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65)
첩자의 마교생활-65화(65/350)
65.
#무혈공 마이신 (2)
마이신의 입가에 비소가 가득 서렸다.
“누가 누굴 상대한단 말인가. 저놈이 나를? 말을 해도 그럴싸한 걸 해야지. 차라리 살려달라고 빌거라. 그럼 생각해 보마.”
빌어야 할 건 너다. 정확히 백 일 후 마오 앞에서.
“지금으로부터 딱 백 일 뒤. 칠공자님과 함께 마가로 찾아가겠다. 가서 너의 죄를 칠공자님께서 직접 물을 것이고, 이를 방해한다면 마가에도 그 책임을 묻겠다. 그러니 도망치지 말고 얌전히 가서 기다리거라.”
마이신의 눈매가 더 없이 차가워졌다. 이는 자존심이 퍽 상했다는 뜻.
“너는 그게 가당키나 하다고 생각하느냐? 마오가. 저 하찮은 종놈이. 감히 나를 꺾을 수 있다는 것이더냐?”
우우웅!
마이신의 몸에서 공명음과 함께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세가 흘러나왔다.
마치 세상 모든 것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것만 같은 기이한 힘.
그리고 장이서는 저게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고 있었다.
‘오행의 기운을 흡수하고 나아가 상대의 내기마저 제 것으로 만들어낸다는 마가의 북명신공(北冥神功)!’
천마신공을 제하면 감히 최고라 말할 수 있는 전대미문의 심법.
바로 마가의 가전무공인 북명신공이었다.
아까 자신을 흡인했던 것도 마찬가지.
그가 성명절기를 드러내자 확실히 느껴진다.
지금은 칠대공자에 가려져 있지만, 분명 후기지수 중에선 천하에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자는 극히 드물 것이다.
서늘한 긴장감이 최대로 고조되던 그 순간.
“후후…… 하하하하!”
마이신이 기세를 흩트리며 대소를 터트렸다.
그러곤 눈물까지 훔치며 말했다.
“좋다. 그 도전, 받아주도록 하지.”
이렇게 쉽게? 오히려 상대가 수긍하자 불신이 생기는 건 장이서다.
“단.”
“단?”
“녀석이 패한다면, 그땐 내가 널 가져야겠다.”
“무슨 뜻이지?”
“마가의 노예가 되라는 말이다. 기라면 기고, 짖으라면 짖는. 그런 개 말이다.”
“…….”
“후후, 왜. 겁나는 것이냐?”
천만에. 장이서는 똑바로 직시한 채 답했다.
“좋다. 대신 이쪽이 이기면 지금까지의 네 죗값은 제대로 치러야 할 거다. 누굴 대신 세울 수도, 도망칠 수도 없다. 오롯이 네가 치르는 거다.”
“어떻게. 목숨이라도 내어주면 되느냐? 하하하! 가져가거라.”
마이신이 머리를 뒤로 젖히며 제 목젖을 들이민다.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
두 사람의 살벌한 시선이 허공에서 오가고, 마침내 서로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거래 성사다.
“그럼 백 일 후를 기대하도록 하지.”
“기대할 거 없어. 어차피 너한텐 그날이 지옥이 될 테니까.”
“그래. 그리 믿거라. 그래야 그때 지을 네 표정이 더 재밌을 테니.”
미친놈. 장이서가 아래위로 흘기자 마이신은 볼일은 다 봤다는 듯 몸을 돌렸다.
그러곤 걸어 나가며 나지막이 말했다.
“마차를 준비하거라.”
설마 이 사달을 만들어 놓고 그것까지 해달라고?
대책 없는 귀공자다운 말에 말문이 막혔다.
한데 놀랍게도 바닥에 쓰러져 있던 노군이 훈련된 개처럼 꿈틀거리며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내 완전히 흰자위로 뒤집힌 눈을 부릅뜨고는 혼 나간 사람처럼 앞으로 걸어 나간다.
이성이 아닌 몸이 그의 명령에 움직인 것.
그야말로 뼛속까지 노예 그 자체다.
여러 의미로 경이적.
“아.”
뒤따라가던 마이신이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곤 말했다.
“빈손으로 올 수는 없어 선물 하나를 챙겼다.”
“선물?”
“저 앞에 뒤주 하나를 놓고 갈 테니 이따 열어보거라. 아마 마음에 들 것이다. 하하하.”
그렇게 그는 메아리 같은 웃음만을 남긴 채 칠소궁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x발! 아직도 도착 안 했어? 형님! 형님-! 야, 노비 새끼!”
입구 앞에 덩그러니 놓인 뒤주에서 상상도 못 한 음색이 쏟아져나왔다.
“하…….”
장이서는 붉게 저무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실로 정신 사나운 하루라고 말이다.
* * *
– 중원 호남성 악양 동정호(洞庭湖).
해가 저물어가는 초저녁.
안개 낀 드넓은 동정호의 풍광을 배경으로 한 커다란 누각 앞에는 수많은 기인이사가 자리했다.
무림맹주의 주도 아래 정파의 고명한 어른들과 이제 약관에 다다른 후기지수들이 함께 교류의 시간을 갖는 정도후학회(正道後學會)였다.
아직 시작도 안 했지만, 누각은 벌써 들썩들썩했다.
워낙 큰 행사였고, 이리 많은 유명 인사가 모일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
특히 정도의 가장 큰 어른 중 하나이자 원로 대우를 받는 제갈상 쪽은 더더욱 그랬다.
“대인, 이렇게 인사를 드리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래, 그래. 늘 정진하시게.”
입구에서 세 걸음도 못 가고 받은 인사만 172번째. 한데도 제갈상은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내내 인자한 웃음으로 모두의 손을 잡아주었다.
‘참, 대단도 하셔. 그리 다정하시면 손녀 밥 좀 먹게 해주지.’
제갈소미는 입구 앞에 병풍처럼 서서는 내내 억지로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이젠 하도 해서 팔 떨어지기 직전이다. 자세도 대충대충. 그럴 만도 한 게 또래들은 이미 자리 다잡고 진작에 산해진미를 맛보고 있었다.
‘맛있겠다아…….’
멍하니 먹는 걸 보고 있자니 자신도 모르게 입에 침이 고인다. 그러자 옆에서 복화술 하듯 귓가에 호통이 떨어졌다.
“침! 어디 다 큰 여인이 침을 흘리는 게야? 그리고 내 누누이 상대에게 예를 취할 때는 최선을 다하라 하지 않았더냐. 한데 포권에 그리 굽혀진 손바닥이라니. 이 할애비를 조롱거리로 만들 셈이냐?”
“그러니까…… 이제 그만 좀 가요. 문지기도 아니고, 언제까지 여기 있어요. 누가 보면 할아버지 칠순 잔치인 줄 알겠네.”
“어허! 사해가 동도이고, 모두가 지기지우인 것을. 어찌 그리 야박하게…… 허허, 반갑네.”
“야박이 아니고……. 예, 반갑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투덜거리다 누군가 다가오자 반사적으로 고갤 돌려 씨익 웃고는 쳐다도 안 보고 포권부터 취했다.
한데.
“하하, 어르신. 대체 이게 얼마 만입니까. 그간 무탈하셨는지요.”
“자네는……. 구자기 아닌가!”
짙은 푸른색 도복을 걸치고, 도사들이 주로 착용하는 장자건을 쓴 중년의 도인.
화산파의 장로이자 화산의 일곱 개 기둥이라 칭해지는 화산칠진(華山七眞) 중 막내.
화평자(華平子) 구자기였다.
“이게 얼마 만인가. 7년 만이던가.”
“예, 맞습니다. 어르신.”
“허허, 벌써 그리되었어. 이제 자네도 의젓한 별이 되었구먼. 못 알아볼 뻔하였네. 아, 너도 인사 올리거라. 이쪽은…….”
“알아요. 화산의 군자(君子)라 불리시는 화평자(華平子) 대협이시죠. 소녀 제갈소미, 오랜만에 인사 올려요.”
제갈소미가 활짝 웃으며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오랜만이라곤 했지만 아주 어릴 때라 대단한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반갑게 아는 척을 해주자 화평자도 기분이 좋은지 다정히 웃으며 친근하게 답사했다.
“그래. 아장아장 걸어오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무림사화(武林四花)에 들어 지화라 불린다지. 양친께선 잘 계시고.”
“예. 잘 계세요. 농사도 지으시고, 여행도 다니시고. 뭐, 덕분에 제가 조금 바쁘지만요.”
“하하. 무림을 위해 애써주고 있다는 얘긴 들었다. 어르신께서도 여전히 바쁘시다지요. 쉬게 해드리지도 못하고 후배로서 기대기만 하여 면목이 없습니다.”
화평자의 고상한 말에 제갈상과 제갈소미는 서로를 한 번 쳐다보곤 크게 한숨을 뱉었다.
화평자는 암각의 존재를 아는 몇 안 되는 자.
어디다 하소연도 못 하는 처지에 이를 알아주는 자를 만났으니. 속이 뭉클해지는 건 당연지사다.
“그 얘기는 이따 맹주님 계신 자리에서 따로 나누도록 하세. 내 오늘 할 말이 아주 많으니.”
“하하. 예, 알겠습니다.”
제갈상이 정말 가까운 지우를 만난 것처럼 훈훈한 웃음을 짓는다. 그러곤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핀 뒤 화제를 바꿔 물었다.
“한데 화산파 제자들이 보이질 않는구먼.”
“음?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제자들은 곧 도착할 겁니다.”
“아, 이 천덕꾸러기 같은 녀석 짝 좀 찾아주려고 그러네.”
“예에?”
하, 할아버지! 제갈소미의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다급히 제갈상의 팔을 감은 채 끌어당겼다. 그러자 제갈상이 코웃음을 치며 이를 풀어내곤 덥석 화평자의 손을 잡았다.
“내 쭉 지켜봤네만, 소림이나 무당은 너무 빡빡하고. 그나마 화산파가 자유분방한 것이 내 손녀하고 잘 어울릴 것 같네. 자네 생각엔 어떤가.”
“하, 하하……. 글쎄요. 한데 이거 저희 애들이 무림사화의 성에 찰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아이들이라.”
“차지! 왜 안 차! 화산이 어때서. 내 절친한 벗이자 자네 사부인 신주오절(神州五絶) 서검(西劍) 여중악. 그 친구가 아직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그래도…….”
“군소리 말게. 자네가 몰라서 하는 말이야. 저 애가 집에서는 어찌나 드센지 사내놈이 따로 없…….”
“할아버지!”
제갈소미가 입술을 악 깨물고 소리를 질렀다. 이에 수많은 이가 쳐다보자 애써 얼굴을 가리고 말했다.
“할아버지. 진짜 이따 집에 가서 봐요. 대협, 이따 뵙겠습니다.”
억지웃음을 짓고는 총총거리며 사라지는 제갈소미. 화평자 구자기는 황당함에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보기와 달리 당찬 여장부로군요.”
“그래서 누가 데려갈지 늘 걱정일세. 참, 그러고 보니 자네 제자도 혼기가 다 차지 않았던가.”
제갈상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화평자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예, 이제 열아홉이지요.”
“호, 그래. 그 아이 도호가…….”
“선유입니다. 이제 일대제자가 되었고요.”
“그렇지! 자네가 장로에 올랐으니 그리되었겠구먼. 아직 한참 어린 나이인데 벌써 일대제자라니. 화산의 미래가 푸르구먼.”
제갈상은 좋게 말하였지만, 화평자의 입엔 씁쓸함이 가득했다.
바꿔 말해 그만큼 권세가 약해졌기 때문.
벌써 20년 가까이 지난 일이었지만, 정사마전(正邪魔戰)은 많은 것을 앗아갔다.
그중 가장 컸던 건 바로 인명(人命). 사람을 잃은 것이다.
하여 전쟁이 끝난 직후 수많은 문파가 가림없이 제자를 거두었고, 덕분에 나이가 한참 어림에도 일대제자에 오르는 기현상도 빈번해졌다.
“아직 배울 게 많은 아이입니다.”
어쨌든 누구보다 이를 잘 아는 제갈상 앞에서 시무룩해 있는 건 굼벵이 앞에서 주름잡는 일. 금세 표정을 풀고 조심스레 거절 의사를 비쳤다.
“왜. 제갈가의 손녀가 내키지 않는 겐가?”
제갈상이 너무 직설적으로 묻자 화평자는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내키지 않다니요. 저야 영광이지요.”
솔직히 싫을 이유가 하등 없었다. 오히려 영광이었다.
제갈상 역시 제 사부와 마찬가지로 정파의 가장 큰 어른인 신주오절 중 동현(東賢)으로 통하는 자.
심지어 제 사부인 서검 여중악과는 절친한 벗이다.
그런 이의 손녀가 제 제자와 맺어진다는 건 그야말로 커다란 경사.
“한데…… 선유는 지금 화산파에서 제대로 지원을 받는 상황이 아닌지라…….”
화평자의 일면이 어두워졌다. 남들이 잘 모르는 내부 사정이 있는 듯했다. 하나 제갈상은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듯 답했다.
“그럼 더 좋지! 화산에서 안 거둬주면 우리 제갈세가로 데려오면 될 일 아니겠는가.”
그 말에 화평자가 좋으면서도 속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생각해 주신다면야……. 아이들만 뜻이 괜찮다면 자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아닐세. 자넨 가만히 있게. 내 직접 한 번 그 아이를 봐야겠으니.”
“하하, 예. 그리해 주시지요. 어르신께서 만나주신다면 선유에게도 큰 공부가 될 겁니다.”
“으흠. 그거야 그렇지. 들어가세.”
볼일을 마친 제갈상이 그제야 특유의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뒷짐 진 채 안으로 들어섰다.
화평자는 아직도 생소한지 숨을 후 뱉고는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