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8)
첩자의 마교생활-8화(8/350)
8.
그녀가 웃음을 연신 터트리며 제 손으로 술병을 쥐었다. 그러곤 장이서의 빈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이는 극찬이다.
‘배짱 하나만큼은 인정해 주지. 겸 대주가 추켜세울 만도 해. 물론 네 입만큼 실력이 있다면.’
솔직히 칠공자의 보좌 자리는 계륵이다.
마오의 성질 때문에 누구도 하려는 자가 없고, 또 있다 하더라도 마오가 수용하질 않는다.
해서 자신의 입김으로 잠시라도 앉혀보는 건 문제 될 게 없었다. 장이서의 말대로 마오의 세를 키워 제게 힘을 보태준다면 이보다 좋은 장사는 없으니까.
하나.
‘넌 아느냐? 그 자리가 어수룩하게 들어갔다간 시체가 되어 나올 묏자리라는 것을. 가문도, 명망도 없는 7급귀인 네가. 하루라도 견딜 수 있을까?’
불가.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그래서 혼만 내고 방첩대로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말 마오가 세 손가락 안에 들 수 있다고 자신해?”
“아니.”
“뭐? 그럼 아까 한 말은 뭐지?”
“자신이 아니라 확신.”
“미친놈.”
입에선 거친 말이 나오지만, 입꼬리는 길쭉하게 올라섰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이놈한테 묘하게 자꾸 기대가 생긴다.
혹시 고도의 훈련을 받은 첩자?
아니다. 그러기엔 몸에서 미약하게 새어 나오는 내기가 너무도 불순하고 평이하다. 더구나 칠공자는 모두가 버린 패.
그럼 도대체 이자에게 믿음이 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저에게 하대하는 무지함? 거기서 기인한 자신감?
아니다. 그런 겉치레가 아니다.
장이서에게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자신감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더 확신에 찬 무언가가.
두 사람의 고개가 월광호가 있는 바깥으로 향했다.
벽이 없어 시원하게 뚫린 게 아주 마음에 든다.
덕분에 인파 사이로 쥐새끼처럼 다가오는 자객들의 움직임도 아주 잘 보인다.
그새 소식을 듣고 오라버니들이 보낸 자들인 듯했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어.”
사해령이 다시 고개를 돌려 장이서를 보며 말한다. 그러자 장이서 또한 다시 마주하며 답했다.
“말뿐인지, 진짜인지 옥석을 가려내는 건 그쪽 능력이겠지. 근데 무능해 보이진 않네.”
“그래도 실력을 한 번 봐야겠다면?”
장이서가 다시 바깥을 살폈다. 그의 초점이 사해령이 파악한 자객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역시. 입만 산 놈은 아니라는 건가. 사해령의 웃음이 짙어진다.
“내가 좌측 셋을 맡지.”
“좋아. 내가 원래 손해 보고 사는 성격이 아닌데. 까짓것 해주지. 그럼 내가 우측 넷.”
“그래.”
또르르. 장이서가 사해령의 술을 따라준다. 그러곤 제 잔을 잡고 턱짓한다. 이에 딱! 두 사람의 술잔이 부딪쳤다. 이어 술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그 순간.
파파팟!
바깥에서 2층 난간으로 일곱 명의 복면을 쓴 자객들이 용오름처럼 솟아올랐다.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 모두 보통이 아니다. 최소 일류 고수들.
하나 사해령을 상대하기엔 터무니없이 약하다.
콰직! 그녀가 가볍게 난간을 걷어차자 부서진 나무 파편이 자객에게 쏘아진다. 퍽! 이에 하나가 가슴을 허용해 그대로 다시 추락했다.
남은 건 둘.
역시 어려울 건 없다.
“하아아앗!”
기합과 함께 먼저 착지한 자객 하나가 검을 올려 든 채 달려든다. 하나 느리다. 푸푸푸푹! 그녀의 손에 들린 젓가락이 단숨에 좌측 옆구리부터 복부와 우측 겨드랑이를 뚫었다.
“꺽…….”
숨소리도 제대로 못 내며 쓰러지는 자객.
남은 건 하나.
그런데.
화아아아악! 자객이 휘두른 건 검이 아니었다. 갈색 연기가 뿜어지는 가루 약병이었다.
‘설마!’
사해령의 얼굴에 처음으로 난처함이 깃든다. 애초에 자신을 죽이러 온 게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저것은 분명 인피면구를 녹이기 위해 만들어진 독약 융피산(融皮散). 저들의 목적은 그녀의 신분을 들춰내는 것이었다.
삼공녀가 월하촌까지 방문한 이유를 참지 못한 저급한 욕정으로 몰아가기 위해.
‘역겨운 것들…….’
하나 안타깝게도 인피면구는 얼굴뿐만이 아니라 전신을 덧씌운 상태. 퍼져 날아드는 가루를 다 막아내기엔 무리다.
순간 참담함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그 순간.
“움직이지 마.”
탕! 촤아아악! 식탁이 뒤집혀 앞을 가림과 동시에 그녀를 껴안듯이 한 사내가 몸으로 남은 가루를 막아냈다.
장이서. 그였다.
“너……?!”
휙! 돌아선 장이서가 그대로 우수를 뻗쳤다. 그러자 쐐애애액! 새하얀 백뢰가 날아가 콰직! 식탁을 뚫고 퍽! 자객의 목도 관통했다.
상황 정리 완료다.
휘리리릭! 회수한 백뢰를 손목에 휘감는 장이서.
사해령은 흔들리는 눈으로 안기듯이 선 채 그를 올려 살폈다.
그러자 그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여자의 비밀은 소중한 법이니까?”
“…….”
“반했나.”
“미친놈……!”
퍽! 사해령의 일장에 장이서가 주루룩 뒤로 다섯 보를 밀린다.
“커억……! 야…… 이게 기껏 구해줬더니.”
“닥쳐라.”
“와, 씨. 저 미친년.”
장이서가 억울함에 주절주절 떠들며 발을 동동 굴린다. 하나 사해령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두 눈에 계속 그만을 담았다.
이상한 놈. 그리고 이상해지게 만드는 놈.
그녀가 몸을 휙 돌렸다. 그리고 말했다.
“사흘 뒤, 칠소궁으로 가라.”
합격이다. 그녀의 입에서 허락이 떨어졌다. 하하하! 뒤에서 장이서의 대소가 터진다. 사해령도 이를 듣곤 안 보이게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자 뒤에서 그가 손을 흔들며 크게 외쳤다.
“야!”
뭐. 사해령이 조금은 수줍게 몸을 돌린다. 그러자 장이서가 제법 멋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부순 거 변상하고 가야지. 어딜 그냥 가?”
하, 저 새끼가 진짜.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걸어 나가며 윽박질렀다.
“네가 변상해. 주인한테 빌든, 빌려서 갚든. 그것도 시험이다.”
“하하하! 망할 년…….”
월광호에 만월이 뜬 어느 날이었다.
*
장이서가 보좌 시험에 합격한 그날 밤.
그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취선루 위층으로 향했다.
3층, 4층, 5층, 6층, 7층.
대체 어디까지 올라가는 것인지. 급기야 루주가 머문다는 금역인 마지막 8층까지 계단을 올랐다.
설마 사해령이 부서트린 값을 지불하러 온 것인가.
한데 백색 무복을 입은 호위무사들은 그를 보자 익숙한 것처럼 홍해가 갈리듯 길을 열었다. 그리고 장이서도 당당하게 홀로 그 사잇길을 걸어 나갔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종착점은 취선루의 가장 깊숙하고도 은밀한 곳이었다.
월광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가장 꼭대기의 고급스러운 방.
침상과 산해진미로 가득 채워진 상이 놓인 곳에 그가 도달했다.
“오셨습니까.”
화려한 청색 치마에 검은 비녀를 꽂은 천혜의 미녀.
이곳 취선루의 주인인 루주 취홍란이다. 그녀가 인사를 건넨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밥은 됐고, 술상만 놔줘. 입맛이 없다.”
“오늘 기분이 별로시군요. 소녀 무척 마음이 아립니다.”
대공자가 나타나도 얼굴 한 번 보기 힘들다는 그녀가 제 가슴을 누르며 슬픈 얼굴을 짓는다.
설마 장이서가 기둥서방이라도 되는 것인가.
“너 때문 아니고. 손실이 좀 컸어. 쓸데없이 난간은 부수고 난리야. 그게 다 얼마짜린데.”
“삼공녀는 잘 만나셨습니까.”
“그럭저럭.”
놀라운 일이다. 장이서가 기녀와 이런 비밀을 주고받을 줄이야.
하나 이는 시작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상이 치워지자 장이서는 방석 위에 앉은 채 그녀가 건넨 장부를 받아 살폈다. 안에는 항목과 액수가 가득 적혀 있었다. 전표였다. 이곳 취선루의 모든 실적이 담긴.
“잘하고 있네. 실적이 늘었어.”
“이것으로 받은 은혜를 갚을 수 있다면…… 더한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서로 좋자고 한 일이다.”
“아닙니다. 이곳까지 납치되어 온 절 구해주시고, 이리 일을 맡기지 않으셨다면……. 아마 살아 있지 못했을 겁니다.”
취홍란. 그녀가 몸을 숙여 절을 올렸다.
장이서는 난처한 웃음만을 지었다. 말려봤자 소용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만날 때마다 늘 빼놓지 않고 하는 인사였으니.
이해는 된다.
그녀의 진짜 이름은 모용란.
무림엔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모용세가의 여식. 그녀는 약관이 되기도 전에 마교로 납치되었고, 첩자를 조사 중이던 장이서에게 구해졌다.
그리고 그 인연의 결과가 바로 지금이었다.
“그간 취선루에 쌓인 이야기부터 들어보지.”
“네, 주인님.”
주종관계.
그 말인즉슨.
취선루의 진짜 주인은…….
장이서였다.
*
첩자가 정보를 얻어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직접 잠입해 얻어내거나, 돈으로 사기도 하고. 또 소속된 곳의 지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적진에서 언제 어떤 임무가 떨어질지 모르는 장이서에겐 더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바로 이곳.
취선루였다.
“현재 마교의 상황은 폭풍전야, 풍전등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와 같습니다.”
홍란의 보고에 장이서는 약주로 입을 적셨다.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다. 얼마 전부터 곧 소교주 임명이 있을 것이란 소문이 돌더니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 건 세 명.
“대공자 천무기. 이공자 무한성. 삼공녀 사해령. 저는 반드시 이 안에서 다음 교주가 나올 것이 자명하다고 봅니다.”
“그렇겠지…….”
반박할 여지가 없는 사실. 이의는 없다.
자신이 칠공자 마오를 소교주로 만들어야 하는 임무를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세력 구도는?”
몰려드는 피로를 뿌리치고, 눈썹 끝을 꾸욱 누르며 물었다. 그러자 홍란이 망설임 없이 시원시원하게 답했다.
“마교의 세력은 교주 아래 크게 사법을 담당하는 칠장로와 행정을 담당하는 오룡당. 그리고 각기 산하에 산재된 일백여 개의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 논외로 칠대공자와 좌우사자가 있고.”
“네. 이중 가장 중요한 건 칠장로와 오룡당주입니다. 그들이 누굴 지지하느냐에 따라 명분과 실세가 좌우되니까요.”
“홍란이 네 생각은?”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칠장로는 대공자를. 그리고 오룡당주는 이공자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보입니다.”
“왜지?”
장이서의 물음에 취홍란은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금세 다시 답했다.
“그들이 가진 기질 때문입니다.”
기질이라. 참 와닿는 말이다.
대공자 천무기는 말수가 적고, 손속이 매우 잔혹하다. 주변에 대한 정이 없으며, 홀로 계획을 세우고 장기 말처럼 수하들을 움직인다.
반면 이공자 무한성은 언행에 거침이 없고, 아랫사람들과는 매일 만난 벗처럼 지내기도 한다. 그만큼 실수도 잦지만, 목숨을 걸고 충성하는 수하들이 많다.
그러니까.
“보수적인 장로들은 교주와 성향이 닮은 천무기를 원하고, 이공자 무한성은 호전적인 오룡당주의 지지를 얻어낼 공산이 큽니다.”
일리 있는 해석.
장이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저 물었다.
“그럼 삼공녀 사해령은? 나름 유력한 후보잖아. 교주에게 받은 신의는 제일 두터운 거로 아는데.”
장이서의 기대 어린 질문에 취홍란이 낮게 침음을 뱉으며 말했다.
“없습니다.”
#형한테 교육 좀 받아야겠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