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16)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16화(116/212)
116
진성은 미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는 분명 ‘자신과 비슷한 기운’이라 말했다.
그러곤 차원의 힘을 다룰 수 있는지, 자각하고 있는지 진성 자신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차원의 힘을 다룰 수 있다는 말이잖아.’
눈앞의 미청년에게는 이미 그런 힘이 있다는 뜻일 터.
진성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아마도……그럴 겁니다. 제 스스로 힘을 쓸 수는 없는 상태지만.”
“역시. 그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나머지는 내가 할 수 있을 테니.”
“음? 나머지라는 게-.”
진성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발언과 동시에 그는 느릿한 동작으로 손을 내밀었다.
잠깐 사라졌던 긴장이 진성의 몸을 휘감았으나 청년은 오히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할 뿐이었다.
“우리는 원치 않는 힘에 이끌려 이곳에 떨어졌지요. 그리고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라도……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진성은 잠시 생각했다.
현재까지 습득한 정보에 의한다면 이들은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인물들이 아니다.
그리고 플레인:아라드로 강제 이동되었다.
심지어 어느 정도인지 모르나 차원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인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에 휘말렸다.
이 모든 상황을 ‘그들’의 입장이 아닌 ‘진성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내릴 수 있는 결론이 하나 있다.
진성 자신의 입장에서, 에 입각하면, 이들은 모험가에게 결코 모습을 드러내선 안 되는 인물들이다.
모험가뿐만 아니라 플레인:아라드의 주요 인물 중 그 누구와도 접촉해선 안 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이들을 강제로 플레인:아라드에 전이시킨 자.
“혹시 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그것은 밖에 없다.
진성에게 안타까운 점이라면 네 사람 모두의 표정만으로 이미 대답을 들은 것과 같다는 것일까.
“……모르겠군요. 그러나 당신이 추측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아마도 그것이 맞을 겁니다. 적어도…… 내가 완전한 힘을 낼 수 없도록 제약하고 또한 대항할 수 없게 만드는, 압도적인 힘의 근원이라고는 볼 수 있겠지요.”
미청년은 말했다.
“협력해주겠습니까.”
그러곤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진성은 잠시 고민하다 어쩐지 웃음을 흘릴 뻔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나 독특하고 황당한 상황에서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발상이 이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제가 얻을 수 있는 건 뭐죠?”
도와준다면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게 무어냐.
미청년마저 잠시 당황 시킬 정도로 당돌하고도 뻔뻔한 발언이 아닌가!
“그, 그건…… 저희가 당장 드릴 것은 없는 데다……. 가 무엇인진 모르나, 우리를 강제로 끌어올 정도의 힘을 지닌 존재라면 우리가 이곳에 무언가를 남기고 가는 걸 용납지 않을 겁니다. 안 그런가요.”
그것은 눈앞의 미청년이 얼마나 똑똑한 부류의 존재인지를 나타내는 답변이기도 했다.
진성에게는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다. 무엇보다 애당초 진성 자신도 그들에게서 물질적인 무언가를 받고자 한 건 아니었으니까.
“크흠, 그러면, 뭐…… 제가 차원의 힘을 자각해서 완전히 다룰 수 있게 된다거나? 그런 식으로는요?”
차원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되느냐.
진성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이쪽이었다.
“확답드리기 어려우나…… 적어도 지금보다 더 생생하게 느끼게 될 겁니다. 그러한 종류의 힘이란, 그러한 방법으로 단련되기도 하니 말이지요.”
미청년은 답했다.
진성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답변이었다.
해봐야 알겠으나 어찌 되었든 눈앞의 미청년이 거짓을 말하는 존재가 아님을 인지하고 있기에, 진성으로서도 일말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셈이었으니까.
“그럼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손을.”
진성의 물음에 미청년은 짤막이 답했다.
진성은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검지가 서로 맞닿았을 때.
일련의 소란이 일었다.
“우, 우왓!? 저 사람 눈이-. 저기요! 님 눈이 뭔가, 좀!”
“마魔? 아니, 그럴 리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어떻게 된 거냐고. 된 거야? 이제 된 건가, 용대가리?”
세 명의 남성들은 모두 진성을 바라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진성으로서도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눈…… 내 눈?’
그러나 자신의 눈동자를 자신이 볼 수는 없다.
그들이 어째서 자신의 눈을 보는지 진성이 의아함을 가졌을 무렵.
───────────……!!!!
갑작스레 맞닿은 손가락 끝에서 빛이 폭발했다.
빛의 굴절률 이상처럼 보이던 모든 현상이 사라졌다.
역안黒白目이 되었던 진성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흐앗!?”
이어서 금빛의 광휘가 진성의 몸을 후려치듯 쏟아졌다.
그것이 레벨 업 이펙트라는 것만으로도 당황스럽건만 진성을 더욱 경악하게 만든 일은 또 있었다.
눈앞의 모두가 동시에 사라졌다.
“이렇게 바로 사라지는-……. 아?”
허공에서 오염을 나타내는 카드가 팔락거리며 떨어지는 중이었다.
* * *
진성은 카드를 살피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지금껏 오염에 대해 많은 경우를 겪었으므로 이제는 얼추 다 알게 되었다고 여길 정도였다.
‘오염에 대해 이렇게까지 다른 패턴이 등장했다……?’
오염된 인물이 등장하는 것도 이해했다.
오염된 물체가 등장하는 것도 이해했다.
그 외의 비생명체, 비물질적인 것까지도 오염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았다.
진성에게는 당혹스러운 사건들이었지만, 궁극적으로 그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또 이해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하나였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던파 안에 있는 거였어. 오염된 대상의 본질은 하나같이…… 던파 안에 존재하는 인물이자, 물체이자, 상황이자, 개념이었다.‘
[차원의 꼬임으로 길 잃은 자들(오염)]“……근데 이게 뭐냐고 도대체. 이런 얘기는 한 번도 없었잖아.”
차원의 꼬임? 이런 개념은 게임 던전앤파이터에 존재하지 않았다.
차원의 왜곡으로 해당 차원이 분열되는 경우까지 유저의 입장에서 겪었던 진성이기에 알 수 있다. 이런 문구는 쓰인 적이 없다.
따라서 진성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생각할 수 있다.
차원의 꼬임에 의한 것이든 길을 잃은 것이든 그들이 플레인:아라드에 발을 딛게 된 경위는 결국때문이다.
그들이 떠남과 동시에 카드가 나온 게 증거이니, 그 부분은 빼도 박도 못할 사실이다.
‘는 왜 그들을 이곳에 불러들였을까?’
는 그들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그들을 이곳으로 부른 이유는 뭐지?
‘만약 알고 있었다고 한다면. 가 이 상황마저 계산한 거라면…….’
가 보기에 그들의 정체, 실체 따위는 진성이 알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카드에 그들의 정체 따위를 쓰지 않고 뭉뚱그린 것도 진성에게 중요한 건 그들의 정체가 아니라 말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중요한 것은?
방점이 찍혀야 하는 곳은?
“……의도.”
[크크, 무슨 소리지.]진성은 도달했다.
그 정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사이의 과정으로부터 유추해야 한다면 나올 수 있는 답은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저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인 의미. 진의가 무엇인지를…… 읽어내라는 거야. 이 오염에 어떤 의도를 품었는지, 나보고 생각하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가 나한테 메시지를 보낸 건 아닐까?”
길 잃은 자들과의 만남, 일견 쓸데없어 보이는 ‘오염’에 숨은 뜻은 이러한 메시지가 아닐까. 그것이야말로 가 진성 자신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었을지.
진성과 흑구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흑구가 먼저 말했다.
[그래서…… 진의가 무엇인지,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 것 같나?]진성은 곰곰히 생각했다.
그러다 푸우, 숨을 토해내야만 했다.
“그게 문제이긴 해. 전혀 모르겠는데? 뭐 어쩌라는 거지?”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라는 문제는 읽어냈건만 정작 그 문제의 답에 대해서는 아직도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진성에게는 그것만 붙잡고 있을 여유도 없었다.
“진상 님! 괜찮아요? 그쪽은 잘 끝났어요? 총성은 더 이상 안 들리는 것 같은데, 괜찮은 거 맞죠? 아니, 무조건 괜찮겠지, 진상 님이라면. 그래서 언제 올 건데요?! 우리 지금 닐스 만났는데! 민병대랑 합류해서 카르텔 조지는 중!”
진성의 두개골을 웅웅거리게 만드는 재잘거림이 들렸기 때문이다.
빙의자들 간 귓속말은 어떻게 되는가.
[싸우자!] 상황에서 순수의 간섭 이후 진성과 비비는 그것을 테스트해봤고, 다행스럽게도 빙의자들 간의 귓속말 또한 유저와의 귓속말처럼 통한다는 것을 확인한 상황.진성과 비비가 해상열차의 정거장에서 서로 갈라질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이것이 가능했기 때문이었으니.
진성은 양손을 그러모아 입 앞에 댄 채 말했다.
“알았어요. 아마 이제 이리가레가 나오는 던전일 테니 비비 씨도 조심하고-.”
“우왓! 진짜다! 저격수가- 갑자기 민병대원 하나가 쓰러졌어요! 진상 님이 내쫓은 이리가레가 벌써 여기까지 온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 에휴, 하여튼 은폐, 엄폐 확실히 하고 기다려요. 지금 갈 테니까.”
“넵!”
비비의 호들갑으로 보아 그녀의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는 원래의 흐름대로 진행되고 있을 터.
진성은 카드를 조심스레 주머니에 넣곤 몸을 풀었다.
[클클, 또 한 번 저격수라는 존재를 상대하러 가는 건가. 흥미롭군.]“글쎄, 근데 별로 재미는 없을걸?”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진성?]기대와 흥분을 섞어 말하는 흑구의 목소리를 들으며 진성은 피식, 웃었다.
아직 이리가레를 상대하지 않았음에도 결국 그쪽이 원래의 흐름대로라면, 적어도 진성에게 하나 확신할 수 있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방금 상대한 자들에 비하면 이리가레의 수준이 한참 더 낮을 테니까. 모든 저격수가 다 3킬로미터 밖에서, 그것도 무슨 위협사격을 의도대로 할 정도의 실력을 지닌 건 아니거든.”
[크크…… 해본 적이 있는가.]“저격총은 다뤄본 적 없지만 나도 육군 병장 만기 전역……이라고 말해봐야 어차피 모르겠지? 흐흐, 하여튼. 이상한 사람들이었지만 실력이 있는 건 확실했으니까. 만약 위협사격만을 하려 했다는 그 말이 진짜라면…… 일부러 다 틀려서 시험 점수 0점 맞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거거든.”
[차원의 꼬임으로 길 잃은 자들]에 비한다면.조금 전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검은 머리의 남성과 그 일행에 비한다면.
고작 카르텔 소속이자 지젤에 의해 그 사체가 개조당한 저격수, 이리가레 정도는 한참이나 부족한 실력을 지니고 있을 테니까.
진성은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비비와 합류하며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면면을 확인했다.
* * *
진성이 예상한 대로 정체 모를 자들보다 압도적으로 상대하기 쉬웠던 저격수 이리가레를 다시금 처치.
카르텔 본부로 향하는 길목에 설치된 ‘불운의 문門’의 문지기 펫불 즈죠를 상대하며 개문.
진성의 우려 중 하나였던 ‘문이 열리지 않는 오염’ 따위는 발생하지 않아 다행스러운 상황에서, 한때 아르덴 수비대원이었으나 카르텔로 배신한 페요 피에르를 격퇴.
그 와중 이리가레가 다시금 등장하여 모두가 깜짝 놀랐으나 그녀를 다시금 쓰러뜨리며 그 정체가 ‘사체를 개조시킨 안드로이드’였음을 확인하며 카르텔에 대한 분노 격앙.
분노와 더불어 고무된 사기로 젤딘과 황도군 그리고 ‘모험가’ 비비와 진성은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카르텔의 고위 조직원이자 카르텔이 납치한 천계의 황녀, 에르제의 행방을 알 법한 인물.
“젠장, 내가 이런 실수를…….”
스틱 반 플라틴을 생포하는 데 성공했다.
레프트 스트레이트 닐스는 포박된 스틱 반 플라틴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잡기는 했다만 이 녀석이 쉽게 입을 열 것 같진 않아. 도대체 무슨 수를 쓰겠다는 거지?”
카르텔의 고위 조직원이다.
무법지대에서 구르며 살아왔던 인물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쉽게 내뱉을 리는 없다.
그 점에 대해서는 비비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게요? 어떻게 하시려고?”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 진성과 젤딘만이 굳은 얼굴을 했다.
그는 죽더라도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황녀에 대한 정보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결국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자백제입니다. 세븐 샤즈의 멜빈 님이 만든 특제 자백제지요. 저도 이런 방법까지 쓰고 싶진 않지만 시간이 없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젤딘이 엄숙한 태도로 자백제를 꺼내 들곤 스틱 반 플라틴을 끌고 격리된 방으로 이동했다.
진작부터 멜빈에게 준비토록 할 정도로, 황도의 수비대장은 모든 각오를 마치고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잉? 자백제라는 건 너무-.”
“쉿, 비비 씨. 굳이 말하지 말아요.”
“-…….”
비윤리, 비도덕, 비합법.
그러나 황녀를 납치한 게 누구이며 그런 황녀를 구하기 위해 나선 건 또 누구인가.
닐스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다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카르텔을 상대로 저런 자백제를 쓴다는 게 썩 마음에 들진 않아. 내가 스틱을 동정하기 때문은 아니야. 이건 뭐랄까……그래. 총잡이의 방식이 아니야.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
고요해진 막사를 나가는 닐스의 뒷모습을 진성과 비비는 바라보았다.
누가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던파 스토리가 이렇게 무거운 줄은 처음 알았네요.”
비비는 조용히 말했다.
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단 사도와 시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인간일지라도 세력과 세력의 갈등은 언제나 있는 법.
플레인:아라드가 그저 즐겁기만 한 꿈의 세계가 아니라는 점을 새삼 느끼고 있을 때.
펄럭, 막사의 천막을 젖히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이런, 이런, 카르텔의 본거지까지 와서 초상집 분위기인가.”
정돈되지 않은 백발을 쓸어 넘기는 늙수그레한 모습이지만, 안대를 끼고 있는 그 얼굴을 본다면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자.
“베릭트.”
과거 카르텔 소속이었으나 지금은 카르텔을 떠난, 모래바람의 베릭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