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73)
첩자의 마교생활-73화(73/350)
73.
#천마의 선물 (1)
‘교주님께서 따로 눈여겨보셨다니. 우연히 보좌로 올라온 놈은 아니란 말이렷다.’
흑야는 골똘히 장이서를 살폈다.
사실 그가 백야 대신 오늘 이곳에 나온 이유도 애초에 그를 보기 위함이었다.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본래 그의 역할 중 하나가 마교의 핵심 전력인 일백마성의 무사를 확인하고 관리하는 것이기 때문.
한데 그중 하나인 사도철이 행방불명이 되어버렸으니 이를 조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둘째는 바로 그 사도철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미천한 출신에 아직 이립(30살)도 안 된 애송이 보좌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를 이상하게 보고 직접 눈으로 확인코자 나왔던 것.
‘한데 그냥 물었으면 될 것을. 괜히 골려주려다가 자충수만 둬버렸구나.’
제 꾀에 제가 넘어간 상황. 흑야는 괘씸해 하는 표정을 짓고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발칙한 놈.”
하지만 거친 말과는 다르게 장이서의 몸을 휘감던 그림자가 땅바닥에 있던 본래 자리로 되돌아갔다.
이는 패배를 시인하겠다는 뜻. 강자로서 책임은 지겠다는 얘기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보좌 장이서입니다.”
이에 장이서도 더는 개의치 않겠다는 듯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그러자 흑야가 눈매를 꿈틀거렸다.
“배짱 하나는 쓸만하구나.”
이번엔 진심이었다. 패배를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승리에 도취하지도 않았다. 이건 진짜라는 얘기.
흑야의 표정이 살짝 누그러졌다.
“보좌에 필요한 게 꼭 무력이 전부는 아니지.”
호평이다. 이에 장이서도 시원시원하게 답했다.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닙니다.”
“흥, 빼진 않아 좋구나.”
이에 흑야가 처음으로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장이서는 생각했다. 그의 성향이 이제 조금 보인다. 가타부타 재는 걸 싫어하고, 성미가 급한 편. 그만큼 속단도 잦다.
“하나 아직 넌 도살방주를 꺾을 실력은 아니다. 설령 놈이 죽었어도 네가 직접 벌인 짓은 아니란 얘기겠지.”
그리 앞서 생각해 주면 감사한 일이고. 장이서가 다중적 의미의 웃음을 짓자 흑야는 아무렇지 않게 품에서 패 하나를 꺼내 던졌다.
툭. 이를 장이서가 받아 들고 보니 앞면과 뒷면이 흑색과 백색으로 이루어진 둥그런 패다.
그것도 양면에 광명좌우사자의 직인이 찍힌 신패!
“이건……!”
“한 번은 쓸모가 있을 거다. 그것으로 내 책임은 다한 것이다.”
흑야는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가로막고 있던 문에서 한 발 옆으로 물러섰다.
말은 간단히 했지만, 이 패에 담긴 의미는 그리 가볍지 않았다.
어디서든 이 패를 들이밀고 의사를 내뱉는 순간, 그것이 곧 광명좌우사자의 명이 된다는 것.
일회성이긴 하나 이것 하나만으로 마교에서 못 할 일은 없다는 얘기다. 그야말로 사용에 따라 엄청난 특권.
“왜 싫으냐?”
“좋습니다. 잘 쓰겠습니다.”
“제기랄. 가거라.”
“예.”
장이서는 뜻밖의 선물인 패를 품에 넣고는 당당히 문 앞에 섰다.
그리고 가볍게 문에 손을 얹었다.
우우웅!
이내 운기하자 몸 안에서 지독한 마기 들끓어 오른다. 멀쩡했던 얼굴과 손등마저 시커먼 혈관이 드러나고, 거대한 철문의 홈에도 흑광이 뿜어졌다.
‘죽음을 앞두고 있구나.’
흑야는 직감했다. 지금 장이서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을. 기껏 기개가 가상해 신패까지 줬거늘. 써 보지도 못하고 오늘 비명횡사하게 생겼다.
눈매가 좁혀지고 서서히 열리는 문을 보며 차분히 생각에 잠겼다.
‘그 신패를 노잣돈으로 저승길에 들고 갈지, 아니면 나와서 칠공자를 위해 쓰게 될지. 그것 또한 네 운명이겠지. 하나 나는 왠지 네 사주의 끝자락이 오늘은 아닐 것 같구나. 끌끌.’
천마전 안으로 들어서는 장이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광명우사는 스륵 몸을 돌렸다.
* * *
“흐흐흐…… 우하하하하!”
마오는 날아가는 지풍을 보며 분간도 못 하고 대소를 터트렸다.
자신이 천마의 지풍을 막아냈다. 그것도 당당하게 정면 승부로.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장이서, 네 말대로 보여줬다. 제대로.’
저릿저릿한 손바닥이 훈장처럼 느껴진다.
솔직히 장이서와 수련했던 그 어떤 때보다도 이번에 느낌이 좋았다. 마치 손바닥을 에워싼 양기가 순간 금강석처럼 단단해진 느낌.
그렇다.
그 순간만은 정말 금강불괴라도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이는 장이서도 예상치 못 한 일이었다.
마오가 위기의 순간, 혹여 뚫릴 거란 불안감에 내기를 발출하기 직전에 의도치 않게 회수하여 손바닥에 둘러버린 것.
“너는 내 예상을 번번이 빗나가게 하는구나.”
하지만 과정이 무엇이든 어떠하랴. 중요한 건 천하제일인 천마 진우광을 놀라게 했다는 것이다.
콰과과과!
천마는 제게 날아드는 드센 지풍을 바라보며, 입가에 진득한 미소를 지었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흡족했다.
태풍처럼 제 도포를 몰아치는 여파도. 또 붉은 광채를 뿜어내는 저 지풍도. 자신만만하게 웃는 제 자식의 패기도.
그 모든 것이 전부 다.
“합격이다.”
슈아아아악! 천마가 손을 뻗자 날아들던 모든 바람이 한순간에 그의 손아귀로 회오리치듯 빨려 들어갔다.
그러곤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게 잠잠해졌다.
파스스. 그의 손에서 뜨거운 열기가 삽시간에 식어버리는 소음과 함께.
일순 적막이 감돌고.
“어, 어라라?”
한껏 기대에 들떠있던 마오는 너무도 싱겁게 끝나고, 식어버린 상황에 급하게 현실을 깨달아 버렸다.
제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말이다.
‘내가 교주님을…… 사, 사살하려고 했구나!’
동공은 급격히 흔들리고, 두 다리는 와르르 떨렸다.
천마가 누구인가.
천마지존 만마앙복.
신교의 맹약에도 나와 있듯 만마가 신으로 추앙하는 존재다.
그런 이를 공격하다니…….
천마가 서늘한 눈을 슥 올려 뜨며 물었다.
“누구에게 배운 것이냐.”
“예, 예?”
“날 도발하고, 거기에 반격까지 가한다는 그 귀여운 계획 말이다.”
“여, 역모입니다! 아니, 음모입니다!”
마오가 대뜸 납작 엎드려 오체투지를 한다. 이에 천마는 눈매를 좁히며 아래위로 흘겼다.
“묻는 말에나 답하거라. 그 보좌 아이더냐.”
“마, 말할 수 없습니다.”
“맞구나.”
“맞습니다. 그놈입니다.”
미안해, 장이서. 나 들켜버렸어. 마오가 주먹을 꽉 움켜쥔다.
한데 그 순간, 놀랍게도 저절로 천천히 몸이 일으켜 세워졌다.
“어, 어?”
“좋은 스승을 두었구나.”
천마의 다정다감한 말에 마오는 두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그제야 책임을 물으려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칭찬을 하신 거였구나.
후,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곤 펴진 얼굴로 말했다.
“예, 뭐. 제가 천재인 탓이 크지만요.”
“후후, 그래. 그런 것 같구나.”
“그렇죠? 하하하!”
마오가 천진난만한 웃음을 터트리자 천마도 기분이 좋은지 제 턱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칠공자에겐 아무런 기대도 없었다.
가진 자질이 훌륭하긴 하나 그것만으로는 절대 지존이 될 수 없는 일.
사람을 아우르는 기개와 천운. 그리고 뛰어난 오성과 기감까지.
모든 것이 어우러져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중 자질을 빼면 가장 형편없던 칠공자가 제 예상을 깨고 성장하고 있었다.
그것도 급속도로 빠르게.
더구나 제가 내린 숙제를 이만큼 완벽하게 해오다니.
이 정도면 포상은 당연한 수순.
“선물을 줘야겠구나.”
“정말입니까?!”
“그래.”
마오의 눈이 띠용 커지고 탐욕의 미소를 지었다. 지난번에 받은 신물은 그냥 빼앗긴 걸 다시 돌려받은 거고, 이번이 진짜다.
‘뭘 주실까? 설마…… 전설의 천마신공?!’
생각 한번 참 단순하다. 그게 그렇게 쉽게 줄 무공이었으면 소교주 자리를 두고 뭣 하러 그리 싸우겠는가.
천마 진우광은 본래 고민이 길지 않은 자. 금세 생각을 끝내고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다른 아이들은 무공이든, 저를 뒷받침할 세력이든. 무엇이든 하나는 지니고 있었거늘. 너는 아무것도 없구나.”
“장이서 있는데요.”
“네게 백인장(百人將)의 인(印)을 내리겠다.”
“예? 뭐요? 장의인이요?”
마오가 당황하며 따지듯 엉기려는 순간, 진우광의 몸에서 스산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곤 등 뒤에 거대한 악귀가 솟아난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으으으. 뭐, 뭐야.’
착시인가, 아니. 저게 도대체 무엇인가.
마오는 덜덜 떨며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그저 눈이 마주친 것뿐인데도 마치 시체로 쌓아 만든 태산 위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것처럼 오싹했다.
이는 아무리 천방지축에 눈치 없는 마오라도 단번에 직감했다.
‘더 나대면 죽는다.’
“소자,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마오가 꾸벅 고개를 숙이곤 물러갔다.
그리고 남겨진 천마는 제 손바닥을 한 번 흘기곤 중얼거렸다.
“상대의 힘을 되돌리는 무당의 사량발천근(四兩撥千斤)과 같은 이치인가. 아니지. 그것과는 다르다. 이건 태양과도 같은 막대한 양기가 상대의 힘에 보태어져 음양의 조화를 깨트리고, 방향을 바꾼 것이다.”
진우광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분명 마오는 얼떨결에 펼친 듯했지만, 어쨌든 이는 자신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경지였다.
바꿔 말하자면 아직 배울 게 남았다는 뜻.
“되돌리는 양의 기운과 모든 걸 집어삼키는 마의 기운. 과연 어느 것이 더 강할까. 궁금하구나. 네가 내게 되돌려줄 그 힘의 끝이 어디까지일지.”
이로써 기대할 것이 하나 더 늘었다.
이는 정점에 오른 천마에게는 크나큰 기쁨과도 같은 것.
물론 오늘의 진짜 요리는 따로 있지만 말이다.
천마가 아무런 소리도 없이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길게 펼쳐진 복도에 다다르자 비로소 그가 모습을 보였다.
“왔구나.”
자신이 한 달간 가장 기다렸고, 보고 싶었던 아이.
“천마지존 만마앙복. 보좌 장이서. 교주님을 뵙습니다.”
그의 등장이다.
*
천마가 장이서와의 만남을 얼마나 고대했는가 하면.
자다가 눈을 떴을 때 야명주가 아홉 개인 걸 보고 그의 이름 석 자를 떠올렸다.
‘장이서.’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겠는가.
아니, 아마 대부분은 모를 것이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 보라.
천마 진우광.
자그마치 만마를 아우르는 천하제일인이다.
산 정상에 올라 천군만마를 내려다보던 그가 병졸 18,928번 같은 미천한 출신의 보좌 하나를 콕 짚어 떠올린 것이다.
이름까지 정확하게.
이는 엄청난 기대감이 아니고서야 절대 불가능한 일.
한데.
그렇게 기다렸는데도.
“너는 끝내 답을 찾지 못하였구나.”
천마의 입에서 싸늘히 식어버린 차처럼 냉랭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럴 만도 했다.
이미 장이서의 몸은 온통 검은 혈관이 흉측하게 부풀어 있고, 당장 언제 터져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