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0)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0화(10/212)
010
진성은 허겁지겁 주변을 둘러보았다.
많은 정보가 뒤섞이고 잊히기 전에 정리부터 해야 한다.
‘일단 돌아갈 수 있는 방법부터 보자면-. 결국 세 가지라는 거지.‘
진성은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고 급히 흙바닥에 써내려 갔다.
진성 자신 외에 던전앤파이터 세계관에 빙의된 자들에게 부여된 임무.
1. 연단된 칼날이 되는 것
진성은 딱 잘라 말할 수 있었다.
‘말이 안 된다. 아직 던전앤파이터 게임 안에서도 스토리가 끝나지 않았어. 대~략적인 흐름은 정해져 있고…… 대립 관계를 비롯해서 상당 부분이 밝혀진 데다-. 뭐, 나도 나름대로 스토리에 몰입했던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 예측 가는 부분도 있다지만…….’
연단된 칼날이 된다는 것은 사실상 모든 사도를 상대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게임 던전앤파이터 메인 시나리오의 중심이라 봐도 과언이 아닌 존재들, 사도.
창조신의 ‘악惡한 부분’에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들이 지닌 힘과 능력 또한 능히 그러한 수준에 다다른 강대한 존재이자 적이다.
그들 개별 개체 중 하나만 상대하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건만 하물며 그 모든 사도들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진성은 마른침을 삼키며 주섬주섬 카드를 꺼내어 들었다.
‘그래, 아마 그래서…… 이 사람도 중간부터 목표를 바꿨을 거야.’
굴 구위시 카드와 함께 딸려 나온 것은 네메르가 진성 자신에게 주었던 일종의 ‘참고 자료’라고 할 수 있을 터.
딱딱한 종이 질감으로 마치 카드처럼 형상화된 그 안에는 진성 자신과 함께 했던 유저의 지난 행적이 적혀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그가 [오염]에서부터 [정화]한 몬스터들의 목록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결국 진성 자신이 돌아갈 수 있는 두 번째 방법과 관련된 일이었다.
2. 정체가 불분명한 오염의 원인자를 찾아내는 것
‘네메르를 다시 만나는 순간이 올 때까지 그 레인저 유저도 기다렸겠지. 하염없이. 온 지 5년이나 됐다는 건 그런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어. 연단된 칼날이 되어서-. 사도를 다 죽일 수 없다는 건 진작 인지한 상태에서 결국 자포자기에 가까운 마음……혹시 다른 방법이 있지는 않을지, 아마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네메르의 발언으로 보아 <오염의 원인자>가 개입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일 것이다. 그로 인해 레인저 유저의 앞에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그 유저는 네메르에게 <오염의 원인자>를 찾아내기만 해도 집으로 돌려보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을까? 그리고 기뻐했을까?
곧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고통을 참아가며 이겨냈을까?
진성은 네메르가 남겨 준 카드를 보고 있었다.
남성 레인저 유저가 얼마나 많은 던전, 외전 던전에 모험 던전 따위를 돌았는지!
진성은 씁쓸함에 입술을 물었다.
‘근데……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거였을 텐데.’
그 정도로 ‘약한 던전’에 <오염의 원인자>가 숨어있을 리가 없지 않을까.
눈길이 가지 않는 곳에 숨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렇게 약한 곳에서 결국 힘을 드러내었다면 네메르가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직접 나타나 해치워버렸을 테니까.
‘하지만 네메르조차 아직 찾지 못했다는 건 오염시킬 수 있는, 어떤 그런 힘을 적절히 섞어 숨기고 있다는 뜻. 그러기 위한 조건은 결국 하나다.’
사도 또는 사도급.
꿀꺽.
‘일단 여기까지는 인정해야 할 거다.’
진성은 새삼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프레이-이시스 레이드를 마지막으로 사망했던 유저.
아니, ‘모험가’.
‘5년이야, 5년! 장비가 영 후지긴 했다지만 레벨도 95였다고! 근데 그런 사람도…….’
<오염의 원인자>에 대해선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사망한 것인가.
그저 오염된 몬스터, 그 수가 많다지만 레벨이나 수준이 턱없이 낮은 몬스터들만을 죽이다 이곳, 아라드에서 사망해버렸다는 이야기인가!
“빌어먹을…… 젠장…….”
진성은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네메르가 준 목록에 있는 오염된 몬스터의 이름이 몇 개나 중복되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기에.
차마 위로 향하지 못하고, 결국 복권을 긁는 마음으로 이 중에 <오염의 원인자>가 있기를 바라며 같은 던전을 반복했을 그의 상황이 이제는 머릿속에 실감 나게 그려졌기에.
‘그렇다면 내가 취해야 할 방법은…… 세 번째다. 어떤 의미로 제일 안전할지도 모르는 방법이기도 한 게 바로-.’
3. 부집게가 되는 것
즉, 진성 자신이 알고 있는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시나리오가 그대로 흐르도록 조정하는 것.
컴퓨터를 통해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하고 있을, 결국 ‘캐릭터 모험가’들을 조종하며 향후 ‘진정한 모험가’이자 ‘연단할 칼날’의 후보가 될 만한 사람들을 찾기 위한 일종의 시험을 방해하는 요소를 없애, 유저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어차피 모든 걸 바로잡을 필요도 없잖아? 연단된 칼날, 모험가들을 위한 시나리오만 붙잡아준다면……. 세세한 것은-.’
네메르가 단서도 주었다.
그녀가 직접 개입할 수 없는 건 이곳의 차원, 결국 이 플레인의 시공간 관리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관리자들, 타임 로드들에 대해서라면…… 게임 내에서도 몇 번이나 들었다.’
세세한 부분은 타임 로드들이 조율해 줄 것이다, 라는 멘트는 던전앤파이터 게임의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면서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진성 자신도 그것에 의지하여 움직일 수 있지 않을지.
‘네메르의 의도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 일을 그대로 따라서는 안 되겠지만-.’
네메르가 누구인가.
진성 자신이 알고 있는 기억에 따르자면, 무작정 믿고 의지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어쩌면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존재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현시점에서 진성 자신에게 선택권은 없다.
적어도 당분간은, 지금은, 따라야만 한다면.
“좋아…….”
진성은 물끄러미 바닥에 정리된 메모를 살폈다.
그러곤 곧 발로 스윽, 스윽 문질러 모든 글을 지웠다.
가벼운 동작이었다.
“내가 부집게가 되어주겠어.”
그러나 그의 목소리만큼은 묵직했다.
진성의 두 눈이 빛났다.
“부집게? 대장장이라도 꿈꾸는가?”
“우와아앗!?”
그런 진성의 곁에서 갑작스레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본 진성은 곧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보았다.
턱수염이 수북하게 난 중년의 남성.
어떤 의미로는 세리아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마주하여 상호작용을 하는 NPC이자, 지역:엘븐가드의 터줏대감이자 대장장이.
“라, 라이너스……!”
NPC로만 만나보았던 라이너스가 진성의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 * *
라이너스는 놀란 눈으로 턱을 긁으며 멋쩍게 웃었다.
“허헛, 내 이름을 알고 있나? 아니, 그보다 젊은 모험가에게 이름으로만 불리기에는 내 기분이 조금-.”
“아, 라, 라이너스 님. 예, 라이너스 님. 저기, 그, 평소 존경하는 분이라 알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신기한 점이라면 그토록이나 오래 플레이했던 던전앤파이터 게임 내에서 들을 수 없는 대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호오, 하긴, 나도 과거에는 제법 알아주는 검사였으니까. 껄껄, 그렇다면 무례를 용서하도록 하지.”
그리고 그와 실시간으로 말을 주고받고 있다는 점일까?
라이너스는 호탕하게 웃은 후 진성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부집게라니? 망가진 걸 고치려 해도 도구가 없을 텐데. 장비가 망가져서 그런 거라면 내게 맡기게.”
망치를 휙, 공중으로 던져 붙잡으며 그는 턱짓했다.
그가 턱으로 가리킨 방향에서 진성은 보았다.
2단으로 쌓인 가열로와 그 옆에 놓인 큼지막한 모루가 그곳에 있었다.
‘진짜 던파 처음 할 때 여기를 얼마나-. 그래, 옛날에는 무기 고치려고 일일이 들른 적도 있었다고! 어둠의 선더랜드 던전 하나 도는데 20분, 30분씩 걸리던 그 시절에 라이너스한테 얼마나 신세를 졌는지!’
옛 생각이 들어 찡한 마음은 자연스레 진성의 입을 통해 표현되었다.
“우와아, 진심……감동이네요.”
“허허, 그렇게까지 감동할 정도는 아닌데, 물론 내가 과거엔 검사였다 해도 이미 대장장이로서 진심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진성이 감동한 점과 라이너스가 이해한 바는 조금쯤 어긋나 있었지만, 그것을 굳이 바로잡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요즘은 그냥 길드 아지트 갈 때나 스쳐 지나가는 정도인가? 눈여겨서 본 적도 없었는데.’
모니터 화면으로 볼 때는 더 이상 오브젝트로조차 인지되지 않던 것.
그것을 현실의 크기로, 진성 자신의 눈앞에서, 심지어 가열로의 불길이 내뿜는 열기까지 후끈하게 와닿으며 느꼈을 때 가질 수 있는 실감은 가히 비교도 할 수 없는 점이리라.
“그래서 부집게는-.”
“아, 부집게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장비를 특별히 고칠 것도- 오오오!?”
진성은 손사래를 치며 라이너스의 말을 끊으려 했다.
그러다 불현듯, 뒤늦게, 다시금 보게 되었다.
“뭐, 뭐야, 어라? 그러고 보니 팔-.”
“허허, 그래서 물어본 거네. 자네의 그 귀수……처럼 생겼으나 귀수와 미묘하게 다른 팔도 그렇고. 꽤 강해 보이는 것이 영락없는 모험가처럼 보여서 말이지.”
진성 자신의 육체는 여전히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외전’ 캐릭터, 다크나이트라는 것을!
나뭇가지를 쥐고 흙바닥에 생각을 정리할 때에도 심지어 조금 전까지도 몰랐다니!
진성은 라이너스의 대장간 입구 근처를 향해 후다닥 달려갔다.
“진짜…… 또?”
그곳에 걸린 거울을 보며 진성은 경악했다.
‘네메르 만났을 때 이 얘기부터 했어야 했나!? 아니, 그때 그 사람은 레인저였잖아!‘
생각해놓은 건 많았다.
어떤 직업군이 진성 자신이 해야 할 일에 가장 합당할지.
진성 자신에게는 말 그대로 ‘현실’인 이 세계, 아라드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직업이 제일 나을지.
당연히 그 기반이 되는 것은 해당 직업군만이 쓸 수 있는 스킬의 구성 때문이었건만!
‘게임에서는 괜찮지. 고점만 따지면 웬만한 캐릭터들보다 훨씬 나은 면도 있어. 하지만-.’
말 그대로 ‘고점’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때에나 좋은 것이다.
즉, 최고 수준의 세팅이 갖춰지기 전의 다크나이트는 사실상 최고 난이도 수준의 운영 패턴을 지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것!
던전앤파이터 배경 설정상 [가장 완벽한 귀검사].
‘바로 그 [가장 완벽한 귀검사]를 ‘웃음벨’로 써버리는 밈이 있을 정도이니…….’
저레벨 단계, 아이템이 갖춰지지 않은 단계에서, 그것도 진성 자신에게는 ‘현실’인 이곳에서 어떻게 운신해야 할지.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던 진성은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았다.
‘음? 근데……. 다른데? 일단 헤어스타일부터가 좀 달라.’
자신이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다크나이트와 완전히 같은 외형은 아니라는 것을.
매끈한 헤어스타일의 다크나이트에 비한다면 어쩐지 비죽비죽 뻗쳐 있는 자신의 머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아니, 머리야……그래 일단 그렇다 치자고. 근데 그 외에도 제법 다르다.’
다크나이트의 외형적 특징 두 개 중 하나, 즉, 양쪽 팔의 검게 변한 흔적이 진성의 기억보다 더욱 길게 나 있다는 것.
또한 귀수 구속구, 귀박궤가 양팔 동일한 위치에 각각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더 진성을 신경쓰이게 하는 게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눈이었다.
캐릭터 다크나이트가 지닌 또 하나의 특징, 소위 ‘역안黒白目’이라 표현할 수 있는 눈.
눈의 흰자위가 검게 물들어 있으며, 검은자위는 노란색으로 된 눈이 다크나이트의 가장 도드라진 차별점이 아닌가.
‘내 눈은……그냥 일반 눈이군. 흰자위, 검은 동공. 머리도 그렇고 눈, 팔까지 이렇게 다르면 금세 티가 나지 않나?’
그러나 지금 진성은 그렇게까지 깊게 고민할 여유도 없었다.
외형이 어찌 되었든 진성 자신의 육신이 완전히 확정되어 버렸다는 게 중요할 뿐이다.
다크나이트의 특징을, 현실로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보자면 탄탄하고 비율 좋은 근육질의 몸매가 눈에도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하아아…….”
“젊은 모험가가 벌써부터 한숨을 쉬면 되나?”
“아뇨, 모험가도 엄밀히 따지면 아니긴 한데요…… 그쵸, 어차피 뭐, 되돌릴 수도 없는 거 최선을 다해야죠.”
진성은 한숨을 내쉬며 자포자기하듯 말했다.
그 와중에도 떠오르는 점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이시스 레이드 뛰러갔을 때…… 내가 이곳에 불려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접속했던 캐릭터가-.’
다크나이트였다는 것.
설마 최종 접속 캐릭터를 기준으로 이렇게 빙의를 시켜주는 것이었을까.
‘쩝, 그럼 ‘진성븝미쟝’이 마지막 접속이었다면……?’
진성은 어쩐지 찌릿한 기분이 들었다.
라이너스는 그런 진성의 표정 변화를 바라보다 웃음을 터뜨렸다.
“껄껄, 싱거운 친구로군. 그래, 그럼 앞으로 더욱 정진하고. 장비 수리가 필요하면 언제든 나를 찾아오게.”
“아, 저기, 라이너스 님!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대장간을 향해 몸을 돌린 라이너스를 진성은 황급히 붙잡았다.
“음? 무슨 부탁?”
그러곤 말했다.
이곳에 엘븐가드라면.
그리고 진성 자신이 만약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일반적인 유저들과 비슷한 길을 가야만 한다면.
“통행증……하나만 써주실 수 있을까요?”
다음 파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통행증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시나리오 퀘스트였다면 세리아와 ‘모험가’에게 라이너스가 통행증을 작성해주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경비병을 통과하게 되는 것.
진성은 그냥 게임처럼 생각하고 쉽게 말했다.
그러나 잘 알아야만 했다.
분명 게임 던전앤파이터였다면 퀘스트 문구조차 제대로 읽지 않고 넘어가는 사람이 많겠으나 이곳은 게임이 아니다.
적어도 진성에게는, 현실이다.
“……자네의 눈빛이 마음에 들긴 하지만 통행증이라는 건 내 이름으로 신분을 보증한다는 건데.”
라이너스의 목소리가 바뀌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