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9)
첩자의 마교생활-9화(9/350)
9.
사해령은 이 후계 전쟁에서 가망이 없다라…….
“왜지?”
“당장은 광룡당주가 전임 당주인 나락 보좌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대공자와 이공자가 가장 먼저 그녀를 몰락시키려 할 테니까요.”
흠. 얕은 숨이 뱉어졌다. 취홍란은 모용세가에서도 빼어난 두뇌로 유년부터 정평이 났던 여인. 그녀의 말이 곧 현실이 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
게다가 장이서 역시도 같은 생각이었다. 길어 봤자 반년. 그 안에 가장 먼저 무너져 내릴 후계가 바로 사해령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나서기 전까지의 얘기. 칠공자가 자리 잡을 때까진 사해령이 방패막이가 되어줘야 한다.’
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그것도 하나하나가 모두 극악의 난이도. 물론 불가능하다는 건 아니다.
“그 녀석은 어떻게 됐어.”
장이서가 화제를 바꿔 그 녀석에 대해 묻자 취홍란이 슬며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잘 보이지 않게 휘장이 처져 있었지만, 이를 살짝 거두어내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 녀석이 훤히 보였다.
“뭘 쳐다봐. 죽고 싶어? 우하하하!”
늦은 밤, 만취한 채 애새끼처럼 고래고래 시비나 걸고 다니는 답도 없는 망나니.
“마오…….”
장이서의 입꼬리가 올라섰다.
그렇다. 그다. 칠공자 마오.
장이서가 이곳 취선루에서 열흘이 넘게 머무른 건 진산파파만을 기다렸던 것이 아니다.
촤악. 다시 휘장을 친 장이서가 상 위에 빈 잔을 들었다. 그러자 취홍란이 정중히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칠공자이긴 하나 평소에도 왈패들과 어울리는 질이 안 좋은 자입니다. 마교 내 모든 출입을 허하는 교주의 신물도 반납되었고, 지원도 끊겼죠. 취선루에서 취식은 허하고 있습니다만……. 주루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일단은 계속 받아줘. 언제고 싹 다 받아낼 거니까.”
“네. 조만간 칠공자에 대해 소상히 보고 올리겠습니다.”
“믿어.”
장이서가 피식 웃곤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취홍란은 오물거리는 입을 고개 숙여 숨겼다. 궁금했다. 그가 며칠 전부터 왜 이리 칠공자에게 관심을 가지는지.
물론 그것 말고도 궁금한 건 많았다.
교인이면서 천마신교를 마교라 부르고, 입에 담아서도 안 될 교주와 소교주를 막무가내로 부르고.
예상은 갔다. 하지만 장이서에 대해선 일절 묻지 않겠다는 것이 둘 사이의 약속. 그리고 그마저도 언제고 닥칠 위험에서 자신을 지켜주기 위함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취홍란은 그래서 늘 기다렸다. 그가 말해줄 때까지.
“조만간 내가 저 녀석 보좌로 들어가게 될 거다.”
속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그의 입이 속 시원히 열렸다. 취홍란은 고개를 활짝 들고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상기되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홍란이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묻자, 장이서도 피식 웃으며 답했다.
“사흘 뒤. 들어갈 거다.”
와. 홍란이 진심으로 탄성을 뱉었다. 대체 어떻게 칠소궁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단 말인가. 오래 봐 왔지만, 정녕 끝을 알 수 없는 자다. 아마 취선루 외에도 그가 뿌린 씨앗들이 곳곳에 퍼져 있을 것이다.
“물론 그전에. 나도 인사 정도는 해야겠지.”
장이서의 눈이 번뜩였다.
이젠 마오와의 단판 승부다.
*
– 마교 월하촌 칠소궁.
취선루에서 남쪽으로 홍예교를 지나면 나타나는 울창한 대나무 숲. 그리고 그 깊숙한 곳에 홀로 놓인 작지도 크지도 않은 장원.
아무나 들어설 수 없는 금역이자, 칠공자 마오가 머무는 칠소궁이었다.
하나 말이 궁(宮)이지, 드나드는 손님은 개미보다 적었고 그나마 사해령이 보낸 시비가 이따금 청소하러 오는 것이 다였다.
당연했다.
망나니가 왜 망나니겠는가.
오늘 삼공녀의 말을 전하러 온 중년의 사자도 정말 여긴 오고 싶지 않았다.
“다시 말해봐.”
이제 약관쯤 되었을까.
그저 생긴 것만 보면 명가의 대공자가 떠오를 만큼 사내답게 훤칠한 용모다.
몸집은 또 어떠한가. 힘쓰기 딱 좋은 장신에 탄탄하고 태산 같은 어깨를 가졌다.
무게감 있는 눈빛과 이마를 훤히 드러낸 홍련처럼 붉은 머리는 덤.
한마디로 어디에서도 꿀리지 않는 호남아다.
“누가 온다고?”
하나 예의는 어디다 버렸는지 손님을 밖에 달랑 세워둔 채, 장지문을 발로 열고 복도에 드러누워 맞이했다.
그야말로 안하무인. 칠공자 마오였다.
“그러니까 이틀 뒤, 보좌가 올 것이니 반갑게 맞이해 주라는 삼공녀님의 전언이십니다. 예…….”
잔뜩 겁먹은 얼굴로 사자가 거북목이 된 채 중얼거렸다. 그러자 마오가 벌떡 일어나 대뜸 타다닥 달려든다.
“흐익!”
이에 화들짝 놀란 사자의 목이 펴지고, 마오는 그대로 팔로 휘감아 머리를 겨드랑이에 꽉 조르며 윽박질렀다.
“뭐, 보좌? 다시 말해봐.”
“끄윽, 아니, 저기……. 삼공녀님께서 보좌가 올 것이라…… 끅.”
“말이 안 되잖아. 나한테 보좌를?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누님이? 우하하!”
“수, 숨! 숨이! 으억!”
팍! 마오가 사자를 밀치자 와당탕! 한참을 벗어나 구석을 나뒹군다. 내공이 실린 것도 아닌데 실로 엄청난 힘. 사자가 골골대며 신음을 뱉었다. 그러자.
“제자리.”
마오는 무심한 얼굴로 다시 마루에 올라가 양반다리로 털썩 주저앉으며 명했다. 이에 사자는 울상을 지은 채 후다닥 아까 자리로 달려와 차렷 자세로 섰다.
“그래. 이름이 뭔데?”
마오가 심드렁하게 묻자 사자가 진땀을 흘리며 서둘러 답했다.
“장이서. 예, 장이서라고 합니다.”
“장이수라……. 처음 듣는데.”
“장이수가 아니고 장이섭니다.”
“어쩌라고. 가문은 어디야.”
이런 개…….
“그것이 교외자 출신인 천민인데요.”
“천민? 우하하! 하늘의 백성이냐?”
“그 천이 아니라…….”
“바보냐? 농담이다. 천민이라도 유산은 있겠지?”
“재산 아닐까요. 죽으러 오는 것도 아닌데 유산은 좀…….”
마오가 사납게 노려보자 사자는 급히 죄송하다며 머리를 박았다. 이에 마오가 콧김을 뿜으며 다시 물었다.
“천것이래도 직책은 있겠지. 보좌 지원 아무나 하는 거 아니잖아. 뭐. 당주 급은 돼?”
사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조심스레 답했다.
“당주까지는 아니고, 그것보다는 좀 더 아래입니다.”
“뭐. 부당주?”
“부당주까지는 아니고, 그것보다 조금 더 아래…….”
“뭐? 하하하! 내 처지처럼 끝도 없이 내려가는구나. 뭐, 대주?”
“대주까지는 아니고…….”
“뭐야……. 설마 부대주?”
“부대주까지는 아니고.”
“야, 이 새끼야! 그것보다 아래가 어딨어!”
“조장입니다. 방첩대 삼조장.”
아아악! 마오의 비명이 터져 나오고, 와장창! 장롱까지 다 쓰러져 내렸다. 사자는 귀를 꽉 막은 채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바짝 독이 오른 마오가 겨우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래도 누님이 보낸 놈이니까 일단 받아는 줘야겠지?”
“예, 맞습니다. 그것이 옳은 듯하옵니다.”
“그래. 그렇지. 그게 옳지. 네 말도 일리가 있어. 그래. 일단은 받고……. 가진 거 탈탈 털어서 벌거숭이로 내쫓아야겠다.”
“예? 그건 도적질 아닌가요?”
“무슨 상관이야. 내 보좌라며. 그러면 걔 건 다 내 거지. 맞잖아.”
그래, 맞다. 이 새끼야.
사자는 정신이 혼미한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대화가 안 통하는 자다. 대충 동조하고 사라지는 게 장수의 지름길이다.
마오 또한 답에 만족했는지 손을 휘휘 저었다. 그만 꺼지라는 얘기.
사자는 그의 마음이 바뀔까 슬금슬금 뒷걸음질했다. 그리고 곧장 몸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마오가 멀뚱히 천장을 보다 말했다.
“누님한테 감사하다고 전해.”
“예? 예.”
“그리고 놓고 가.”
“뭐를…….”
“네 옷 안에 든 주머니 그거. 놓고 가라고.”
이런, 미친. 사자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품에 손을 넣었다. 그러곤 전낭을 꺼내 엽전 두어 개를 꺼내며 물었다.
“얼마나…….”
“벗고 갈래?”
“아니요…….”
사자가 바들바들한 손으로 전낭을 채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뒤돌아 도망치듯 죽림을 벗어났다.
정말 들었던 것보다도 더 미친놈이다.
하나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건 저렇게 미친놈이 또 사람은 함부로 안 죽인다는 거다. 만약 그랬다면…….
떨리던 사자의 눈빛이 숲을 벗어나자 급속도로 차가워진다.
“내 손에 진작 죽었을 텐데.”
쫘아악! 사자가 제 얼굴 가죽을 벗겨냈다.
인피면구다.
그것도 삼공녀가 썼던 것보다도 훨씬 더 정교한.
마교에서 이만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는 흔치 않다.
아니, 오직 그뿐일 거다.
“이 개같은 새끼. 감히 내 돈을 가져가? 남매가 쌍으로 미쳐 날뛰는구나!”
돈에 죽고 사는 무림맹 첩자 장이서.
아니, 이제 보좌가 될 장이서였다.
그가 사자로 변장한 채, 앞서 이곳을 찾았다.
“그래. 네놈이 쉬울 거라곤 생각도 안 했다.”
암각에서 내린 임무는 보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소교주로 만드는 것.
하지만 저런 썩어빠진 정신머리의 망나니는 가망이 없다.
그러니 남은 방법은 하나.
“너 형한테 교육 좀 받아야겠다.”
씨익. 장이서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섰다.
마교 망나니 칠공자 마오.
무림맹 암각 최고 요원 장이서.
두 사내의 살벌한 동거는 이제부터였다.
* * *
– 무림맹 호북지부 암각.
제갈소미는 좁고 어두운 방에 앉아 자루에 수북이 담긴 서신을 하나씩 꺼내 뒤적이고 있었다.
내용도 다양했지만, 표출 방식도 다양했다.
점자부터 시작해 먹 가루를 풀어야 보이는 글자까지. 이 모든 건 각지에서 암각의 요원들이 보내온 밀서였다.
물론 이것도 직접 보낸 건 아니었다. 수많은 과정을 거쳐 다다른 것이지.
‘아니, 근데 왜 불을 못 켜게 하는 거야? 눈 아파 죽겠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 제갈소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리 무공을 익혀 이 정도는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지만, 그 흔한 야명주 하나 없으니. 복지가 아주 엉망이었다.
더구나 복면은 왜 자꾸 쓰라는 건지.
“갑갑해.”
안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또 모르겠는데, 본진의 출입이 허락된 건 그녀와 조부 제갈상뿐이었다.
이래 놓고 집에 갈 땐 복면 벗고 손잡고 가니 미칠 노릇이다.
“그냥 보직 옮길까. 나 이러다 혼삿길도 막히는 거 아니야?”
충분히 합리적인 생각이다. 더구나 슬슬 이 일도 질려가던 참이었다. 새삼스러운 소식이랄 것도 없고.
“음?”
그때였다. 아무 생각 없이 손으로 밀서의 점자를 읽어나가던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 숙였다.
그러곤 화들짝 놀란 얼굴로 복면까지 내리고 다시 양손으로 점자를 세밀히 짚었다.
그녀를 충격에 빠트린 건 단 두 글자였다.
【입궁.】
103호다. 그가 임무를 하달받고 실로 오랜만에 보내온 서신이었다.
“입궁이라니. 정말 칠소궁까지 들어갔다는 말이야? 벌써?”
경악이었다. 임무를 보낸 지 얼마나 됐다고, 금역으로 지정된 소궁까지 입성한단 말인가.
두근두근. 지루함에 늘어져 있던 심장이 연신 뛰기 시작했다.
“뭐야. 설마 진짜 칠공자를 소교주로 만들려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게 돼?”
보내놓고도 절대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그의 임무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형한테 교육 좀 받아야겠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