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95)
첩자의 마교생활-95화(95/350)
95.
#집하촌으로
대략 상상이 간다.
당주인 묘채경은 남의 일이랍시고 대충 몇 명만 보냈을 거다. 하지만 상대는 산왕가의 오군장까지 없앤 실력자 구유.
추적하다가 도리어 당한 게 분명했다.
“아니, 잠깐. 근데 이러면 우리한텐 다행 아니야? 그런 위험한 애들 품었다가 아주 엿 될 뻔했잖아.”
마오가 안도의 숨을 뱉으며 고개를 절절 젓는다.
뭐, 상황이 그렇게 되긴 했다.
솔직히 말해서 장이서 입장에선 비룡당을 죽였든 말든 그리 큰 상관은 없었다.
어쨌든 이곳은 마교.
자신도 언젠간 이들에게 칼을 들이밀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해선 안 될 짓을 벌였다.
‘미혼산은 건들지 말았어야 했다.’
미혼산은 무림인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는 독이었다.
이를 퍼트리는 건 정도인으로서 결단코 용서할 수 없는 일.
‘하나 도대체 왜. 분명 그런 일을 벌일 자들로 보이진 않았거늘.’
그도 직접 본 게 아니고, 보고만 받은 것이니 실제와는 당연히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도살방과 손을 잡은 마적이 구유라니.
“근데 비룡당까지 당할 정도면…… 꼬맹이도 혹시 위험한 거 아니야?”
마오가 생각할수록 걱정이 되는지 근심 어린 표정을 짓는다.
이에 장이서는 장고 끝에 결단을 내렸다.
“찾아가 보죠.”
그들을 직접 만나보기로.
“진짜로?”
그들이 정말 같이 갈 만한 자들인지.
“왜 대답을 안 해!”
아니면 모두의 안녕을 위해 반드시 없애야 하는 자들인지.
“어디로 가는데?! 야! 장이서!”
알아봐야겠다.
* * *
– 섬서성 화산 연화봉
중원의 5대 악산 중 하나인 화산(華山).
그중 서쪽 끝에 오르다 죽은 이가 오른 이보다 많다는 연화봉(蓮花峰).
장이윤. 아니, 선유가 몸담은 화산파(華山派)는 바로 이곳 정상에 있었다.
그가 이곳에 오게 된 건 14년 전.
그의 나이 고작 5살이던 해였다.
‘윤아. 어른들 말씀 꼭 잘 들어야 해. 알았지?’
이제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형.
그와 헤어진 날이었다.
‘형아는?’
‘형은…… 잠깐 어디 갔다가 나중에 윤이 찾으러 올 거야.’
그때는 몰랐다. 왜 형의 표정이 그렇게 슬퍼 보였는지.
그냥 그게 안타까워서 꼭 끌어안아 주었다.
‘언제?’
‘음…… 윤이가 강해졌을 때?’
‘형아보다 더?’
‘앞으로 네가 머물 곳에서 가장 강해졌을 때. 그때 올게.’
‘나 그럼 빨리 강해질래. 그래서 형아랑 같이 살래.’
‘그래. 그렇게 하자.’
‘약속.’
‘약속…….’
그렇게 따스운 바람이 불던 날.
환하게 웃으며 형을 보냈다.
그때 형이 울었던 건 아마도 너무 밝은 제 모습이 더 미안해서였으리라.
“근데 형.”
선유는 정상에 자리한 초라한 가옥 앞에서 고인 눈물을 훔쳐내곤 중얼거렸다.
“그런 약속을 할 거면…… 좀 쉬운 데로 보내주지 그랬어.”
이내 그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어 살피자, 여든이 넘었음에도 눈매가 부리부리한 백발의 도인이 뒷짐 지고 자리해 있었다.
굳건한 태산처럼 느껴지는 화산의 살아 있는 전설.
무림맹주와 함께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정도의 큰 어른.
형과의 약속으로 치자면 범접 불가의 절대 장벽!
신주오절(神州五絶) 서검(西劍) 여중악.
바로 그의 태사부였다.
“이노오오오오옴-!”
여중악의 쩌렁쩌렁한 고함에 산세가 흔들리고, 새들은 푸드득 떼 지어 도망친다.
오늘도 그의 공력이 얼마나 건강한지를 보여주는 일례다.
‘이러다 다 늙어서 형 보겠네.’
선유에게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다.
“감히 네가 화산의 질서를 어지럽히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본래 평소에도 호랑이처럼 엄하기로 유명한 게 여중악이다.
손속에도 자비가 없어 서악(西惡)이라 불리기도 했었다.
오죽하면 장문인이 지금도 그를 보면 쩔쩔맬까.
“……등선할 때까지 속세의 일은 관심 끈다더니.”
하나 선유에게는 이제 이마저도 지긋지긋한 일상이었다.
불려오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네 이노오오오옴!”
까악, 까악. 목청 큰 까마귀가 타산으로 둥지 틀러 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다 떠나면 화산은 누가 지키나.
“정녕 네놈의 잘못을 아직도 모르겠단 말이더냐?”
“예.”
선유는 코웃음 치며 고갤 돌렸다.
당대 장문인은 물론이고, 오절이 봤다면 기절초풍할 일.
하나 남들은 몰라도 둘만 있을 때 선유는 가능했다.
본디 여중악은 쉽게 정을 주는 이도 아닐뿐더러, 제자 보는 눈이 깐깐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여 제 직전제자들인 화산칠진(華山七眞)은 장로가 된 지금도 성에 안 찼다.
한데 선유는 달랐다.
‘네가…… 그걸 어찌 펼친 것이냐?’
‘보고…….’
고작 다섯 살에 불과했던 아이가 자신이 말년에 얻은 검법을 우연히 한 번 봤다고 몸동작을 따라 하고 있던 것.
아무에게도 가르친 적이 없는 미완성의 검법을 말이다.
여중악은 그때 결심했다.
이 아이야말로 자신의 뒤를 이을 화산의 보배라고.
하여 십수 년 동안 제 처소까지 오르내리며 수발을 들게 하였다.
어차피 선유의 사부인 구자기는 20년 전 단전이 부서져 무공을 펼치지 못하는 몸. 명분도 적절했다.
그리고 판단도 옳았다.
선유의 성취는 그 나이 때의 자신마저 넘어설 정도였으니.
문제는.
‘내 깨달음을 온전히 이어받아야 할 놈이……. 하필 내 고집까지 빼닮았구나.’
한번 정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
“선광이는 네 사형이다. 그것도 열 살 터울의 대사형. 한데 하늘과도 같은 형한테 하극상이라니. 내가 널 그리 가르쳤더냐?!”
“사형이 대련하자고 했고, 응해준 것뿐입니다.”
“내 함부로 실력을 드러내지 말라 그리 일렀거늘! 단 일격에 기절시켜놓고 그게 할 말이더냐!”
“태사부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강한 상대를 꺾을 땐 초장에 확실하게…….”
딱! 언제 주워 든 것인지 여중악이 나뭇가지로 선유의 머리를 갈겼다.
때리고 아차 싶었다. 너무 세게 때렸기 때문.
힘주면 톡 하고 부러질 작은 가지지만 여중악이 쥐면 천하의 명검이다.
이마에서 피가 흐른다.
“……하라고요.”
한데도 선유는 무표정 그대로 신음 한 번을 안 뱉었다.
정말 보통 고집 아니다.
“네놈이 하산시켜 달라고 행패 부리는 거란 걸 내 모를 줄 알았더냐?”
“……아시면 허락해 주십시오. 저 형 찾아야 합니다.”
“네 형하고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이 비좁은 봉우리에 갇혀 그럼 어떻게 찾습니까. 나가서 사방천지를 밤새 돌아다녀도 될까 말까인데.”
하, 답답한지고.
“네 형이 약속했다지 않았느냐. 이곳에서 가장 강해지라고. 그럼 알아서 찾아오겠다고 말이다. 그럼 그리될 노력을 할 생각을 해야지!”
“그럼 빨리 좀 가시든지요!”
“가다니. 어딜?”
선유가 책망하듯 검지로 툭! 하늘을 찔렀다.
죽으라는 얘기.
“이, 이런 천인공노할 놈이!”
“그럼 어찌합니까! 등선하시기 전까진 이길 방법이 없는데. 아니, 태사부님을 이길 수 있는 자가 이 땅에 존재하긴 하는 겁니까?”
“크흠…….”
허를 찌르는 선유의 물음에 여중악은 휙 몸을 돌리곤 제 수염을 쓰다듬었다.
저를 이길 존재라…….
이내 진중한 어조로 물었다.
“알고 싶으냐?”
“아니요?”
“천기를 말해주마.”
“아니, 안 궁금…….”
“날 이길 자는 이 땅에 없다.”
쿵! 알고 싶진 않았지만, 실로 충격적인 말.
그 말인즉슨 자신이 천하제일인이란 얘기 아닌가.
“근데 어떻게 이기라고!”
선유가 악에 받쳐 소릴 지른다.
하나 여기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
‘천마도, 련주도. 하물며 오절 중 중리성과 소림의 동승(東僧)만 하더라도 날 이길 순 있겠지.’
하지만.
‘완전히 날 이길 자는 없다.’
천마와 싸우면 아홉 번 질지언정 한 번은 이길 것이고, 련주나 맹주와 싸우면 서너 번은 이길 것이다.
하지만 열 번의 승부를 펼쳤을 때 열 번을 다 이길 존재는 없었다.
굳이 꼽자면 그건 단 한 명…….
여중악의 머릿속에 오래전 마주했던 누군가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정도의 사내였으나 정도를 걷지 아니했던 자.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단전을 폐하고…….”
“시끄럽다! 당장 무림맹으로 가거라.”
“예……?”
“3년간 사문엔 돌아올 생각 말고, 중원을 위해 봉사하거라. 그게 네가 치러야 할 죗값이니.”
여중악의 뜬금없는 명령에 선유는 눈을 토끼처럼 떴다.
그 말인즉슨…… 화산에 적을 둔 채 하산시켜주겠다는 말이 아닌가.
“정말입니까……?”
“장문인과도 이야기 마쳤다. 꼴도 보기 싫으니 지금 당장 떠나거라.”
“딴말하기 없는 겁니다. 갑니다, 정말?”
“물러주랴?”
“아뇨!”
선유가 크게 절을 올리곤 후다닥 달려 나갔다. 그리고 한참 내려가 까마득하게 보일 때쯤 목청껏 외쳤다.
“감사합니다! 태사부님! 정말 감사합니다!”
“흥.”
여중악은 코웃음을 치곤 몸을 돌렸다.
시원섭섭했다.
무려 십몇 년을 함께 했거늘. 저리 좋다고 뛰쳐나가니.
하지만 이해도 됐다.
선유의 나이 열아홉.
강호를 떠돌며 수많은 것을 보고, 느낄 나이.
자신도 저맘때쯤 수많은 경쟁자를 만났고, 함께 성장했었다.
“오늘따라 그대가 자주 생각이 나는군.”
여중악은 저 멀리 까마득한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옛 벗을 그렸다.
이젠 중원에서 영영 지워진 자.
자신이 일평생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유일한 존재.
‘무영(無影)…….’
바로 그의 이름을 말이다.
“강해지거라, 선유. 그리고…… 화산의 검이 되거라.”
화산의 어느 날이었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
마오와 장이서는 엉뚱한 곳에 도착해 있었다.
그것도 연고도 없는 마을 초입에.
“정말 여기 있는 거 맞아?”
“들은 대로라면요.”
“하.”
마오가 머리를 긁적이며 어수선한 주변을 살폈다.
“자, 골라보시오. 세기의 명검이 여기 다 있소이다!”
“시원한 백주 한잔하고 가셔요!”
“진귀한 보물이 담긴 지도가 은자 한 냥!”
아침부터 상인들의 왁자지껄한 소음이 빗발치고, 인파가 물결을 이루는 마을.
온갖 잡동사니가 거르지 않고 다 들어온다는 바로 그곳.
집하촌(集荷村).
바로 불문객잔이 있는 그 마을이었다.
“하여튼 이 꼬맹이 자식 잡히기만 해 봐.”
마오는 괜히 마음에도 없는 성질을 부렸다. 지난밤 맹원원에게 대략적인 이야기는 들었다.
맹휘가 왜 철마적을 쫓아 혼자 이리로 온 것인지.
‘너희랑 같이 있고 싶었대.’
멍청한 자식. 그럼 그렇다고 그냥 말을 하면 되지. 쓸데없이 여긴 왜 오나. 차라리 가출을 하든가.
마오가 속으로 괜스레 푸념을 늘어놓았다. 물론 억지인 건 안다. 그게 됐으면 애초에 왜 맹가에서 벗어나고 싶었겠는가.
자신이 버려진 삶이라면, 그는 새장에 갇힌 삶이다.
“이제 어디로 가면 돼. 빨리 찾아보고 가자. 졸려 죽겠어.”
마오가 귀찮아하는 말과는 다르게 콧김을 뿜고 의지를 불태웠다. 이에 장이서는 보이지 않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걱정되는 모양이구나. 나쁘지 않은 감정이다.’
누군가를 아낀다는 건, 그만큼 정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니.
장이서가 웃음을 짓고는 성큼성큼 걸어 나가자, 마오도 이를 뒤따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곳은 안팎으로 새장 속에 비둘기가 가득한 곳이었다.
구사방(鳩舍房 – 전서구를 기르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