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1)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1화(11/212)
011
진성이 잠시 당황한 사이 라이너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 자는 어디에 사는 누구이며,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을, 나, 엘븐가드의 대장장이 ‘라이너스 스미스’가 확언합니다. 그러니 부디 통행을 허가해주십쇼……. 내가 이러한 내용을, 오늘 처음 만난 자네에게 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진성 자신이 듣기에도 자연히 고개를 젓게 되는 말이었다.
결국 통행증의 발급이라는 뜻은 현대 사회, 진성 자신이 빙의되기 이전으로 따지자면 가장 가까운 것은…….
‘처음 만난 사람한테 보증을 서달라고 말한 꼴이구나…… 욕먹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네.’
진성은 그제야 생각났다.
실제로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시나리오에서도 유저의 캐릭터가 통행증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던가.
‘그란플로리스에 홀로 뛰어 들어간 세리아를 구해냈으니까. 그리고 세리아와 함께 요정의 마법진을 정화하고……. 사실상 문제를 해결해주었으니까.’
그 일로 말미암아 라이너스에게 신뢰를 얻었을 테고, 하물며 홀로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뛰쳐나가겠다는 세리아가 걱정되어 유저를 함께 보내기 위해 통행증을 만들어 준 셈이다.
그것을 합당한 이유도 없이, 그냥 덜컥 달라고 했으니 통할 리가 없는 것이다.
“으흠, 이해했을 거라 믿네.”
라이너스의 눈초리가 조금 전보다 다소 차가워진 게 기분 탓만이 아니라는 걸 진성은 느낄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그에게 있어서는 현실, 마주 보고 있는 사람의 표정을 통해 어느 정도 가늠하는 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레인저 유저도 나를 보고 눈빛이 빛난-. 아니, 이런 생각 할 때가 아니야. 라이너스가 이대로 떠나면 안 돼. 어떻게든 벨 마이어 공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행증을 발급받아야 하는데, 그러면…….’
어떤 수가 있을까.
부탁을 들어준다고 할까? 퀘스트?
진성 자신에게 시킬 일이 없냐고 물어보고 그것을 도와주면 통행증을 발급해줄 수 있냐고 말해볼까?
‘가능할 법도 한데 너무-. 인간적으로 너무 속 보이잖아!’
오히려 의심할지도 모른다.
라이너스는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시작하자마자 만나게 되는 NPC 중 하나라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통행증을 대가로 무언가를 해주겠다는 발언은 오히려 그가 진성 자신을 더욱 의심스럽게 바라볼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방법은!?
이제 라이너스는 완전히 등을 돌려 대장간으로 걷기 시작했다.
따라서 진성은 선택했다.
“그럼 어딜 가는지 모르지만 잘 가게, 대장장이 일에 관심이 있으면 나에게-.”
“크흐흡, 제가…… 제 친구가…….”
“-으, 으응? 갑자기? 친구?”
혼신의 연기를 하기로.
“귀수에 고통받는 친구가 있습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철그럭.
진성은 자신의 왼팔에 있는 귀수 구속구를 만지작거려 일부러 쇳소리를 내었다.
한껏 찡그린 인상은 감정에 젖어 운다기보다 그냥 못생겨 보이는 느낌에 가깝다고 해야 할지.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어떻게 됐나.”
그러나 라이너스는 다시금 진성을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성은 오른팔로 눈가를 스윽, 비비며 마치 눈물을 닦는 척했다.
“그 아픔을 조금이나마 줄여보겠다고…… 유명한 연금술사 선생님이 계신 곳을 찾아간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크흡, 그분이 누구인지, 그 장소가 어디인지 겨우 알아냈지만 저는 지금 가보지도 못하는 상황이지요. 치료는 어차피 불가능하다지만 고통을 완화시킬 약이라도 구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 연금술사 선생은 어디의 누구인가.”
“벨 마이어 공국에 계시는 로톤 막시머그 선생님입니다.”
진성은 말했다.
그리고 라이너스가 숨을 내뱉으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부탁드립니다, 라이너스 님! 평소 존경한다고 말씀드린 건 거짓이 아닙니다! 과거 비명굴 사건 때도-. 4인의 웨펀마스터 중 한 분인 아간조 님과 함께 활약했다는 건 저도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요. 그런 라이너스 선생님께 통행증 발급을 부탁드리는 것은 너무나 염치없음을 알고 있지만……. 크흑.”
물기 젖은 눈망울로 라이너스를 바라보며 내뱉은 기나긴 부탁.
라이너스는 결국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알겠네. 나 또한……그런 사정이라면 모른 척할 수 없겠군.”
그러곤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진성은 확신했다.
‘예상대로야. 먹힌다, 던전앤파이터 세계관 설정이…… 먹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했지만, 그 거짓말이 어디에 기반했는지.
진성이 줄줄이 읊은 것은 모두 ‘게임 던전앤파이터’ 세계관 속 NPC 라이너스의 배경 설정이었던 것!
‘카잔 증후군으로 인한 귀수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친구를 그 스스로의 손으로 ‘편하게’ 해준 이후 검을 놓고 대장장이가 되었다……. 라이너스의 설정은 사실인가 보군.’
어두운 표정으로 종이를 가져와 통행증을 작성하는 라이너스를 보며 진성은 어쩐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통행증을 발급받기 위한 거짓말로 인해 굳이 그에게 좋지 않은 기억을 되새기게 한 것은 아닐지.
‘아니…… 동시에 놀라운 점이라면…….’
그리고 진성 자신이 어느덧 라이너스를 NPC가 아니라 사람으로 대하고 있는 중은 아닐지.
벌써 적응을 마쳤다는 건 아닐 것이다.
벌써 모든 걸 다 받아들였다는 느낌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음……’
진성은 주먹을 움켜쥐어보았다.
새카맣게 변해버린 자신의 양팔은 여전히 어색하게 보이나 그 감각은 자신이 평소 기억하던 움직임과 완전히 같을 때 느껴지는 미묘한 괴리.
“여기 있네.”
“감사합니다, 라이너스 님. 다음에 찾아뵐 때는…… 어디 좋은 술이라도 꼭 가지고 오겠습니다.”
반쯤은 진심으로, 또한 반쯤은 다시금 게임 내 설정의 유효함을 확인할 겸 진성은 말했다.
“음? 껄껄! 나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구만? 그래, 그날을 기다려보지. 자네 여비 하라고 얼마 넣었고……. 또 이거, 받게나.”
“이건-.”
라이너스는 잘 빠진 검 한 자루를 진성에게 건넸다.
“-야이바…….”
착용 레벨 제한 10, 도(刀), 언커먼 등급 무기 <야이바>.
현시점 게임 던전앤파이터 유저들에겐 줘도 안 쓰는 무기일지 몰라도 진성에겐 다르다.
무엇보다 라이너스에게서 해당 아이템을 구입하려면 드는 골드는 또 얼마인지까지 생각한다면.
진성의 가슴에 뻐근한 느낌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리라.
“라이너스 님…….”
“크흠, 뭘 또 그런 눈으로. 여하튼 무사히. 안전하게. 친구를 만나길 바라겠네.”
라이너스는 멋쩍어하며 휙휙, 손을 흔들며 말했다.
통행증만 얻으려 했건만 여비에 더하여 <패왕의 계약> 덕에 당장 이득을 볼 수 있는 무기까지.
과거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저레벨 유저들의 친구이자 스승이자 말동무와도 같았던 NPC를 바라보며 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벨 마이어 공국……. 그곳의 수도 헨돈마이어로 간다.‘
진성 자신이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할지 모르겠으나 그다음 갈 곳은 한 군데밖에 없을 테니까.
* * *
진성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하핫…… 새삼 어이가 없구만.”
라이너스에게 도움을 받았던 엘븐가드는 벨 마이어 공국의 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수도인 헨돈마이어는 벨 마이어 공국의 남부지역에 있다는 설정도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을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는 그저 두 번의, 매우 빠르고 간단한 맵 이동으로 끝내왔던 경험이 떠올랐을 뿐이다.
『그대가 캐릭터 모험가로 겪은 플레인:아라드는 모든 것이 축약되어 있는 바, 실재의 아라드에서, 이곳, 플레인:아라드에서 그대가 그대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길을 찾기를 기원하며.』
“간단하게만 표현했다는 뜻이지. 게임에서는. 음, 그래, 사실 그게 맞지. 그게 맞는데……”
설마 실제로는 몇 날 며칠을 가야만 하는 거리일 줄이야!
플레인:아라드의 드넓은 대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줄이야!
진성 자신도 ‘평범한 인간’은 아니기에,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하루 만에 도착할 수는 없다는 확신이 들 정도였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피로도 무한-. 그 오해 덕분인가? 뭘 먹으면 맛은 느껴지는데 배가 고프진 않아. 아니, 최악의 경우 배고픈 거야 라이너스가 준 여비도 있으니 어떻게 해결하겠다만-. 급똥이라도 마려웠으면 도대체…….’
배변 활동은 어떻게 했어야 할지.
이쯤 되고 보니 네메르가 자신의 말을 잘못 이해하고 축복을 내려준 게 오히려 다행이 아닌가.
내달리면서도 진성은 여전히 자신이 처한 상황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플레인:아라드? 네메르? 부집게? 다크나이트? 루가루 족에게 공격당해서 아팠어?’
게임에서만 겪던 일을 이렇게 현실로서 겪고 있다?
그것도 엄밀히 따지자면 그냥 게임 속으로 들어온 개념에서?
새삼 현실의 무거움과 암울함이 느껴질 만한 생각일 수도 있겠으나 진성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뭐…… 사실 나한테는 잘됐다고도 할 수 있는 건가?”
게임 던전앤파이터로 수입 활동을 했기에 좋아한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던전앤파이터라는 세계관을, 그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진성 자신이 몰입할 수 있었던 게임이었기에 좋아한 것이다.
“후우……. 무슨 부집게니 어쩌고니 하는 것만 아니었어도 제대로 즐길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의미로 보자면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자세가, 진성은 이미 다른 사람과 개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 터.
그것은 당장 진성의 태도로도 알 수 있는 점이었다.
‘미쳤어…….’
빠르게 달리던 진성은 잠시 멈추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러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플레인:아라드, 게임이 아니라 완전히 현실로서 마주한 아라드의 세계에서 진성에게 은근한 기대감과 짜릿한 흥분을 돋아나게 만드는 이유.
‘내가 저런 걸 언제 볼 수 있겠냐고. 한국-. 아니, 세계 어디를 가도 저런 걸 어떻게 볼 수 있겠냐고!’
숲이 울창했던 엘븐가드 때만 해도 별로 느끼지 못했으나, 이제 완전히 개활지로 나와 걷고 있는 지금은 너무나 또렷하게 보이는 것.
“으하핫, 완전 미쳤다니까!”
그것은 하늘 가득히 펼쳐진 대마법진이었다.
비행기가 날아가며 남기는 비행운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선명함이라고 해야 할지.
원형으로 생긴 마법진의 지름을, 지상에 있는 진성이 고개를 들어 살피고 있음에도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 될 정도의 크기라니.
그 크기는 물론, 만든 이에 대한 존경심으로 인해, 여타의 마법진과 달리 ‘대’마법진이라 부르는 게 아닌가!
‘대마법사 마이어가 만든 마법진……. 진짜 엄청나군. 인게임에서 NPC들이 마이어, 하면 껌뻑 죽는 이유가 있었어.’
진성 자신도 ‘본 적’ 있다.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시나리오 퀘스트를 경험하며 대마법사 마이어가 대마법진을 만들어 아라드를 완전히 탈바꿈했음을 보았다.
‘대마법사의 차원회랑, 기억의 도서관에서.’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쥐어야만 했다.
네메르는 말하지 않았던가.
그녀가 진성 자신을 언제 또 불러들일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고.
그러니 자신을 찾아오라고.
‘그때는 그러려니 하고 넘겼지만, 생각해보면……미친 난이도다. 기억의 재현으로나마 존재하는 네메르와 만나기 위해서 가야 할 곳이 바로 그 차원회랑인데.’
레기온 던전:대마법사의 차원회랑.
입장하기 위한 레벨 110 이상.
그리고 모험가 명성 제한 38,095.
남자 레인저 유저가 사망했던 프레이-이시스 레이드보다도 훨씬 수준 높은 곳이다.
그런 곳까지 가야 네메르를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니.
‘후우…… 그래, 일단 마음 편하게 먹고 해보자고. <패왕의 계약>도 무한 적용이잖아. 괜찮아. 할 수 있어.’
엘븐가드를 떠나며 막연하게만 느꼈던 것에 비한다면 지금이 낫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기저에 있는 것은 역시나 수많은 경험에 의거한 자신감이었다.
‘캐릭 하나 만렙 찍고 명성 한 4만 5천까지 휙 내달리는 거야 일도 아니었잖아? 5만 5천 넘어서까지는 좀 까다롭다만 그것도 어둑섬 융합들-. 아니, 당장은 그런 것도 필요 없어. 중요한 건 차원회랑까지! 3만 8천? 참, 나.’
과장하지 않고서도 백 번 넘게 했던 일이다.
물론 그것을 현실에서 이뤄내기는 분명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차 목적지라도 있다는 것, 수치화된 객관적 목표가 있다는 점이 어디인가.
“목표가 눈에 보인다는 점에서…….”
진성은 시선을 멀리 던졌다.
마치 모든 창공에 수평으로 뻗어있는 대마법진만이 진성의 눈길을 끈 것은 아니었다.
멀리 떨어져 있으나 그렇기에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로 눈에 띄는 선線.
대지에서부터 대마법진까지 닿아 있는 수직의 선.
“가보자고.”
진성은 호흡을 고르며 다시금 속도를 높여 뛰었다.
그것은 진성 자신이 목표로 해야 할 레벨과 명성치만큼 어쩌면 까마득한, 말 그대로 하늘 끝까지 닿아있는 ‘하늘성’이었다.
또한 헨돈마이어로 향하는 진성의 첫 번째 목적지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