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02)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02화(102/212)
102
진성은 여전히 말을 잃고 멍하니 선 버서커를 보며 기억을 되짚었다.
높은 수치의 증폭을 띄우거나 고증폭 자체에 도전하며 유저들을 신명나게 했던 인물들은 많다.
과거 진성이 빙의되기 전 도왔던 레인저 또한 그런 부류 중 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군마갈은 다르지. 고증폭 템 중에서도, 사실상 제일 임팩트가 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야.’
한때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가장 유명하고 또 좋은 아이템으로 손꼽혔던 [신화급] 귀걸이 장비, . 일명 ‘군마갈’.
딜러 캐릭터라면 누구나 갖고 싶은 해당 아이템을 고증폭으로 띄웠던 유저를 진성이 모를 리 없었다.
‘그때는 다른 닉네임이었는데. 그 사람이구나.’
그 사람이 활동하던 길드.
그 길드에서 진행했던 레이드.
그리고 진성 자신과의 작은 마찰까지.
‘오즈마 레이드 때도 유명했지. 본인의 템이 기깔나니까 명성 컷을 워낙 높게 잡았어서……. 나랑 직접은 아니었어도 은근하게 자존심 싸움을 했던 사람이기도 하고.’
진성 자신과는 기본적으로 성향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증폭과 강화를 한 캐릭터는 물론 강해진다.
하지 않은 캐릭터에 비하자면 기본적으로 장비 아이템이 상승시켜주는 기반이 탄탄해지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각 유저의 능력을 알아볼 수 있는가.
‘실제로 뻥명성을 워낙 많이 겪었던 나로서는 당연히 저 사람의 의견에 반대할 만했지. 적어도 40초 딜사이클이라도 확인해야 한다, 명성이 조금 낮더라도 혹은 비슷한 명성에서도 확연한 캐릭터 숙련도를 지닌 유저들이 있으니, 정식 공격대를 꾸리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라는 내 의견에 태클을 걸었었다.’
진성이 원하는 인물들은 단순히 모험가 명성에만 의지하는 자들이 아니었다.
해당 직업군의 특성과 스킬 구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정예 중의 정예.
‘저 사람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고, 어차피 게임인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명성컷으로 걸어서 후다닥 해치우면 되지 뭘 그런 걸 따지냐는 타입이었으니까.’
반대로 그런 것을 일일이 따질 필요 없이 오직 [모험가 명성]에 의한 커트라인만으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당시의 아행.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는, 기본적인 성향 차이라고 봐야겠으나…….
‘커뮤니티에서나, 인게임에서나 결국 내 의견을 지지해준 사람이 엄청 많았었단 말이지. 뭐, 근본적으론 저 인간의 태도 때문이었겠지만.’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건 진성 자신이었고 그것은 진성의 의견이 무조건적으로 옳기 때문이 아니라 아행의 태도가 한몫했다는 걸 알고 있다.
모험가 명성으로 모든 걸 따져도 상관없다는 말끝에 붙었던 것이 결국 ‘누가 1인분을 못하더라도 내가 딜로 찍어 누르면 됨’이란 메시지였기 때문.
‘인정욕구라고 해야 할지, 잘난 체라고 해야 할지, 하여튼.’
당시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내로라하던 고수 유저들의 자존심을 자극한데다, 그렇게 거들먹거리며 아는 체하던 아행의 태도가 꼴 보기 싫은 탓에 진성 자신이 지지받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던가.
“크흠, 비, 비비…… 당신, 분위기를, 그, 뭐랄까-.”
“잉? 왜요? 맞잖아요? 아행 님이잖아요. 근데 이름은 왜 안 가르쳐주려고 했어요?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끼어드냐! 라고 일갈할 법한 상황에서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봐도 그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 수 있는바.
심지어 그런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비비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이 상황이 뭐가 이상한지에 의문을 갖고 있었으니.
결국 아행은 고개를 저어 비비에 대한 점을 전부 털어내야 했다.
“-크으…… 하여튼! 비비, 당신은 빠지고! 다시 한번 물어보지. 타임로드들의 개입을 봤나? 직접?”
그는 한껏 진지해진 목소리로 진성에게 말했다.
그러나 듣는 진성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조금 전처럼 긴장감을 가질 수 없다고 해야 할까.
“알려주는 건 어렵지 않……지만, 뭐라고 불러야 하나? 옛날 닉네임은 좀 그러니까 저도 그냥 아행 님으로 부르면 될까요? 우리 아예 초면도 아닌데 그렇게 반말하는 것도 좀 그렇지 않아요?”
“그, 그건-. 그…….”
규격 외의 일을 벌이던 버서커였다.
비비가 흘러가듯 말해준 사안만으로도 진성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 정도의 실력자라고 생각했다.
허나, 그 정체가 진성 자신도 과거 알았던 유저라는 사실로 다시금 입력된 순간, 이러한 반응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몰랐다.
“어차피 저도 궁금한 게 있거든요. 비비 씨가 말했던 ‘규격 외의 일’이라는 거. 아이템은 비비 씨의 실력으로 구경 좀 했습니다만, 어떻게 스킬적인 측면에서도 그런 일이 가능합디까? 퀘스트에 대해서는? 우리 한번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봤으면 싶은데요.”
따라서 진성은 제안했다.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 분명 있을 터.
적어도 아행의 반응으로 보아 그는 ‘타임로드가 빙의된 모험가에게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는 모습’을 보지도 못했고, 그럴 가능성조차 없다고까지 생각하고 있다면.
‘받아들일 거다. 그렇겠지. 무섭겠지. 지금까지 규격 외니 어쩌고니 제 마음 가는대로 저질러댔을 테니 더더욱……. 타임로드들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을 거야.’
실제로 진성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진성 자신과는 또 다른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남자 귀검사 직업군의 버서커.
다크나이트가 지닌 역안이라는 특징적인 눈처럼 버서커 또한 그 직업 자체의 특징적인 눈동자를 지니고 있다.
다크나이트의 역안이 검은 바탕에 노란 눈동자라면 버서커는 검은 바탕에 붉은 눈동자.
‘……어라, 그러고 보니까…… 나는 그냥 일반 눈동자잖아? 역안이 아닌데.’
자신의 제안에 흔들리는 아행을 보며 진성은 새삼 깨달았다.
역시 그러한 증거가 진성 자신은 ‘모험가’가 아닌 ‘부집게’라는 특별한 존재임을 증명하는 걸까.
그러나 답을 내릴 수 없는 의문에 대해 더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진성, 당신과는…… 말할 수 없다. 알려줄 수 없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 아행은 결국 진성의 제안을 거절했으니까.
그것은 오히려 진성에게 당황스러운 점이었다.
“목숨이 걸린 일인데도 확인하지 않으시겠다?”
“……괜찮겠지. 하, 말하지 않았나. 하는 일도 다를 따름에 나 또한 여기서 시간을 버릴 필요가 없다. 최대한 빨리 의 예언이 제대로 실현되도록 만들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아행은 가빠졌던 호흡을 가다듬었다.
진성에게는 어쩐지 위화감을 느끼게 만드는 발언이었다.
‘나한테 하는 말이 아냐.’
자기 자신에게 최면이라도 걸듯 중얼거리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뿐만 아니라 신경 쓰이는 점도 있었다.
‘게다가 하는 일이 다르다는 말은-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혹시 그는 진성 자신이 을 띠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인가.
지금까지 그가 말한 ‘자신과는 다르다’ 따위의 발언들도 역시 진성과 관련된 일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떠들 수 있는 것이었나.
묻고 싶지만 물을 수 없다.
결국 진성이 꺼낸 주제는 조금 빗겨 갈 수밖에 없었다.
“의 예언을 실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저기, 바로 그 부분에서부터 의문을 가져야 정상 아닌가 싶은데. 스토리에 대해 아무리 잘 모른다 할지라도……. 규격 외니 어쩌고니 떠들었던 사람 치고는 그런 결론을 내렸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데요.”
진성 자신에 대한 의문은 아니지만, 그 역시 진성이 품은 궁금증 중 하나였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려 하는 것일까?
“무슨 소리지.”
“던파는 아직 스토리가 다 진행되지도 않았고. 까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와중에 그걸 그대로 따라하시겠다?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까? 진심으로?”
아직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어떤 방식으로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가 전개될지에 대해 밝혀진 바가 없건만,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일까?
아행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사도들을 죽여버리면 되는 거 아닌가. 누굴 남겨야 할지 모르겠지만, 젠장, 그딴 게 알 게 뭐야. 알아서 하겠지. 하여튼 방해되는 놈들을 다 죽이면 돼.“
그것이야말로 진성을 자극하는 말이었다.
아행의 태도뿐만이 아니라,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유저였던 사람이 할 이야기인가.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나름대로 이름을 날렸던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사고방식인가!
“어처구니가 없군…… 설령 네메르가 그런 식으로 당신에게 말했다 해도 가 전부 이루어졌을 때의 결말을 알고 있을 작자가 그런 식으로 말하다니. 나보다 늦게 빙의되었으니 알잖아? [뒤집힌 멸망의 세계]가 된다. 플레인:아라드는 소멸이야.”
최근 그의 행보라면 알 길이 없으나 어찌 되었든 빙의가 될 정도라면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플레이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렇다면 가장 최신 버전의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는 물론 했을 테고, 당연히 진성이 말한 사실 또한 그는 알고 있어야 한다.
실제로 그는 알고 있었다.
“그건 플레인:아라드의 일이지.”
“……뭐?”
“나는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간다. 그것으로 끝. 그다음까지 내가 생각해야 하나?”
다만, 진성으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방향으로 그 사실을 받아들였을 뿐.
진성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것을 그렇게 받아들이는 게 가능한 일인가?
플레인:아라드가 소멸하는데 그냥 모른 체 할 수가 있나?
‘아니지, 모른 체가 아니야! 그, 그렇게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는-.’
당황한 진성의 곁에서 들려온 건 비비의 목소리였다.
“일……리는 있는 것 같은-.”
“비비 씨.”
진성은 더듬더듬 아행의 의견에 찬성하는 그녀를 보았다.
비비는 슬쩍 진성의 눈치를 보다 다시금 말을 이었다.
“죄, 죄송해요. 아니, 그보다도, 그냥…… 우리는 어쨌든 빙의된 사람들이니까, 만약 저대로 된다면- 차라리 낫지 않나 싶기도 하고…….”
그런 비비의 반응은 차라리 이해할 수 있는 바였다.
그녀는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진성은 비비를 잠시 바라보다 다시금 아행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곤 말했다.
“그럴 리가. 그렇게 돌아갈 리가 없죠. 비비 씨는 스토리를 전부 모르니 그렇겠지만! 우리라고 안전할 리가 없어. 결국 우리조차 칼로소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면? 외우주가 아닌 이상 확신을 가질 수는 없-…….”
그러나 그 말을 전부 마칠 수는 없었다.
아행과 마주치고 지금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나눈 대화가, 순간 진성의 머릿속을 스쳤으니까.
[내 바로 직전에 빙의되었다던……. 바로 그 진성인가.] [어차피 내가 할 일을 하게 된다면. 서로 엮일 일도 없을 테고.] [말할 수 없다. 알려줄 수 없어.] [나는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간다. 그것으로 끝.]그가 지금까지 했던 말들에서 느낀 일종의 위화감이라고 해야 할까.
진성이 건넨 제안에도 그는 말할 수 없다, 알려줄 수 없다는 표현을 썼다.
‘마치 누군가와 약속한 것처럼……말을 했다?’
일종의 거래나 계약처럼.
무언가를 받았고 그 대가를 발설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
‘네메르랑? 네메르와 그런 거래를 했다고? 네메르가 그 말을 들어줬다고?’
의문보다 더 빨리 떠오른 것은 부정이었다.
그럴 리 없다.
그렇다면?
한 가지의 가설을 향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고의 도중, 아행은 말했다.
“최근의 던파에서 아쉬운 점이라면 다른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거였지.”
“뭐? 갑자기 무슨 소리를…….”
그러곤 진성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비비가 잠시 움찔했으나 그의 행동은 느릿하기 그지없었다.
그저 진성의 근처까지 다가와 자신의 무기, 도깨비 방망이처럼 생긴 를 천천히 들어올리는 게 전부였다.
혹여 그가 해코지를 하려 해도 여유롭게 반응할 수 있어 보일 정도로 그 자체로는 특별할 게 없었다.
따라서 진성은 뜬금없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
갑작스레 진성 자신이 서 있는 바닥에 빛이 일기 시작한 것!
“잉? 진상 님? 발밑에 뭔가가- 아, 내 밑에도?”
그것은 마법진이었다.
원형의 마법진은 진성뿐만 아니라 비비 심지어 아행까지도 그 안에 포함시킬 정도의 크기로 아로새겨졌다.
“이건-.”
그것이 무엇인지.
비비는 몰랐으나 진성이 모를 리 없었다.
“-……싸우자?”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시스템 중 하나, [싸우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