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19)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19화(119/212)
119
진성이 비비, 베릭트와 함께 서부 무법지대의 주둔지로 돌아오자마자 소란이 일었다.
당연히 진성은 그 소란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다.
“이봐, 대장님! 큰일이야. 카르텔 병사 중에 이리가레처럼 개조된 놈들이 있나 봐. 죽은 줄 알았는데 갑자기 다시 일어나서 아군을 공격하고 있어!”
황급히 젤딘에게 보고를 하는 건 닐스였다.
아르덴 수비대 시절부터 현재 서부 무법지대에 남아 안개도시 헤이즈를 지키기까지.
민병대원들과 함께 카르텔과 숱한 전투를 치러온 닐스에게조차 ‘사이보그’는 경악스러운 존재라는 의미였다.
“천계식 좀비라고 봐야 할 것 같더군요. 마법 대신 기계로 시체를 움직이는 느낌이라. 우리가 잡았을 때부터 이미 죽은 상태였을 겁니다.”
닐스와 함께 움직였던 반 발슈테트 또한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
닐스에 비해 조금 덜 놀랄 수 있던 건 이미 황도 겐트에서 개조된 인간들을 보았기 때문일까.
진성은 반의 표정을 살폈다.
‘아니, 어쩌면…… 저 지나칠 정도로 진지하고 침착한 태도는…….’
그저 엄숙한 게 아니라면.
진성 자신의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반의 진의眞意, 그가 굳은 표정을 하고 있는 건 혹시 기쁨이나 기대감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닐지.
사이보그에 대한 우려.
카르텔의 이루 파악하지 못할 전력에 대한 걱정.
다소 적막해진 분위기에서 은근슬쩍 목청을 높일 수 있는 사람은 역시 그녀뿐이었다.
“젤딘 님, 그 시체…… 저도 좀 볼 수 있을까요?”
“네, 네?”
“아니, 꼭 보게 해주세요. 사이보그라니! 심지어 죽은 자를 그렇게 일으켜 세울 정도의 기술력이라니?!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운용했을지 상상도 가지 않거든요. 제가 나중에 만들고자 하는 걸 위해서라도 한번 견학을-.”
“비, 비비 씨?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비비는 눈을 반짝거리며 젤딘의 손을 붙잡았다.
모험가라 할지라도 이토록 당황스러운 제안을 하는 그녀에게 모두가 질린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진성은 재빨리 비비를 말렸으나 그녀는 왜 자신을 말리냐는 듯 진성을 바라보았다.
“잉? 왜요? 사이보그에 대한 얘기만 듣는 거랑 실제로 뜯어보는 건 완전히 다르다고요. 진상 님이 예전에 말한 것 때문이라도 봐두는 게 좋죠!”
“응? 예전에? 제가 뭘 말했나요?”
진심으로 기억이 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는 진성을 보며 비비는 안경을 고쳐 써야만 했다.
“잉? 잉? 잉? 까먹었어요? 그때 그거!”
차마 입 밖으로 내진 않았으나 그녀가 진성 자신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자, 진성 자신이 했던 말. 그리고 사이보그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때 그…… 아?!”
진성은 마침내 깨달았다.
겨우 떠올린 기억에 의한 감탄사 한 음절.
진성의 머릿속엔 곧장 또 다른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매우 서운하다는 티를 풀풀 내면서.
[클클클…… 아? 지금 아? 라고 한 건가, 진성. 차원의 균열 속 나와의 약속이야 지키는 과정 중이었다 쳐도…… 지금의 나에게 말한 것까지 다 잊고 있을 줄은 몰랐-.]“알지, 알죠, 알죠. 아아, 그렇구나. 그건…… 그렇구나. 고, 고마워요.”
흑구에게 변명을 하는지 비비에게 답변을 하는지 또는 둘 다인지.
당황하여 주절거리는 진성을 구원한 사람은 젤딘이었다.
“개, 개조된 병사들은 현재 멜빈 님께서 분석을 하고 계시니 결과가 나오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아, 멜빈 님…… 좋네요. 어차피 이번 일 다 끝나면 한번 만나기로 했으니. 응, 좋아요, 그러면.”
비비는 눈을 반짝거리며 답했다.
젤딘은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정리해주었다.
“개조된 병사라면 몸에 뭔가 심어져 있겠지요. 제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더 중요하겠습니다. 란제루스가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끄는 모양이니, 서둘러 처리해야겠습니다.”
란제루스를 처리하기 위해서라도 사이보그들을 모두 제압, 처치해야 한다는 것.
황도 수비대장의 계획에 따라 진성과 비비 그리고 반 발슈테트를 포함한 인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베릭트는 이미 죽은 친우의 뒤를 캐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이번 작전에서 제외되었으나 그 외의 인물들은 모두 주변을 수색하기에 바빴다.
카르텔 사령부의 위치는 이미 자백제를 활용하여 스틱 반 플라틴의 입으로부터 들었으나, 곧장 사령부로 진격했다 혹여 포위라도 당하면 위험하기 때문.
따라서 몇 개체나 있을지, 얼마나 퍼져있을지 모를 카르텔의 하위 조직원들과 그들을 이끌고 있을 사이보그 개체들을 전부 제압하자는 게 젤딘의 작전이었다.
문제는 함께 움직이게 될 인원들까지 젤딘이 모두 관리할 수는 없었다는 점일까.
“천계에서는 여러모로 바쁜 것 같던데.”
협곡을 오르는 도중 갑작스레 입을 연 것은 반 발슈테트였다.
“잉? 네?”
비비는 갑작스런 그의 발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은 비비를 보며 피식, 웃었다.
애당초 그가 말하고자 하는 대상은 ‘모험가’ 비비가 아니었으니까.
“아니, 모험가 너 말고……. 그쪽 말이야.”
반은 진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걷고는 있으나 조금 전보다 확연하게 느려진 발걸음이었다.
엔조 시포의 사이보그를 찾기 위한 팀을 꾸리는 과정에서 진성, 비비, 반 세 사람이 한 팀으로 묶여 움직인 지 한 시간여가 조금 지난 현재의 상황이었다.
무법지대의 주둔지를 나설 때만 해도 반이 별말이 없기에 진성 또한 오염의 여부를 확인하는 정도로만 주의하고 있었건만.
“마법사 길드에서 보기에 이것도 ‘이상 현상’이라고 여겨지는 건가? 이 정도는 아라드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일 아닌가, 친구?”
우연으로라도 황도군 인원들을 마주칠 일이 없다고 생각한 반이 마침내 입을 연 것이다.
황량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고요한 협곡에서는 바람이 을씨년스럽게 불기만 할 뿐.
“한 국가의 수도가 내부 세력의 반란으로 공격당할 정도의 일은 흔치 않죠.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찾아 나서는지…… 지금까지 황도 근처에서 본 게 ‘무엇’인지 잘 알면서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진성은 답했다. 그의 걸음 또한 느려지고 있었다.
이제 반의 발걸음은 우뚝, 멈춰버렸다.
“하핫, 그런가. 그럼 내가 굳이 이런 말을 꺼낸 이유는 대충 알 테고?”
반은 물었다.
진성은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답했다.
반이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모를 리 없다.
“……아직 ‘보는 눈’이 하나 있기는 한데.”
그럼에도 진성은 조금쯤 상황을 정리하려 했으나 그것을 받아줄 반이 아니었다.
반은 비비에게 말했다.
“그건 내가 처리할 수 있지. 모험가, 잠깐 자리 좀 비켜주겠어?”
“이, 잉? 뭐 하려고요? 진상 님이랑-.”
“아니, 아니, 둘이서 잠깐 할 얘기가 있거든. 그치, ‘진상 님’?”
아무리 눈치가 없는 비비라도 수상쩍은 분위기라는 걸 모를 리는 없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진성을 돕기 위해 나서보려 한 것이었으나 반은 가차 없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모험가마저 뒷전으로 미룬 채 대결 무드를 만드는 반을 보며 진성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마음 같아선 콱 부딪혀버리고 싶긴 한데 말이지……. 사실 별것도 아닐 텐데.’
플레인:아라드에서의 반 발슈테트라는 인물에 대해 완벽하게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유저로서 반 발슈테트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진성이다.
‘죽은 자의 성에서 APC 조력자로 등장할 땐 말이야. 사실 별 도움도 안 되고 발목만 잡았던 성능이었잖아. 잡몹한테도 낑낑거리는 데다 겨우 몰아놓은 몬스터들을 흐트러뜨리기만 해서 스킬을 굳이 몇 번 더 쓰게 만드는- 만약 유저였어 봐, 넌 진짜 파티원들한테 욕 많이 들어먹었을 텐데.’
유저와 APC인 반 발슈테트가 함께 던전을 클리어해나가는 구성의 콘텐츠가 존재했었다.
그 시점의 반은 얼마나 방해가 되던지.
차라리 마음먹고 방해하려는 캐릭터였으면 모를까, ‘모험가’인 유저를 돕기 위해 움직이는 그 인공지능 캐릭터의 허접한 실력은 뭇 유저들을 화나게 만들기 충분한 수준이 아니었나.
그때를 제외한다면 사실상 반 발슈테트라는 ‘인물’과는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도 직접적으로 부딪치거나 겨룬 적이 없다.
향후 데 로스 제국과 직접적인 마찰이 발생하여 모험가가 본격적으로 개입한다면 모를까, 적어도 진성이 빙의되기 전까지의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상으로는 기회가 없었다.
따라서 궁금한 정도로만 따지자면 진성 또한 몸이 달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반 발슈테트의 현시점의 실력은 어느 정도나 될 것인가.
시간이 진행됨에 따라 전반적인 전투력의 인플레이션과 인물의 성장이라는 양 측면에서 반 발슈테트는 모험가를 끈덕지게 쫓아오는 사람이니.
“……시간이 아까우니 지금은 그만두시죠. 카르텔 사건이라도 다 끝나고 나면…… 여유가 생기면 얼마든지 상대해 드릴 테니까.”
그럼에도 진성은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당장 엔조 시포를 찾아야 하는 메인 시나리오의 흐름이다.
그것도 모험가인 비비와 반이 함께 속한 상황에서 그를 찾아내고 제거해야 한다.
함부로 나서서 시간을 끈다거나 동선을 낭비할 필요는 없기에 진성은 참으려 했다.
“핫, 또 그렇게 넘어가고 말 거야?”
“실제로 카르텔의 위협은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으니까요. 마음 같아서야 나 또한 발슈테트 경과 같다는 것만 이해해주십-.”
문제는 둘 이상의 갈등 상황에서 한쪽 일방이 참는다는 게 큰 의미는 없다는 점이었다.
휘이이이익────────!
“-숏?!”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진성은 곧장 을 빼내어 휘둘렀다.
과 이 맞부딪치는 소리, 강력한 쇳소리가 황량한 협곡에서 울려 퍼졌다.
“꺅!”
“무슨 짓입니까!?”
비비의 비명과 진성의 고함이 동시에 내질러졌다.
그러나 반은 개의치 않았다.
흑색의 소검을 거두지도 않은 채, 진성을 향해 꼬나쥔 전투 자세를 취하며 그는 말했다.
“무슨 짓이냐니.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나에 대해 뭔가 아는 척 말하는 사람치고는 나에 대해 전혀 모르잖아? 나는 한 번 잡은 기회는 놓치지 않는다고.”
“그렇다고 지금 이런 자리에서- 모험가도 여기에 있는데 그런 식으로 나오면 좋지 않을 텐데요. 데 로스 제국의 아이언 울프 기사단장이나 되는 분이 고작 마법사 길드의 나같은 사람한테-.”
“그래서 하는 말이야.”
“-뭐라고요?”
반에게 일갈하려던 진성은 잠시 입을 다물어야 했다.
반 발슈테트, 아이언 울프 기사단의 단장은 진성을 쏘아보았다.
“아간조 아저씨 앞에서, 우리 기사단원들 앞에서, 나한테 그런 식으로 대해놓고 내가 언제까지 참아줄 줄 알았단 말이야?”
그것은 말 그대로 개인적인 원한이라는 선언이었다.
껄렁한 목소리나 가벼운 태도에 가려진 기세 그리고 흔들림 없는 태도.
반 발슈테트의 진심이 드러나는 것은 역시나 말이 아니라 태도였다.
자신의 소검을 움켜쥔 반의 눈동자를 보며 진성은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진짜 그 이유 때문……이 아닌 것 같은데.’
새삼 생각나는 것은 베히모스에서의 일이었다.
의 사본을 바라보며 그가 지어 보였던 표정.
그 표정의 의미를 진성은 몰랐으나 함께 있던 레니는 읽어낸 바가 있다.
모험가가 있음에도 굳이 이 시점에서 시비를 거는 그의 태도에 더하여, 그때의 기억이 접목되는 순간 진성에게는 한 가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반 발슈테트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진성 자신에 대해서?
그럴 리 없다는 생각과 그럴지도 모른다는 불길함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반이 진성 자신에 대해 아주 조금의 무언가라도 알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에서 보여주었던 그 태도에 더하여…….
‘설마 ?’
반 발슈테트는 와 관련이 있다는 결론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