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91)
첩자의 마교생활-91화(91/350)
91.
#오공녀 맹원원 (2)
더구나 상처가 많긴 해도 치명적인 중상도 없다.
깊이가 얕았다.
“웬만한 도검으로는 흠집도 못 내는 왕우의 몸을 저 정도로 베어낸 건 훌륭해. 하지만 그뿐이야. 내기도 제어 못 하는 저런 형편없는 무공으로 상대하겠다니. 너무 웃기지 않아?”
그걸 나한테 묻는 네가 더 웃기다! 마오는 인상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그로서는 맹원원의 말을 전부 이해할 순 없었지만, 틀린 말 하나 없었다.
피부부터 근골까지. 괴물처럼 단단한 도검불침의 체구를 베어내기엔 그녀의 성취가 부족했던 것.
더구나 대성하지도 못한 백백혈마공을 장시간 펼치기엔 뒤틀리는 호흡이 따라가질 못했다.
그리고 이는 예견된 결과로 드러났다.
퍽!
수백 합을 겨루며 우세를 취하던 취홍란이 삽시간에 밀리기 시작하더니 끝내 복부에 일격이 꽂힌 것.
“악!”
그대로 허리가 새우등처럼 휘어지고, 혈안이 부릅떠졌다. 와당탕! 이내 별관까지 날아가 무력하게 쓰러지는 그녀.
“이봐, 괜찮아?!”
달려온 마오가 이빨을 꽉 물고 그녀를 안아 살폈다. 어느새 충혈되어 있던 두 눈과 백발이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온다.
“괜……찮습니다.”
힘겹게 뱉어내는 음색. 마오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분노가 잇새로 새어 나왔다.
제게도 힘이 있었다면.
그랬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차라리 이 녀석이라도…….’
마오가 제 손에 들린 창룡도를 물끄러미 살폈다.
회색빛 도면이 달빛을 머금곤 제게 속삭이는 듯한 기분.
제게 양기를 달라고. 저자들을 같이 육참골단 해버리자고.
두근, 두근.
가슴이 떨려옴과 동시에 손이 꽉 쥐어진다.
내공만 보내면…… 그러면…….
“거봐. 웃기지?”
바로 그때 맹원원이 해맑게 웃으며 상념을 깨웠다.
“젠장…….”
이에 마오는 창룡도를 칼집에 넣어두곤 외쳤다.
“너…… 진짜 미쳤어?”
“그래도 조금은 기대했는데. 뭐, 별거 없네.”
“야!”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마오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하지만 그녀는 맑은 눈의 광인.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배시시 웃는다.
“그래도 제법이야. 보좌랑 단둘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앙큼한 고양이처럼 몰래 세를 키우고 있었다니. 더 있으면 숨기지 말고 다 꺼내 봐. 오늘 왕우도 몸 좀 풀고 싶다는데.”
“입 닥쳐! 너 내가 이거 그냥 넘어갈 거 같아?”
“안 넘어가면? 방법은 있고? 소용없어. 네 편 아무도 없잖아.”
마오가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그래 맞다. 아무도 없다. 아니,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저벅, 저벅.
마오의 시선이 맹원원 뒤쪽에 있는 입구로 향했다. 이에 그녀도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이쪽을 향해 무심한 얼굴로 걸어오는 백색 무복의 사내. 지극히 평범한 관상이지만 볼수록 정이 가는 새끼.
“장이서…….”
유일한 내 편.
“돌아왔습니다.”
그가 귀환했다.
*
장이서는 펼쳐진 상황을 보곤 안도의 숨을 뱉었다.
조금만 더 늦었어도 큰일 날뻔했구나.
“그쪽이…… 장이서?”
맹원원의 물음에 장이서는 힐긋 일별하곤 대꾸도 없이 걸어 들어왔다.
“하.”
이에 그녀가 황당하다는 듯 헛숨을 뱉는다. 하나 장이서는 아랑곳없었다.
자릴 너무 오래 비웠단 생각에 불쑥 불안해져 쉬지 않고 달려왔거늘.
“괜찮으십니까?”
“장이서…….”
어찌 된 게 자리만 비우면 이 모양인지.
비 맞은 개처럼 쳐다보는 마오에게 장이서는 이제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기대앉아 간신히 숨을 고르며 인사하는 취홍란을 바라보며 눈으로 말했다.
‘애썼다. 쉬고 있어.’
‘감사합니다, 주인님.’
보기만 해도 대략 상황은 알겠다.
이제 항변을 들어볼 차례. 장이서가 슥 고개를 돌리자, 맹원원이 입꼬리를 삐죽 올리며 인사했다.
“안 그렇게 생겼는데 성질이 고약하네. 반가워. 나 누군지 알지?”
왜 모르겠는가.
말 못 하는 바위만 한 사내와 말 많은 조막만 한 여아.
이리 대칭되는 조합은 그가 알기로 하나뿐이다.
맹가의 핏줄이자 맹휘에게는 사촌 누나가 되는 오공녀 맹원원.
‘한데 대낮도 아니고.’
장이서는 슬쩍 고개를 들어 창공을 살폈다.
별이 아주 잘 보이는 밤이다. 한데 이 시간에 불쑥 찾아와 행패라니.
다친 홍란이나 대문이 부서져 있는 것만 봐도 좋은 의도는 절대 아니다.
이 정도면 오공녀가 칠소궁을 선공했다고 봐도 무방한 일.
‘혹시 맹휘 때문인가?’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한동안 이곳에 머무르며 어울렸으니 그게 문제가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이든 이건 상식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행위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맹원원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뭐가 말입니까.”
“나 누군지 몰라?”
얼마나 더 알아야 하지. 장이서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자 옆으로 다가선 마오가 침을 꼴깍 삼키곤 최대한 소리 죽여 설명했다.
“오공녀야. 조심하는 게 좋아. 쟤 보통 아니니까. 오자마자 아주 쑥대밭으로 만들어놨어.”
“마오야, 다 들려. 인사 좀 한 거 가지고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
“인사? 이게 인사냐?! 뻔뻔한 년!”
“년?”
맹원원의 눈빛이 서늘해진다. 딱 인사만 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우리 마오.
그녀의 시선이 뒤쪽에 앉아 있는 홍란에게 향했다.
“장이서, 네가 궁금해서 와 봤는데, 됐어. 오늘은 흥미가 식었어. 대신 나 저 계집 줘. 그럼 그냥 조용히 돌아가 줄게.”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발언. 이게 지금 웃으면서 할 소리인가. 장이서의 눈살이 미약하게 찌푸려졌다.
어떤 유형인지 대충은 알겠다.
사람 이마에 등급표 붙여놓고 일정 이하는 인간 취급도 안 하는 안하무인.
방첩대 시절 장이서에게 1순위 정리 대상이던 전형적인 마교의 표본.
슬슬 피로가 느껴져 퉁명스레 말을 뱉었다.
“여기 오신 진짜 이유가 뭡니까.”
“너 때문에 왔다고 말했는데. 흐응, 이제 보니 믿음이 없구나? 얼굴에 불신이 많아. 맹휘가 왜 그렇게 삐뚤어졌는지 이제 알겠어.”
“제게 용건이 뭡니까.”
다시 한번 싸늘하게 통보하자 맹원원은 여전히 웃는 표정 그대로 읊조렸다.
“맹휘하고 친했다며.”
역시 그 때문인가. 장이서는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문제가 됩니까?”
“되지. 애가 너무 변했어. 이젠 맹가랑 연을 끊겠다고 하더라고.”
맹휘가? 장이서와 마오의 얼굴이 동시에 변했다.
금방 온다고 하고 떠나더니 본가에 가서 그런 짓을…….
대체 왜.
“왜겠어. 헛바람이 든 거지. 원래 심성이 약한 애잖아. 백부님은 아직도 그런 애가 소교주 위에 오를 수 있다고 믿고 계시니. 부자가 참 바보 같아. 안 그래?”
맹원원은 키득거리며 혼자 조소를 짓더니 자연스레 말을 이어 나갔다.
“근데 고작 너 때문에 걔가 다 포기한 걸 알면 백부님이 얼마나 화나실까? 아마 가만 안 두실 거야. 삼족을 멸하고도 남을걸? 아, 너무 걱정은 마. 아직 네 얘기는 안 했으니까.”
“야, 이 씨! 그딴 억지가 어디 있어! 맹휘 그 꼬맹이랑 장이서랑 뭔 상관인데!”
“상관이 왜 없어? 맹휘 입으로 똑똑히 장이서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뭐? 야, 이 사기꾼 새끼들아! 너희 돌아가면서 아주 작정하고 온 거지. 어? 어디서 약을 팔아!”
마오가 노발대발하자 장이서는 고개를 저어 말리곤 차분히 물었다.
“그래서. 육공자님을 설득이라도 해달라는 겁니까?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아니?”
음?
“포기하라고 해.”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다 모인 자리에서 날 지지한다고 선언하라고 해. 한 가문에 후계가 둘이나 있는 건 아무래도 보기가 좀 그렇잖아? 집중도 잘 안되고.”
하, 이것 때문이었나.
권력 투쟁이다. 맹휘를 위하는 척하지만, 실상은 누구보다 적대하고 있던 것.
“애초에 할 맘도 없는 걔보단 내가 낫지 않겠어?”
맹휘의 삶이 어땠을지도 빤히 상상이 갔다. 왜 그렇게 심약한 아이가 되었는지도.
태어났을 때부터 주변에 저런 독사들이 기웃거렸을 테니 오죽하겠는가.
“왜 접니까. 그리 싫으셨으면 육공자님께 직접 얘기했어도 될 일을.”
“흐음, 걔가 널 잘 따르는 거 같더라고. 원래 좋아하는 사람이 상처 주면 더 아프잖아. 후후.”
고작 그런 이유로?
장이서와 마오는 활짝 웃는 맹원원을 보며 썩은 뱀을 삼킨 것처럼 역겨움을 느꼈다.
“어때. 쉽지? 거절은 안 듣는 거로 할게. 그럼 내가 상처받을 것 같거든. 그건 속상해서 싫어.”
맹원원이 슬쩍 눈짓하자 쿵, 쿵! 거구의 남자 왕우가 듬직하게 앞으로 다가선다.
거절하는 순간 힘으로 보여주겠다는 무언의 협박.
“장이서…….”
마오가 난색을 드러낸다.
그럴 만도 하다.
아무리 이쪽에 문외한인 마오라고 해도 왕우의 명성은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말이 있다.
‘설산에 설인이 있다면, 맹가엔 왕우가 있다.’
한마디로 맹가에 사는 괴물 그 자체.
태어났을 때부터 삐뚤빼뚤한 이빨에 잘려 나간 혓바닥.
그리고 다리보다 긴 팔과 상상을 넘어서는 괴력.
그것이 바로 대거인 왕우였다.
일백마성에 오르게 된 경위도 유명했는데, 맹가의 식객이 된 광검나찰(光劍羅刹)이 노비 실력 한번 보겠다고 시비를 건 게 이유였다.
처음엔 왕우가 바보처럼 서서 그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가 싶었지만, 싸워도 된다는 삼장로의 허락이 떨어진 순간.
‘크아아아악!’
단 일격에 기둥 같은 팔로 정수리를 내리찍어 싸움을 종결시켰다.
즉사(卽死).
무려 일백마성이었던 광검나찰을 단 일격에 죽여버린 것이다.
“왜 대답이 없어? 물었으면 대답해 주는 게 예의 아닌가?”
맹원원이 다시금 웃으며 재촉해 오자, 마오가 뭐 씹은 얼굴로 포기하듯 속삭였다.
“장이서. 일단 알겠다고 해. 알겠다고 하고 시간부터 벌자. 내일도 해는 떠야지. 그래야 뭐라도 하지.”
“그러길 바라십니까?”
“어?”
“칠공자님께서 힘을 기르고 싶은 이유. 이런 일에 더는 휘둘리고 싶지 않아서 아니었습니까?”
“아니, 그건 맞는데…….”
“칠공자님이 없어도 내일 해는 뜹니다. 하지만 오늘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겁니다.”
장이서의 비수 같은 말에 가슴이 움찔했다.
다시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
“내일 말고 오늘. 지금 칠공자님이 원하시는 게 뭡니까.”
내가 원하는 거……?
마오는 제 손에 들린 창룡도를 내려 살폈다.
‘…….’
이유 없는 희생이 싫다. 끌려다니기 싫다. 당하기만 하는 건 너무 억울하다. 마이신이고, 오공녀고. 이 개자식들 죽도록 패주고 싶을 만큼 밉다.
하지만…….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지금 당장 힘이 없는데…….”
“언제는 있었답니까?”
“야, 이 씨!”
“천하엔 강한 자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럼 그들을 만날 때마다 계속 물러서실 겁니까? 그런다고 뭐가 바뀌던가요. 아뇨. 이건 시작일 뿐입니다. 칠공자님이 벼랑 밑으로 떨어질 때까진 누구도 멈추지 않을 겁니다.”
마오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구구절절 맞는 말. 직접 겪어봤기에 더 크게 느껴진다.
마이신의 뜻대로 고개를 조아렸고, 입을 다물고 살았다.
이게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며 위로했고, 누가 더 다치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하지만 그게 진심이었을까.
천만에.
열불이 터지고, 피눈물이 흘렀다.
마이신은 멈추지 않았고, 장이서도, 월하촌 사람들도 죽을 뻔했다.
그러니까.
“장이서, 이제 나 알겠어. 물러서는 게 능사가 아님을. 진짜 최선은…….”
마오가 결의에 찬 눈으로 칼끝을 척 앞으로 겨누며 말했다.
“오늘 죽더라도 다 내 손으로 작살내는 거야-! 맹원원. 너부터 죽여 주마!”
“쟤, 지금 뭐라는 거니?”
칼 내려.
그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