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20)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20화(120/212)
120
진성이 잠시 생각을 가다듬는 사이, 비비는 곧장 을 치켜들었다.
아직 반을 겨누진 않았으나 그녀의 다급한 목소리는 그녀가 제법 진심이라는 걸 나타내는 방증이었다.
“반 님! 아무리 그, 그래도! 자꾸 그러면 나도 참을 수 없어요?!”
“하, 모험가 네가 참지 않으면 어쩌려고? 나는 데 로스 제국의 아이언 울프 기사단장이다. 고작 공국의 마법사 길드, 그것도 사실상 임시직밖에 안 되는 저 친구의 편을 들기 위해 나를 공격하겠다는 건가?”
반은 콧방귀를 뀌었다.
아라드의 세계에 살아가는 자라면. 무엇보다 진성의 정체나 솜씨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자라면.
두 사람을 저울에 올려두었을 때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자명했으므로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었다.
“잉? 마법사 길드?”
문제는 비비의 입장에서 반의 말 자체가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직 진성이 마법사 길드 소속이라는 것을, 그가 샤란과 함께 일하는 이상현상 비상대책위원이라는 이야기조차 제대로 듣지 못한 비비에게 반의 위협 자체가 와닿지 않았으니까.
“……뭐? 뭐야, 그 반응은. 하나도 모르는-.”
“비비 씨. 그러지 말아요. 지금 그랬다간 더 상황이 안 좋아질 겁니다.”
오히려 반이 당황한 사이 나서는 건 진성이었다.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비비가 고맙긴 했으나 어차피 지금은 오래 설명할 겨를도 없었다.
당장 비비에게 일러주어야 할 중요한 요소는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비비 씨는 ‘지금’의 모험가잖아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죠?”
현재의 타임라인 상 ‘모험가’는 비비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
진성이 그 부분을 한 번 더 짚는다는 것은 결국 지금의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에서 모험가가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되니 조심하라는 경고와도 같았다.
카르텔 조직을 일망타진하려는 과정에서 모험가와 데 로스 제국의 반 발슈테트가 반목하는 일이 생겨선 안 된다는 걸,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유저라면 당연하게 알고 있을 테니까.
“……으음…….”
그 사실을 이해했기에 비비는 안절부절 못하며 침음만 흘렸다.
진성 역시 우선은 반을 진정시키고, 천계의 일이 끝나면 그에 대해 조사해봐야겠단 판단을 내렸다.
‘어차피 아라드로 내려가야 하니까. 절망의 탑에서 해야 할 일이 끝나고 나면, 데 로스 제국으로 한번 가보는 정도……가 되면 좋겠…….’
그러나 그 생각을 온전히 마무리 지을 순 없었다.
반이 쥐고 있는 소검의 끝이 흔들흔들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진 이유가 무엇인지.
“바로 그 태도란 말이지. 뭐든지 알고 있다는 듯,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그 태도……. 누구를 꼭 닮은 바로 그 태도.”
“자, 잠깐. 반 경……? 그, 우선은-.”
비비를 말린 진성의 태도는 틀린 게 아니었다.
다만, 그것이 반을 더욱 자극했을 뿐이다.
“!”
“다, !”
─────────────!
귀검사의 과 그 스킬의 다크나이트 버전인 가 동시에 시전되었다.
방금 전보다 훨씬 더 과격한 마찰음이 터져 나왔다.
* * *
검날의 길이가 짧다지만, 그 날카로움까지 무딘 건 아니다.
오히려 여타 날붙이보다 더욱 빠른 속공이 가능한데다 검기를 덧씌워 휘두르기에 길이에서의 장점까지 존재하는 무기가 바로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의 소검인 것.
“좋아, 이 정도는 해줘야지. 일격에 무너졌으면 내가 부끄러워서 아간조 아저씨 얼굴을 못 봤을 거라고.”
반은 씨익, 비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진성은 입꼬리를 씰룩이며 받아쳐 주었다.
“여유를 부릴 정도로 대단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반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그는 말을 짓이기듯 내뱉었다.
“대단한지 어떤지 한번 봐주시지. 이상현상 대책위원님.”
실력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위명으로 따지자면 아라드에서 가장 유명하다 할 수 있는 ‘4인의 웨펀마스터’ 소속, 소검의 반이 자존심을 걸고 공격을 개시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진성 또한 언제든 흑구에게서 의 힘을 빌릴 태세를 취하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좋습니다. 얼마든 와보시죠!”
“!”
그 시점에서부터 반의 연격連擊이 시작되었다.
다크나이트의 와 같다는 의미는 즉, 빠르게 이동하며 목표물을 베어낸다는 것이다.
제법 긴 거리를 초고속으로 미끄러지듯 돌격하는 데다, 사용 중에는 슈퍼아머 상태가 되므로 일반적인 반격 따위로는 그 맹렬한 기세를 막을 수도 없다.
한 번, 두 번, 좌로 또 우로 베어내는 공격에 뒤이어 그 신속한 움직임의 후폭풍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어지는 칼날 회오리의 추가 타격까지.
진성이 사용하는 만으로도 웬만한 몬스터들을 일도양단해낼 정도의 파괴력이 있느니만큼, 웨펀마스터인 반이 사용하는 은 그 후속 공격까지 이어지니, 진성의 스킬보다도 강력한 공격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진성은 반의 공격을 막아내고 또한 회오리를 피해내며 아랫입술을 물어야 했다.
‘큭, 두 번만으로도 만만치 않은데. 공속 세팅이라도 맞춘 듯한 이 속도에다가…… 무엇보다 의 효과가-.’
일반적으로 좌/우 두 번을 빠르게 움직이며 베어내는 게 웨펀마스터의 이겠으나 반은 다르다.
적어도 그가 쓰고 있는 이라는 무기가 진성 자신이 기억하는, 유저가 사용가능한 소검류 아이템의 옵션과 같다면!?
“하아아압-!”
“그럴 줄 알았지!”
추가 효과로2회가 추가되어 있을 터!
세 번, 네 번! 반은 진성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낼 기세로 을 연달아 펼쳐냈고, 진성은 그 공격을 모두 막아냈다.
[결투장]에서도 웬만한 유저들의 혼을 쏙 빼놓기 좋은 의 4연타를 로 피한 이상, 이제부터는 진성 자신의 반격이 시작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점이었다.“간-.”
[온다, 진성!]“-다-아아앗!?”
──────, ──────, ──────!
그러나 진성의 반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흑구의 경고가 없었더라면 순식간에 치명타를 입었을 정도로 위협적인 공격을, 그것도 연달아 세 번이나 더 이어지는 을 가까스로 막아낸 것은 천운이었다.
“뭐, 뭐야, 어떻게-.”
진성은 당황했으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벌써 방향을 바꿔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려 베는 동작을 준비 중인 반의 자세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또 다시’ 을 쓰려는 것이다.
지금까지 네 번을 썼고 세 번을 연이었으니 이번은 무려 여덟 번째 의 연격이 된다는 뜻.
유저라면 아이템 세팅에 따라 가능한 경우가 있다지만, 반 발슈테트다.
게임 던전앤파이터 기준으로 따지자면 NPC에 불과한 그가 이런 식으로 의 횟수를 늘릴 수 있다고?!
‘……아니다. 있었다. 옛날에 지옥파티, 시간의 문……. 타임 크랙!’
위기의 순간이 되어서야 진성은 떠올렸다.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반은 APC 개념의 조력자로서 유저와 함께 던전을 도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반이 적으로 나오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를 한정했을 때다.
그 외에는?
여타 게임의 인스턴스 던전이라 할 수 있는 [지옥파티], 그 던전 지역:시간의 문에서 불규칙하게 등장하는 적들 중에서는?!
‘랜덤하게 등장하는 몬스터, 4인의 웨펀마스터의 ‘투기’가 실체로 구현되었다는 설정, 그때의 반!’
있었다.
반 발슈테트의 본체까진 아니다.
하물며 제국의 기사단장인 지금의 모습도 아니다.
옛 비명굴에서 시로코를 제압하던 당시의, 지금보다 더욱 불량하고 껄렁한 17세의 반의 모습이 몬스터로 나온 적이 있다!
그때의 반을 떠올리고 나서야 진성은 반 발슈테트가 앞으로 을 몇 번이나 더 사용할지 깨달았다.
’10연속 ! 이제 막 여덟 번째를 쓰려하니 앞으로 세 번을 더!?’
무려 10연속이나 되는 과 그 칼날 회오리가 이어져 온다!
여덟 번째 공격을 로 겨우 피한 이후 숨 쉴 틈 없이 날아오는 공격에 대해서는 로 ‘짤무적’을 사용해 진성은 방어했다.
그리고 열 번째는?
적의 공격 패턴을 깨닫고 그저 놀라고만 있을 진성이 아니다.
“.”
─────────────!
반 발슈테트가 몇 번이나 스킬을 사용할지 알고 있다는 점은 결국 반격의 기회를 완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큭-.”
반의 육신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홀딩’ 기능이 있는 에 피격 판정을 받은 이상, 보스 몬스터로 분류되는 개체가 아니라면, 제아무리 반이라 해도 벗어날 수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아냐. 여기서 홀딩이 풀린다 해도…….’
반을 제압해야 하나?
이런 식으로 전투를 이어가야 하나?
[클클클, 놈의 움직임이라면 나도 관심이 생기는데. 어떤가, 진성. 힘을 빌려주겠다. 당장 저 건방진 놈을 나와 함께 갈갈이 찢어보겠나.]흑구도 전과 달리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 점이야말로 진성에게는 불안 요소였다.
반 발슈테트의 인물이 어떻더라도. 그 성격과 성향이 어떻더라도.
그가 미래에 할 일이 무엇이더라도.
‘지금 그럴 순 없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음?’
반을 무력화시키거나 그에게 상처를 입히기 어렵다는 점.
고뇌하는 진성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반과 진성의 전투가 굉음을 퍼뜨렸기 때문일까.
“이곳까지 잘도 왔군.”
저벅거리는 발걸음과 함께 중후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미 들어본 목소리였기에 진성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엔조 시포, 그렇다면 차라리…….’
진성은 곧장 [인벤토리]에 손을 넣었다.
그러곤 무언가를 꺼내어 그대로 휙, 집어던졌다.
“끄앗!? 미, 미친, 뭐야!? 무슨-.”
서로의 홀딩이 동시에 풀리더라도 그 타이밍을 정확히 알고 있는 진성의 행동이 다소 빠른 건 당연한 일!
반은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눈을 찌푸려야 했다.
눈을 향해 정확히 뿌려진 모래에 의해 그는 잠시 동안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테니까.
‘진상 님……? 진짜 를? 아니, 스킬 명칭을 말하지 않았으니 스킬로 판정되지 않는 건가?’
비비만이 멍한 눈동자로, 순식간에 자신과 반으로부터 멀어지는 진성의 뒷모습을 바라봐야 했다.
* * *
스킬 판정이든 그렇지 않든 중요한 것은 반이스킬 효과와 유사한 피해를 당했다는 점이다.
눈을 비비며 진성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는 반의 곁에서 비비는 잽싸게 무기를 꺼내어 들었다.
“망할, 마법사 길드 소속이라는 녀석이 치졸하게 뒷골목에서나 할 법한 짓을-.”
“바, 반 님! 그보다 빨리, 빨리요!”
비비와 반의 위치를 기준으로 진성이 도주한 것은 9시 방면.
결국 1시 방면에서 다가오는 엔조 시포의 위협에 비비와 반, 두 사람은 고스란히 노출된 상태였다.
“나 엔조 시포 앞에 선 것을 후회하게 해주마.”
엔조 시포가 말했다.
비비가 선공을 취하려 했으나 그녀는 차례를 빼앗기고 말았다.
“가뜩이나 열 받아 죽겠는데 말이야!”
눈두덩이가 벌겋게 부어버린 아이언 울프 기사단의 단장은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반은 엔조 시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아직 초점이 맞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 공격은 엔조 시포에게 완벽히 닿지 못했다.
그럼에도 엔조 시포는 비틀거렸다.
“뭐지? 머리가…… 으, 으아아악!”
그러곤 비명을 질렀다.
반과 비비마저 움찔하게 만들 정도의 비명이었다.
“뭐야!? 음?”
“잉?”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 순간, 엔조 시포의 몸에서 작은 폭발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겉을 감싸고 있던 인피人皮와 의복이 폭발에 의해 조각나 터져버린 시점에서, 두 사람은 보았다.
“위험을 감지했다. 시스템을 전환한다.”
이제는 완전히 기계처럼 움직이고 또한 기계처럼 말하는 엔조 시포의 모습을.
반이 마른침을 삼켰다.
여전히 발갛게 부어있긴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이미 호기심으로 채워진 상태였다.
“이게 그…… ‘사이보그’라는 건가?”
죽은 자의 사체를 다시금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기술.
심지어 엔조 시포를 사살했던 베릭트조차, 오랜 친우조차 그가 사이보그인지 알아채지 못했을 정도로 감쪽같은 기술.
“타겟을 발견했다. 제노사이드 모드로 전환. 타겟을 제거하라.”
“마법 없이 이런 경지에…… 대단해. 대단하군.”
전투를 준비하는 엔조 시포를 보며 반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비비는 분위기를 환기시키겠다는 듯 곧장 무기를 꺼내어 사격을 개시했다.
“지금 그럴 때가 아녜요! 공격할 테니 보조해주세요!”
“하, 모험가, 너야말로 내 움직임에 합을 맞추라고.”
총성과 함께 뛰쳐나가는 비비를 보며 반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웃었다.
그리고 이 모든 모습을, 잠시 몸을 숨긴 진성은 지켜보는 중이었다.
‘좋아. 이 정도면 흐름 자체는 원래대로 돌아간…… 음?’
엔조 시포가 나타난 시점에 반의 신경을 돌리는 것.
또한 사이보그의 신체를 목격한 반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마음 놓고 관찰하는 것.
진성은 자신이 원한 두 가지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점도 있었다.
“……크히히힛, 당해봐라, 모험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진성은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리고 하마터면 터져 나올 뻔한 경악성을 삼켜야만 했다.
카르텔 사령부 인근의 협곡에는 엔조 시포와 비비, 반 그리고 진성 자신만 있는 게 아니었다.
‘또젤!?’
지젤 로건.
어느새, 언제, 무엇보다 어떻게?
그 점에 대해선 알 수 없으나 한 가지는 알고 있었다.
‘왜 여기에 지젤이……?’
그는 이 시점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
결국 오염된 요소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