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87)
첩자의 마교생활-87화(87/350)
87.
#천마고의 전인 (1)
장이서는 확신했다.
“이번에도 열지 못하면 앞으로도 쉽지 않을 거다.”
지금 자신은 절정 초입의 단계.
과거 혼탁한 내기로 일류에 불과했던 때와는 달랐다.
그야말로 일취월장한 상태.
하지만 천마는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했다.
바꿔 말하자면 지금이 생에 가장 강한 순간일 수도 있다는 얘기.
덜컥 돌무더기가 떨어진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나 장이서는 적진에서 십수 년을 살아온 암각 최고의 요원이다.
“절망은 아직이다. 할 수 있는 것 다 해보고 해도 늦지 않아.”
이 정도에 주눅 들면 그가 아니다.
그리고 뇌전법이라는 기상천외한 사술을 남겨놓은 전인이 절대로 아무거나 남겨뒀을 리는 없을 것이다.
“후…….”
장이서는 깊이 심호흡을 뱉고는 벽으로부터 십여 보 떨어진 지점에 우뚝 섰다. 그러곤 오른쪽 어깨를 풀며 중얼거렸다.
“오늘로 구천팔백칠십…… 됐다. 몇 번째든 오늘로 끝내주마.”
장이서가 눈매를 굳히곤 왼손으로 목표를 잡고, 오른손은 뒤로 빼냈다.
그리고 아주 작게. 소리 없이 숨을 조금 들이마셨다가 호흡을 멈추는 그 순간.
『백뢰(白雷)』
눈이 번쩍 떠지며 우수가 뻗쳐졌다.
쐐애애액, 콱!
그리고 정확히 벽 중앙 홈에 날아든 비도가 꽂힌다. 과거와 달리 안정된 내기로 이젠 백발백중.
이어 비도와 완갑 사이에 이어진 쇠 끈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장이서는 단숨에 내기를 발출했다.
우우웅!
그러자 백색 무복이 펄럭이고, 그의 눈매는 더 강렬해진다.
그리고 서서히 풍겨 나오는 지독한 마기.
과거 탁하기만 했던 일류의 내기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지 차이.
하나 이는 시작일 뿐이다.
『뇌전법(雷轉法)』
파직! 파지지직!
장이서의 몸에서 유유히 흘러가던 내기가 단숨에 벼락으로 변해 대주천을 끝냈다. 이내 눈에선 흑광이 뿜어지고, 전신에는 전류가 꿈틀거렸다.
그야말로 뇌신(雷神)의 현현!
콰아아앙!
이내 내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리자 어느덧 벽면에는 마귀의 얼굴이 검은 광채를 뿜어내며 채워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경이적일 만큼 엄청난 속도.
3할.
5할.
7할.
9할.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마귀의 두 눈에 점안을 찍는 그 순간.
쿠구구구구!
거대한 진동과 함께 마벽이 두 쪽으로 갈라지며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본 장이서는 활짝 트인 얼굴로 소리쳤다.
“됐다!”
촤르르르륵! 백뢰를 회수함과 동시에 희열에 젖었다. 불끈 쥔 주먹이 파르르 떨린다.
대체 이게 얼마 만인가.
자그마치 7년 동안 9천 번이 넘는 도전을 행했다.
한데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마벽을 드디어 함락시킨 것이다.
쿠웅!
패배를 시인하듯 짙은 떨림과 함께 드디어 마벽은 완전히 개문했다.
그리고 나타난 두 번째 공동.
장이서는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레 한 걸음씩 나아갔다.
걸으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의문들이 새삼 다시 떠오른다.
도대체 이 뇌전법을 남긴 전인은 누구였을까.
천산에 있으니 당연히 마교 사람이겠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도대체 뭣 때문에 이렇게 지하 깊숙한 곳에 꼭꼭 숨겨둔단 말인가. 그것도 우물에 비밀 통로까지 만들어서.
심지어 구(舊) 호룡당 초소에 있던 우물은 천마전으로 이어졌었다.
혹 당시의 천마가 심심하기라도 했나?
모르겠다. 하나 확실한 건.
“이건…….”
전인의 안배는 뇌전법이 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벽에 새겨진 글귀 중 첫머리의 세 글자.
【조화술(造化術)】
이 안엔 그가 남겨놓은 또 하나의 기공(奇功)이 존재했다.
장이서는 그 순간 두 가지를 깨달았다.
“나한텐 아직 강해질 방법이 있다.”
천마의 말대로 지금이 절대 한계치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이 암어를 다 풀어낸다면 말이지.”
이곳을 만든 전인은 이전에도 그렇고, 친절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
첫머리를 제하곤 온통 이해할 수 없는 암어로 새겨진 글귀.
씨익, 장이서의 입꼬리가 올라섰다.
“얼마나 걸리든…… 전부 해석해주마.”
그렇게 전인과의 소통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
똑, 똑, 똑.
물방울 소리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일정하게 울린다.
이쯤 들으면 지겨워 미칠 법도 하거늘.
장이서는 들리지도 않는지, 돌 하나 움켜쥐고 바닥만 박박 그었다.
그리고 그 넓던 바닥은 빼곡하게 낙서해 놓은 것처럼 새하얀 글귀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가 꼬박 하루에 가까운 긴 시간 끝에 굽은 허리를 폈을 땐.
“후…….”
마침내 저 지긋지긋한 암어의 해독이 모두 끝났다.
이는 암각 최고의 요원 장이서였기에 가능했던 일.
초췌해진 얼굴에 진심으로 미소가 서렸다.
이내 자신이 바닥에 적어둔 암호문과 비교해 가며 전인이 남긴 기문(奇文)을 벽에다 돌로 써 내리며 읽어나갔다.
【나는 한무영이다.】
처음이었다.
그에 대해서 알게 된 건. 그답게 짧지만, 묵직한 인사. 장이서가 포권을 취하며 답했다.
“장이서입니다.”
고작 서로 이름 하나를 주고받은 것뿐이거늘, 묘하게 정감이 서렸다. 시간을 거슬러 이 자리에 서 있었을 전인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이어진 글귀.
【천마는 신이다.】
피식. 허탈한 웃음이 뱉어졌다. 시대를 넘어 그들의 존재감은 변함이 없구나.
뭐, 이해는 간다. 지금의 천마도 딱히 인간으로 보이진 않으니.
한데.
【그리고 나는…… 신을 죽였다.】
쿵! 장이서는 순간 넋을 잃었다.
대체 이게 무슨…… 그럼!
“천마를…… 죽였다?!”
그는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제 손으로 천마를 죽였다고.
【임무는 완수했다.】
심지어 누군가의 명을 받고서.
머릿속이 얼얼했다.
“당신도…… 나와 같은 첩자였어…….”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갔다.
뇌전법이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는 마공이어야 했던 이유.
곳곳에 암어가 가득하고, 천마전으로 향하는 비로가 존재했던 이유.
이 모든 건…….
그가 천마를 죽이기 위해 투입된 첩자이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장이서는 다급히 정신을 차리곤 다시 암어를 해독했다.
그리고.
【하지만 해서는 안 될 임무였다.】
또다시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이제 오래지 않아 그가 동면을 깨고 나올 것이다.】
파르르 떨리는 동공.
【불사(不死)의 존재.】
그륵, 그륵. 툭.
장이서가 두 글자를 적고선 돌멩이를 떨어트렸다.
도저히 믿기 힘든 두 글자.
【혈존(血尊).】
그 악명 높은 혈교의 주인.
장이서는 입이 떡 벌어졌다.
감당하기 힘든 이름들이 연거푸 나온 탓이다.
차라리 아무개가 쓴 소설이라면 더 믿기가 쉽겠다.
“말이 안 되잖아. 전인이 천마를 죽였고, 천마를 죽이니까 혈존이 나타났다니.”
무슨 산 넘어 산도 아니고, 중원의 안녕을 생각하면 실로 끔찍한 일.
더구나 지금으로서는 납득하기도 어려운 말이었다.
“일단 혈교 자체가 존재하지를 않는다고.”
왜? 이미 멸망해 버렸으니까.
장이서는 빠르게 고개를 휘젓고 현실적으로 생각했다.
“말마따나 전인이 살던 시대가 언제인지도 모르잖아. 암어만 해도 구식이야. 종잡을 수 없는 상형문자지. 게다가 이곳을 아무도 몰랐다는 것도 그래. 최소 백 년은 더 전의 일일 거다.”
그리 생각하니까 머릿속이 한결 편해진다.
분명 놀라운 비사이긴 하나,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를 일.
불사(不死)라는 말이 영 꺼림칙했으나, 괜히 호들갑 떨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전인인 한무영이 남긴 서신도 여기까지였다.
이 이후부터는 그가 남긴 조화술의 구결.
장이서는 고개를 휘저어 잡념을 터럭도 남기지 않고 털어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이 조화술을 익히는 거니까.”
해야 할 일에 집중하자.
장이서는 다시 바닥의 돌멩이를 주웠다. 그리고 글귀와 암호문을 대조한다.
그윽, 그윽. 벽에 하나씩 새겨지는 구결들.
이윽고 다시 한참의 시간이 지나 벽면이 가득 채워지고 이를 두어 차례 더 읽어 내려갔을 때.
툭. 돌이 다시 바닥에 떨어지고, 장이서에겐 참오의 시간이 찾아들었다.
“……지금까지는 뇌전법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했다. 마오의 다다익권처럼 내기를 모아서 쓸 수도 없었고, 발출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왜? 너무 빠르니까.”
그랬다. 마오에겐 천천히 운기하는 법부터 가르쳤지만, 정작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던 건 장이서였다.
뇌기의 속도가 빛처럼 빨라 다루질 못했기 때문.
하여 기의 성질을 뇌로 바꾸고, 소주천과 대주천을 속결(速結)할 수는 있어도 압도적인 위력을 선보이지는 못했다.
그나마 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건, 뇌기를 흡수하는 백뢰를 사용할 때 정도.
그리고 그건 전인도 같은 생각이었다.
“조화술의 구결에 따르면 뇌기는 의념으로도 쫓을 수 없다고 했다. 인위적인 힘으로는 자연의 기운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 바꿔 말해 이미 흘러간 기는 결단코 조종할 수 없다.”
그래서 전인은 생각을 바꾸기로 하였다.
뇌기를 다루는 게 아니라, 원하는 곳에 유도하기로.
그리고 그 방법을 깨닫게 해준 것이 바로 백뢰였다.
“백뢰는 뇌기를 끌어당기는 성질을 지녔다. 해서 조금만 운기를 해도 알아서 스며들지. 날붙이만 남겨둔 것도, 그리고 이를 완갑에 넣어둔 것도. 조금이라도 방해 없이 뇌기를 축적하기 위해서야.”
바꿔 말하자면, 제 알아서 뇌기가 모여든다는 것.
조화술은 바로 여기서 착안한 기공이었다.
“심법이란 내기를 다루는 운용법. 그런 의미로 보자면 조화술은 심법이지만 심법이 아니야. 내기를 다루는 게 아니니까. 조화술은 몸 안의 내재된 모든 기운을 다루는 비술이다.”
그렇다. 이것이 전인이 조화술을 심법(心法)이 아닌 술(術)이라고 명명한 이유.
장이서는 왼손바닥을 펼친 뒤 앞으로 뻗었다. 그러곤 서서히 내공을 운기하며 말했다.
“조화술은 오랜 시간 내기를 쌓는 연공법이 아니다. 그저 몸 안의 기운들을 정교하게 다룰 수 있게 해주는 응용술이지. 하지만 뇌전법을 다루는 내겐 그 무엇보다도 훌륭한 심법이다.”
우우웅!
장이서의 몸에서 내기가 용솟음친다. 그리고 천천히 손끝의 혈 자리로 이를 집중시켰다. 그러자 거뭇한 마기가 그의 손에 어른거렸다.
이것이 바로 일반적으로 기를 모으는 형태.
하지만 이를 뇌기로 바꾼다면.
『뇌전법(雷轉法)』
파지직! 모여 있던 손바닥의 내기가 단숨에 번쩍거리며 전신으로 흩어졌다.
“역시 일반적인 방법으로 뇌기를 모은다는 건 어림도 없는 일.”
장이서는 뇌전법을 흘려보내곤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구결에는 두 가지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는 음양의 기운으로 내기와 몸을 보호하는 기호공(氣護功). 그리고 두 번째가 몸 안에 자력을 발생시켜 원하는 곳에 뇌기가 모여들도록 하는 축전공(蓄電功)이다.’
그리고 장이서가 당장 큰 기대를 안고 있는 건 두 번째인 축전공이었다.
그것만 성공시킬 수 있다면, 뇌전법의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음양의 기운을 다루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