저도 찾는 걸 돕겠습니다.”
“자네가?”
“예. 저도 마의께 부탁받은 일이 있어서요.”
“흐음, 미혼산이 어디서 들어왔는지를 알아내는 것 말인가?”
“맞습니다. 사호정이 가장 잘 알 테니까요.”
“자네가 돕겠다면 나야 거절할 이유가 없지. 근데 쉽지만은 않을 걸세. 이미 북부에 전력을 배치해 두었네만 소식이 잠잠해. 알지 않은가. 천산의 크기만 자그마치 4천 리(1,540km)일세. 놈이 숨으려고 작정했다면, 어쩌면 천라지망(天羅地網)을 펼쳐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천라지망이라 말하면서 지대호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말 그대로 하늘이고, 땅이고 다 잡을 만큼 포위망을 쳐야 한다는 건데, 이는 곧 마교 내 모든 기관에 공조를 요청함을 뜻했다.
쉽게 말해 호룡당에서 더는 본인들 힘으로 잡을 수 없으니 제발 좀 도와달라 호소해야 한다는 뜻.
‘근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
호랑이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자긍심으로 똘똘 뭉친 자들이다.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
장이서가 던져준 선물이 오히려 독이 된 꼴이다.
그렇다면.
“사호정이 마지막으로 발견된 곳이 어디입니까.”
어차피 답은 정해진 일. 한시라도 빨리 찾는 게 서로한테 이득이다.
장이서가 옆에 펼쳐진 지도를 일별하며 물었다. 그러자 지대호도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입맛을 다시며 답했다.
“송산 함평촌의 작은 객잔일세. 북부로 도주 중에 우연히 마주했다고 판단하고 있네.”
장이서가 탁상에 놓인 지도용 작은 목각 인형 하나를 송산 함평촌에 탁! 올렸다.
“도살방이 월하촌을 습격했을 때, 사호정은 나타나지 않았었죠.”
“돈우촌에 있던 것 아니겠는가.”
“그럼 제가 색화루를 털지 못했을 겁니다.”
“인근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본래 방탕한 자가 아닌가.”
“그건 아닐 겁니다.”
“아니라고?”
장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는 사호정이 월하촌에 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취홍란에게 앞서 자객들과 함께 북부로 향했다는 보고를 미리 받았기 때문.
해서 용태만 색화루로 보낼 수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인자인 사호정이 중차대한 행사에 빠지고 북부로 간 이유는 단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다.
툭. 장이서가 또 다른 목각 인형을 북부 끝자락에 놔두며 말했다.
“아마도 그는 집하촌에 가 있었을 겁니다.”
“집하촌이라……. 어찌 그러한가.”
“색화루의 비고 크기에 비해 미혼산의 양은 극히 적은 거였다고 하더군요.”
“흐음…….”
“곳간이 비면 이를 채우는 게 기본 아니겠습니까.”
“광의를 찾아갔을 것이란 말인가?”
“예. 그리고 광의가 천산에 있었다면 마의께서 몰랐을 리 없습니다. 그러니 미혼산은 본교 밖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사호정은 이를 안으로 들여오려 했을 겁니다. 그리고 북부에 외부와 거래할 수 있는 장소는 집하촌밖에 없죠.”
아마 그렇기에 마의 역시도 행방을 알아 오는 것 이외에는 기대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리라.
교외의 일은 장이서가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으음…….”
지대호도 일리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계속해 보라는 듯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사호정은 북부로 도주하던 게 아니라 오히려 다시 남하하는 과정에서 호룡당을 만났을 공산이 큽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짐작 아닌가.”
그래. 짐작이다. 하지만 장이서에겐 확신에 가까운 짐작이었다.
“집하촌은 교외와 가장 밀접하지만, 그만큼 탈주가 힘든 곳이기도 합니다. 방첩대와 비룡당. 외에도 은신한 암야의 무사들이 즐비하기 때문이죠.”
맞는 말이다. 외부와 접촉을 할 수 있는 곳인 만큼 이탈에 대한 검열이 철저했다.
한마디로 오는 건 돼도, 나가는 건 절대 안 된다는 얘기.
“한데 그게 뭐 어떻다는 말인가.”
“송산은 남쪽에서 집하촌을 오갈 때 주로 쓰이는 지름길입니다. 산세가 험하고 길도 적어 다른 곳으로 빠지기는 쉽지 않죠. 만일 그가 북쪽으로 탈주를 고려했다면 그 옆의 무하산을 택했을 겁니다. 거긴 갈림길도 많아 추적이 쉽지 않고요.”
“그런가……?”
지대호의 얼굴이 황당함에 물든다. 그렇게까진 생각해 보지 못했다. 당주 급이 왜 그것도 모르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곳이 어디인가.
천산이다. 수없이 많은 봉우리를 가진 대산.
여기 산길을 다 아는 건 독산각의 약초꾼들도 불가능한 일이다.
“한데 자넨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가.”
“그거야…….”
첩자니까. 퇴로는 기본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말해줄 수는 없지.
장이서가 능청스레 물었다.
“제가 어디 출신인지 잊으셨습니까?”
“방첩대……?”
“첩자들을 추적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게 바로 퇴로입니다. 산길뿐만 아니라 물길까지도 알아야 하죠.”
유하게 흘러나오는 대답에 지대호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해가 되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군.”
“더구나 사호정이 전후의 큰 마을을 놔두고 송산 중턱에 있는 작은 함평촌에 머물렀다는 건, 그만큼 급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예상컨대…… 도살방의 소식을 들은 겁니다.”
정확하다. 장이서의 추리에 지대호는 감탄에 빠졌다. 하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니,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