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00)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00화(100/212)
100
천계 지벤 황국의 섭정, 네빌로 유르겐은 양팔을 펼치며 기뻐했다.
“훌륭히 카르텔을 물리쳤다 들었네. 자네들이 없었다면 겐트가 놈들의 손에 넘어갔을 터. 참으로 큰일을 해내었네.”
풍전등화의 황도를 지켜낸 영웅들을 마주하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정작 황도 수비대장 젤딘은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 쑥스러워하며 답했다.
“제국군과 모험가님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그렇지. 아랫세계에서 천계를 도와주러 오신 여러분의 도움이 참으로 컸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실제로 정규군인 그들보다 아라드에서 올라온 자들의 활약이 더욱 컸기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일까.
곁에 있던 비비는 ‘그래도 여러분들이 없었으면 안 됐을 거예요.’라며 중얼거렸으나 그녀보다 큰 목소리를 내는 자는 따로 있었다.
“아무리 하늘 위에서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전쟁은 끝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신 저희 폐하의 명으로 온 것뿐입니다.”
반 발슈테트.
그는 평소와 다른 무거운 목소리로 고했다.
그럴 만한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적을 물리쳤을 뿐, 완전히 전쟁을 끝낸 것은 아니지요. 이젠 천계와 동맹이 되었으니 다시 공을 세우겠습니다.”
마침내 천계의 지벤 황국과 아라드의 데 로스 제국의 동맹이 체결되었으니까.
비비는 그 말을 들으며 아, 하는 신음을 내었으나 그뿐이었다.
‘진상 님이 말한 대로네. 역시. 하지만…… 그래도 뭔가 숨기는 게 있어.’
이미 진성에게 들은 말에 두 번 이상 놀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그녀가 아, 하는 신음을 내었던 건 이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진성이 이러한 논공행상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어차피 알 사람 다 아니까 굳이 내가 갈 필요가 없다, 라고 말했지만…… 그럴 리가. 모험가라면! 모험가라면 당연히 끼어들어야지. 어떻게든 얼굴을 비추고! 그래야 정상 아닌가?’
비비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으나 어찌 되었든 진성은 이 자리에 끼어들지 않았다.
비비 한 사람만 보낸 채, 처음 대화를 나눴던 황도의 뒷골목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한 게 전부라니?
비비는 진성이 어제 답해준 것에 대해 생각했다.
* * *
진성 또한 마찬가지였다.
[크크크……. 모험가라. 그렇게 낭만적인 이름으로 불리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진성.]“……그러게 말이야. 눈치가 없는 거지 바보는 아니었는데.”
모험가의 타임라인이 다르다는 점에 대해서도 주지시켰다.
그것을 그새 이해할 정도로 똑똑한 비비였으므로 그녀가 그러한 의심을 다시 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비비가 진성 자신에게 ‘모험가가 아니라 다른 존재 아니냐’라는 의문을 갖게 된 이유라면 결국 하나였다.
‘이런 표현은 부끄럽지만 내가 너무…… 너무-.’
잘했다는 것.
아라드에 빙의된 모험가라면, 기존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유저 중에서도 특정 분야의 최고 실력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저러한 경험이야 당연히 많을 터, 그러한 비비가 보기에도 진성 자신의 솜씨가, 실력이 너무나 뛰어났기에 결국 의심을 산 것이 아니겠는가.
[말해주지 않을 건가. 네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비비 씨한테 말해서 뭐 하겠어. 크흠, 그리고 흑구 너도 어차피 다 모르잖아? 내가 뭘 하는 사람이고, 뭘 하려는지.”
[클클, 나를 그런 하등한 존재의 두뇌와 비교하려는가, 진성.]흑구의 목소리는 진성의 머릿속에서 낮게 울려퍼졌다.
확신에 찬 말투만으로도 어쩐지 진성을 움찔하게 만든다고 해야 할까.
‘하긴, 원래 차원의 균열 속에 있던 디레지에랑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내가 그동안 뭘 하는지, 사실상 나랑 24시간 내내 붙어 다니며 지켜봤을 테니…….’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는 정도를 넘어섰다고 볼 수도 있다.
최종 목적에 대해서야 알 수 없겠으나 당장 진성 자신이 어떤 일을 찾아서, 어떻게 해결하려 하는지에 대해 이미 눈치를 챘다고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진성은 슬쩍 주제를 바꾸었다.
“그 하등한 존재가 잘~하면 너한테 새로운 육체를 만들어줄 수 있는데도?”
[그, 그건- 그…….]“흐흐, 그때 들었지? 아주 높은 확률로 가능하다던데. 내가 비비 씨한테 얘기 안 하면 끝이야, 끝. 잘하라고.”
[잘하라니! 무엇을- 내가 누구에게, 나 검은 질병의-.]“아아, 알았고.“
[-……망할 인간.]진성은 흑구의 말을 끊었다.
흑구에 대해서만 신경 쓸 수 없다.
비비에 대해서만 신경 쓰고 있을 수도 없다.
진성이 주머니를 뒤적거려 꺼낸 또 한 장의 카드가 지금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상태였으니까.
[메카닉 지젤(오염)]‘메카닉 지젤이라.’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진성에게는 찝찝함이 남을 수밖에 없는 카드였다.
‘메카닉 지젤은 지젤이 탑승했던 기동 병기의 이름이야. 그것이 오염되었다는 말도 뭐, 틀린 건 아니지. 타임 리셋 패턴의 존재도 그렇고, 타임러너를 소환하는 건 결국 메카닉 지젤의 상단에 붙어있던 시계 모양 기계장치들의 힘이라고 할 수 있으니…….’
빙의된 세계는 아라드이지만, 그 아라드가 어떤 아라드인가?
진성 자신이 빙의되기 직전까지 즐겼던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최신 패치 버전’이라면, 과거 패치로 인하여 삭제되었던 패턴을 사용한 ‘메카닉 지젤’은 분명 오염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성이 의문과 의심을 품은 사항은 지젤이 어떻게 ‘시간과 관계된 공학’을 배웠고, 그것을 실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발전시켰는지다.
‘멜빈 리히터가 들어오기 전까지 세븐 샤즈의 수석 과학자……였다곤 하지만…….’
그 시절의 지젤이 무엇을, 어떻게 연구했는지에 대한 배경 설정은 특별히 존재하지 않는바.
그렇다면 차라리 [지젤 로건(오염)] 등의 카드가 나와줬어야 하는 게 아닐까.
‘쩝, 결국 지젤과는 이래저래 악연으로 얽힐 수밖에 없다는 뜻이겠군. 인게임에서도 난리였는데 여기까지 와서, 으으, 싫다.’
오염의 증거를 확보했으나 그것이 ‘미래에 나타날 또 다른 오염의 가능성’까지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성의 머릿속은 복잡한 상태였다.
‘그나마 이거라도 건진 게 불행 중 다행인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막막함 속에서도 진성이 기죽지 않을 수 있는 건 이유가 있었다.
어떤 의미로는 비비가 자신의 가치를 진성에게 증명하기 위해 지난 밤사이 노력했던 결과이기도 했다.
이것은 육중하고 긴 대검과 같으나 단순한 검이 아니다.
키이이이이──────ㅇ!
가동하자마자 매섭게 돌아가는 톱날의 굉음.
“괜찮죠? 그쵸? 내가 쓸모 있다고 했죠?”
“아잇, 까, 깜짝이야! 비비 씨, 언제 왔어요?”
“지금요. 그보다! <메카닉 지젤의 전기톱>도 아마 진상 님이 기억하는 그거랑 완~전히 다를 거라니까요. 어제 그거 떼어내다가 개조하고 고치느라 몇 시간을 썼는데! 어땠어요? 베어봤어요? 바위 같은 것도 막 무처럼 숭덩숭덩 잘라지는-.”
“아직 안 써봤습니다.”
진성이 한숨을 내쉬며 다시 가동을 정지시킨 무기.
그것은 지젤이 탑승하고 있던 기동 병기, 메카닉 지젤로부터 떼어낸 전기톱으로 만든 아이템이었다.
<메카닉 지젤의 전기톱>
모험가 명성 133
물리 공격력 864
마법 공격력 648
독립 공격력 428
힘 51
.
.
피해 증가 1168
물리 크리티컬 히트 +7%
스킬 공격력 19% 증가
근접 공격 시 3% 확률로 1초동안 적을 출혈 상태로 만들어 0.5초당 1x의 공격력으로 피해를 줍니다.
기본 사용 레벨은 65, 진성에게 적용되는 <패왕의 계약>으로 레벨 55부터 사용할 수 있는 무기.
당연히 레벨 60의 진성에게는 사실상 딱 들어맞는 무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잉? 안 써보셨어요? 예전에 써보셨다고-.”
“게임일 때는 썼었죠. 예전에는 대검 웨펀이 쓸 만한 무기 중에 제일 좋은 축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진성 자신이 과거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즐길 시절에 사용했던 무기이기도 했던 것.
현재의 패치 버전으로는 낮은 등급의 아이템 취급이겠으나 사실상 ‘종결급’인 시절도 있었으며, 바로 그 시절에도 진성은 캐릭터를 키우고 있지 않았던가.
따라서 진성은 이 무기가 얼마나 좋은지 알고 있었다.
애당초 비비에게 맡길 일이 있다 말한 것 또한 메카닉 지젤을 처리한 이후 전기톱을 해체, 가공하기 위함일 정도였으니까.
“그쵸, 그쵸!?”
“근데 전 다크나이트잖아요. 사실 소검이나 광검을…… 기왕이면 소검을 쓰는 게 기본이기는 하니까.”
설령 현재의 몸에 딱 들어맞는 무기가 아니라 할지라도, 지금 사용 중인 <벤팅크의 화염분출기>보다 더 매력적인 무기임엔 분명했다.
그럼에도 진성이 괜스레 틱틱거리는 이유라면 역시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제가 ‘개조’한 거잖아요! 아직 안 써보셨으면서! 화염방사기 때도 제가 개조한 다음 확 달라졌던 거 기억 안 나세요?”
“그, 그거야 그렇지만…….”
“원래 공속 깎이고, 무슨 스킬 쓸 때 MP 사용량 늘어나고 쿨 증가하고! 그 옵션들이 사라졌잖아요!”
대검은 기본적으로 물리 공격력과 물리 공격력에 기반한 스킬에 적합한 무기다.
공격 속도가 느리지만 한 방, 한 방의 대미지가 강하다는 것은 장점.
그럼에도 자체적인 페널티가 있어 전체적인 스킬을 한 사이클 순회한 다음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공격속도 -8%, 물리퍼센트 스킬 사용시 MP +20%, 쿨타임 +5%…… 원래는 이 아이템에 있었어야 하는 페널티가 없다고!’
그런데 바로 그 페널티들이 없다면?!
비비의 말 그대로 이 무기가 진성 자신의 기억보다 ‘더’ 좋다는 게 하나의 문제였다.
<벤팅크의 화염분출기>를 개조했을 때와 미묘하게 다른 결과는 진성조차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실성능은 좋아졌으나 명시적으로는 그대로였던 지난 결과에 비하자면, 이번에는 실성능뿐만 아니라 명시적인 페널티 자체도 전부 사라져버렸다고?
‘그건 내가 먼저 쥐었고 그 이후 비비 씨가 만졌다……는 차이에서 비롯된 건가.’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시스템과 관련된 무언가가 작용한 것일까.
어쨌든 당장은 알 수 없는 와중 두 번째 이유라면 역시…….
“역시 내가 있어야겠죠? 도움 되는 거 맞죠?”
비비의 말이 옳고 또 그녀의 존재가 도움이 되는 건 맞으나 그것을 대놓고 인정하자니 어쩐지 미묘한 기분이라는 것.
‘이 정도야 뭐 오염이라고까지 부를 것도 없겠지만……. 하여튼 이 사람이랑 다니면 말이지!’
그녀의 행동을 예측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또한 예측하기 힘들다는 게 진성에게는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차라리 그 행동과 결과가 진성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면 일찌감치 작별했겠으나, 진성이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었으니.
“에휴, 어쨌든, 뭐……. 다음 퀘스트는 받아온 거죠? ‘루프트하펜’으로 가서 해상열차 수복?”
진성은 비비에게 다음 행선지에 대해 물었다.
“넵!”
말을 돌린다는 것 자체가 비비 자신의 질문에 ‘YES’라고 답한 것이라 여긴 걸까.
그녀는 한껏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성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오케이, 그럼 일단 가 보죠.”
다음 목적지는 루프트하펜이었다.
황도, 이튼 공업지대, 노스피스, 서부 무법지대.
크게 네 개의 섬으로 쪼개진 천계에서 각 섬을 잇는 주요 운송수단이 바로 ‘해상열차’다.
그 해상열차를 수복하여 서부 무법지대까지의 통행을 복구해야만 카르텔에게 납치당한 천계의 황녀 에르제를 구할 수 있는바, 이번 퀘스트는 황도의 루프트하펜에서 바로 그 해상열차들을 정상가동시키는 퀘스트인 것.
“계속 같이 가 주시는 거죠? 저랑?”
“아직 그렇다고 답한 건 아닙니다.”
진성은 발걸음을 옮겼다.
어찌 되었든 [메카닉 지젤(오염)]까지 진성 자신이 확인한 시점에서, 다음 오염은 그 이후의 메인 시나리오 타임라인에서 등장할 가능성이 높으며, 그렇다면 결국 비비와 어느 정도 동선이 겹칠 수밖에 없을 테니.
‘설령 비비 씨의 퀘스트가 오염되어 있지 않더라도. 다른 유저들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서라도 루프트하펜, 해상열차가 있는 쪽으로 가야-…… 음?’
앞으로의 동선에 대해 생각하던 진성은 자신의 곁에서 일던 발소리가 들리지 않음을 깨달았다.
줄곧 따라오던 비비는 몇 걸음 뒤에서 멈춰 있었다.
“비비 씨?”
“아…….”
“갑자기 무슨…….”
진성은 알 수 있었다.
비비가 멈춘 것은 ‘무언가’를 보았기 때문이라는 점.
그녀의 성격으로 보았을 때, 그녀를 이토록 당황스럽고 놀라게 할 정도의 사건은 그리 많지 않다는 점.
따라서 그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NPC가 아닐 것이다.
비비가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비비가 이토록이나 놀랄 만한 이유라면.
진성의 시선도 스르륵, 비비를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에서 볼 수 있었다.
근육이 도드라지는 상반신을 그대로 내놓고 있는 귀검사.
그 거친 육신에 아로새겨진 상처와 혈흔들, 무엇보다 진성 자신이 느낄 수 있는 ‘위험한 냄새’.
그 직업이 무엇인지 진성은 알았다.
그리고 그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진성은 역시나 알았다.
“……버서커.”
버서커.
정확하게는 비비가 말했던, 2주 만에 천계에 오르는 데 성공했던 바로 그 빙의된 모험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