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01)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01화(101/212)
101
진성은 버서커의 상태를 재빨리 훑었다.
가장 먼저 그의 눈동자에 서린 것은 놀람이었다.
“빙의자…… 또 있었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진성이 아니었다.
진성 자신은 비비의 반응과 그의 ‘눈동자’로 직업을 파악했기에 먼저 눈치챌 수 있었으나, 사실 그보다 더 확실한 단서 또한 있지 않은가.
일반 유저와 달리 빙의된 자들은 머리 위에 ‘닉네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지금 눈앞의 버서커는 진성 자신의 머리 위를 살피며 흠칫 놀란 것이리라.
“운도 좋군. 벌써 몇 명째를 만난 거지? 그것도 빙의될 수 있는 조건 중 하나인가…… 아니, 그저 오랫동안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된 탓에 뒤이은 자들에게 모두 따라잡혔기 때문이라고 봐야겠지만.”
그는 풋, 하고 웃으며 중얼거렸다.
비비는 어쩐지 욱한 목소리로 곧장 반박했다.
“이제는…… 이제는 그렇지 않거든요? 무기도 바꿨고, 벌써 추격 섬멸전까지 끝냈으니까. 내가 저번에 말했죠? 천계에서부터 나도 능력을 쓸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되면 늦지 않을 거라고.”
잠시 들은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어떤 식으로 서로를 대했고 또 어떤 식으로 헤어졌을지.
“아, 내가 알려준 걸 써먹어 본 건가? 그건 잘됐군. 축하하네. 아마 앞으로 다신 만날 일 없겠지만 혹시 다음에 만나거든 나도 도와달라고.”
칭찬이라기보단 명백한 조롱.
버서커는 그렇게 말하곤 잠시 진성을 바라보았다.
“……. 비비에게 얻었을 테고. 크리쳐는 그래도 칭찬할 만하나 그뿐이군.”
그 중얼거림이 전부였다.
그것을 고고함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평가질’이라 할 수 있을까.
버서커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비비는 물론이고 진성에게도 아무런 볼일이 없다는 듯 행동하는 그 태도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진성은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버서커는 진성 자신에게도 말한 것이다.
[어차피 그쪽도 두 번 다시 볼 일 없을 테고 나랑은 상관없는 사람이지. 열심히 해봐라.]라고.
“크흠.”
특별히 감정적으로 대할 마음은 없었다.
진성은 오히려 버서커라는 인간이 궁금했다.
비비에게서 들었던 버서커의 행동력.
분명 게임 던전앤파이터에 대해 상당한 수준으로 알고 있으며, 그 와중에도 규격 외의 스킬/아이템을 활용해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을 설정할 수 있을 정도의 적응력과 논리력 또한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진성 자신보다 늦게 빙의된 자였으니까.
만나면 그와 상당한 대화를 해보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가 실제로 무엇을 이루었고, 어떻게 해냈는지, 그가 한 일 중 진성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또 무엇이 있으며, 혹여 그가 가 우려할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던 게 진심이었다.
“…… 드랍되는 템이 아닌데. 아마 레미디아 바실리카에서 구입하는 거였지?”
그러나 상대가 저런 식으로 나온다면 진성으로서도 그저 호인처럼 접근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진성은 지나가듯 툭, 한마디를 던졌다.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수없이 많은 아이템 중에서도 유독 이름이 어려운 무기 중 하나.
그 정확한 명칭을 불렀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구입 방식을 진성이 언급했기 때문일까.
다시 돌아선 버서커의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그는 훗, 하며 헛웃음을 흘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빙의된 인간들은 대부분 던파 깨나 해본 사람들일 테고…… 아이템의 구입처나 이름 같은 걸 줄줄이 외우는 변태들도 있는 게 당연하다. 딱히 놀랄 일은-.”
그는 놀라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진성이 다시금 입을 열기 전까지.
“필요 재료는 에픽 소울. 개수까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70개 좀 넘지?”
“…….”
버서커는 답하지 않았으나 움찔거리는 그의 입꼬리, 확장된 동공.
두 가지만으로도 이미 알 수 있었다.
진성은 그 모습을 보며 느슨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허허, 빙의된 사람이 에소를 어디서, 어떻게 그리 많이 구했나 모르겠네. 뒤에 있는 크리쳐도 종결급이고. 뭐, 어쨌든 착용한 템으로 보나 아라드로 내려갔다는 사람이 다시 올라온 것으로 보나, 이제 슬라우 공업단지를 가기 위해 해상열차를 타러 왔을 것이고……. 그렇다면 레벨은 75?”
“그걸-…… 크흠.”
버서커는 억지로 헛기침을 하며 자신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게 했다.
단순히 [캐릭터 정보]를 보는 게 아니라 마치 자신의 행적부터 향후 행보까지 줄줄 꿰고 있는 진성의 말에는 어찌 대답해야 하는지.
그 방안을 찾지 못한 버서커를 보며 진성은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였다.
“비비 씨한테 들었을 때는 꽤나 흥미가 갔는데 말이야. 막상 직접 보니까……. 흠, 그정돈가? 하는 느낌? 규격 외의 뭐 어쩌고~ 하더니만 오히려 그 누구보다 규격 안에 있는? 무슨 말인지 알지?”
이제 버서커는 참을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마치 상태창으로 확인이라도 한듯 자신의 현재 상황을 줄줄이 읊어버리는 진성 앞에서 놀라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셈이다.
“뭐, 뭐냐…… 너는 누구지?”
그는 물었다.
진성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름을 묻기 전에 자기소개부터 하는 게 먼저 아뇨? 반말부터 하지 말고.”
“반말은 너도-.”
“혼잣말로 한번 중얼거려본 걸 가지고 반말이라 하면 섭하죠.”
진성은 미소 지었다. 그와 반대로 버서커의 입술은 일자를 그리며 굳어지는 중이었다.
그 사이에 끼어든 것은 역시나 비비였다.
“맞아요. 그리고 처음부터 전기톱 얘기하면서 사람 막 무시하듯 그래놓고! 그쵸, 진상 님?”
벌컥, 이름을 불러버리는 비비의 급발진.
진성은 딱히 놀라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진상’으로 부른 게 기회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내 자랑 같아 뭣하지만 이 정도의 단서만으로 과연 어떤 반응을 끌어낼지.’
적어도 한 가지, 에픽 소울을 구하고, 그걸 교환해 아이템을 착용했다는 점은 우선 진성에게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남은 건 그 외의 사항들이다.
정보력, 기억력 그리고 게임 던전앤파이터 안팎으로 관련된 지식들.
버서커는 어떤 인물인가.
“진상? 진상. 진상…….”
진상이라는 단어를 되뇌며 진성과 비비를 번갈아 보던 그는 마침내 자신을 증명해냈다.
“갑자기 자신감이 차오른 비비…… 아무리 천계의 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그렇다면 곁에 있던 멘토가 나쁘지 않았다는 뜻이고. 내가 알기로 초보자들한테 쓸데없이 멘토 노릇하며 어깨에 힘을 주는 고인물이 하나 있었지.”
매우 적은 단서만으로도 순식간에 정답에 도달하는 합리적인 추론.
버서커는 진성을 보며 말했다.
“백진성의 골목공대. 진성. 내 바로 직전에 빙의되었다던……. 바로 그 진성인가.”
이번엔 진성이 당황할 차례였다.
자신을 알아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진 말 때문에.
* * *
진성은 마른침을 삼켰다.
‘내 바로 직전에 빙의되었다? 그걸 어떻게 저 사람이- 어떻게 내 이름까지…….’
버서커가 진성 자신보다 늦게 빙의되었다는 것쯤은 비비 덕에 이미 알고 있었다.
비비가 먼저 버서커를 만났고, 그 이후 진성 자신이 비비를 만나 빙의 시점과 현실의 시간대에 대해 말하던 도중 알게 된 일이다.
그러나 버서커 본인은?
버서커와 비비와 처음 마주쳤을 때라면, 두 사람은 진성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상태였다.
애당초 버서커가 비비와 도란도란 사이좋게 가진 정보를 나눴을 거라는 상상도 잘 되지 않는 진성이지만, 그런 것을 떠나 논리적으로 진성 자신에 대한 언급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알았느냐.
진성은 묻고 싶었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의문이 있었으나 그는 함부로 뱉지 않았다.
지금 이 시점에서 그걸 물었다간 겨우 비슷해진 균형이 완전히 기울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
“그런가. 확실히…… 흐음……. 다르군.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이런 느낌이었나.”
하물며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마치 이것저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혼잣말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다르다? 내가 빙의된 모험가와는 ‘다르다’라고 말하는 중이야, 설마?’
버서커는 가 되어야 할 빙의자다. 이다.
비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진성은 다르다. 자신은 다.
정당한 시련이 아니라 부정한 개입으로 칼날을 부러뜨리려는 요인을 막아내고 칼날이 잘못되지 않도록 바로잡아야 하는 부집게.
그것에 대해 버서커는 알고 있단 말인가?
진성은 잠시 생각했다.
고르고 고른 후에야 한마디를 던질 수 있었다.
“네메르가 그런 말을 했을 리는 없을 텐데.”
어째서 알고 있느냐.
진성 자신에 대해서.
질문 아닌 질문을 던지자마자 진성은 버서커를 살폈다.
그의 눈꼬리가 움찔하는 모습, 아주 찰나인데다 그 움직임도 매우 작았으나 분명 그가 반응했음을 진성은 보았다.
“알 필요 없겠지. 무엇보다…… 어차피 내가 할 일을 하게 된다면. 서로 엮일 일도 없을 테고.”
버서커는 더 이상 말을 섞기 싫다는 듯 몸을 돌리려 했다.
실제로 그가 제7사도, 불을 먹는 안톤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로 행보를 개시한다면 앞으로 다시 언제 마주칠지는 알 수 없는 일.
진성은 말했다.
“지금까지의 그 아이템도 어떻게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방식이 언제까지 통할 거라 생각하진 마. 타임로드들이 개입하는 순간 끝장일 테니까.”
그에게 직접 묻진 않는다.
그러나 그를 자극하기에는 충분한 발언이기도 했다.
진성이 보기에도 눈앞의 버서커가 지닌 아이템이나 크리쳐는 결코 저렴하지 않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 나처럼, 내가 한 것처럼 하면 돼. 저 인간이 황금굴에 손을 썼는지, 아니면퀘스트를 넘나들며 뭘 했는진 모르겠지만.’
진성 자신이 황금굴의 황금을 처분하며 여러 아이템을 획득한 것처럼 오브젝트로 분류되는 물건을 확보 후 비싸게 처분하는 일도 [경매장] 시스템을 대행해 줄 유저 한 사람만 잘 구할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도 분명한 한도와 위험이 있을 수 있다.
언제까지고 통할 리 없다.
진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것이었다.
실제로 버서커는 멈칫하더니 진성을 바라보았으니까.
다만, 진성이 예기치 못했던 것은 그의 표정이었다.
“타임로드들이 개입한다고? 나한테?”
버서커는 진성을 비웃고 있었다.
절대 그런 일을 겪지 않을 것처럼.
진성은 콧방귀를 뀌며 되물었다.
“그쪽이 뭐 GM이라도 되나?
“그쪽은 뉴비들 좀 돌봤다고 다 꿰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으면서. 타임로드들이 그쪽 친구라도 되나?”
버서커는 조금 더 힘을 주어 반응했다.
거의 확신에 찬 그의 말에 이젠 진성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허허, 이 사람, 참. 진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비비가 그토록이나 감탄할 수 있었던 이유이자, 진성 자신이 보기에도 제법 능숙한 던파 고인물처럼 보이는 사람이, 말 그대로 ‘겁대가리가 없어서’ 이렇게 할 수 있는 걸까?
‘아니, 그건 아니겠지만……. 지금은 그런 느낌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겠군.’
그럼에도 진성은 그를 더욱 무시하듯 너스레를 떨었다.
버서커가 발끈하여 자신에게 더욱 핏대를 세울 때까지.
“그럼 보기라도 했단 말인가?”
거기까지 가서야 진성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서로의 정보를 다투는 건 결국 서로가 모르는 무언가를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
이미 미끼를 물어버린 이상 버서커는 함부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전에 통성명이나 좀 합시다. 누굽니까? 뭐, 여기서의 이름 말고도 원래 던파에서 뭐 했던 사람인지.”
당연히 상대방의 정체부터 파악하는 게 진성이 해야 할 일인 셈이다.
그는 원래 누구였는가.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무엇으로 유명했던 사람인가.
게임의 역사와 함께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진성에게 있어, 그 정체만 파악한다면 플레이스타일부터 성격, 성향까지도 얼추 파악이 될 것.
버서커도 그것을 의식하고 있는지 잠시 입을 우물거렸다.
그는 잠시 고민했고.
“흥, 말하기 싫다면 대화는 없는 것으로 하지. 굳이 이름까지 알려줄 이유도 없고. 어차피 ‘하는 일’도 서로 다른 차에, 열심히 해보라고. 나는 나대로-.”
결국 진성과의 거래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진성보다 정보 우위에 설 수 없었다.
“아행 님이에요. 저번에 나한테는 말해줘 놓고 이제 와서 뭘 또 숨긴대? 아마 진상 님도 알 걸요? 아행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예전에 왜, 신화 시즌에 ‘+18증 군마갈’ 띄웠던 사람 있잖아요? 시즌제 리셋 이후에 +19 지르다 터뜨리곤 투덜거리다가 접는다고. 아마 게임 관련 인터넷 신문 기사로도 작게 났었을 텐데. 기억나죠?”
비비가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진성에게뿐만 아니라 그에게도 마찬가지니까.
‘아행’이라 불린 버서커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할 말을 잃은 듯 보였다.
진성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곤 하나밖에 없었다.
“……비비 씨는 진짜 대단하네요.”
그러곤 생각했다.
비비의 존재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마 영원히 그 답을 내릴 수 없을지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