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76)
첩자의 마교생활-76화(76/350)
76.
#칠소궁으로 (1)
끼이이이익!
천마전의 문이 활짝 열리고, 밖으로 나온 마오는 한숨을 푹 내쉬며 기지개를 켰다.
“우아아아아!”
중천에 뜬 따스한 태양이 이토록 반가울 수가 없다.
“여기 올 때마다 진짜 10년은 늙는 거 같다니까. 여기 이름 바꿔야 돼. 천마전 말고 십년전 어때. 괜찮지.”
괜찮겠냐. 장이서는 정색한 채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무슨 기분인지는 알겠다. 정말 수십 번 죽다 살아난 기분.
“근데 장이서. 너 몸은 괜찮은 거야아아악! 깜짝이야!”
걸어 나가던 마오가 뒤를 돌아보더니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이에 장이서가 고갤 돌리니, 닫히는 문 옆에 웬 저승사자가 우뚝 서 있었다.
“용케 살아 나왔구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흑색으로 가득한 자.
전전대의 마두이자 천마의 수족인 광명우사 흑야였다.
무슨 사람이 인기척도 없이 벽에 붙어 서 있는 건지. 그것도 저렇게 무섭게 노려보면서.
“예, 덕분에…….”
“성취를 이뤘구나. 일평생 교주님께 받은 은혜를 감읍한 마음으로 갚아나가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장이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흑야는 금세 관심을 거두곤, 마오에게 공손히 패 하나를 꺼내 건넸다.
이는 백마(百魔)라는 글귀가 적힌 둥그런 신패.
백인장의 인이다.
“이게 뭔데요?”
마오가 눈을 부릅뜨고 건방지게 손을 툭 내밀자 흑야가 미간을 좁히곤 패를 쥔 손을 다시 거두었다.
뭐야? 왜 다시 가져가.
“공손히 받으십시오. 교주님께서 내리시는 겁니다.”
“하하. 진작 말하지. 자요.”
마오가 멋쩍게 웃고는 공손히 양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흑야가 살기 번뜩이는 눈으로 일갈했다.
“무릎부터 꿇으란 말입니다.”
“예…….”
왜 화를 내고 그래. 마오가 입술을 앙다물고 다소곳이 무릎을 털썩 꿇었다.
그러자 흑야는 못마땅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며 그의 손에 백인장의 인을 건넸다.
“그럼 이만 돌아가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스스스스. 검은 그림자에 휘감긴 채 벽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솜씨.
“장이서, 봤어? 지금 벽으로 들어가는 거 봤어? 저거 사람 아니야. 스며드는 저승사자야!”
[돌아가십시오!]“헉! 가자, 장이서 가자.”
어딘가에서 메아리처럼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 마오가 호들갑 떨며 줄행랑쳤다.
이에 장이서는 천마전을 짧게 일별하곤 뒤를 따라나섰다.
새삼 느끼지만, 정말 괴물들로 가득한 곳이다.
살아남으려면 부단히 노력하는 수밖에.
“근데 장이서. 너 정말 괜찮은 거야? 아까 우사가 성취를 이뤘다는 말은 뭐고.”
어느새 천마전을 지나 삼천계단에 다다르자 마오가 다시금 생각이 난 듯 물었다. 얼굴엔 제법 걱정이 가득해 보인다.
“이제 괜찮아졌습니다.”
“정말이야? 뭐 맨날 툭하면 픽픽 쓰러지니 믿을 수가 있나. 쓰러질 거면 저기 계단 다 지나서 쓰러져. 나 여기서 너 업고 못 내려가. 힘들어.”
“업고 잘만 뛰시던데.”
“그러니까 주객도전인 거지. 아주 그냥 빠져가지고.”
장이서가 피식 웃자 마오도 덩달아 신이 난 듯 웃는다.
이번엔 장이서가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내려가는 마오에게 물었다.
“칠공자님은 어떻게 살아남으신 겁니까.”
“야, 너 말하는 거 웃긴다? 지가 살 방법 알려 줘놓고. 어떻게 살았냐니. 설마 내가 죽을 줄 알았냐?”
“반반.”
“야, 이 씨!”
“얘기나 해보십시오.”
장이서가 코웃음을 치며 다시 묻자, 마오는 심드렁한 얼굴로 자세하게 답했다.
내기를 발출하려다가 저도 모르게 이를 회수했는데, 도리어 그게 전화위복이 되었다는 것.
거기다 지풍을 상쇄시킨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튕겨냈다는 것까지 말이다.
“그게 말이 됩니까?”
“진짜라니까. 이 손바닥 봐봐. 빨갛게 부었잖아. 이거로 내가 탁 치니까 아버님 깜짝 놀라셨다. 뒤로 자빠지실 뻔.”
“무슨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세상에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지는 천마가 어디 있나. 신도들 다 빠져나가겠네.
“하, 얘 봐라. 주인 말을 안 믿네. 내가 그때 손이 막 금강불괴가 된 것 같았다니까. 뭐든 다 쳐낼 수 있을 거 같고.”
금강불괴?
“장이서. 내가 혹시 또 새로운 필살기를 찾아낸 거 아닐까? 가능성 충분하잖아. 난 천재니까. 이름은 금강처럼 단단한 손으로 다 되돌려보낸다는 의미로 지존마오수(至尊麻娛手). 어때. 괜찮아?”
괜찮겠냐? 그리고 그냥 네 손이 지존이라는 얘기잖아. 그게 금강이랑 무슨 상관인데.
“누가 쪽팔리게 초식에 제 이름을 넣습니까.”
“천마.”
“그건 별호고요. 가기나 하십시오.”
“응.”
하지만 말과 달리 뒤따르는 장이서의 표정은 제법 심상치 않았다.
만일 마오의 말이 사실이라면, 진짜 천재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
왜냐하면 그의 말과 부합하는 건 오직 하나.
발기(發氣).
그러니까 수기(手氣)를 발현하는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발기를 온전히 다루려면 최소 내공이 초절정에 근접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이치를 깨우쳐야 하지.’
그리고 이치를 깨닫는 건 그야말로 사막에서 나 홀로 보물찾기와도 같은 것. 정해진 노선도, 지표도 없이 걷고 걸어 스스로 깨우쳐야만 하는 것이었다.
한데 그걸 마오가 무의식중에 찾아낸 것이다.
이는 그야말로 엄청난 성과.
이미 한번 발을 들였다면, 정처 없이 사막을 횡단하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일 아니겠는가.
‘이 자식,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해질지도…….’
내심 마오가 달리 보이는 장이서였다.
그렇게 가벼워진 두 사람의 발길은 어느새 호룡당에 다다랐다.
“하하하하!”
그러자 호탕한 웃음소리가 먼저 귓가에 스몄다.
영리한 호랑이, 지대호다.
“조찬엔 잘 다녀오셨습니까.”
“당주! 당연히 잘 다녀왔지. 우리 올 땐 얼굴도 안 비추고. 이거 서운해.”
“송구합니다.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서.”
처리할 일? 마오가 아래위로 그를 흘깃 살피자 손이며 옷에 지우지 못한 핏자국들이 선명하다. 굳이 뭘 했는지는 안 묻는 게 좋겠다. 마오는 어색한 웃음과 함께 침을 꼴깍 삼키곤 답했다.
“바쁘면 일부터 봐야지. 그럼. 하하하.”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군요.”
마오가 멋쩍게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엔 지대호가 장이서를 살폈다.
그리고 단박에 깨달았다.
훤해진 신수. 그리고 일전과 달리 훨씬 더 정돈되고 갈무리된 눈빛.
씨익. 드디어 절정의 벽을 깨부쉈군.
그의 입가에 진심이 담긴 웃음이 서렸다.
“축하하네.”
“걱정해주신 덕분입니다.”
“내 덕은 무슨. 다 자네가 뿌린 대로 거둔 것이지.”
또다시 알 수 없는 대화에 마오는 머리를 긁적였지만, 어쨌든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제 보좌가 축하받으니까 마치 자신이 축하받는 기분 같기도 하고.
“사호정 쪽은 잘 해결되었네. 아마 평생 도라옥에서 나올 일은 없을 걸세.”
“그렇습니까.”
“철마적을 찾아내는 건 비룡당주에게 위임했으니 곧 덜미도 잡힐 것이고.”
장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조로운 결말이다.
“한데 자네 비룡당주와 무슨 악연이라도 있는 겐가? 자네 얘길 하니 반응이 영 좋지 않던데.”
없진 않지.
과거 비룡당 부당주였던 환익의 첩자 행위를 방첩대 조장인 자신이 밝혀냈으니. 당주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던 일이었다.
“근데 워낙 오래전 일이라……. 아직도 화가 남아 있던가요.”
“자네가 제보자라고 했더니 쥐고 있던 술잔을 깨트리면서 이렇게 말하더군. 장이서 이 버러지 같은 놈.”
“하하…….”
아직 화가 안 풀렸나 보네. 장이서는 어깨를 으쓱였다.
역시 이 일엔 더는 개입 안 하길 잘했다.
“조심하게. 비룡당주가 은혜는 잊어도 원한은 절대 잊지 않으니.”
“예. 안 그래도 앞으론 조심할 일들이 부쩍 늘 것 같긴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교주님께서 칠공자님께 백인장의 인을 내리셨거든요.”
장이서의 말에 지대호의 표정이 일순 굳어졌다.
백인장의 인이라니.
그건 대공자와 이공자만이 지니고 있던 신패가 아닌가. 한데 그걸 칠공자에게 내리다니.
“둘이 뭐라는 거야.”
하물며 어디다 쓰는 건지도 모르는 하룻강아지에게 말이다.
이를 알게 되면 대공자와 이공자가 절대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거늘.
지대호와 장이서는 서로를 복잡한 심경으로 살핀 뒤 말했다.
“부모의 편애만큼 시기심을 일으키는 일도 없지. 지금까진 없던 견제가 들어올 걸세. 부디 몸조심하게.”
“예. 그리하겠습니다.”
“내 제안도 잊지 말고.”
“하하, 가보겠습니다.”
“살펴 가시게. 살펴 가십시오, 칠공자님.”
지대호가 포권을 취한다. 또 나만 모르지. 나만. 마오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인사를 받고 앞으로 걸었다.
하나 굳이 지금 알 필요는 없다.
어차피 이제 곧 알게 될 일일 테니.
오늘은 그저…….
“집으로 돌아가죠.”
“가자!”
살아남았음을 만끽하면 되는 거다.
* * *
– 무림맹 호북지부 암각.
장이서.
아니 암각 요원 103호가 마교의 주요 인사로 점점 커나가고 있을 무렵.
“꺄아아아악!”
제갈소미는 그의 행보를 멀리서나마 지켜보며 환호를 지르고 있었다.
【도살방 멸(滅).】
제 눈이 잘못된 게 아닐까. 혹시 방이 너무 어두워서 잘못 봤나.
읽고도 믿기지 않아 몇 번이나 서신을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진짜였다.
“풍림을 없앴을 때도 이렇게 연통이 왔다더니. 내가 이걸 받게 될 줄이야. 어떡해, 너무 좋아!”
제갈소미가 서신을 꼭 끌어안고 파르르 떨었다.
분명 일면식도 없는 자이지만, 암각의 부각주로서 그녀는 짜릿한 희열을 감출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라.
버려지듯 방치되어 있던 요원 하나가 임무를 받은 순간부터 날개를 단 듯 활보하기 시작했다.
칠소궁으로 위풍당당하게 입성하더니, 이젠 도살방까지 해치웠단다.
기대가 없으면 만족이 커지는 법이고, 반대로 기대가 커지면 만족이 주는 법이다.
하지만 103호는 기대가 없을 때도, 있을 때도.
늘 변함없이 대만족이었다.
그러니 그의 소식이 기다려질 수밖에.
“도대체 103호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얼굴도, 성도, 이름도 몰랐다. 그걸 아는 건 오직 암각주인 조부와 맹주뿐.
혹시 이곳에 남은 가족은 없나?
“그러고 보니까 그 사람은 형을 찾고 있었지.”
문득 제갈소미의 머릿속에 한 사내의 모습이 스쳤다.
화산파의 무복을 입고선 괴상한 첫인상을 안겨줬던 자.
선유.
‘내 형이 사라졌어. 무림맹 소속이었고. 찾아줘.’
‘우리 형. 이름은 이서.’
일면이었지만, 그의 표정에서 느껴졌던 슬픔이 가슴을 콕콕 쑤셨다. 분명 진심 같았는데. 왜 갑자기 사라져 버린 건지.
“무림맹 사람이라면 분명 자료가 남아 있을 텐데…….”
제갈소미가 벌떡 일어나 다른 방으로 달려갔다. 일(一)자로 빼곡히 늘어선 책장.
무림맹부터 사파에 마교. 나아가 새외까지.
요원을 제하면 역대 웬만한 인물은 전부 담겨 있는 희대의 인사기록고였다.
이는 각주인 제갈상이 소싯적부터 수집해 온 것으로 이만큼 방대한 양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영화정이 제갈소미가 사람을 잘 찾는다고 말해준 것도 이 인사기록고를 알고 있기 때문.
“이서, 이서, 이서. 근데 선유는 도호잖아. 그럼 본명은 뭔데. 선이서는 아니잖아.”
그녀가 사이를 누비며 서책을 뒤지다 문득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선이서일 리가.
탁!
서책을 덮고는 다시 드륵 책장에 꽂아 넣었다.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럼 그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