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69)
첩자의 마교생활-69화(69/350)
69.
#한번 지켜보시오
– 다음 날.
흡사 마을이 아닌가 싶을 만큼 전각이 무수한 장원.
등 뒤로는 본산이라 칭해지는 마해산이 보이고, 앞으로는 젖과 꿀처럼 투명한 호수가 흐른다.
그야말로 배산임수의 정석.
천산에 이처럼 완벽한 터를 잡은 가문이 있다면 그건 오직 하나뿐.
마가(麻家).
마교에 수많은 요인을 배출해 낸 명실상부 제일 가문이었다.
이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가주의 부름 한 번이면 이 안의 수많은 전각을 다 메우고도 부족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는 집에 찾아온 의원이 누군지만 봐도 그 수준을 알만했다.
딱, 딱, 딱.
뱀 머리를 장식한 지팡이를 쥐고 안채에서 걸어 나오는 자그마한 노부. 바로 육장로인 독산마의 사마균이었다.
“어찌 되었나.”
밖에서 그를 기다리며 연못의 붕어들을 살피던 중년의 사내가 나지막이 물었다.
불꽃 같은 적발에 늑대 털로 만든 피풍의를 걸친 강인한 인상.
교주와 좌우사자가 인외적 존재들이라면 인간 중에서 교의 전반사를 다루는 실질적인 군주.
마오와 마이신의 부친이자, 일장로인 북명마군(北冥魔君) 마일성이었다.
“끌끌,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하였소.”
여지가 있는 말. 잘못될 수도 있다는 뜻인가.
마일성의 눈썹이 미약하게나마 꿈틀거렸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꿈적도 안 하는 자이지만, 이번만큼은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는 일.
당연했다.
마가의 장자가 귀한 손목뼈가 박살이 나서 돌아왔으니.
“……팔을 심하게 다쳤던데.”
“부서졌지. 대체 어떤 놈의 짓인지는 몰라도 아주 박살을 내놨더구려.”
옆에 선 마의의 입에서 진단이 떨어지자 마일성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
“문제가 있다면 가감 없이 얘기하게. 그래야 준비를 할 테니.”
“무슨 문제 말이오.”
“북명신공의 계승자 중에 외팔이는 존재하지 않네.”
허. 마의의 입에서 헛숨이 뱉어졌다. 그래서 뭐 어쩌려고. 제 아들을 치우기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이제 와서?
‘하여튼 정나미라고는 일절 없는 늙은이 같으니. 하긴 있었으면 이미 진즉에 잡아 먹혔겠지만. 끌끌.’
마의는 피식 웃고는 답했다.
“팔 하나 부러진 거에 무슨. 그 정도는 아니니 걱정 마시오. 두어 달 쉬어주면 잘 붙을 터이니.”
그래야만 할 거다. 마일성이 그제야 눈빛을 거두곤 고개를 끄덕인다.
이에 마의는 작게나마 입을 오물거렸다.
사실 마이신에게 팔목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제 자식이 미혼산에 취해 사는 걸 알고 있는 겐가. 뭐 어차피 내기가 강해 독기야 몰아내면 그만이긴 하다만…….’
그가 본 마이신은 기이하다 못해 섬찟했다.
부서진 팔목을 이리저리 건드리고, 눌러보는 데도 아무 내색 없이 내내 웃기만 했기 때문.
이는 확실하진 않지만, 무통증이 의심되는 사안이었다.
그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는 기형적인 증상 말이다.
그것도 꽤 오래된 듯한.
“노군은 어찌 되었나.”
음? 마의가 짐짓 놀라며 아무렇지 않은 척 답했다.
“뭐. 그 노비 놈 말이오? 박살 났지. 두 손에 구멍이 뚫리고 흉곽에 단중혈까지 찔렸는데. 그 상태로 마차까지 몰고 돌아왔으니 살아 있는 게 용한 게지.”
“……죽었단 말인가?”
마일성의 눈빛이 미세하게 떨린다.
“마찬가지로 잘 쉬어야 한단 말이오.”
살았단 말이군. 그가 처음으로 안도의 표정을 짓는다. 이에 마의는 속으로 기함했다. 제 자식 말할 때도 이리 걱정하는 척 좀 해주지. 사람 참.
“한데 대체 누구 짓이오? 이 정도면 상대가 무명인 녀석은 아닐 듯한데.”
마가의 적통을 병상 신세로 만들어 놓은 것도 기가 차지만, 상처를 보면 아주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피부가 돌처럼 단단한 노군의 두 손을 꿰뚫은 것도 모자라, 마이신의 팔목은 조각조각 바스러졌다.
그것도 단 일격에.
‘한데 그게 둘 다 동일인의 소행처럼 보인단 말이지.’
이만한 각퇴술과 첨예한 병기를 동시에 다루는 자가 어디 그리 많던가.
게다가 둘을 상대로 이 정도 움직임을 보이려면, 실로 능란한 뱀 같은 자여야만 가능한 일.
어림잡아 가늠해 볼 때 늙은 고수의 짓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그것도 경험이 많고, 아주 약은 놈.
근데 그런 자 중에 마가를 깨부술 모지리가 있었던가.
“무명일세.”
한데 예상 밖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무명. 이름 없는 놈. 한 마디로 듣도 보도 못하던 놈에게 당했다는 얘기.
“대체 그게 누구요.”
마일성은 짐짓 고민하는 듯했다. 마의가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닐 걸 걱정해서가 아니라 자신도 아는 바가 극히 적은 탓이었다.
아는 거라곤 인사불성이 된 노군이 어젯밤 홀린 듯 꺼낸 이름 석 자뿐.
“장이서.”
“장이서?! 설마 내가 아는 그 장이서?”
“아는 자인가?”
“지금 그걸 몰라서 물으시는 게요?”
마일성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아무리 장로회가 수평 구조라 하나, 엄연히 무력의 차이는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마의도 당연히 인정하는바.
“아니, 거……. 제일 잘 아셔야 하는 분께서 모르신다니 내 황당하여 그런 것 아니오. 이리 무심하셔서야.”
“본론만.”
“칠공자님의 보좌요. 이 댁 둘째 아드님 수족이란 얘기지.”
마일성의 눈에서 짙은 안광이 뿜어졌다.
보좌 장이서.
어디서 들어봤나 싶더니 분명히 보고를 받은 기억이 났다.
방첩대 조장 출신의 흔하디흔한 아무개.
너무 하찮았던 터라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며 한 귀로 흘려들었거늘.
그 이름이 여기서 다시 나올 줄이야.
괜히 옆에 있던 마의는 불똥이 튄 듯 침을 삼켰다. 그러곤 눈치껏 말을 이었다.
“내 최근에 그놈을 만나고 온 적이 있소이다.”
“어째서지?”
“맹세컨대 난 이 일과는 아무 상관 없소이다. 그러니 거 진정 좀 하시고. 내 그 아이에게 시킬 게 하나 있었소.”
“무얼 말인가.”
“광의 공손절. 그놈이 돌아왔거든.”
“음…….”
마일성의 입에서 짙은 침음이 뱉어졌다.
광의. 그 이름에 담긴 의미가 매우 크기 때문. 마의는 더 큰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뱉었다.
“이번에 사씨 형제가 깨진 건 당연히 알고 계실 테고. 그 보좌라는 녀석이 놈들 본거지를 털었는데, 거기서 허가받지 않은 미혼산이 나왔지 뭐요. 근데 그게 아무래도 광의가 만든 것 같단 말이지.”
“…….”
“사씨 형제는 사라졌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 물을 곳이 그 보좌 아니면 저기 잠들어 계신 이 집 장자밖에 없었소. 해서 월하촌에 다녀온 게요.”
한마디로 마가의 장자를 붙잡고 캐물을 순 없었다는 얘기.
짧지만 확실한 이유.
“한데 정말 장이서가 한 짓인 게요?”
“무슨 의미지?”
“아니, 의외라서 말이오.”
정말로 여러 의미로 의외였다.
분명 영특한 건 알고 있었지만, 노군과 무혈공을 상대할 만큼 강하단 생각은 하지 않았다.
게다가 다 죽어가던 몸 아닌가.
‘나마저 속일 만큼 숨겨둔 한 수가 있었단 말이렷다. 사도철도 그냥 실종된 게 아니구먼. 이거 볼수록 더 재밌는 놈일세.’
원래도 관심이 많았지만, 급격히 더 상승했다.
“뭐가 의외라는 것인가.”
기다리다 못한 마일성이 일언을 쏘아붙였다.
“아, 그놈이 싹수가 있는 놈이었거든.”
“그래봤자 한낱 7급귀 출신 아닌가.”
“그리 평하기엔 도살방이 그리 만만한 자들은 아니지 않소. 설마 칠공자께서 놈들을 막았다고 생각하는 게요? 끌끌. 아무리 제 핏줄이라도 아닌 건 아닌 게요.”
일장로 마일성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자신도 도살방이 당했단 소식은 들었다.
하나 그래봤자 왈패.
그거 하나 막았다고 달리 봐줘야 하나.
어차피 제 아들이 가지고 놀던 노리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자들이었다. 어림도 없는 일.
“뭐, 굳이 사견을 하나 보태보자면…….”
눈치껏 마의가 수염을 쓸어내리며 부언했다.
“장이서 그놈. 한번 지켜봐 보시오. 어쩌면 마가에 복이 될지도 모를 놈이니.”
마일성의 눈빛이 사납게 일렁였다. 감히 둘째인 마오의 보좌 주제에 마가의 적통을 건드린 하극상을 펼쳤다. 남들이 알면 이를 뭐라고 보겠는가.
한데 가만히 지켜보라고? 실로 주제넘은 말.
“그가 자네 음자(陰子 – 숨겨둔 자식)라도 되는가?”
“으, 음자라니! 거, 아직 장가도 안 간 총각한테 그런 되지도 않는 말을.”
“아니라면 그 입 다무시게.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도 넘어가 줄 만큼 마가는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아까운 녀석이라 그러지! 아까워서.”
“아깝다……? 자네답지 않은 말이군.”
육장로가 누구인가. 일장로가 강철 심장이라면 그는 독혈인(毒血人)이다. 피에도 맹독이 흐르는 매정한 자란 얘기.
한데 아깝다니.
사마균은 답답하다는 듯 숨을 길게 내뿜으며 대답했다.
“요즘 본교에서 보기 힘든 녀석이오. 강단이 있달까. 아무튼 오랜만에 아주 마음에 드는 녀석이었소이다. 내 요즘 눈여겨보는 놈이기도 하고.”
마일성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매몰차게 답했다.
“고작 노의원(老醫員) 눈에 들었다고 마가의 후계 몸에 흠집을 낼 자격이 있는 건 아니지.”
무슨 말을 해도 그리하나. 있는 정도 사라지게.
“거, 참. 교주께서도 눈여겨보신 녀석이외다. 그럼 자격은 충분한 것 아닌가?”
“교주께서……?”
마일성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자신이 보고 받기로 그런 이야기는 전혀 없었거늘.
“그러니 한번 지켜보라는 말이오. 혹시 아오. 그 녀석이 칠공자님을 소교주로 이끌어줄 날개가 되어줄지.”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마일성은 기가 차다 못해 순간 그가 노망인가 싶었다.
이미 본교 정세는 대공자부터 삼공녀까지, 삼자 구도로 굳혀진 지 오래고, 하물며 칠공자는 마가에서도 버린 자식이다.
한데 뭐? 소교주라니.
“늙은이의 감이외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보기엔 장이서 그놈은 난 놈이요.”
“자네가 드디어 노망이 났는가 보군.”
“노망인지 늙은이 선견인지야 두고 보면 알 일이고.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니오. 혹시 아나? 소교주가 천가가 아닌 마가에서 나와줄지. 끌끌끌.”
흠칫. 마일성의 동공이 일순 흔들렸다.
천가가 아닌 마가.
실로 달콤한 말이다. 그간 대공자인 천무기를 밀어준다는 이유로 이장로 천오산의 콧대가 얼마나 올라갔던가.
지금도 생각만 하면 속이 타들어 갔다.
그만큼 염원해 왔던 일.
하지만 이미 오래전 마음에서 떠나보낸 일이기도 했다.
‘마오. 그 아이가 소교주? 우습기만 한 소리.’
애초에 그는 마오를 제 눈높이에 올려둔 적이 없었다.
그건 서자라서가 아니었다. 그냥 자체가 자격 미달이었다.
마일성은 그 누구보다도 강자를 선망하고, 강자를 존중하는 자.
그리고 그가 본 강자는 단순히 자질이 좋다고 다가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가족도 벨 수 있는 비정함과 책임감. 그리고 그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신력.
이 모든 것을 갖추어야만 진정한 강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한데 마오는?
자질 빼면 아무것도 없는 녀석이었다. 천성이 경박하고, 대성을 이루기엔 자그마한 인내심조차 없는 녀석.
심지어 제 형과 싸워 보려는 의지조차 없던 아이다.
한데 그런 녀석이 대체 무얼 짊어진단 말인가.
소교주? 설령 된다고 해도 자신이 띠 두르고 말려야 할 판.
하나.
“어차피 아닌 척해도 마 장로께서도 내내 망설이고 계시던 것 아니오? 언제고 칠공자께서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그래서 두 자식의 부끄러운 다툼마저 내내 방치했던 것이고.”
“……!”
“보좌는 곧 칠공자님의 칼. 생각해 보면 처음으로 제 형님께 대든 것 아니오. 그러니 한번 지켜보시오. 앞으로 두 형제의 싸움이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어차피 안 될 놈이라면 장이서 그놈은 곧 단명할 것이니.”
“무슨 말인가.”
“그런 게 있소이다. 아무튼 내 말 잘 생각해 보시오. 가겠소.”
딱, 딱. 지팡이를 짚고 서서히 떠나가는 마의.
마일성은 가당치 않다는 표정으로 배웅했다.
하지만 왜일까. 묘하게 그의 말이 뇌리에 남아 신경을 박박 긁는 이유는.
‘장이서…….’
마교 일장로 북명마군 마일성.
강철 같은 가슴에 그의 이름 세 글자가 새겨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