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12)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12화(112/212)
112
비비는 이란 이름을 들으며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잉? 처음 들어보는데. 그게 센가요? 아행 님이나 진상 님이 했던 것처럼 ‘없는 옵션’을 막 그렇게 하는 느낌으로-.”
“아뇨, 아뇨. 그런 건 아니고. 킬조라고 해봐야 방금 비비 씨가 쓰러뜨린 저 인형 같은 건데요. 본체도 특별한 내용이 없고.”
“근데 그렇게 좋아한다고? 보다 좋아요?”
“흐흐, 지금은 어차피 못 쓴다니까요. 현재 제 레벨대에는 비비 씨가 손을 댄 이 제일 좋습니다.”
같은 레벨 제한의 무기 중 대체 가능한 것은 몇 가지가 더 있었으나 진성은 굳이 ‘비비가 개조했다’는 것을 강조하며 말했다.
실제로 그녀의 손이 닿아 페널티가 사라지며 지금 사용 중인 무기의 성능들이 월등하게 나아진 게 사실이긴 했으나 지금 진성이 강조한 건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흠, 그래야지. 그래서 그거는요? 영혼검 그거는? 뭐가 좋은 건데요? 제가 개조할 거리도 없어 보이는데.”
비비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진 게 진성이 그 부분을 콕 짚어낸 근본적인 원인에 가까울 것이다.
기계로 이루어진 무구가 아니므로 비비의 손을 거칠 필요도 없는 무기, 진성이 을 원한 이유는 결국 하나였다.
“다크나이트를 기준으로 ,그리고스킬 레벨을 전부 2개씩 올려주는 무기입니다. 흐흐.”
과거 게임을 즐기던 진성 자신에게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스킬 증가형 무기였으니까.
액티브 스킬인 후자 두 개야 그렇다 치더라도 패시브 스킬인 의 레벨이 오르는 건 결국 진성의 전반적인 공격력 증가 그 자체를 의미하는 바이므로 그의 표정부터 싱글벙글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유령열차를 탄 보람이 있을 정도니까요.”
진성은 씨익 웃었다.
비비는 그런 진성을 바라보며 잠시 얼굴을 굳혀야만 했다.
‘진짜 뭐랄까. 진상 님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어.’
플레인:아라드에 빙의된 사람들이다.
비비 자신은 물론 진성에게도 이곳은 현실이다.
당연히 좋은 무기, 좋은 방어구, 좋은 아이템은 현실의 생명의 안전을 보장하고 또한 향후의 일처리를 매끄럽게 도울 테니 기뻐하는 게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즐거움에 을 다루는 진성의 표정은 그저 그런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고 해야 할까.
[인벤토리]에 조심조심 무기를 집어넣는 그의 태도를 보자니, 결국 푸핫,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가끔 보면 진짜 던파에 빠진 정도가…… 파핫. 장난 아니네요, 진상 님.”
그저 순수하게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좋아하고 또 즐겨왔던 사람이라는 것을.
그가 말 그대로 이 게임과 함께 자랐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좋아한 사람이라는 것을.
“네? 뭐라고요?”
“아뇨? 아무것도. 하여튼 쭉 치고 나갈 테니 진상 님도 잘 따라오세요!”
비비는 다시 한번 느끼며 유령열차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비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진성에게 있어선 그저 어처구니없는 소리일 뿐이었다.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리를!”
유령열차의 보스 몬스터 ‘빅 고스트 플루’를 비비가 처치하기까지도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점까지도 진성은 아직 아무런 오염의 전조도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 * *
황도군이 사용할 수 있는 해상열차를 탈환했고 그 열차가 달릴 레일 위의 장해물까지 모두 처리한 상황에서, 그 누구보다 기뻐하는 건 역시 황도 수비대장인 젤딘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바로 황녀님을 구출하러 무법지대로 갈 수 있게 되었군요.”
황녀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파악조차 안 된 상황에서도 젤딘은 거침이 없었다.
카르텔 조직의 가장 중요한 본부에 구금되어 있으리라는 기본적인 상식에 더하여, 애당초 현시점에서 해상열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서부 무법지대의 지역은 한 곳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도착역인 헤이즈역에서 폭파 시도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무법지대의 민간 수비대가 필사적으로 막아준 모양입니다. 게릴라전으로 싸우던 그들이 카르텔을 상대로 길게 버티긴 힘들 겁니다.”
해상열차의 정류장이 존재하는 도시, 헤이즈.
젤딘은 그곳을 언급하며 황도군과 반 그리고 비비와 진성의 얼굴을 확인했고 다시금 말을 이었다.
“헤이즈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그들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준비해 주십시오.”
“네.”
비비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황도 겐트의 루프트하펜에서부터 출발한 해상열차는 현재 안개도시 헤이즈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그사이 특별한 문제가 터질 일은 없었으므로 진성 또한 차창을 열고 밖을 살피며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일단 까지 배웠고세트를 입는 것까지는 되었는데…….’
그 외에 아바타 마켓의 힐스에게서 구입했던세트.
타꼬라 이름 지어준 크리쳐 .
그 외에 하늘성과 베히모스 등의 던전에서 주웠던 마법 봉인 해제 악세서리 두 개와 까지.
‘명성은 이제 3천 좀 넘은 건가.’
현시점 진성의 상태는 레벨 62, 모험가 명성 3,283이었다.
그가 초기 목표로 했던 네메르를 만나는 장소까지는 얼마나 더 성장해야 하는가.
당장 레벨은 110에 도달해야 하며 모험가 명성은 38,095가 되어야만 한다.
그 부분까지 떠올리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는 한숨이 나올 법도 했으나 진성은 그리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아직 악세랑 보장, 법석, 귀걸이가 좀 아쉬우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리고 굳이 차원회랑 레기온까지 안 가더라도…… 에픽퀘에서 네메르와 마주칠 가능성도 있다.’
게임 던전앤파이터에 등장하는 던전의 종류는 크게 네 가지다.
일반 던전, 상급 던전, 레이드 그리고 레기온.
이 중 레기온은 특히 여타 게임과 다른 던전앤파이터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던전에서 길찾기를 하며 일반적인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모험 플레이를 전부 배제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유저와 보스 몬스터, 오직 두 존재 간의 사투를 더욱 치열하고 처절하게 구현한 게 바로 레기온이다.
진성이 필요 모험가 명성 38,095를 목표로 삼은 것 또한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레기온 중 하나이자, ‘초월자 네메르’가 보스 중 한 개체로 등장하는 [대마법사의 차원회랑]에 입장하기 위한 조건이었기 때문.
그러나 빙의된 이후 현재까지 아라드를 살아오며 진성 스스로도 깨달은 바가 많았다.
‘당장 내 레벨이 부족하더라도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다. 비비라면 모를까, 지금의 에픽퀘 필요 레벨 기준이면 나는 그 레벨에 도달하지 못했을 거야. 아마 한 개나 두 개가 부족하겠지.’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가 진성 자신에게 그대로 적용되었다면, 지금까지 겪은 사건 중 몇 가지에선 개입조차 하지 못했어야 옳다.
그럼에도 안개도시 헤이즈를 가는 지금조차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은?
‘나만은 모험가 명성에만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차원회랑에서 살아남고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실력과 장비는 갖춰야겠지만.’
또한 일반적인 유저들과 다른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도 알아내지 않았던가.
장비 세트를 착용하고 디레지에의 움직임과 힘의 일부를 진성 자신의 몸으로 발현해내는 일은?
이미 단순히 [모험가 명성]으로는 따질 수 없는 일들을 겪은 시점에서 진성의 계획도 다소 수정되는 게 당연한 셈이다.
“쩝, 그런 면에서는 아행 그 인간한테 고마워해야 하나? 흐흐, 나한테 잘난 척하려고 아주 염병을 했지만……. 미안하게 됐네, 그건 아마 나한테 더 도움이 될 거야.”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배경설정이나 지식, 세계관을 향유하는 방법이나 가능성에 대해서라면 아행보다 진성 자신이 더 잘 해낼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니까.
[클클클…… 그렇다면 나에게 고마워해야 하지 않나, 진성. 네게 힘을 빌려준 자가 누구인지 잊은 건 아닐 텐데.]“일리는 있는 말이지. 고오맙습니다.”
[고마우면 앞으로 더욱…… 더욱 일체가 되어라. 크크,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상쾌함이었으니까.]“음? 너도 그런 감각을 느낀다고? 너, 이씨, 그러다 막 나중에 내 몸을 탈취해가겠다~ 그러는 거 아니지?”
[크크크…… 그게 가능했다면 내가 너에게 이런 말을 했을 것 같나. 나 역시 그런 점이 불가능하다는 게 아쉬울 뿐이군.]“그것도 맞네. 그냥 입 다물고 있으면 될 일이긴 하지. 흐흐, 좋아, 그럼 앞으로 더 ‘시원하고’ ‘짜릿하게’ 만들어주마. 당장이라도-.”
진성은 흐뭇하고도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변태! 진상 님, 혼잣말하면서 웃고 있는 거예요, 지금?”
비비는 기겁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 과장된 언행에 진성까지도 화들짝 놀라야 했다.
“아잇, 깜-짝이야. 벼, 변태라뇨, 무슨 말을 또 그렇게.”
“잉? 변태 같으니까 변태라고 하죠. 히힛, 아참, 젤딘 님이 아까 말하던데. 진상 님은 어차피 알고 있는 일이겠지만.”
비비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진성의 옆좌석에 앉았다.
그러곤 말을 이었다.
“헤이즈에 도착하면 누굴 소개시켜 준대요. 누굴~까?”
“……아르덴 수비대 소속 저격수. 레프트 스트레이트 닐스.”
“역시. 맞아요. 옛날에 사라진스킬의 그 닐스. 근데 무슨 수비대 소속? 별명? 그런 것도 알아요? 나도 방금 젤딘 님한테 들은 걸 까먹은 말을-.”
“음? 아닌데? 그게 그…… 아.”
진성은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하려다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비비야말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반응이었다.
“잉? 뭐가요?”
“아마 비비 씨가 빙의되기 직전 업뎃된 내용일 텐데. 그때 남스핏을 안 키워보셔서 모르겠구나. 이라는 스킬은 라는 스킬로 복원됐어요.”
그러곤 진성은 상세하게 또한 빠르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잉? 잉? 잉? 진짜요? 그거-.”
“그리고 의 닐은 닐스가 아녜요. 이거 가지고 한때 말이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미국 던파의 스킬 명칭을 보면 닐Neil이라고 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닐스Nills가 되면 안 되는 거죠. 닐스가 되면 닐스-나이핑 이라고 읽어야 하나? 아냐, 아냐, 뭘로 읽어도 말이 안 되는 게 맞지. 그래서 이게 로 복구된 다음에 제가 빙의되기 전 업뎃 중 한 번은 그 스킬용 탈리스만을 끼면 ‘레프트 스트레이트 닐스’가 탄피에 비치는 추가 연출이 되는 게 있었는데-. 그게 이제 잘못되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돌아온 스나이퍼, ‘닐 스나이퍼’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스킬 설명에 비해 이미지 효과가 맞지 않는다, 라는 결과가 되는 거라서. 이거 내가 고객센터에 문의도 넣었었던 것 같은데. 답변을 확인했던가, 어쨌던가 제대로 기억이 안 나네. 아, 무슨 말을 하려 했지? 하여튼 우리가 곧 만날 닐스는 의 닐도, 의 닐도 아니라는 것만 알면 돼요.”
바꿔 말하면 비비로서는 그저 어안을 벙벙하게 만드는 말들만 구구절절 늘어놓았다는 뜻이다.
해상열차가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순수하게 게임을 즐겨왔고 또 게임에 집중했으며 게임을 사랑했던 사람이라 생각했건만.
“……”
비비의 입모양이 움직였으나 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요?”
[씹덕과 매니아는 종이 한 장 차이? 클클, 그게 무슨 말인지는 나로서도 모르겠군.]흑구만이 그 말을 듣고 진성에게 일러주었을 뿐.
진성은 어쩐지 뺨이 달아오르는 기분에 허겁지겁 말을 내뱉었다.
“아, 아니, 이거! 이게 바로 그 아행, 그 인간이 알려준 거예요! 어찌나 아는 체를 하던지 막 미국 던파 스크린샷까지 다 캡쳐해서 게시글로 올리면서 나한테 자랑해가지고, 내가 학을 떼다떼다 얼마나 짜증났으면 이런 내용을 다 외우고 있을까! 안 그래요?”
“……고객센터에 문의 넣었다면서요.”
조용히 한마디 꽂아넣는 비비를 보며 진성은 헛기침을 했다.
아행이 알려준 정보라지만 그것을 쭉 기억하다 써먹은 건 결국 진성 본인 아닌가.
진성은 말했다.
“그, 그건- 그래도, 뭐…… 아행 그 인간이 알려줬던 정보가 틀렸던 건 아니니까…… 재수 없는 인간이긴 해도. 인간은 미워하되 정보는 미워하면 안 되잖아요?”
그것을 너스레라 해야 할지, 농담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진심이라 해야 할지.
쑥스러워하는 진성을 보며 결국 비비도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되었다.
“푸훕, 뭔 소리래. 진짜 진상 님은-.”
진성에 대해 그녀는 말하고 싶었다.
─────────────!
“-꺄악!?”
“뭐야?!”
그러나 그 순간, 해상열차의 차창 하나가 폭발하듯 깨져나갔다.
열차 내로 흩뿌려지는 유리조각들이 반짝이기 무섭게 젤딘은 소리쳤다.
“무슨 일입니까!? 기장!”
“모르겠습니다! 헤, 헤이즈에 거의 다 왔습니다만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왜 유리창이 깨졌는지는 저도 모르는-.”
타아아앙────────……!
가늠할 수 없는 거리에서부터 퍼져온 총성이 낮은 데시벨로 울렸다.
안개도시 헤이즈에 있는 해상열차 정류장에 열차가 당도할 즈음이었다.
“……총성? 이건…….”
오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