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09)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09화(109/212)
109
떠나간 아행의 뒷모습을 언제까지고 바라볼 수도 없었다.
어느새 세라핌이 뚜벅뚜벅 진성 자신의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성님 ㅎㅇㅎㅇ”
반가운 듯 우선 인사를 건네는 순수였으나 진성은 보았다.
세라핌의 얼굴에 따스한 눈빛, 환한 미소가 걸려 있지 않다는 것을.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가장 신성하다고까지 표현할 만한 직업의 표정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안녕하세요, 순수님. 버퍼도 키우시나 봐요.”
“ㅋㅋ 벞교하려면 필수”
진성은 우선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말을 건넸다.
아주 약간의 미소가 그녀의 입꼬리에 걸릴 뻔했으나 그게 전부였다.
“근데 그게 아니라”
“머하고 계셨어요?”
“싸우자알림떠서 와봤는데”
“방금 그건 머임? 어케된거에요?”
“원래도망판정은 튕기거나 랜뽑할때만 되는거아니었나?”
순수의 질문은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아니다,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을 하기에는 순수의 게임 던전앤파이터 ‘짬밥’을 얼추 아는 진성의 입장에서는 한마디 답변조차 어려운 질문들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순수가 어느새 진성 자신의 곁에까지 다가왔다는 점.
비비와는 제법 멀어졌기에, 진성은 순수의 너머에서 불안한 눈동자를 하고 있는 비비를 향해 슬쩍 손짓을 건넸다.
유저인 순수의 모니터 너머로는 보이지 않을 행동.
비비는 그 동작을 보며 역시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한 발자국 스윽, 물러서려 했다.
“저분이랑은 무슨 관계에요? 친구?”
“아까 파티하고 싸우자 하던거까진 알림떳는데”
그것을 순수가 놓칠 리 없었다.
모니터로 한 화면에 세 캐릭터를 모두 담아 보고 있는 순수에게 있어 비비의 움직임이 눈에 띄지 않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덜컥, 비비의 움직임이 멈추자마자 순수는 다시 말했다.
“근데 저분도 그렇지만 진성님도”
“특이하네요”
“경매장에서 산것도 아닌것같고”
“NPC한테 구하는건 대전이 업뎃 이전에나 레쉬폰에서 하던건데”
그것이야말로 진성이 가장 우려하던 주제였다.
일반적인 게임 던전앤파이터 유저였다면 애당초 이런 관심조차 갖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당장 자신과 파티를 맺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공격대에 참가하는 것도 아닌, 그저 지나가는 유저들을 일일이 [캐릭터 정보]를 눌러가며 확인할 사람은 드물기 때문.
설령 그런 일이 있다고 해봐야 외형이 특이하여 해당 캐릭터의 아바타가 어떤 종류인지, 어떤 룩Look으로 완성한 것인지 보기 위해 딸깍거려보는 게 전부다.
마을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몇 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캐릭터 정보]까지 열어가며 확인할 유저는 사실상 없기에 지금까지 진성과 비비이 그러했고, 그 아행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거라 여겼을텐데…….
“템은 도대체 어떻게 맞추심? 특히 흑랑”
착용 장비는 어찌 된 일이냐.
순수의 질문에는 뼈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비비 또한 그 대화를 들으며 가슴을 졸이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이 와중에 이제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가.
‘차라리 싸우자 중이었으면 진상 님이 어떻게든, 생각할 시간이라도 벌었을 텐데 이렇게 되어버리면…….’
지금만큼은 비비 자신이 딱히 도움을 줄 요소도 없다.
세트에 대해 이미 순수가 줄줄 물어봤듯 자신이 구해다줬다거나 하는 변명 따위는 절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진성이 실제로 그것을 어떻게 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국 유저인 순수의 눈으로 보기엔 무슨 방법이 되었든 비정상적일 것밖에 없지 않을까.
‘튀어요, 진상 님! 저쪽, 맵 이동하는 척 저쪽으로 뛰다가 황도로 이어지는 샛길로 빠지면 아마 못 볼 거예요. 그러면 당장의 위기는 벗어날 수 있잖아요!’
비비에게서 가장 먼저 떠오른 답은 역시나 회피였다.
직접 말을 할 순 없어도 동작은 보여줄 수 있다.
비비는 순수의 너머로 보이는 진성을 향해 손짓, 발짓, 몸동작까지 더해가며 도망가자는 표현을 온몸으로 해냈다.
비비는 진성이 완벽히 이해할 수 있도록 골목을 향해 부리나케 달리는 모습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플레인:아라드에 빙의되어 이곳, 천계에 오르기까지.
어쩌면 그것은 그녀가 가장 많이 선택하고 또 최우선으로 고려해야만 했던 결정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녀는 알 수 없었다.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일던 돌다가 나왔어요. 시나리오 깨다가.”
진성은 여유작작한 태도로 말했다.
그것이야말로 비비로 하여금 큰 실수를 하게 만들 뻔한 말이었다.
‘진성……진상…… 저렇게 뻔뻔할 수가…….’
* * *
그러나 진성이라고 아무런 계산 없이 말한 건 아니었다.
‘도망치는 것도 분명 선택이 될 수 있어. 하지만 이건…….’
전략적 후퇴도 할 수 있지만 지금 회피하는 것은 말 그대로 도망치는 것뿐이다.
극단적인 가정까지 하면 순수와의 관계가 이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
‘아니야. 순수, 이 인간이 좀 이상하긴 해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인 것만은 확실해. 단순히 [경매장] 시스템을 도와주는 것만이 아니라…… 나와는 다른 방법으로 던파를 즐기는 사람이잖아. 이런 사람에게서 도망치는 건 답이 아니야. 좋은 선택이 아니야.’
단순히 진성 자신의 심부름을 해주는 사람 정도면야 어떻게든 또 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만으로 될 게 아니기에.
진성 자신이 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성향의 유저가 바로 순수지만, 오히려 그런 이해할 수 없는 면 덕에 진성 자신에게는 또 다른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도망은 답이 아니다. 피하는 건 진성 자신이 선택할 일이 아니다.
결국 답할 수 있는 방안이란 하나밖에 없었다.
“일던 돌다가 나왔어요. 시나리오 깨다가.”
진성은 뻔뻔하게 말하며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세라핌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게 실시간으로 그의 눈에 들어왔다.
천사의 이름을 하고 있건만 그 표정은 이제 사천왕 형상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가 아닌가!
“일던? 던전에서 드랍?”
“아닌데”
“그런 템은 드랍 안되는데”
평소처럼 빠른 속도가 아니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눌러 말하는 것만 같은 느낌으로 순수는 말했다.
그것이야말로 진성에게는 다행스러운 점이었다.
순수는 분명 아수라 직업의 캐릭터에 +13 강화 무기를 장착시켜줄 정도로 게임 던전앤파이터에 진심인 유저다.
‘아까 대전이 업데이트 이전까지 언급하는 바람에 불안했는데……. 다행히 완전 썩은물 급은 아니군. 아니다, 오히려 고인물이기 때문에 백과사전 시스템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고 봐야 하려나?’
그런 점이 다행이었다.
분명 단종에 가까운 아이템이라도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백과사전]에서 확인할 수 있음을.
“됩니다. 백과사전 열어보시면 순수 님도 보실 수 있어요. 획득정보가 보일 거예요.”
진성은 알지만 순수는 모르고 있었으니까.
잠시간 침묵이 유지되었다.
순수가 게임 시스템 [백과사전]을 통해 아이템들을 검색해보고, 또 ‘획득 정보’를 살펴보는 시간임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아 ㄹㅇ이네”
“헐 아직도”
“드랍 ㅋㅋ 그럼 진성님은 5개 다 드랍으로?”
마침내 사천왕 같던 그녀의 험악한 표정이 거두어질 수 있었다.
미소를 짓는 순수를 보며 진성 또한 한숨은 돌렸다고 해야 할까.
“크크. 맞습니다. 운이 좋았죠.”
“아니 진심 ㅋㅋ 그게 확률상? 말이 댐? 5부위를? 다?”
“그러니까 말이에요. 네오플이 저를 좋아하나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ㅇㅈ“
곁에서 보고 있던 비비로서는 진성의 임기응변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잉? 저렇게 뻔뻔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었나? 아, 아니, 생각해보면…… 뉴비들 교육공대 돌릴 때에도 그랬고 나랑 퍼섭에서 공대 할 때에도 그러긴 했었지.‘
패턴을 다 파악했다거나, 한 번만 더 트라이하면 깰 수 있을 거라며 지친 공대원들을 독려하는, 희망을 주기 위한 그의 뻔뻔함.
그런 면에서 보면 뻔뻔하다는 말이 그저 철면피라는 의미만은 아니다.
‘패턴을 다 보지도 못했는데 파악했다고. 이제 됐다고. 한 번만 더 트라이하면 될 것 같다는 그 말이…… 믿기 어려우면서도 사람들한테는 묘하게 안심을 줬었어.’
그는 결국 해냈으니까.
그렇게 뻔뻔하게 말한 것을 끝끝내 지켜냈으니까.
비비는 어쩐지 알 것만 같았다.
비비 자신이 보기에도 눈앞의 세라핌 유저는 보통의 실력을 지닌 자가 아니다.
날카로운 분석력은 물론이고 아행의 [싸우자!] 도망 판정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진 유저가 그저 웃어넘기며 듣고 있다는 건 결국 ‘미심쩍지만 믿어주겠다’는 느낌에 가까운 게 아닐까.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만든 것은 그저 뻔뻔함이 아니라…….
‘하여튼 고인- 아니, 썩은물이라니까.‘
상황을 넘길 수 있는 충분한 지식과 실력 그리고 자신감 때문이리라.
비비는 어쩐지 벅차오르는 즐거움을 억누르며 진성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진성 또한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눈앞의 순수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번엔 경매장에서 필요한 거 없어용?”
“ㅋㅋㅋ 만난김에 제가 사다드릴테니”
“노필요?”
“장비들은 대강 구해서 아직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참, 그러면 그냥 검색 한 번 해주실 수 있을까요?”
“검색? 무슨검색?”
“경매장에 에픽 장비들 많이 올라와 있나요? 거래 가능한 에픽템들은 대충 몇 개나 되는지 궁금해서요.”
진성은 물었다.
이것 또한 ‘경매장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직접 검색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문을 사기에 충분했으므로 순수의 표정을 주의 깊게 살피며 던진 질문이기었다.
다행이라면 순수가 곧장 답을 해주었다는 점이다.
“무기방어구악세특장 다합쳐도 한 70개? 정도 되ㄴ는듯?”
“70개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성이 [경매장]을 통해 에픽 아이템의 개수를 조사하려던 이유라면 역시 아행 때문이었다.
그가 착용하고 있던 무기 하나만 해도 70개 이상의 에픽 소울을 필요로 한다.
바꿔 말하면 [경매장]에 현재 등록된 모든 에픽 아이템을 구입 후 해체를 통하여 로 만든다 하더라도 그가 착용한 셋트의 장비는 구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럼 도대체 아행은 어떻게…….’
진성이 잠시 의문을 가질 동안 순수는 말했다.
“그럼 얼른 렙업하시공 ㅎㅎㅎ 빨리 같이 레이드 갈 날이 오면 좋겠네요. 상던이나 아니면 걍 옛날 레이드라도 ㅎㅎ 가급적 빨리”
“아, 그거야 저도 좋죠. 순수 님의 실력은 저도 궁금하니까요.”
“ㅋㅋㅋㅋㅋ ㅇㅋㅇㅋ 그럼 담에 또 봐욬ㅋㅋㅋ ㅂㅇㅂㅇ”
“네, 즐던하세요.”
* * *
[드랍 ㅋㅋ 그럼 진성님은 5개 다 드랍으로?] [크크. 맞습니다. 운이 좋았죠.] [아니 진심 ㅋㅋ 그게 확률상? 말이 댐? 5부위를? 다?] [그러니까 말이에요. 네오플이 저를 좋아하나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ㅇㅈ]키보드의 ‘ㅋ’을 누르면서도 순수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일자로 굳어진 입꼬리를 유지한 채 그녀는 곧장 타이핑했다.
[길드]순수하게힐준다 : [검은 질병의 흑랑 아머] 요즘 이 세트 일던돌면서 먹어보신분? 아님 먹었다는 얘기라도 들어보신 분?길드 채팅창에 슈루룩 올라오는 글을 살피며 순수는 잠시 자신의 손톱을 물어뜯었다.
당연히 그녀 자신의 경험에 기반한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나도 먹어본 적 없어. 패치된 이후로는 본 적도 없고, 아예 사라진 줄 알았던 아이템이야. 근데도 일던에서 나왔다…… 심지어 하나도 아니고 다섯 부위 전부.’
그러곤 다시금 키보드 위로 손을 옮겼다.
잠시 멈춰있던 손가락들이 무언가가 떠오른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경매장에서 필요한 거 없어용?] [ㅋㅋㅋ 만난김에 제가 사다드릴테니] [노필요?] [장비들은 대강 구해서 아직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참, 그러면 그냥 검색 한 번 해주실 수 있을까요?] [검색? 무슨검색?] [경매장에 에픽 장비들 많이 올라와있나요? 거래가능한 에픽템들은 대충 몇 개나 되는지 궁금해서요.]그녀의 고개를 일순 갸웃거리게 만드는 진성의 발언이었다.
‘사람의 온기가 어쩌고 말씀하셨던 어르신이지만 적어도 확인은 할 수 있잖아. 검색은 해볼 수 있잖아. 사는 거야 나한테 부탁한다 치더라도.’
직접 찾아보면 된다.
아예 시스템을 활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아니지. 시스템을 활용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아마도……. 내 예상이 맞다면-.’
그녀는 빠르게 [경매장]을 활용하여 진성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아이템의 개수를 확인하고 그 내용을 진성에게 말하는 순간에도 그녀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하나밖에 없었다.
‘아까 그 아행이라는 버서커. 저 옆에 저 비비라는 캐릭터는 아직 확실치 않아. 하지만, 아마도.’
[그럼 얼른 렙업하시공 ㅎㅎㅎ 빨리 같이 레이드 갈 날이 오면 좋겠네요. 상던이나 아니면 걍 옛날 레이드라도 ㅎㅎ 가급적 빨리] [아, 그거야 저도 좋죠. 순수 님의 실력은 저도 궁금하니까요.] [ㅋㅋㅋㅋㅋ ㅇㅋㅇㅋ 그럼 담에 또 봐욬ㅋㅋㅋ ㅂㅇㅂㅇ] [네, 즐던하세요.]진성의 인사를 들으며 순수는 안경을 치켜올렸다.
그러곤 중얼거렸다.
“이 사람 유저 아니야. 이거 사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