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88)
첩자의 마교생활-88화(88/350)
88.
#천마고의 전인 (2)
‘사람의 몸은 미세한 개구리알처럼 수많은 기운이 존재한다. 오행과 음양은 기본이오, 이외에도 셀 수 없이 다양하다.’
하지만 어떻게.
대체 어떻게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생전 만져본 적도, 느껴본 적도 없는 음양의 기운을 그중에서 찾아내 다룰 수 있단 말인가.
“후…….”
호흡을 뱉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전인은 불친절한 사람이다.
방법을 쉽게 전수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결코 거짓을 고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분명 찾아낼 방법이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우우웅!
장이서가 운기를 시작했다.
단전에서 뿜어진 천마의 마기가 서서히 몸 안을 주유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육신을 이루는 수많은 기운이 느껴졌다.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화(火)가 많은 자는 성미가 급하고, 수(水)가 강한 자는 유연하다. 목(木)을 많이 심은 자는 베푸는 성향을 더러 보인다.
어느 쪽이든 보통은 강한 기운이 있기 마련. 하여 이는 곧 그의 성질(性質)이 된다.
한데 장이서는…….
혼돈(渾沌).
마치 오만 가지의 색상으로 이루어진 사막을 바라보듯.
셀 수 없이 많은 기운이 내포되어 있었다.
이 안에서 음양을 찾아낸다는 건 집채만 한 거인이 사막에서 모래 알갱이만 한 보석을 찾아내는 것과도 같은 일.
하지만 장이서는 구규지체로 오성과 감각이 종극에 달한 자다.
전인이 해냈다면 그도 해낼 수 있다.
거짓이 아니라면 찾아낼 수 있다.
느껴지는가? 아니.
그럼 다시.
느껴지는가? 아무것도.
그럼 다시.
그렇게 장이서는 조급함 없이 자신만의 세계에 점점 빠져들었다.
10번, 100번, 1,000번.
그리고 어느덧 무아지경에 빠져들었을 때.
문득 옛 기억 속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렸다.
‘음양은 천지 만물을 이루는 근간이오, 흐름이니라. 때로는 대립하나, 때로는 공존하며, 어느덧 조화와 평형이 유지되니 그것이 곧 우주이리라.’
검 한 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 떠나갔던 자.
정파의 최고 어른인 신주오절 중 하나이자, 중리성(中理星)으로 불리는 자.
무당파의 원로이자 현 무림맹주인 현청진인이 했던 말이었다.
왜 잊고 있던 그의 말이 갑자기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장이서는 이 순간 홀린 듯 그가 했던 말을 체감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먼저 느끼고 있었기에 가장 먼저 그의 말이 떠오른 것일지도 모른다.
하나 무엇이 먼저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지금 장이서의 몸이 서서히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립과 공존. 낮과 밤이 서로를 밀어내고, 또 서로를 당기듯. 양에서 음으로. 다시 음에서 양으로. 하나이자 둘인, 둘이자 하나인. 서로에게 상호 반응하는 그것이 바로…….’
음양(陰陽)이다.
콰앙!
내면에서 폭음이 울리고 두둥실 떠오른 장이서의 등 뒤로 무형의 고리 하나가 커다랗게 자리매김했다가 사라졌다.
흑백으로 이루어진 태극의 고리.
아마 이를 무당의 원로인 무림맹주가 봤다면 그를 마교로 보낸 걸 땅을 치고 후회했을 거였다.
장이서는 이때 인지하지 못했지만, 이는 도교에서도 전설 속에나 존재하는 단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었기 때문.
본디 도교 무학을 익히기 위해선 육신이 선기(仙氣)를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가 되어야 하는데, 이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졌다.
하나는 오행을 받아들일 신체로 단련하는 오기조원(五氣朝元).
극양의 기운을 삼단전을 거쳐 정수리 백회혈로 보내는 삼화취정(三花聚頂).
그리고 마지막으로 음양의 이기(二氣)를 화합(和合)시켜 하나의 새로운 단일기(單一氣)로 안착하는 것이 바로 전설 속에 나오는 음양일원(陰陽一元)의 단계였다.
보통은 심공의 성취와 함께 자연스레 터득하는 것이었지만, 장이서가 고작 절정 초입에 불과함에도 오기조원과 삼화취정을 건너뛰고 단숨에 음양일원의 경계를 깨우친 것이다.
이는 전설 속 도교의 극상승 무공을 익힐 준비가 된 초월적 자질의 탄생이자, 섭혼술을 비롯한 그 어떤 귀령술(鬼靈術)에도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방패를 지니게 된 것과도 상통했다.
장이서라는 구규지체를 가진 비교 불가의 오성을 가진 존재가 조화술이라는 상식파괴의 비술을 익히는 과정에서 얻어낸 기적의 결과.
솨아아아-
어느새 고리는 흩어지고, 장이서는 다시금 바닥에 내려섰다.
이내 그의 눈이 스륵 떠졌다.
일전에도 깊이가 있는 눈매였으나, 지금은 마치 고승을 바라보듯 정제된 깊이가 담겨 있다.
“음…….”
그리고 처음 뱉어진 말은 외마디의 침음이었다.
분명 음양의 기운을 찾았고, 이를 하나로 모아 그 안에 빨려 들어가듯 심취한 것까진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후로는 얼떨떨했다.
지금으로선 머리로 손과 발을 인지하듯, 음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정도.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했다.
“할 수 있다.”
조화술을 이루는 기호공과 축전공을 펼칠 수 있을 거라는 확신.
슥.
장이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 앞에 다시 우뚝 섰다.
그러곤 좌수를 앞으로 뻗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솨아아아-
이내 음양의 기운을 손바닥에 집중시키자 알 수 없는 느낌이 스멀스멀 몰려들었다.
따스하면서도 서늘한.
밝으면서도 어두운.
무어라 딱 잘라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
이내 그 기운을 다시 둘로 나누었다.
한쪽은 양(陽). 그리고 다른 한쪽은 음(陰).
웅웅웅!
그러자 미약한 공명음과 함께 무언가를 빨아들이는 듯한 자력이 생성되었다.
“이것이 바로…… 축전공…….”
아마 잘은 모르지만, 전인인 한무영이 봤다면 뭐 이딴 새끼가 다 있냐며 기함을 터트렸을 것이다.
그만큼 거침없는 성공.
이제 남은 건 하나.
우우웅!
장이서의 단전에 천마의 마기가 선회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눈을 부릅뜸과 동시에.
『뇌전법(雷轉法)』
파직! 검은 광채가 번쩍하며 장내에 가득 퍼졌다.
“큭?!”
그리고 장이서는 신음을 터트리며 기함했다. 동시에 오른손으로 미쳐 날뛸 것만 같은 왼손 팔목을 척! 움켜쥐었다.
“이게 무슨……!”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결과.
지이이잉-!
왼손에 몰려든 뇌기가 엄청난 공명음과 함께 손바닥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뇌구(雷球)를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검은 전류가 번쩍이며 미친 듯이 회전하는 손바닥만 한 구체를.
그리고 그 힘은 장이서의 상상을 훨씬 더 상회할 만큼 강대했다. 삽시간에 단전의 내기가 빠져나가고, 손은 터져버릴 것처럼 꿀렁였다.
“크윽……!”
이대로는 정말 손이 터져버릴지도 모르는 상황.
“으아아아아아-!”
결국 장이서는 비명에 가까운 절규와 함께 벽에다 일장을 뻗어냈다.
파지지지직-!
그러자 막대한 전류가 터져나가는 음색과 함께.
꽈아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빛무리가 장내를 휘몰아쳤다.
“하아. 하아…….”
잠시 후 장이서의 어깨는 축 늘어졌고, 모든 힘이 빠져나간 것처럼 단내 나는 숨이 뱉어졌다. 건드리면 그대로 쓰러질 것처럼 두 다리가 떨렸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지금 장이서의 모든 신경을 빼앗아 간 건 눈 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투두두둑.
마치 벽에 운석을 처박아 넣은 것처럼 오 장(15m) 길이로 움푹 파인 모습.
방금 일어난 일임을 알려주는 부스러져 내리는 흙더미.
이젠 진짜 믿어야겠다.
“천마를 죽인 게…… 맞구나.”
장이서는 황당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 정도면 술(術)이 아니라 신공(神功)이다.
뇌기를 함축시키자 이런 말도 안 되는 위력이 나오다니.
“한무영…… 도대체 당신 누굽니까.”
그가 궁금했다.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도대체 누구기에. 어디서 온 자이기에.
도인처럼 음양의 기운을 다루고, 막대한 뇌기를 쏟아냈던 것인가.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천마고에 쌓아둔 금은보화라도 풀어 찾아내고 싶었다.
그의 흔적을.
“천마라면 혹 알지 않을까.”
장이서의 머릿속에 진우광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무도 몰랐던 구규지체의 치료법까지 알고 있을 만큼, 무에 있어선 광적일 정도로 박식한 존재.
진짜 그라면 뇌전법의 창시자이자 천마를 죽였다고 주장하는 한무영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쓸데없이 일 키우는 건 첩자인 내가 할 짓이 아니야.”
더 나서면 안 된다.
힘을 가질수록 더욱더 조신해야 한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한데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하나.”
장이서가 다시금 움푹 파인 벽을 보며 픽 웃었다.
다시 말하지만 전인인 한무영은 실로 무심했다.
조화술이라는 이론은 담아두되, 이를 응용하는 법도, 그리하여 창안해낸 초식도. 아무것도 적어두지 않았다.
한마디로 조금 전 펼쳤던 구체는 장이서만의 초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
“축뢰환(築雷丸)이라고 하자.”
그렇게 첫 번째 초식의 이름이 지어졌다.
장이서는 옷매무새를 다듬고 벽 앞에 섰다.
이미 훼손이 많이 되어 예를 갖추기도 송구하다.
하나 할 건 해야 할 일.
털썩. 장이서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본래라면 진즉 사제지간의 예를 올렸어야 했으나, 제 처지가 처지인지라. 상황이 다르지 않으셨을 테니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장이서는 무림맹의 인물이자 마교에 숨어든 첩자.
하여 이름도, 신분도 알 수 없는 이에게 구배지례를 올릴 순 없었다. 하나 이젠 그의 이름이 한무영임을 알게 되었고, 과거 천마를 죽이기 위해 투입된 첩자였음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최소한의 예는 갖추는 것이 옳다고 여기었다.
“죽을 때까지 감사함을 잊지 않겠습니다.”
장이서는 그렇게 계수배(稽首拜)를 올리고 그를 마음으로나마 자신을 가르쳐 준 사부라 생각하게 되었다.
남은 건 평생 그 존함을 잊지 않고, 올바르게 힘을 사용하는 것뿐.
그렇게 장이서는 조화술이라는 새로운 비술을 터득한 채 천마고 밖으로 나섰다.
언제고 다시 마주할 그의 흔적을 고대하며.
* * *
– 마해산 천마전 정상.
천마전이 자리한 까마득한 절벽.
그 드높은 정상에 올라선 사내가 후면에 자리한 바다처럼 드넓은 호수를 내려다본다.
삼라만상을 다 깨우친 듯한 심해처럼 깊은 눈동자.
또렷한 이목구비. 날카로운 턱선.
사연마저 느껴지는 풍성한 백발.
뭐 하나쯤은 빠질 법도 하거늘.
실로 조각처럼 잘난 용모의 사내다.
믿을 게 그것 하나뿐이라면 그나마 위로가 되겠지만, 아쉽게도 그는 다른 것 역시 완벽했다.
세상을 뒤흔들만한 세력. 경천동지할 무공. 거기에 무려 고희(70살)를 넘긴 나이까지도.
하나 이 모든 불공평함이 허용되는 두 글자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천마다.
그렇다.
당대의 천마, 진우광.
바로 그였다.
그리고 홀연히 자릴 비운 그를 찾아 각기 흑과 백으로 통일한 복식의 두 사내가 등 뒤에 나타나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역시 여기 계셨군요.”
“우사. 역시라니. 예견한 건 나이거늘. 역시 여기 계셨군요.”
우사 흑야와 좌사 백야다.
진우광의 최측근이자 그보다도 전대에 활약했던 두 사람.
둘이 합하여 춘추가 200세를 넘어가니 그야말로 마교 역사의 산증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