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7)
첩자의 마교생활-7화(7/350)
7.
마교 월하촌.
중앙에 놓인 둥그런 호수 바깥으로, 상권과 주거지가 형성된 이곳은 해가 저무는 시각임에도 북경 못지않은 인파와 반짝이는 화려함이 만연했다.
호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무지개처럼 휘어진 늠름한 다리.
그 위에 어둡지 않게 열 걸음마다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등롱.
천산에 이리 잘 꾸며진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이곳이 이리 호황기를 누리게 된 건 불과 몇 년 전.
불현듯 돌기 시작한 소문 때문이었다.
‘월하촌 중앙에 달빛을 머금은 호수, 월광호(月光湖). 만월이 뜨는 날 그곳에 가면 제 짝을 만나게 될 것이다.’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 유치하기 짝이 없는 낭설.
하지만 혈기 왕성한 마교의 후기지수들은 정말 하나둘씩 월하촌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기루처럼 월광호의 다리가 모이는 널따란 중앙 외딴섬에 취선루가 세워지자 부흥기는 정점을 찍었다.
객잔부터, 기루, 도박장까지. 다용도 목적으로 만들어진 마천루.
어여쁜 등롱이 이리 오라며 손을 내밀었고, 객잔에 올라 창가에 앉으면 달빛을 머금은 월광호가 한눈에 담겼다.
이 정도면 없던 인연도 생길 수준.
더구나 루주는 늙고 고리타분한 노인이 아니라 취홍란이라는 절세미색을 가진 기녀였다.
하여 마천루 정상에서 이따금 고개를 내미는 루주의 얼굴 한 번 보겠다고 밤낮으로 기다리는 이들까지 생겨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취선루는 후기지수들의 취향을 제대로 찔렀고, 덕분에 마교의 선남선녀들에겐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되었다.
물론 조금 전 당도한 삼공녀 사해령에게는 이 모든 것이 천박하기 그지없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뭐야, 이 뚱뚱한 계집은. 저리 비키거라!”
휙! 사해령의 고개가 매섭게 돌아갔다. 그러자 거나하게 취한 놈팡이가 기녀를 감싸 안은 채, 저를 스치고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오늘 평생의 운을 다 썼다.
만일 이곳이 취선루가 아니고, 또 자신이 인피면구를 쓰지 않았더라면.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이었을 테니.
‘반면 장이서 너는 오늘 아주 운이 없구나. 이런 내 기분을 모두 네가 받게 생겼으니.’
끼익! 그녀가 소리 없는 걸음으로 취선루에 들어섰다.
초저녁인데도 일 층엔 벌써 사람이 가득했다. 중앙엔 굵직한 은행나무가 천장이 뚫린 3층까지 만개해 있고, 각 층의 둥그런 테두리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런 쓸데없는 데서 허송세월이라니. 한심하구나.’
왁자지껄 떠드는 또래의 젊은이들이 이리도 멍청해 보일 수가 없다. 이 시간에 검 한 번 더 휘둘러도 경지를 이룰까 말까 한 자들이.
점소이가 다가서려 하자 그녀는 말없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러곤 위압적인 기세를 풍기며 2층으로 올라섰다.
아래층보다는 한산하다. 소식은 들었다. 장이서는 주로 이곳에 머문다고 했다.
“음?”
다행히 오래지 않아 찾을 수 있었다. 사해령은 눈썹을 올렸다가 내리곤 뒤로 가서 멀찍이 떨어진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안주도 없이 홀로 술만 들이켜는 사내.
스물여덟 나이에 비해 동안이긴 하나 너무도 용모가 평이해 길거리에서 봤다면 보고도 지나쳤을 자.
방첩대 삼조장 장이서.
바로 그였다.
‘누굴 기다리는 중인가?’
홀로 술만 퍼마시는 중이라니. 이럴 거면 서둘러 진산파파나 찾을 것이지. 세상에 저리 태평할 수가 없다. 한심함에 절로 눈매가 좁혀진다.
“대인, 뭐로 하시겠습니까.”
점소이가 다가와 물었다. 그녀는 답 대신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품에서 귀한 은자 한 냥을 꺼내 내려놨다. 이를 본 점소이의 눈이 번쩍 커졌다.
보통 이런 경우는 하나였다. 답만 잘하면 몇 달 치의 품삯을 거저 얻을 기회.
“하문하시지요.”
“저자는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느냐.”
누구라 말한 것도 아닌데 점소이는 눈칫밥으로 곧장 답했다.
“헤헤, 글쎄요. 한 열흘쯤 되셨습니다.”
“열흘 내내 저러고 있었단 말이냐.”
“예. 저희 취선루에서 운영하는 별채에 머물고 계신 분이라 잘 압니다요.”
“취선루에 별채도 있었나? 처음 듣는 얘긴데.”
“저희 취선루 상층에 자격을 갖춘 본교 최고의 귀객들만 머물 수 있는 곳입지요. 아마 저분도 보통 분이 아니실 겁니다. 소저께서 저분이 마음에 드신다면 제가 가서 언질이라도 넣어볼까요?”
뭐?
“네가 정녕 죽고 싶은 것이로구나!”
사해령이 소리를 빽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눈빛 너머로 막대한 살기가 느껴진다. 이게 아닌가. 은자 한 냥 더 얻어보려다가 욕심이 앞섰다. 점소이는 사색이 된 채 죄송하다며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하나 이 정도에 가라앉을 화가 아니다. 사해령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연신 숨을 씩씩댔다.
감히 저를 뭐로 보고, 저런 놈팡이와 엮는단 말인가. 게다가 저리 한심하기 짝이 없는 7급귀를 귀객이라 부르다니. 취선루의 명성도 다 헛것임이 이제야 밝혀졌다.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쁘구나. 아무래도 그냥 넘겨서는 안 되겠다. 루주를 만날 것이다.’
사해령이 잔혹한 걸음을 떼려는 찰나였다.
“소저……?”
옆에서 들려온 친근한 목소리에 이마엔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하.”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리자 그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이서.’
너무 소란을 크게 벌였다. 하나 이미 엎질러진 일. 슥. 그녀가 최대한 담담한 표정으로 장이서의 맞은편 자리로 가서 물었다.
“앉아도 되겠나.”
“제갈서관에서 만났던 처자가 아니오.”
“기억하는군.”
“내가 한 번 본 얼굴은 잊지를 못해서. 특히 이상한 얼굴이면 더더욱. 설마, 나한테 반해서 찾아온 건가?”
“여전히 그 입은 매를 버는구나.”
드륵. 사해령이 인상을 확 찌푸린 채 의자를 빼 앉았다. 그러자 장이서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감을 보니 반해서 온 건 아닌 거 같고. 여긴 웬일?”
“웬일? 지금 내게 말을 놓은 것이냐?”
“왜. 이상한가?”
하. 사해령이 코끝을 찡그리곤, 식탁에 쓰지 않고 올려진 젓가락을 슬며시 쥐었다. 지금까진 음식을 먹는 수단에 불과했겠지만, 자신이 쥔 이상 저 건방진 혓바닥을 뚫어줄 암기다.
그러니까.
“말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그러지.”
“너…… 내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구나.”
“남녀가 월하촌에서 만나면 말부터 터는 게 불문율이지. 특히 낯선 사내의 자리로 와서 동의도 없이 합석한 여인이라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나?”
“내가 왜 그딴 걸 감수해야 하지?”
“못할 건 또 뭔가. 인피면구를 쓴 삼공녀라도 되나?”
허를 찌르는 질문에 그녀가 일순 멈칫했다. 하나 금세 입꼬리가 올라섰다. 용케 알아보는구나. 어차피 숨길 것도 없다. 그녀가 그렇다고 답하려는 찰나였다.
“하긴 말이 안 되지. 고상하기 그지없다는 천하의 삼공녀께서 짝 찾으러 월하촌에 나오다니. 그것도 부끄러워 인피면구까지 쓰고 말이야. 그런 우스운 일이 어디 있나. 안 그렇소?”
와하하, 맞습니다. 언제 온 것인지 점소이부터 드문드문 자리한 손님들이 왁자지껄 웃으며 맞장구를 친다.
“하?”
덕분에 사해령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설마 일부러 알고 이러는 건가? 설마와 의심이 뒤섞인다.
하지만 놀라긴 아직이다.
장이서가 술을 한입에 훅 털어 넣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이제 뭘 하면 되나?”
뭘 하냐니.
“그걸 왜 내게 묻지?”
“왜긴.”
장이서가 관통하는 눈을 슬며시 올려 뜬다. 그리고 속삭이듯 말했다.
“그쪽이 진산파파잖아. 내 보좌 시험관.”
쿵! 인피면구를 쓰고 있음에도 두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언제부터…… 어떻게……. 아니,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
하지만 있다, 그런 놈이.
그것이 바로 장이서다.
*
어느새 달을 감추던 구름이 비껴가고, 월광호엔 만월이 스몄다.
사해령은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어떻게 알았지?”
“기다리고 있었거든.”
“진산파파를?”
장이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또르르 따른 술을 한입에 비웠다.
정확하게는 진산파파가 아니라 바로 너. 삼공녀 사해령을 기다린 거다.
물론 그것까지 그녀가 알 턱은 없다. 하나 그의 대답은 그녀의 심경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조급해할 거 없어. 다 말해줄 거니까.”
이런. 사해령은 아차 싶었다. 상대와의 수 싸움엔 평정심이 기본이거늘. 순간 마음이 조급해졌고, 이를 읽혔다. 실로 어리석은 실수를 범한 것.
‘미친개라더니. 확실히 어수룩한 녀석은 아니구나.’
평가가 달라지면 태도도 달라지는 법. 그녀는 낮잡아 보던 시선을 한 단계 올렸다. 그러자 장이서가 점소이에게 새 술과 술잔을 가져오라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또르르. 그러곤 새 술을 새 잔에 따라 그녀 앞에 웃으며 건넸다.
“내가 방첩대에서 하던 일이 그래. 조사하고, 찾아내고, 추궁하고. 뭐 그런 일이지. 그런데 진산파파는…….”
장이서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실체도 없는 허상이자, 함정임을 말하는 거다.
사해령은 물끄러미 장이서를 바라보다 제 앞의 술을 비웠다.
별거 아닌 행동이지만, 의미가 컸다. 왜냐하면 삼공녀는 아무에게나 술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시험을 시작하겠다는 알림과도 같았다.
그리고 첫 번째 머리는 합격.
녀석은 의외로 신중하게 움직였고, 차분히 기다렸다.
예상치 못했기에 더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넌 날 찾아왔어야 했다.”
두 번째 시험이다.
그녀의 말에 장이서는 반박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산파파의 정체가 무엇이든, 그는 시험관이고 자신은 시험을 보러 온 말단이다. 그러니 아랫사람으로서 예를 갖추고 먼저 찾았어야 했다.
장이서가 정중히 일어나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맞는 말이오. 건방졌던 건 사과드리리다.”
이 새끼. 사해령의 눈매가 가냘파진다. 고집이 세 보이지만, 인정이 빠르다. 그건 그만큼 혜안과 강단이 있다는 얘기.
“따라라.”
그녀의 명에 장이서가 다시 피식 웃고는 술을 따랐다. 그러자 그녀가 두 번째 잔을 마신다.
이번에도 합격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표정도, 어투도 좀 더 진중해졌다.
“왜 칠공자의 보좌인 거지? 그게 무슨 일인지는 알고 있는 건가?”
“출신도 미천한 놈이 위로 올라가기는 참 어려운 일이야. 그러니까 기회가 있다면 그게 뭐든 부딪쳐보는 거지.”
“솔직하지만 음흉한 답변이군.”
“하지만 대충은 없어. 밥값은 하자는 게 내 신조거든.”
“3급귀는 상급직. 한낱 조장에 불과한 지금의 너와는 전혀 다른 세계. 거기서 네가 뭘 할 수 있지?”
“글쎄…… 1년 안에 이 정도는 충분하지.”
장이서가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인다.
“무슨 뜻이냐?”
“일곱 중에서 세 손가락. 그 안에는 들 거라는 얘기야.”
하. 하하. 사해령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 정도면 오만을 넘어선 광오다. 자신과 오라버니들 중에 하나는 꺾을 자신이 있다는 뜻 아닌가.
#형한테 교육 좀 받아야겠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