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99)
첩자의 마교생활-99화(99/350)
99.
#비룡당주의 음모 (1)
툭. 새처럼 바닥에 내려선 묘채경은 과평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서슬 퍼런 살기를 쏘아내며 장이서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지척에 다다라 또박또박 이렇게 말했다.
“장, 이, 서.”
지독한 악연의 연장선이다.
*
비룡당주 만리신조 묘채경.
그녀와의 악연은 오래전 장이서가 방첩대 조장이었을 무렵, 그러니까 비룡당 부당주였던 환익을 첩자로 도라옥에 처넣으면서 시작되었다.
정확히는 그의 조카가 환익의 집에서 기밀 문건을 훔쳐 넘긴 혐의로 방첩대에 붙잡혀 오면서부터였다.
‘내 조카는 어디에 있느냐! 당장 풀어주지 못할까! 이것들이 내가 누군 줄 알고-!’
환익은 다짜고짜 방첩대를 찾아와 제 조카를 풀어달라며 온갖 행패를 부렸고, 하필 그 자리엔 장이서가 있었다.
그 후로는 알려진 대로였다.
장이서는 전력을 발휘해 환익의 뒤를 밟았고, 조카는 사실상 표면일 뿐. 실상 모든 걸 꾸민 건 그였음을 만천하에 밝혀버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조카를 이용해 일부러 정보를 훔치도록 흘렸던 것. 제 조카가 실수로 저지른 만행으로 덮으려 했던 것이었다.
그 일로 환익은 도라옥에 갇혔고, 장이서는 그의 모든 재산을 압수해 절반을 죽은 대원의 가족에게 넘겨주었다.
사건은 그렇게 종결됐다.
하지만.
‘감히 방첩대 조장 따위가 비룡당을 건드려? 호호호호. 이런 수모가 다 있나.’
첩자를 양성하고 관리하는 비룡당의 역사에 큰 흠이 생겨버린 것.
그 덕에 장이서는 비룡당주 묘채경의 머릿속에 이름 석 자를 각인시켰다.
언제고 잡아 처넣어야 할 불구대천의 이름으로.
“호호호호! 복수의 날이 오늘이 될 줄이야. 드디어 너를 내 손으로 도라옥에 잡아 처넣을 수 있게 되었구나.”
“……오랜만입니다, 당주.”
“오랜만입니다, 당주?! 지금 내게 감히 그딴 식으로 말을 한 것이냐? 네깟 게?!”
우우우웅!
묘채경의 새하얀 털옷이 펄럭였다. 피부가 베일 듯한 엄청난 내력.
확실히 고수다. 왕우보다도 한 수 위!
“당주를 당주라 부르지, 무어라 부르겠습니까. 알겠지만 이젠 나도 그냥 삼조장은 아니라서.”
발칙한! 파파파팟! 묘채경이 손을 휘젓자 장이서 주변에 새하얀 깃털 수십 개가 땅바닥을 뚫고 꽂혔다. 단단한 돌바닥임을 감안하면 얼마나 첨예한지 짐작이 간다.
하나 그중 장이서의 몸에 박힌 건 단 하나도 없었다.
과거였다면 작살을 내놨겠지만, 이젠 확실히 급이 달라졌다는 것.
잔챙이가 아니라 잘못 건드리면 세게 물릴 대어라는 얘기다.
“호호호! 좋다. 주제에 보좌가 되었다지?”
묘채경이 노기를 드러내며 웃음을 지었다. 실로 마귀가 따로 없는 모습.
“당주께서 환익 그 첩자 새끼를 고작 1년 만에 도라옥에서 석방해 주는 걸 보곤 권력이 답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한번 올라와 봤는데. 와서 보니 나쁘진 않군요.”
“호호호호, 아니지. 그게 아니지 않으냐. 넌 그냥 첩자인 것이다. 본교로 숨어 들어온 비열하고 간악한 벌레 새끼일 뿐이지. 위에서 명을 받았으니 보좌가 된 것이고.”
“무슨…….”
“왜. 똑같이 당해 보니 억울한 것이냐? 호호호! 그러게, 너도 상대를 보고 건드리지 그랬느냐.”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정확해서.
“서로 공사가 바쁘니 헛소리는 이쯤 하시지요.”
“허, 헛소리?!”
“인근에 계셨던 거면 이미 아실 텐데요. 내가 여기 혼자 온 게 아니라는 거.”
묘채경의 미간이 와락 찌푸려진다. 그래, 알고 있다. 칠공자와 함께 왔다는 것을. 첩자니, 뭐니 몰아세운 건 그저 화풀이.
장이서가 의뭉스러운 시선으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당주께서 이곳에 오신 이유가 뭡니까.”
“왜겠느냐? 네놈이 호룡당에 맡긴 일 때문이지.”
“철마적 때문입니까?”
“그렇다. 그러니 저놈은 우리에게 넘기고 너는 그만 꺼지거라. 당장 잡아 처넣기 전에.”
그녀가 고갯짓하자 수하들이 한 걸음씩 다가온다.
비켜주지 않을 이유가 없는 일.
장이서는 걸음을 한 보 떼었다.
한데 왜일까.
그 순간 속이 알싸하고, 기분이 묘했다.
‘나는 이자가 철마적이라고 말한 적이 없는데……?’
이내 슥 고개를 돌려 묘채경을 살폈다.
그리고 보았다.
표정에서 보이는 미묘한 떨림을.
‘또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냐.’
장이서는 작금의 상황을 재해석했다.
‘묘채경은 이자가 철마적인 걸 알고 있다. 지대호의 요청에 꽤 긴 시간을 추적해 왔을 테니 그럴 수도 있다. 한데 왜 이제 와서……. 잡을 거면 불문객잔에서 잡는 게 더 쉬웠을 텐데?’
장이서가 주변을 다시 훑었다. 드러내진 않지만, 모두의 눈에 힘이 없고 입술은 말라 있다.
이는 심히 불안하다는 징조.
게다가 최정예답지 않게 걸음걸이가 느슨하고, 손에는 주저함이 있다.
그 말인즉슨.
‘이자를 잡을 마음이 없다?’
왜.
당연히 한 패일 리는 없고. 그럼 일부러 놔주겠다는 것인가.
풀어줘서 뭘 얻어내려고.
설마.
‘철마적의 근거지를 찾아내겠다는 건가?’
충분히 일리 있는 일.
한데…….
“뭣 하는 것이냐? 어서 꺼지지 않고.”
소리치는 비룡당주 묘채경.
장이서는 그녀를 보니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비룡당주는 한가한 자가 아니야. 웬만한 일이 아니면 직접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처럼 부러 실패해야 하는 임무라면 더더욱. 한데 최정예들을 이끌고 직접 이곳에 와 있다.’
그 말은 곧 이번 임무가 직접 나서야 할 만큼 중대하다는 얘기.
왜.
‘설마 맹휘가 납치된 걸 알고 있는 건가?’
장이서의 눈매가 좁혀졌다.
그녀의 단화와 옷에 먼지가 가득하다. 평소 그리 백색을 좋아하고 깔끔한 걸 선호하는 그녀답지 않은 모습.
이는 하루 이틀 된 모습이 아니다.
엿새 전에도 이미 이곳에 있었을 수 있다는 얘기.
그렇다면…….
‘어째서 구하지 않은 거지? 아니, 왜 육공자가 납치된 사실이 아직도 본산에 알려지지 않은 거냐. 엿새나 지났는데.’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다. 등골이 서늘했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대부분 제 예감이 맞아떨어졌다.
‘묘채경은 전형적인 마교의 마인. 누구보다 비정하고, 제 목표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다. 더구나 맹가와 당주의 사이는 견원지간.’
만일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면.
먼저 맹휘의 납치를 방관하고 근거지를 찾으려 했던 것이라면.
그러다 사해(死海)까지 가서 놓쳐버린 것이라면……?
그럼…….
[눈치챘구나?]“……!”
바로 그때 장이서의 생각을 챙그랑 깨부수는 섬찟한 전음이 귓가에 파고들었다.
묘채경.
그녀가 차갑게 식은 얼굴로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너는 늘 알지 말아야 할 걸 아는구나. 그게 네 명을 재촉하는 줄도 모르고.]빌어먹을. 장이서가 입술을 질끈 물었다.
너무 성급했다. 상대는 비룡당주 묘채경. 온갖 권모술수의 달인. 자신이 그녀의 표정을 읽었듯, 그녀도 자신을 읽을 수 있음을 자각했어야 했다. 생각을 멈췄어야 했다.
“다들 잘 들어라! 3급귀 보좌 장이서는 허가서도 없이 교외로 나온 것도 모자라 뻔뻔하게도 철마적과 내통을 하였다.”
이런 미친!
비룡당주의 말 같지도 않은 선포에 장이서는 기함했다.
이건 멀쩡히 있던 과평도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
“누가 누구랑 한편이라는 거냐! 이 새대가리 같은 년…… 큭!”
푹! 과평이 홧김에 나서려는 순간 그의 손등에 깃털 하나가 꽂혔다. 피가 뚝뚝 떨어진다. 그만큼 그녀의 성취가 높다는 것.
“비룡당주인 내가 그리 결론을 내렸다. 그럼 그냥 그런 것이다. 알겠느냐?”
뭐 이런 정신 나간 인간이 다 있는가. 과평은 경악했다.
하지만 이런 광종들이 넘쳐나는 곳이 바로 마교다.
「어이,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거냐.」
과평이 장이서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이에 장이서는 표정으로 답했다. 아주 x된 상황.
“너희는 한 패였으나 작은 욕심에 내분이 일었고, 이곳에서 싸우다 죽은 것이다. 호호호호!”
진심이구나. 그녀가 지금 비룡당의 실책을 덮기 위해 자신을 죽이려 들고 있다.
“당주. 지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요?”
“어차피 안 되는 말도 되게 만드는 게 내 일이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이만 죽거라. 염라가 왜 왔냐고 묻거든 네놈의 쓸데없이 굴러가는 머리 때문이라 말하고.”
묘채경이 올라간 입꼬리를 슥 내리곤 수하들에게 고갯짓했다.
그러자 스스슥! 무사들이 아까와 달리 섬뜩한 살기를 뿜으며 다가온다.
그야말로 사방이 포위된 상태.
이에 서로 뒷걸음질 치던 과평과 장이서가 서로 등을 맞대는 기괴한 상황이 펼쳐졌다.
「크큭, 저자들 모두 너와 같은 편 아니었나?」
「세상엔 내 편보다 늘 남의 편이 더 많더라.」
이 와중에 농담이 나오나. 과평은 장이서의 반응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장이서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묻자.」
갑자기 같은 처지가 된 것에 동병상련이 인 것일까. 과평은 최대한 악의 없이 답했다.
「뭐냐.」
「너희가 데려간 그 꼬마. 아직 살아 있는 거냐?」
「누명까지 쓰고도 그 꼬마가 걱정되는 거냐?」
「시간 없다. 묻는 말에나 답해라.」
‘이 새끼…….’
과평은 새삼 장이서가 다시 보였다. 꽤 의로운 자가 아닌가.
「……우릴 뭐로 보는 것이냐! 우린 여인과 애새끼는 죽이지 않는다.」
「진짜냐?」
과평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팔아버릴 뿐이지.」
근데 이 새끼가……. 장이서가 서늘하게 노려보자 과평이 당황하며 해명했다.
「진정해라! 아직은 무사할 거다. 노예시장이 열리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후, 불행 중 다행. 장이서가 안도의 숨을 뱉으며 더 가까워진 비룡당 무사들을 살핀 뒤 다급히 물었다.
「시간은 얼마나 남았지?」
「대충…… 사나흘?」
「이런, 미친! 본거지가 사해라며.」
장이서가 경악을 토했다. 사나흘이면 북로인 이곳에서 사해라 불리는 남로의 사막까지는 내내 달려도 도착할지 미지수였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얘기.
게다가 노예로 팔려 간다는 건 서역으로 끌려간다는 것이고, 그럼 영영 돌아오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그냥 맹휘는 평생 생판 모르는 땅에서 노역만 하다가 죽게 될 거라는 얘기.
‘아무리 마교의 후계라 하나 이제 겨우 열다섯 나이. 더군다나 조금이나마 인간답게 살고 싶어 하는 그 아이를 이렇게 보낼 순 없다.’
장이서가 입술을 질끈 물었다.
안 봤다면 모를까, 한동안 어울리며 맹휘의 아픔과 바람을 보았다.
그걸 보고도 외면한다면 어찌 정도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어느새 다섯 걸음 앞까지 포위망을 좁혀 온 비룡당 무사들.
장이서가 결단을 내렸다.
남은 방법은 하나다.
‘묘채경. 오늘은 네 뜻대로 해주지.’
「살고 싶나?」
장이서가 다급한 어조로 과평에게 물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그럼 죽고 싶은 놈도 있냐?」
아니라면 다행이고.
「보다시피 상황이 이렇게 됐다. 내가 바라는 건 사라진 소년의 안위뿐. 날 데려가 주면 널 빼내 주겠다.」
「그걸 믿으라고……?」
「안 믿으면 죽어야지.」
어느새 비룡당의 서슬 퍼런 검들이 지척까지 다가섰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