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15)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15화(115/212)
115
진성이 당황할 요소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첫 번째는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 남성의 행색이었다.
그 총열의 길이와 직경만 봐도 그곳에서 어떤 구경의 탄환을 쏘아낼지, 상상하는 일 자체가 두려움을 줄 법한 대물저격총이 있다.
“저, 저기! 멈춰 보세요! 이렇게 된 이상 대화라도 한번 해볼 수 있을까요?“
그래 놓고 이런 말을 하다니?
지금까지 보였던 행동들은 다 무엇이었나. 해상열차의 유리창을 박살 낸 압도적인 저격을 감행한 사람이 할 말인가?
진성은 을 쥔 손에 힘을 빼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까지 쏴놓고 싸우려고 온 게 아니-.”
파사삿-!
“-라는 말을 믿겠냐고!”
양옆의 덤불에서 소음이 일자마자 진성은 곧장 반응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모든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기에 가능한 움직임이기도 했다.
조금 더 소음이 빠르게 울린 좌측 덤불을 향해 를 단일 스킬로 견제하고, 우측 덤불에 콤보를 사용하며 제압, 다시 좌측으로 몸을 돌리며 상대하려는 동선까지도 진성의 ‘머릿속’에선 물 흐르듯 진행되었다.
털컥.
“읏?“
다만, 미리 예상하고 있었고 동작에 막힘이 없었음에도 진성의 계획은 실현될 수 없었다.
진성은 이미 자신의 턱 밑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은 감촉을 느껴야만 했다.
총구가 자신의 턱 밑에 닿아있다는 것을 ‘본 것’은, ‘느낀’ 이후였다.
[……클클, 내 시선조차도 속일 정도로 숙련된 움직임이라는 건가.]흑구의 목소리에도 긴장감이 어릴 정도의 속도로 움직였다는 뜻이다.
보이지 않은 것은 그가 시야의 사각으로 접근했다는 의미이며, 덤불에서 빠져나와, 시야의 사각으로 이동 후 접근, 진성 자신의 턱 밑에 총구를 들이대는 일련의 동작을 능숙하게, 심지어 극히 짧은 시간만에 행했다고 인정해야 할 터.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움직인 자는 모자를 푸욱, 눌러쓰며 중얼거렸다.
“……그러니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쪽 세상의 사람들과는 대화가 안 된다는 겁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진성은 곧장 이해하지 못했다.
말보다도 진성의 시선을 끈 것은 진성 자신의 턱과 이마를 동시에 겨누고 있는, 그가 쥔 두 자루의 총이었다.
‘불그스름한 리볼버…… 던파에 저런 아이템이- 뭐야, 저건 또?!’
그리고 당황스러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른쪽에서 버스럭거리는 소리를 낸 당사자도 있었기 때문이다.
“퉤, 저놈 말이 맞다. 대화가 통할 거라 생각하다니 멍청한…… 그리고 맞출거면 제대로 맞췄어야지. 맞춘 것도 아니고, 빗맞춘 것도 아닌 짓거리를 왜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군.”
금발 머리를 포마드로 발라 넘긴 근육질의 남성이었다.
인상으로 따지자면 세 사람 중 가장 험악했지만 진성의 눈이 휘둥그레진 건 인상 때문만이 아니었다.
‘포신? 전차의 포 같은 걸 들고 다니는 건가? 무슨…….’
그가 양손으로 번쩍 일으켜 세운 것은 총기라기보다는 포신砲身이라고 부르기 적합한 형태였기 때문이다.
그토록이나 위협적인 무기로 그가 진성 자신을 겨누기 시작했을 때, 움직인 것은 최초의 남성이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그리고 검은 라이플까지.
“딱 한 발 스친 거잖아! 원래 위협 사격은 ‘위협’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완전히 엉뚱한 곳에 쏴서도 안 되는 거라- 아니다, 지금 너네랑 무슨 얘기를 하냐. 크흠, 그보다, 저기, 그쪽……분은 이쪽 세상에 사는 사람이죠? 카르텔인가 뭔가 하는 사람들이랑은 도저히 대화가 안 되어서 쫓아냈던 거라, 그쪽 분들도 그런 분들인가 싶어서-. 하여튼,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쪽 분의 움직임이 워낙 예측 불가라 본의 아니게 옷깃에 스치기는 했습니다만 원래 진짜 그러려는 의도가 아니라-.”
“언제까지 그렇게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을 겁니까. 당신이 할 일은 그게 아닙니다.”
모자 쓴 남성은 진성의 이마에 겨눈 총구를 꾸욱 밀며 말했다.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의 인간은 당황해하면서도 진성을 향해 연신 고개를 숙여 보였다.
“-나, 나도 아는데! 그래도 사과할 건 해야지. 이분도 오해하고 계실 거 아냐. 진짜 진심으로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건장한 체격의 금발 남성은 가래침을 바닥에 뱉으며 투덜거렸다.
“없애버리면 오해할 일도 없겠지. 그냥 전부 다 쓸어버리고 가던 길 가자고.”
“그 가던 길을 갈 수 있었으면 왜 이러고 있었겠냐고. 에휴.”
검은 머리의 남성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모자를 쓰고 존댓말을 하는 남성이나, 거친 말투의 금발 포마드에 비한다면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의 인간의 태도가 확실히 다르다는 점.
그뿐만이 아니다.
저들이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고인물 중 고인물이라 할 수 있는 진성 자신에게도 그들에 대한 정보는 티끌만큼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이쪽 세상’이라고?’
도대체 이들은 누구인가.
단종된 아이템을 떠올려보지만 들어맞는 것은 없다.
일견 비슷하게 생긴 아이템의 이름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것으로 확신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존재 자체를 이해할 수 없으니, 그런 방식으로 덜컥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쪽 세상이라는 표현이 좀 어색하긴 하지만-. 뭐, 핀드 워와 같은 배경…… 프레이-이시스를 비롯해 사도들이 원래 있었던 행성의 생명체들이라 생각하면 던파에서 사용할 법은 하다. 문제는 그게 아니야.’
진성의 눈에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인간에 가깝다는 것이고.
인간형 NPC는 아라드, 천계, 마계, 선계를 비롯해 거의 모두 알고 있는 진성의 기억 속에 이러한 인물들은 없다는 점이다.
즉, 이들이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NPC가 아니라면 누구라는 걸까.
[크크크…… 재미있군. 다른 행성에서 오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이 녀석들이 또 다른 사도라는 의미인가.]흑구는 중얼거렸다.
‘그럴 리 없어. 이제 와서 사도? 말도 안 돼. 게다가 인간이잖아. 이건 아무리 봐도 그냥…… 인간이야.‘
진성은 말로써 답할 수 없기에 작은 동작으로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그러곤 겨우 입을 열엇다.
“당신……들은 누구죠?”
그때까지도 티격태격하던 세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진성을 향했다.
검은 머리의 남성은 서글서글한 웃음을 머금은 채 주절거렸다.
“저기, 뭐라고 해야 할까요. 어…… 일단 공격하려던 건 미안하게 됐습니다. 진짜 그러려는 건 아니었고. 카르텔이라는 길드 사람들한테 물어보려는 거였는데 다짜고짜 공격하고 쫓아오길래 말이에요. 그쪽 분이 탑승하고 있던 그 열차에서도 제법 강한 기운들이 느껴져서 차라리 미리 위협 사격으로 내쫓아버리자는 의견이었던지라-.”
“뭘 그리 주절주절 다 말해주는 겁니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역시나 그의 지나칠 정도로 공손한 태도를 깨는 건 모자 쓴 남성이었다.
그 뒤를 따라 금발의 남성이 진성의 앞에 우뚝 섰다.
“너, 여기가 어딘지 말해라.”
그들은 진성이 원하는 답을 해주지 않았다. 진성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그들이 말한 게 사실이라면 또 하나의 가설이 세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쪽 사람이 아니야. 플레인:아라드의 사람이 아니다?’
이들 또한 플레인:아라드의 인간이 아니라는 점.
그렇다면 여기가 천계 서부 웨스피스 지역이라느니 하는 말 따위는 어차피 아무러 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
무엇보다 이곳에 플레인:아라드라는 식의 설명을 할 수나 있을까.
어쩐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대치 상황에서, 그 답답한 가운데서…..
──────────…….
진성은 보았다.
빛과 함께 허공에서부터 실루엣이 내려오는 모습에 가까웠다.
검은 장발을 늘어뜨리고 있으나 그저 검기만 한 게 아니라 마치 머리카락 안에 우주가 보이는 것과 같은 미청년의 발이 땅에 닿았다.
그는 입을 열었다.
“우리는 어딘가를 향하는 중이었습니다만 정체를 모를 힘에 의해 갑작스레 이곳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혹시 어떤 경우인지 알고 있는지요.”
딱딱하면서도 공손한 태도의 질문이었다.
그 질문이 결정적이었다.
지금까지 주절거린 검은 머리의 남성에게서 획득한 정보와 그것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듯 투덜거린 모자 쓴 남성과 금발의 남성이 보인 반응까지 더한다면.
진성은 마른침을 삼키며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혹시 당신들은 강제로 전이된 건가요? 아니면 빙의? 다른 차원에서부터 온 겁니까?”
조금 전 말을 건 장발남, 검은 머리, 존댓말남, 금발 포마드.
네 명 모두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 * *
그 이후 진성은 멀뚱멀뚱 네 명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크크……. 차원의 틈에서 ‘진정한 나’와 갈라진 이후 많은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만큼 신기한 경험도 드물군.]흑구는 중얼거렸다.
그동안 흥미롭거나 놀라운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가 흥분하거나 또는 감탄한 적은 있었지만, 그가 대놓고 ‘신기한 경험을 했다’라고 말하는 적은 처음이 아닌가.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해 딴죽을 걸 수도 없었다.
진성 자신으로서도 플레인:아라드에 빙의된 이후 제일 신기한 상황을 맞이했다 봐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빙의라는 개념이라면 역시 우리가 어딘가에 덧씌워졌다는 거 아냐?”
“빌어먹을, 우리를 강제로 전이시킬 수 있는 놈이 있다고? 아무리 우리가 밖으로 나왔다지만 이 정도의 차이가 날 리는 없을텐데…….”
“하지만 이게 현실입니다. 차원이라는 단어와 빙의 그리고 전의라면 환영이나 꿈 같은 건 아니라고 봐야할 겁니다.”
“그러니까. 젠장, 이걸 완벽하게 확인한 정도로 좋아해야 하나…… 결국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 사람도 모르는 것 같고.”
세 남자가 쑥덕거렸다.
진성 역시 그들이 빙의나 차원 등의 표현을 즉각 이해하는 모습에서, 게임 던전앤파이터와 관련된 인물이 아니라는 걸 다시금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당신의 그 힘으로도 안 되는 겁니까.”
한참을 떠들던 세 사람 중 모자 쓴 남자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 대상은 허공에서 내려왔던 미청년이었다.
“힘의 역량이 다르다. 몇 번이나 내 힘으로 문을 열고자 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던가.”
그는 근엄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곤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힘을 강화할 수 있다면. 내 힘을 완벽하게 발현시킬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그가 바라보는 사람은 진성이었다.
진성은 볼 수 있었다.
자신과 눈을 마주친 그의 눈동자가 스르륵, 스르륵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진성 자신의 몸과 어깨, 다리를 살피는 시선을 보내고 있음을.
‘흑구를……눈치챘나? 힘 어쩌고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고…….’
다크나이트의 검은 팔은 호기심이 생길 법한 외형이라지만 팔만이 아니라 전신을 살피는 건 역시 흑구, ‘검은 질병의 디레지에의 자아’를 인지하고 있는 건 아닐지.
“당신은 힘을 지니고 있군요. 맞습니까?”
“네? 저요?”
진성은 갑작스레 자신에게 말을 거는 미청년에게 당황했다.
뒤에서 여전히 옥신각신하던 검은 머리와 금발 포마드도 미청년의 태도에 당황한 듯 반응했다.
검은 머리가 물었다.
“왜요? 그 사람이 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마도……. 그럴 겁니다. 이 자는- 제 직감이지만 분명 저와 비슷한 기운을 다룰 수 있는 잠재력이 있어 보이니까요.”
“엥? 지, 진짜로? 아니, 어떻게 그런…….”
“자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 이자에게 묻고자 하는 겁니다.”
미청년은 그에게 공손히 답했다.
금발 남자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끼어들었다.
“말도 안 되는- 그럼 인간이 아니라는 건가?”
“그런 뜻이 아니다, 네 녀석은 잠자코 따르도록.”
그에게는 얄짤없다는 태도로 또 반응하는 미청년.
이제 진성은 그들의 관계성에 대해 이해하길 포기했다.
어차피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진성 역시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과 비슷한 기운……?’
사박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미청년은 진성 앞에서 다시금 물었다.
“당신이 차원의 힘을 다룰 수 있음을 자각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진성,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다크나이트’를 움찔하게 만드는 질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