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70)
첩자의 마교생활-70화(70/350)
70.
#다시 천마전으로 (1)
– 월하촌 칠소궁.
장이서는 창공에 여명이 비칠 때쯤 일찍이 잠에서 깨었다.
제 방이 아닌 옆방인 탓도 있고, 또 지난날 다사다난했던 탓도 있겠지만.
가장 큰 건 역시나 당장 직면한 문제 때문이었다.
‘이제 열흘도 남지 않았다.’
바로 교주와의 조찬.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구규지체를 치료하기 위한 단초는 이미 얻었고, 이제 도전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
하지만 장이서는 쉬이 행하지 못하고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소주천은 단전의 내기를 둔부의 회음혈로 내려보내 척추를 타고 장강, 명문, 영대, 대추, 옥침에 이르는 독맥의 길을 거슬러 올리는 거다. 그래서 정수리의 백회혈에 다다르면 다시 이마에 자리한 인당부터 천돌, 단중, 중완, 기해에 이르는 전면의 임맥을 타고 내려오는 것.’
아래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이것이 바로 소주천의 개념이다.
그렇게 임맥과 독맥에 내기를 일주천 시키면 그때부터 경천동지한 힘을 쓸 수 있게 되는 것.
바꿔 말하자면 구규지체의 첫 번째 구멍에서 임독양맥으로 내기가 흐를 수 있게 길만 뚫어주면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첫 번째 구멍에서 아홉 번째 구멍으로 가는 건 이미 실패했고,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기혈(氣穴)이다.’
그렇다. 단전에서 독맥으로 가는 새로운 출로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성공시킬 자신도 있었다.
문제는 몸이 얼마나 버텨줄 수 있느냐는 것인데……. 아무리 봐도 지금 상태로는 기껏해야 기회는 딱 한 번뿐.
‘여기까지 알아낸 것도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제 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왜……. 어째서 이렇게 기분이 찝찝한 거냐.’
시도를 미루는 건 의문스러운 점이 한 가지 더 있기 때문이었다.
장이서는 사실 마의와의 대화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교주님께서 간혹 아끼는 녀석들에게 신성한 천마의 내공을 베풀어 주시곤 했지.’
자신이 처음이 아니다. 분명 천마는 여럿에게 내공을 전수해줬었다. 그런데…….
‘그럼 다른 이들은 지금 다 어떻게 됐습니까.’
‘죽었겠지.’
그들 모두가 절명했다고 했다.
어째서?
자신은 구규지체를 가진 자. 그래서 내기가 새어나가기 때문에 마기에 중독된 것이고 죽음에 임박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구규지체도 아니면서.
도대체 왜 죽은 것일까.
장이서가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망념이다. 계획은 완벽하다. 기혈을 뚫으면 되는 거다. 어차피 그것 외에 다른 방도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고민하지 말자.”
애써 스스로를 다독이며 장이서가 스륵 눈을 떴다.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와 머리를 가다듬고, 제 방에 잠들어 있을 마오에게로 향했다.
마지막 시도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
“칠공자님, 깨어나셨습니까.”
드르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한데 누워 있어야 할 침상이 텅 비어 있다.
“어디 간 거야.”
아직 걷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용변이 급했나. 장이서가 고개를 갸웃하며 창가로 걸어가 아래를 내려 살폈다.
그러자.
“으랴아아아아!”
기합을 내지르며 본관으로 달려들어 가는 마오의 모습이 보였다.
“저 자식…….”
일순 장이서의 얼굴이 묘하게 비틀렸다.
그가 마지막 시도 전에 하려던 게 바로 마오를 수련시키려는 것이었다.
천마 진우광으로부터 숙제를 받은 건 자신만이 아니기에.
한데 저리 알아서 움직여주다니.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그리고 내내 지우지 않던 미소를 별관의 문을 열고 나가면서 갈무리했다.
이어 벌써 바닥에 널브러져 신음하는 마오에게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장이서…….”
“일어나십시오.”
마오가 힘겹게 땅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후들거리는 두 다리에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당연한 일. 의원이 보름은 족히 쉬어야 한다고 했었다.
한데 이리 움직이니 당연히 몸살이 날 수밖에.
“말리지 마. 멍청하게 쉬고 있을 마음 없으니까.”
“안 말립니다.”
“어?”
“제가 왜 말립니까. 밤새고 수련해도 모자랄 마당에. 어차피 지금 아파서 죽나, 열흘 뒤에 교주님 지풍에 죽나. 그게 그겁니다.”
“아니, 그건 그렇긴 한데…… 기분이 좀 그렇다?”
“살아야죠. 같이.”
분명 별거 아닌 말인데도 ‘같이’라는 표현에 마오는 가슴이 뭉클했다. 이에 괜히 코끝을 긁적이며 딴청 피우듯 말했다.
“당연하지.”
장이서가 다정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각오는 하셔야 할 겁니다.”
“각오야 이미 했지. 근데 방법이 떠오르질 않아. 몸으로 막아내자니 아버님의 지풍은 바위도 뚫어버리고, 피하자니…… 당장 저 쇠추도 못 피하잖아.”
맞다. 지금 마오의 실력으로는 어느 쪽이든 아무리 노력해도 쉽지 않은 일.
하지만.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마오가 아픈 몸으로도 팔짝 뛰며 환호했다.
“진짜? 잠깐, 말하지 마. 나 알 거 같아. 이에는 눈, 눈에는 이. 지풍에는 다다익권풍! 맞지!”
맞겠냐. 그리고 지풍에 왜 권풍인데. 그건 반칙 아니냐. 장이서가 고개를 젓고는 단호히 말했다.
“그냥 바위보다 단단해지면 됩니다.”
“어?”
“칠공자님의 가장 큰 장기는 체내의 회복력을 극대화하고, 상처를 방비하는 현명한 양기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서 계실 수 있는 거고요.”
마의로부터 내기에도 각기 성질이 있음을 깨달았다. 천마의 마기가 모든 걸 파괴하는 쪽에서 정점이라면, 마오의 양기는 반대로 보호하는 쪽에 특화된 성질이었다.
“그래서?”
“그러니 맞기 전에 미리 내기를 발출해 응수한다면. 그럼…… 더 큰 공격도 막아낼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는 알아서 내기가 움직여 타격을 줄여준 것이라면, 이젠 아예 미리 집중하여 방비하자는 것.
그러니까.
“그냥 나더러 처맞으라는 거잖아.”
마오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정답. 하지만 장이서는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맞는 게 아니라 견디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철통방어(鐵桶防禦)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어, 언제부터?!”
지금부터. 장이서가 당당히 고개를 젖힌 채 눈을 내리깐다. 이에 마오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철통방어라니……. 뭔가 대단해 보이잖아? 아니, 마음에 들어! 나는…… 철통이다! 우하하하!”
그리 생각해 주면 다행이고.
“그럼 각오하십시오. 이제부터 열흘간 많이 아플 겁니다. 하지만 견디십시오. 눈으로 위치를 보고 내기를 내보낼 준비를 하란 말입니다. 그럼 누구도 칠공자님을 해할 수 없을 겁니다. 그게 설령 천마이신 교주님이라고 해도…….”
“내가…… 그런 대단한 무공을 익힐 수 있을까?”
“아무렴요. 천재인데.”
“나 할래……. 할 거야. 아니, 해야겠어. 가르쳐줘, 장이서!”
“좋습니다. 그럼 딱 서십시오.”
“응? 어.”
저벅, 저벅. 마오가 순수한 눈망울로 쳐다보는 사이, 장이서가 가까이 다가왔다.
뭔데. 왜 이렇게 가깝게 서는데. 마오가 불안함에 아래위로 흘기는 그 순간.
빠악!
“컥.”
장이서가 주먹을 마오의 명치에 꽂았다. 마오는 숨이 턱 막혀옴을 느끼며 뻘게진 눈으로 장이서를 노려봤다.
이, 이게 무슨……?!
그러자 장이서가 서늘한 눈을 내리깔며 이렇게 말했다.
“딱 대.”
“자, 잠깐만…… 사, 사람 살…… 어억!”
천마전으로 가기까지 남은 시간 열흘.
장이서는 눈매를 굳힌 채 뒤차기를 날리며 다짐했다.
자신도, 그리고 마오도.
천마로부터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라고.
반드시.
그리고…….
시간은 봄날에 피고 지는 꽃잎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수련에 수련에 수련.
이윽고 마침내 열흘.
드디어 천마전으로 가야 할 날이 밝았다.
*
칠소궁이 오랜만에 인파로 북적였다.
이른 아침부터 졸린 눈으로 찾아온 용태와 메기를 비롯한 흑룡파 식구들. 그리고 걱정 가득한 얼굴로 다소곳이 서 있는 취홍란.
마지막으로 화가 잔뜩 난 제갈귀룡이었다.
“대체 어떤 놈 짓이야? 누가 이따위로 무식하게 다 부숴놨어?”
만들어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입구가 이 모양인지.
벽 속에 마련된 쇠 막대들은 삭은 콩나물처럼 축 처져 다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할 판이었다.
“있어, 호랑이 같은 양반.”
안쪽 별관에서 기다리던 장이서가 걸어 나오며 화답했다.
“오?”
“어머.”
한데 평소 밋밋해 보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목까지 깃이 올라온 새하얀 무복에 장신구가 달린 붉은 허리띠. 그리고 단정히 올려 묶은 머리.
제법 꾸민 티가 난다. 그 모습이 평소랑 확연히 달라서인지 은근히 멋이 느껴졌다.
“잘 어울리세요.”
취홍란이 발그레해진 얼굴로 수줍게 칭찬을 건넸다. 그럼 다행이고. 장이서는 웃음으로 화답했다.
용태도 눈을 동그랗게 뜨곤 물었다.
“형님께 드디어 봄날이 찾아왔군요. 누굽니까. 대체 어느 여인이 이리 형님 마음을 뒤흔든 겁니까?”
“그런…….”
취홍란이 당황하며 눈을 굴린다. 이에 장이서는 코웃음으로 답했다.
여인은 무슨.
이렇게 차려입은 데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이 차림이 마지막 모습이 될 수도 있어서. 그래서 한번 차려입어 본 거다.
게다가.
‘죽어간다고 소문내고 다닐 순 없잖아.’
이미 발목부터 목젖까지 혈관이 검게 물들었다.
그렇다. 이는 아직도 답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
그리고 이를 알아본 취홍란만이 애써 웃으며 걱정을 감췄다. 혹여 떠나는 그의 마음 불편해질까 봐.
“전하고 똑같이 만들어주면 되는 게냐?”
제갈귀룡이 퉁명스레 묻자 장이서는 잡념을 떨치곤 답했다.
“아니, 기왕이면 철옹성처럼 단단해졌으면 좋겠어. 불청객이 잦아서.”
“흐음……. 뭐 돈과 시간만 있다면야.”
“그럼 그렇게 부탁하지.”
“흥, 부탁은 무슨. 나도 돈 받고 하는 일을.”
제갈귀룡이 흔쾌히 답하자 장이서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저리했지만, 삼공녀의 허락이 없었다면 이리 팔 걷어붙이고 도와주진 않았을 거다.
‘다음에 만나면 밥이라도 사야겠어.’
장이서는 그녀 생각에 피식 웃음을 흘리곤, 이내 용태를 일별한 뒤 다시금 말했다.
“참 부탁이 하나 더 있는데.”
“무엇이냐?”
“저 친구들 이번에도 한 번 써 보고 혹시 괜찮으면 일 좀 가르쳐 줄 수 있겠나?”
“누구. 저 왈패 놈들 말이냐?”
“맞아. 대단한 걸 바라진 않아. 그냥 일 있을 때 데리고 다니면서 시키기만 해.”
혀, 형님! 용태와 흑룡파 식구들 얼굴이 짙은 당황으로 물든다.
지난번부터 생각한 일이었다.
왈패라곤 해도 타인에게 큰 해를 끼치지 않았고, 또 마오를 이용하는가 싶었지만 끝내 의리도 저버리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기회라도 주는 것이 정도인의 도리.
“흐음. 좋다. 대신 일 못하는 놈 몫은 네놈이 다 충당해야 할 게다. 그래도 괜찮겠느냐?”
“얼마든지. 취선루 앞으로 달아 놔.”
제갈귀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이 떨어진 것. 이에 용태와 흑룡파 식구들이 감격에 찬 눈으로 크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형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장이서는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감사할 건 없다. 그저 다리를 놔준 것뿐이니. 이제부터는 너희들의 몫.
“하여튼 가만 보면 속도 좋아. 정파인이 따로 없다니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러자 안채에서 멋들어진 붉은 무복을 차려입은 마오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전의 망나니 같던 모습과 달리 정제되고 자신감이 깊이 밴 눈빛.
모두가 놀라고 있는 사이, 장이서는 천천히 모두를 두루 살피며 나지막이 말했다.
“다녀오지.”
이제 천마전으로 떠나야 할 시간.
“가자, 장이서.”
마오의 당찬 걸음을 시작으로 두 사람이 마침내 길을 떠났다.
목숨이 걸린 숙제를 끝내기 위해.
천마 진우광.
그에게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