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74)
첩자의 마교생활-74화(74/350)
74.
#천마의 선물 (2)
차라리 칠공자보다 장이서를 먼저 만났다면 아쉬움이 덜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를 도발시킨다는 신랄한 계획까지 일러준 놈이 정작 제 일에는 이리도 무능함을 보여줄 줄이야.
‘괜한 기대였는가.’
차라리 기대가 없었다면 모를까, 실망을 금할 길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정상에 올라 무료하고도 허한 저의 일상은 칼바람 치는 태풍도 잔잔한 춘풍과 같은 법.
이 정도로 끝인 놈이라면 관심을 거두고 친히 없애주면 되는 일.
한데.
“답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기다렸을 뿐입니다.”
장이서의 입이 나긋이 열리며 훅 꺼진 마음에 촛불을 피웠다. 자연스레 천마의 입꼬리가 본의 아니게 위로 올라섰다.
“기다려?”
“예. 오늘 여기 왔어야 할 사람은 저뿐만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그럼…… 칠공자를 위해 네 답을 미루었다?”
“예.”
장이서는 짧게 답하곤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에 찬 대답.
이에 천마의 입가는 미약하게나마 웃음이 서렸다. 그 말은 곧 제 몸이 죽어 나가는 걸 알면서도 제 주인을 위해 참고 참았다는 얘기.
정말 마음에 들지 않을 수가 없는 신하의 명답이 아닌가.
다시금 그의 관심이 별거 없던 병졸에게로 들이밀어졌다. 환한 웃음과 함께.
“그럼 답은 찾았느냐?”
“예.”
“그게 무엇이냐.”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시원시원한 대답. 천마가 계속하라는 듯 눈짓하자 장이서는 망설임 없이 말을 이었다.
“하단전에서 임독양맥과 12정경으로 가는 원래의 길목은 폐하고, 새로이 길을 연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들 다 쉽게 하는 소주천과 대주천을 몹시 어렵고 험한 길을 만들어 돌아가는 것.
이것이 그가 내린 단초의 정의.
“그게 가능한 일이더냐.”
“만류귀종(萬流歸宗) 아니겠습니까. 불필요한 소모 없이 운기만 할 수 있다면 어디로 가든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마는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이다. 하나 장이서는 아랑곳없이 해온 숙제를 고하는 아이처럼 깨달은 그대로를 읊어나갔다.
“처음엔 첫 번째 구멍에서 아홉 번째 구멍으로 길을 이어주려 했습니다.”
“그런데?”
“실패했습니다. 단전은 미지의 영역. 나갈 수는 있어도, 되돌아올 순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데도 답을 찾았다고?”
그렇다. 어차피 목적만 달성하면 되는 일.
“혈에 바로 길을 터줄 생각입니다.”
기가 막힌 소리. 의원이 들었으면 차라리 화타 무덤 찾아가 빌고 비는 게 더 빠르겠다고 했을 것이다.
하나 진우광은 미약하게 동공을 떨며 하마터면 무릎을 칠 뻔했다.
아주 오랜 시간 홀로 서 있는 정점에서 아슬아슬 바지런히 기어 올라오는 누군가를 구경하는 기분을 아는가.
위기감? 적대감? 아니다. 희열이다.
조금이라도 올라와 제가 견뎠을 그 고독한 시간들을 누군가가 공감해주길 바라는 지독한 사무침.
지금이 딱 그 기분이었다.
“혈에 길을 터준다라……. 재미있구나.”
천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감정을 억누른 채 답했다.
하지만 굳이 숨기려 안 해도 장이서는 알고 있었다.
지금 제 말이 단초의 정답임을.
운기의 시작은 단전의 내기를 회음혈을 통해 독맥으로 보내는 것. 그러니까 굳이 단전 주변을 맴돌 게 아니라 첫 번째 구멍에서 회음혈로 어떻게든 보내기만 하면 된다.
“어디 한번 해보겠느냐?”
천마가 활짝 웃으며 뒷짐을 진 채 한 발을 물렸다. 그러곤 휙 등을 돌렸다.
‘암각에 보고하면 난리 나겠네.’
장이서는 황당함에 일순 눈을 깜빡였다.
천마가 손을 뒤로 가렸다는 건 적의가 없다는 뜻이고, 몸을 돌리는 건…… 제가 운기조식을 취하는 동안 호위를 서주겠다는 뜻이다.
살다 살다 천마한테 호위받는 경험까지 하게 될 줄이야. 언제고 임무를 완수하고, 동생을 만나면 얘기해줄 게 하나 더 늘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장이서는 담담히 답하곤 털썩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러곤 단전 앞에 투명한 공을 쥔 것처럼 아래위로 손을 띄워 얹고는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우우웅!
그러자 그의 손 사이에서 거뭇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생사를 건 마지막 시도가.
천마는 생각했다.
‘용케 단초를 찾아왔구나. 하지만 그게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오늘 넌 결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천마신공은 역천의 마공이자 창시자이신 초대 천마께서도 다 풀어내지 못한 미완의 신공.’
그러니 찾아내야 한다. 그 안에 숨겨진 또 하나의 비밀을.
지금껏 자신이 내공을 주었던 그 어떤 이도 끝내 풀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갔던 마지막 함정을 말이다.
‘만일 네가 이를 풀어낸다면, 미약하나 천마가 아니면서도 천마의 내공을 가진 유일무이한 존재가 될 것이다.’
물론, 살아남았을 때의 얘기겠지만.
씨익. 진우광의 입가에 서늘한 웃음이 서렸다.
*
한편 장이서는 어느새 천마는 완전히 뇌리에서 지우고, 자신과의 사투가 한창이었다.
천마가 눈앞에 있고, 몸은 마기에 죽어가고 있으며, 생사가 걸린 기회는 오직 단 한 번뿐이니 집중력이 흐트러질 법도 하거늘.
천만에.
장이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침착했고, 자신만의 세계관에 빠져들어 있었다.
‘천마에게 내공을 받은 이들은 모두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왜일까. 나처럼 구규지체도 아니었을 것이고, 또한 그들의 자질이 부족해서도 아니었을 것이다. 유추할 수 있는 답은 하나. 운용에 실패한 것.’
진우광이 나눠 준 천마의 내기는 제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값을 매길 수 없는 엄청난 가치의 보물. 마공 주제에 무엇보다도 정순하고, 창공만큼 광활한 힘을 가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진우광은 누구에게도 이 위험천만한 마기를 다루는 법은 알려주지 않았다.
‘천마신공의 부재. 그것이 곧 모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이다.’
이 막대한 힘을 제대로 다루질 못하니 마기가 온몸을 집어삼키고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한 것.
그 말인즉슨.
‘천마신공은 상식을 벗어난 무공이라는 얘기다. 오직 상식으로 이를 이해하고 행하려 했다가는 나 역시 죽음에 이르게 될 거다.’
그렇다. 장이서는 간파하고 있었다.
길을 잇겠다는 단초에는 또 하나의 함정이 숨어 있음을. 그리고 이를 찾아내기 위해선 일단 상식부터 깨부수며 하나씩 하나씩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시작이 바로 호흡법이었다.
‘내기를 움직이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호흡을 통한 것이다. 쉽게 말해 숨을 통해 들어온 바람으로 움직이는 것. 하여 비구(鼻口-코와 입)를 통해 들이마신 숨은 임맥에 해당하는 명치를 통과해 단전인 기해혈에 내려와 내기를 아래로 밀어 보내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니까 운기의 시작은 단전에서 임맥으로 역상(逆上)하는 것이 아니라 항문과 요도 사이의 회음혈을 지나 독맥으로 내려보내면서 시작되는 것.’
그러니 운기조식이란 단전에서 시작해 회음혈을 지나 등줄기를 타고 올라가 정수리를 찍고 다시 전면으로 내려오는 것이 타당한 상식이다.
이만 봐서는 고민할 것도 없이 회음혈에 길을 뚫는 것이 순리.
하지만…….
‘천마신공은 상식을 파괴하는 무공. 살기 위해선 이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과연 심법은 호흡을 통한 것만이 전부일까?
글쎄.
과거 맹주에게 가르침을 얻게 되었을 때 들었던 말이 있다.
‘내기는 의념을 도와주는 매개체일 뿐. 정신의 깊이가 경지에 다다르고, 뜻이 통하였다면 설령 내기가 없더라도 그 무엇이 동하지 않으리.’
이어 무림맹주는 그저 손짓만으로 멀리 떨어져 있던 검을 요술처럼 불러와 칼날 위에 올라탄 채 산 정상으로 도사처럼 날아갔다.
그때 깨달았다. 아무런 내공의 연계도 없이 그저 의념만으로 검을 다루는 신의 경지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훗날에야 그것이 바로 이기어검술(以氣御劍術)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절정 고수들이 펼치는 허공섭물과 이기어검술은 다르다. 허공섭물은 보이지 않는 내기의 끈이 사물과 이어져 있는 것. 하지만 이기어검술은 오직 의념만으로 다루는 것.’
해서 살아 움직이는 검을 막아내는 것 말고는 아무런 파훼법이 없는 절대 무공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론은.
‘호흡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의념으로도 내기를 움직일 수 있다.’
그렇다면!
내기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정론 자체를 깨부숴야 하는 것 아닐까?
애초에 호흡을 통해 익히는 상식적인 무공이 아니라면.
상단전이 열린 극소수의 천인(天人)만이 의념으로 연공해야 하는 초상승 무공이라면.
그래서 아무나 익힐 수 없고, 아무나 다룰 수 없는 전대미문의 신공인 것이라면.
그렇다면…….
‘어쩌면 내기를 역행하듯 아래서 위로 흐르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른바…… 역천(逆天)의 무공답게 말이다.
우우웅!
드디어 장이서의 단전에 순환하고 있던 내기가 첫 번째 구멍을 통해 바깥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음…….”
그러자 잠꼬대하듯 본능적으로 신음이 뱉어졌다. 마기가 또다시 전신에 퍼져나갔기 때문. 식은땀이 흐르고, 안색은 파리해졌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장이서는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오직 제 안의 우주에만 정신이 머물러 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이를 들은 천마만이 이제야 시작되었음을 깨닫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스륵 몸을 돌렸다.
이내 단전에 머물러 있던 검은 광채가 서서히 선을 그리며 어딘가로 흘러가는 것이 그의 눈에 담겼다.
그리고.
“후후후…… 하하하하하-!”
천마의 입에서 환희에 찬 대소가 터져 나왔다.
악착같이 위로 기어 올라가는 저 빛무리처럼.
정상에 선 저를 향해 조금씩 다가오는 어느 병졸의 사투를 지켜보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빛이 어느새 명치를 지나 단중혈에 다다른 그 순간.
콰아아앙-!
장이서의 몸에서 커다란 폭음과 함께 어깨 위로 검은 연기가 불꽃처럼 스산하게 솟아올랐다.
천마신공의 근간이자 육신에 절대적 마기를 온전히 받아들인 자에게만 나타나는 현상.
흑화(黑火)의 발현이었다.
“정말로 성공했구나…….”
진우광은 깊은 깨달음의 단계에 들어선 장이서를 살피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남들은 그가 지금껏 아무에게도 천마신공을 가르친 적이 없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틀렸다. 가르쳤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수차례나.
“너는 알고 있느냐? 네가 지금 익힌 그것이 바로 천마신공의 시작임을.”
상단전이 발달해 오성이 극에 달한 자들에게 내공을 하사한 것.
그것이 바로 가르침의 시도였다.
왜?
자신도 전대 천마이자 사부였던 이에게 그렇게 이어받았으니까.
생존을 위해 사력을 다해야 했고, 역천에 도달해서야 흑화를 얻어낼 수 있었으니까.
물론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다.
근골이 버텨주는 이라면 굳이 이런 가학적인 방법을 쓰지 않아도 된다.
가령 타고난 기재들인 칠대공자처럼.
다만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급류를 역행하여 치고 올라와 정상에 다다르는 후인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해서 신분은 낮으나 오성이 뛰어난 이들을 마주하면 알게 모르게 자신의 내기를 전수했었다.
혹 이들 중에 진전을 이어받을 누군가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하지만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지. 단 한 번도.”
한데 그 힘든 걸 장이서가 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