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17)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17화(117/212)
117
진성에게는 그다지 놀랄 것도 없는 등장이었다.
오염을 의심할 필요조차 없었다.
‘모래바람의 베릭트……. 그치. ‘새벽의 눈동자’ 엔조 시포와 겨뤄줘야 할 테니.’
이 시점에 등장하는지에 대해선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아무튼 카르텔과의 한판 승부를 위해 그가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란 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백을 받았습니다. 란제루스가 카르텔 사령부로 황녀님을 끌고 간 모양입니다. 사령부의 위치도 알아내서 지도에-…… 잠깐, 베릭트!? 당신이 어떻게 이곳에 온 거죠?”
베릭트의 등장에 호들갑을 떠는 건 단연 젤딘이었다.
황도에서부터 그와 티격태격했던 수비대장이 여기서라고 조용할 리는 없었던 것.
베릭트는 눈을 부릅뜨는 젤딘을 바라보면서도 콧방귀만 뀌었다.
“카르텔의 본거지로 간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밀항이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어찌어찌 말이 잘 통하는 남자가 있어서 쉽게 왔지.”
그러곤 턱짓했다.
젤딘으로서도 뭐라 할 수 없는 사람 중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반 님…….”
“적의 약점을 알고 있다기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만.”
어느새 막사로 들어와 베릭트의 뒤에서 슬그머니 나타나는 인물은 반 발슈테트였다.
멋쩍은 웃음을 머금은 그의 행동은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베릭트가 도움이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젤딘의 불안에만 동조할 필요도 없기 때문.
비비마저도 입을 다물고 나서지 않고 있지 않은가.
‘반이라…… 인게임에서도 그냥 이렇게 휙 넘어가고 말았었는데. 이것마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겠지.’
유일하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진성밖에 없었다.
빙의되어 아라드를 현실로 살아가게 된 이후, 진성 자신의 게임 던전앤파이터와 관련된 기억 중 가장 이질적인 사람을 떠올릴 때 반드시 들어갈 사람이 바로 반 발슈테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은 무언가를 검증할 방법이 없다.
또한 베릭트가 이곳에서 함께하는 일 자체는 진성의 기억에도 있는 올바른 흐름이므로 그저 넘어갈 수밖에.
베릭트는 말했다.
“흠, 시끄럽게 떠들고 있을 시간이 없을 텐데. 나 역시 한가한 마음으로 온 것도 아닐세. 카르텔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내 손으로 마무리 짓고 싶네. 시포와도 할 말이 있고.”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전력이 늘어나서 나쁠 건 없지 않겠습니까?”
반도 어깨를 으쓱이며 거들었다.
젤딘은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좋습니다. 한번 믿어보지요. 하지만 단독 행동은 허가할 수 없습니다. 모험가님, 베릭트를 감시해 주시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네. 맡겨주세요. 오히려 제가 부탁하고 싶었으니까.”
비비는 즉답했다.
평소처럼 통통 튀는 언행은커녕 마치 기다렸다는 듯 베릭트와 함께 다니겠다는 비비의 태도에선 진성이 다소 놀랄 정도였다
비비는 그런 진성의 눈빛을 이해했다는 듯 잠시 당황했다.
“왜, 왜 그렇게 봐요? 베릭트 님한테 배울 게 있어서 잘됐다 싶은 건데. 제가 잘못했어요?”
“아뇨, 잘못했을 리가. 그나저나 배울 거라니? 기계, 공학, 뭐, 이런 쪽 스타일이 아닐 텐데 비비 씨가 배울 게 있다고요?”
진성은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었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네, 총…… 사격 실력을 더 키우고 싶어요.”
황도 겐트를 지났고.
루프트하펜에서 해상열차를 탔고.
이곳, 서부 무법지대에 오기까지.
비비도 느낀 바가 있었다는 것을.
그저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만이 아니라, 말 그대로 스스로를 단련시키기 위해 실력을 쌓고 싶다는 그녀의 선언이야말로 진성의 눈을 휘둥그레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 기특한…….”
진성이 말을 차마 잇지 못할 정도의 각성 또는 깨달음이라고 해야 할까?
비비도 그제서야 민망했는지 괜스레 안경을 스윽 고쳐 쓰며 고개를 돌렸다.
“지난번처럼 아행 님이든 누구든 만났을 때…… 나도 진성 님한테 방해가 되긴 싫으니까.”
그러곤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여러 몬스터를 상대하며 전투 기술만이 상승한 게 아니다.
스킬의 숙련도만 늘어난 게 아니다.
벌써 여러 명의 빙의된 모험가를 만났음에도 그녀의 마음속에서 깨지 못했던 또 하나의 껍질을, 마침내 그녀는 깨고자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네? 뭐라고요?”
다만, 그 말을 진성에게는 들리지도 않게 말했을 뿐이다.
비비는 민망함을 감추며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 그나저나 저기,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요? 베릭트 님이 알려주시려나?”
“……비비 씨가 그런 것까지 신경 쓰기 시작했다니……그거야말로 기특해서 눈물이 날 지경-.”
“장난치지 말고요!”
“크흐흐, 알았어요. 얘기는 내가 해줄 테니까.”
“진상 님이…… 베릭트 님한테 그런 말을 해줄 수 있어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고. 자, 자, 얼른 갑시다! 베릭트 님, 잠시만요! 같이 가시죠!”
진성은 먼저 막사 밖으로 나간 베릭트를 뒤쫓았다.
비비의 팔목을 잡은 채.
비비는 자신의 팔목을 붙잡은 진성의 손을 응시하는 중이었다.
* * *
상황이 상황인지라 교육이 느긋하게 이루어질 리는 없다고 생각했으나 베릭트의 가르침은 진성의 예상보다 어려웠다.
“늦어. 리볼버가 아니라 힘들다는 핑계는 필요 없네.”
“네, 넵! 더 빨리 뽑으라는 말씀이시죠?”
“그래. 그리고 신체 어느 부분을 기준으로 고정할지도 항상 생각하며 뽑게나. 우리가 괜히 허리춤에서 방아쇠를 당기는 게 아니야. 어느 자세에서, 어떤 속도로 총을 뽑던 같은 위치에 오게끔 만들어야지. 허리 총 자세를 하라곤 하지 않겠네. 그러나 자네 총기의 무게 중심을 감안하여 최적의 위치를 정했다면 언제나 같은 자세를 취하도록.”
분명 예시를 보여주긴 하지만 멈춰서 하는 것도 아니다. 걸으면서 또는 뛰면서.
갑작스레 속도를 높이거나 늦춘 즉시 반응하는 그의 행동은 사실상 실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비비는 그런 베릭트의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을 쫓아가며 익숙지도 않은 사격 훈련을 하는 중이었으니.
그 와중에도 자신의 이론을 주장하는 것 또한 잊지 않는 그녀였다.
“근데 이렇게 해서 정확도가 떨어질 바에는, 느리더라도 제대로 조준하고 쏘는 게 낫지 않나요?”
“……총기의 성능이 좋고 교전 거리가 멀다면 그게 나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조준하는 사이 자네 몸은 강철판으로 뒤덮이기라도 한다는 겐가? 이렇게나 바위가 많고 은, 엄폐물이 많은 카르텔의 본진에서 그런 식으로 싸울 수 있겠나?”
“음…… 그치만 목표물을 맞히려면-.”
─────, ─────, ─────!
비비의 말을 끊으며 베릭트는 순식간에 삼 연발의 탄환을 토해냈다.
그것이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진 선인장 세 그루에 제각기 적중하는 모습은 진성으로서도 눈을 휘둥그렇게 만드는 행위였다.
포연砲煙이 미처 사라지기도 전, 허리춤에 자리하고 있던 그의 리볼버는 이미 홀스터 안에 꽂힌 상태였다.
“신속한 지향사격Hip-fire에 의한 적의 움직임 봉쇄, 사격 지연 유도 그리고 허둥지둥하는 적을 향한 정확한 한 발. 내가 조금 전 말한 자세, 같은 위치에서의 지향사격을 거듭하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사선射線이 보이게 될 거네. 그 지경까지 오른다면 정확도도 확보할 수 있는 게지.”
비비는 감명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분명 자신의 강단으로 이론을 주장하지만, 그 이론과 대척하더라도 실증할 수 있는 사건이 나온다면, 이런 식으로 즉각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 느낌으로…… 단순히 타겟을 쏴서 맞춘다는 개념만이 아니군요. 실전용 사격은.”
“당연한 소리를.”
“그럼 레이저 포인터 같은 걸 달아도 괜찮겠는데. 아, 하지만 총기를 뽑아서 자세를 취하는 사이 온오프 버튼을 누르는 동작이 추가되니까 결국 더 비효율적이 될 수도 있을 테고, 으음-. 오케이! 일단 이해했습니다!”
물론 그러한 대척 이론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첨가하여 더욱 발전시키려는 방향성까지도.
진성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기계 공학 같은 것만이 특기가 아니라니까. 저런 태도…… 이해력이나 응용력, 유연함…… 게다가 은근히 직감도 좋아.’
비비의 특기를 다시 확인하는 동시에 그녀의 직감 또한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격을 배운다는 측면에서 가장 뛰어난 스승이 누가 될 수 있을까.
‘비비 씨야 전~혀 모르고 말한 거겠지만…… 베릭트 이상으로 사격술을 잘 가르칠 사람도 없을 거다.’
모래바람의 베릭트.
카르텔의 결성 초기부터 몸을 담았으나 현재는 발을 뺀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사격 실력에 대해서는 아는 자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컷씬으로 등장하는 그의 결투 장면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진성은 알고 있었다.
‘흐흐, 하여튼 제대로 된 선생을 고른 거지. 아마 요즘 유저들은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그는 과거 거너 직업군의 스승 격 NPC의 스승, 즉, 사격에서 만큼은 유저들의 스승의 스승과도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으니.
그런 베릭트에게 실전 사격에 대한 노하우와 팁을 속속들이 전수받을 수만 있다면?
‘메카닉이면서도 레인저급의 사격 실력을 갖추게 된다……이 말인가. 으음.’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캐릭터였다면 다를 것이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을뿐더러 바삐 스킬을 전환하는 컨트롤 등을 활용해야 하므로 굳이 ‘평타’ 기반이 되는 사격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비나 진성 자신에게는?
‘그렇게만 된다면. 빙의된 모험가로서는 최강이 될 수도 있겠군.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나도 뭔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검술…… 검술을 배우는 것도 좋지만 아예 그것과는 또 다른 무언가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던 일이다.
다크나이트의 육신으로 아라드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진성이 신경 쓴 것은 스킬의 활용, 콤보의 설정 그리고 다크나이트가 쓸 수 있는 5종의 무기뿐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즉, 진성 자신이 총기를 쓴다면?
‘라이플류라면 얼마든 구할 수 있어. 으음, 그래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뭐, 당연히 순수 같은 유저한테 걸리면 끝장이니까. 함부로 그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겠지. 유저들은 [캐릭터 정보] 보기를 통해 내 상태를 파악할 수 있잖아.’
단순히 제약만 있는 게 아니라 압도적인 위험성을 안아야 한다.
그 위험성을 진성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다면 어떨까.
유저로서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
그리고 아라드를 현실로 살아가는 진성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
진성은 어쩐지 주먹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정작 베릭트에게 가르침을 청한 건 비비건만, 그 말을 들으며 무언가를 깨달은 것은 진성 자신이었으니.
과거 큰 회전會戰이 일었던 도시, 아르덴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진성과 비비 그리고 베릭트는 보았다.
“저놈은 분명…… 란제루스를 따라다니던 꼬마 놈 같은데.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누가 봐도 불량해 보이는 카르텔 조직원 하나.
거의 엑스트라급에 가까워 진성이 그 이름을 떠올리는 데 고생하고 있을 때, 비비는 말했다.
“물어보는 게 빠르겠죠?”
“붙잡아서 물어보는 게 낫겠군. 혼자서 해보게.”
베릭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턱짓했다.
“넵!”
비비는 곧장 달려 나갔다.
베릭트에게서 배운 지향사격을 위주로 하는 실전사격을 곧장 발휘해가면서.
진성은 베릭트를 보며 말했다.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이렇게 자상하게 누군가를 가르쳐주시는 성격이신 줄은 몰랐습니다.”
“……떠나기 위해선 남은 게 있어야 하니까. 이제는 카르텔도 없어질 테니 말일세.”
베릭트는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제야 진성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비비에게 한 수 가르쳐달라는 진성 자신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한 건 그 스스로 쌓아왔던 모든 게 사라져간다 여긴 노익장의 친절 때문이었을까.
진성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래도 남긴 게 없으신 건 아니죠.”
“저 친구 말인가? 자네가 보기엔 그럴싸할지 몰라도 아직 멀었네. 어차피 나야 오늘 알려주고 나면 끝, 내가 저 친구에게 받아낼 마지막 약속은 어디 가서 나에게 배웠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었네만.”
베릭트는 비비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진성 역시 그녀가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베릭트의 제자라기엔 아직 턱없이 실력이 부족함을 알고 있었으니, 애당초 비비 때문에 꺼낸 말은 아니었다.
그것은 동시에 베릭트에 대한 감사의 인사 대신이기도 했다.
“아, 비비 씨를 말하는 건 아니고요.”
“음? 그러면? 자네가 나에 대해 다른 무얼 안다고 내가 남긴 게 있다는 말을-.”
“키리 씨는 잘 있습니다. 아라드에서.”
헨돈마이어에서 강화/증폭기를 두고 장사하는 천계인, 키리 더 레이디.
과거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거너 직업군의 ‘스승 격 NPC’.
모래바람의 베릭트가 마지막으로 키웠던 제자가 바로 그녀라는 것을.
베릭트가 키리와 부지불식간에 헤어져 서로의 안부는커녕 생사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을 진성은 알고 있었으니까.
“무, 뭣? 뭐라고? 지금 자네-.”
“짧은 시간이겠지만 비비 씨에게 많은 전수 좀 부탁드립니다. 아, 기왕이면 저도 좀 알려주시고.”
진성은 씨익,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트레트르를 제압한 비비가 활기찬 동작으로 제자리 점프를 하며 외쳤다.
“됐다! 지향사격으로 딱 이 사람의 무기만 맞춰서 떨어뜨렸어요, 베릭트 님! 빨리! 빨리 와보세요!”
삽시간에 자신의 마음으로 파고든 두 젊은이를 바라보는 베릭트의 등 뒤로 모래바람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