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79)
첩자의 마교생활-79화(79/350)
79.
#공개모집 (2)
명실상부 차기 소교주로 가장 유력시되는 사내 중 하나.
그가 일소궁에 찾아왔다.
그것도 전력을 이끌고서.
“문이라도 부술까요.”
바로 뒤에 독사처럼 생긴 마른 사내는 보좌 조양악.
“됐어. 저기 나오네.”
무한성은 씩 웃으며 전방에 고갯짓했다.
그러자, 끼이이이익!
일소궁의 문이 열리고 무감정한 살귀 흑화위가 먹물이 번지듯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길목으로 고고한 흑로처럼 무결한 용모의 사내가 걸어 나온다.
대공자 천무기. 바로 그다.
똑같은 형제의 만남이거늘, 맹휘와 마오가 만나던 것과는 그야말로 천양지차.
용과 범이 만난 것처럼 양측에서 살벌한 기운이 물씬 쏟아진다.
잠시 후 서로의 경계로 자연스레 만들어진 저지선에 두 공자가 마주 섰다.
보좌들은 당장이라도 출수할 수 있도록 공자들의 우측 뒤에 시립한 채 서로를 노려 살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기세. 긴장감이 잔뜩 고조된 그때.
두 공자의 입이 열렸다.
“보고 싶어 찾아온 거라면, 이리 부끄러워 말고 안으로 들어오면 될 일을. 몸소 온 아우를 내칠 만큼 박하지 않다.”
“부르면 알아서 기어 나올 걸 내가 뭐 하러. 게다가 저리 우중충하고 고리타분한 집구석엔 발 들이기가 싫네.”
“마음이 조급해졌던 거로구나. 하나 그렇다고 해도 지금처럼 표면에 드러내진 말거라. 상대는 너의 이런 모습을 약점으로 알고 우습게 볼 테니.”
“훈계질은 셋째나 막내한테 가서 하시지. 이번엔 아주 제대로 당한 모양이던데. 형님 꼴이야말로 아주 우스워졌잖아.”
“그래 보였느냐.”
“어. 왜. 혹시 화났어? 그럼 붙어보든지.”
솨아아아아-
그야말로 살 떨리는 기 싸움. 이미 주변의 공기는 낙엽마저 찢을 것처럼 첨예하고, 양측 세력의 손에는 병장기가 들렸다.
이 정도면 동전 한 닢만 사이에 떨어져도 칼부림 날 수준.
하나 한없이 차분하기만 한 대공자의 모습에 이공자 무한성은 금세 맥이 빠졌다.
“쳇. 하여튼 재미라고는 뭣도 없다니까.”
이내 손을 뒤로 휘젓는다. 둘이 대화할 테니 밖으로 물러나 쥐새끼도 못 들어오게 막으라는 얘기.
그러자 보좌를 비롯해 백괴단이 한참을 떨어져 반원으로 영역을 만든다.
“구경났어? 꺼져.”
지나가는 교인들한테 시비 거는 건 덤이고.
“물러서라.”
천무기 역시 이를 지켜보곤 유령마군에게 돌아가라 명했다. 그러자 흑화위가 일시에 담장 위로 올라가 칼을 뽑아 든 채 경계하듯 자리한다.
껄렁거리던 백괴단과 달리 절도와 위엄이 느껴지는 모습.
물론 무한성 입장에서는 똥 같은 군기일 뿐이다.
“내 집이라고 유세는.”
“찾아온 이유나 얘기하거라.”
“알면서 뭘 물어. 어쩔 거야? 아주 사방팔방 난리가 났는데.”
무한성이 인상을 와락 찌푸린다. 그가 찾아온 이유는 뻔했다. 천산 곳곳에 붙은 방이 그 원인이었다.
“백인장의 인이라니. 아버님도 생각이 이상해지신 거 아니야? 어떻게 막내 새끼한테 그걸 주냐고. 또 그 새끼는 자존심도 없이 쪼르르 셋째한테 갖다 바쳐? 이게 콩가루지. 안 그래?”
“말조심하거라.”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옛날부터 의지도 없는 막내 새끼 거둬준 것도 어이가 없고, 셋째만 총애하던 것도 기가 막히는데. 이젠 대놓고 싸고돌겠다는 거 아니면 뭐냐고.”
“아버님에 대한 불충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다. 하나 한 번 더 입을 놀리면 그땐 각오하는 게 좋을 것이야.”
“속으로 좋으면서 입은. 효자 놀이하는 건 잘 알겠으니까,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거냐고.”
본디 두 사람은 가장 경쟁이 치열한 관계. 누구보다 사이가 좋지 않다. 하나, 삼공녀가 끼면 얘기는 달라졌다.
그녀 먼저 치우고, 둘이서 승부를 보자는 묵시적 동의가 있었기 때문.
“요즘 안 그래도 광룡당 내부에서 나락 그 새끼 때문에 흔들리고 있는 거 알지. 머뭇거리다간 백 명 채우는 거 순식간이야. 알아?”
“그러게, 잘 관리하지 그랬느냐. 가진 것도 없이 태어난 네가 오룡당의 지지 말고는 딱히 내세울 것도 없는데.”
“이게 내 탓이야? 애초에 막내들부터 잡자니까 3대 가문이니 뭐니 떠들면서 막았다가 이 사달 만든 건 그쪽 아니냐고.”
“흐음…….”
천무기가 얕게 침음을 뱉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마오와 맹휘. 그리고 맹원원을 건드리지 않은 이유는 장로회의 지지를 받는데 굳이 마가와 맹가를 건드려 얼굴 붉힐 필요를 못 느꼈던 것이니.
“알겠다. 그럼 이리하도록 하자.”
천무기가 장고 끝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정히 제안했다.
“내가 장로회에 뜻을 전하고, 각 대주들을 따로 불러 모집에 참석지 말라 주의를 주겠다.”
“그거로 되겠어?”
“흐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네가 삼소궁으로 가 혹여 오는 이들이 있으면 타일러 돌려보내는 게 어떠하겠느냐.”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거야? 무한성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모두가 다 주목하고 있는 이 일에 욕받이는 나더러 해라?”
“그렇다고 네 성격에 가만히 앉아 타령만 늘어놓는 것도 썩 좋진 않지 않으냐.”
하. 무한성이 이빨을 드러내며 활짝 웃는다. 그러곤 사자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냥 가주면 너무 꼴이 우습지. 바보도 아니고. 안 그래?”
안 가겠다는 말은 안 하는구나. 하긴, 그래야 너지.
천무기는 미약하게나마 입꼬리를 올리며 본론을 물었다.
“원하는 게 무엇이냐.”
무한성의 입이 삐죽 올라선다.
“들었지. 오룡당 현직이면 참가만 해도 거마비를 준다던데. 온 애들 달래주고, 돌려보내려면 나도 뭐 줄 게 있어야 하지 않겠어? 내가 누구처럼 잘나신 가문에서 뒤봐주는 놈이 아니라서 말이야.”
“해서 돈을 내놓아라? 도적이더냐.”
“종놈도 부리려면 대가를 치르는 게 인지상정인데. 나 정도 부리려면 곳간 하나는 털어야지. 천가에서 운영하는 상단 하나 넘겨.”
천무기의 눈이 서늘해졌다. 분명 아까와 변함없는 표정이거늘 눈빛이 다르다. 그만큼 말 같지도 않은 제안이라 생각하기 때문.
하나.
“흐음.”
천무기는 금세 이를 갈무리하곤 무심한 얼굴로 침음을 뱉었다. 그러곤 금세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흔쾌히 수용했다.
“형이 된 도리로 부족한 아우를 챙겨주지 않을 이유도 없지.”
천무기가 한발을 양보한 것이다. 그러자 오히려 당황한 건 무한성이었다.
‘뭐야. 이걸 이렇게 쉽게 허락한다고? 이 새끼. 어지간히 마음이 급했구나?’
그게 아니고서야 대뜸 질러본 제안이 이리 쉽게 먹힐 리가 없지 않겠는가.
“단, 천가에서 관리 중인 상단을 넘기면 시기가 공교로워 보기에도 좀 그럴 테니……. 내 마 장로께 따로 청해두도록 하마.”
“마가든, 천가든. 알 바겠어. 알아서들 하시고. 동생으로서 용돈까지 받았는데 형님이 시키는 대로 따라줘야지. 삼소궁은 내게 맡기라고. 개미 새끼 한 마리 못 들어오게 할 테니까.”
무한성이 좋은 속내를 훤히 드러내며 가슴을 탕탕 쳤다.
이에 천무기는 태연한 얼굴을 하곤 속으로 그를 조롱했다.
‘역시 어리석구나. 가진 거 하나 없는 네가 그 자리까지 올라선 건 딱히 어디가 빼어나서가 아니다. 기성세대와 일절 타협하지 않고, 제 길을 갔던 성향 때문인 거지. 어리석은 이들에겐 너의 이런 단순함과 무지함이 간혹 패도라는 이름으로 둔갑하니 말이다.’
한데 그런 그가 마가의 돈을 받고, 그 집안 막내를 핍박했다?
그럼 어찌 될까.
흠집 내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에겐 좋은 먹잇감이 될 거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공자에 대한 허물이 벗겨지고 실망만이 남게 되겠지.
무너트리지 않아도 된다. 그저 실금 하나만 만들어도 그 값어치는 충분하다.
“셋째에게 안부나 잘 전해주거라.”
“걔가 들어 처먹을진 모르겠지만, 그래볼게.”
두 사람이 동시에 웃는다. 이로써 거래는 성사되었다.
이제 삼소궁의 모집 건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성사되지 않으리라.
“참, 막내는.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면 애 버릇 나빠져.”
무한성이 뒤돌아 나가다 우뚝 멈춰 선 채 피식 웃고 말했다.
“내가 적당히 잘 타이르도록 하마.”
타이르긴 무슨. 애 잡겠다는 얘길 예쁘게도 돌려 하네.
무한성은 다시 길을 나섰다. 그의 목적지는 천상도 삼소궁.
아마 한동안은 누이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대주들에게 모두 일소궁으로 들라 하거라.”
“존명!”
천무기 역시 장원으로 돌아섰다.
입가에 승자의 미소를 드리운 채로.
‘사해령. 네가 뭘 꾸몄든 뜻대로 되진 않을 것이다. 절대로.’
하지만 이처럼 사태를 뒤에서 조종하는 천무기마저 모르는 게 하나 있었으니…….
이 사태 자체가 결국엔 장이서가 짜놓은 판이며, 지금 그가 신나게 발을 담갔다는 것이었다.
* * *
– 월하촌 칠소궁.
칠소궁에 돌아온 지도 어느덧 며칠이 지났다.
장이서는 해뜨기 전 푸른 빛이 은은히 감도는 시간, 오랜만에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겨 있었다.
열린 창문 너머 새벽이슬이 느껴지는 공기, 적당히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
마음이 평온해진다. 얼굴에 주름마저 없어지는 기분.
집 벗어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떠오를 만큼 흡족했다.
사실 이렇게 편안히 명상에 잠기는 건 천마와의 만남 이후로 처음이었다.
돌아오자마자 천무기를 엮어내기 위해 이래저래 바빴기 때문.
오늘은 모처럼 시간이 남는 하루였다.
그리고 장이서는 내심 이 시간을 기다렸다.
이유는 명확했다.
살아생전 고치게 될 줄 몰랐던 자신의 천형.
단전에 뚫린 아홉 개의 구멍 중 하나를 막아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더는 마기가 새 나가지 않아. 이유 없이 객사할 위험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야말로 엄청난 기연이었다.
우연히 천마전으로 들어서며 시작된 인연이 이런 기적을 불러올 줄이야.
더구나.
‘아직 혈에 불순물이 남아 있지만, 분명 난 절정 초입에 들어섰다.’
가장 큰 쾌거는 바로 이것이었다.
평생 넘을 수 없을 거라던 일류의 벽을 깨고 절정에 오른 것.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 하면.
쉽게 말해 일류가 순수하게 칼을 잘 쓰는 무사라면, 절정은 내기를 발출해 인간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괴인의 영역이었다.
어찌 다루느냐에 따라 그야말로 경천동지한 차이.
지금까지는 머리로 이해해도 몸이 따라가질 않아 제대로 펼쳐낼 수 없던 것들이 가능해진 것.
물론…….
‘구멍을 더 막기 전까지는 초입 이상의 단계로 올라갈 수 없겠지. 이 이상 내공이 쌓이지 않을 테니.’
하나 여기서 더 바라는 건 욕심이었다. 지금도 기적처럼 천마에게 정순한 마기를 받아 간신히 막아낸 것 아닌가.
더구나 천마의 기는 오직 하나의 길만을 답습하기에 둘로 나누어 보내는 것도 불가능했다.
한마디로 구규지체를 막는 건 이제 끝났단 얘기. 더는 강해질 방도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는 천마도 같은 생각일 거였다.
‘내 한계를 본 것이다. 그러니 정식 후계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천마신공을 가르쳐 준 거다. 어차피 마교에 위협이 될 존재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