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21)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21화(121/212)
121
진성은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이곳에 지젤이? 갑자기?
‘지젤의 행방에 대해서는 나도 의문이기는 했지. 일단 카르텔과 협력하고 있었으니 카르텔 사령부가 있는 이곳으로, 황도에서부터 이쪽까지 도망쳤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긴 했는데…….’
적어도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메인 시나리오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흐름이다.
지젤이 이곳에 있는 것 자체는 합리적인 추론에 따라 도출할 수 있는 결과이나, 그가 저렇게 꿍꿍이속이 있는 웃음을 머금는 장면 따위는 컷씬으로도, 스크립트로도 보여주지 않는 것.
그럼에도 오염이 나타났다고 한다면 결국 이유는 하나다.
‘역시…… 베릭트가 엔조 시포의 정체를 알아채려고 했을 때, 그게 역시나 오염의 시그널이었다는 건가.’
불행 중 다행이라면 오염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해 진성 자신이 이미 생각은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점이라면 그 오염의 대상이 이런 식으로, 지젤과 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방식일 거라는 확신까지는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지젤이 이후에 보이는 행보대로 바로잡아야 한다. 카르텔 전쟁 직후 지젤의 움직임이라면…….’
진성은 최대한 열심히 기억을 되짚었다.
지젤은 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도망쳤는가.
그에 대한 우려 속에 멜빈과 젤딘 같은 천계인들이 모험가인 유저에게 앞으로 조심하라 경고해주는 장면도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죽은 자의 성’이 지젤과 마주하게 될 그다음 수순이 되는 게 본편의 흐름이다.
‘죽은 자의 성……. 아냐, 그건 아니다. 너무 먼 미래야. 그리고 그때 등장하는 것도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포탈을 활용해 스윽, 나타나는 거잖아.’
그렇다면 바로 직후의 상황은 어떻게 되는가.
진성은 고민하면서도 합리적으로 생각했다.
지젤은 육신의 전투 능력은 사실상 없는 존재다. 지금 이곳까지도 사이보그 엔조 시포 뒤에 숨어서 슬그머니 따라왔다고 봐야 한다.
‘우선 비비 씨랑 반이 엔조 시포를 처치하는 모습을 보고…… 그다음 지젤의 뒤를 밟아야 할까.’
엔조 시포가 패배하는 순간이 지젤이 움직임을 보일 때가 아니겠는가.
진성 자신이 움직여야 할 때는 그때가 아니겠는가.
‘어쨌든 주의해야 한다. 저 인간은 특히나.’
어느 정도 상황이 파악된 상태였음에도 진성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지젤 로건,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모험가와 악연 중 악연으로 엮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진성은 비비와 반 그리고 엔조 시포의 전투를 살피면서도 지젤을 흘끗거려야만 했다.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전투 자체는 일방적이었다.
“빨리 좀 베어봐요! 잘난 척을 그렇게나 하더니!”
베릭트에게 지도받으며 실력이 향상된 사격술로 비비가 ‘평타’를 넣어 엔조 시포를 저지하고, 그렇게 움찔하는 엔조 시포를 향해 반이 빠르게 쇄도하여 그 강철의 육신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내가 일부러 그러는 거 모르겠어, 모험가?! 이놈의 몸을 보라고! 얼마나 견디는지 나도 궁금하단 말이지!”
반의 말은 허세인지, 진심인지.
어쨌든 테로톤 합금으로 추정되는 사이보그의 육체가 차츰 손상되어 간다는 점에서, 전투 자체도 곧 마무리될 법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진성은 지젤을 향해 다시금 신경을 돌렸다.
‘그래봐야 금방 끝나겠지. 별문제는 없어 보이고……. 괜히 지젤이 나서지만 않는다면-.’
별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적어도 그가 중얼거리는 한마디를 듣기 전까지는.
“마법이라……. 저런 힘인가. 저 검사 놈이 쓰는 힘이라면……. 크헬헬.”
아주 작은 목소리여서 흑구가 일러주지 않았다면 놓칠 뻔했던 그의 발언에 진성은 소름이 돋았다.
뒤틀려 올라간 지젤의 입꼬리에 더하여, 지금 중얼거린 저 한마디에 담긴 속뜻이 무엇일까.
‘……설마.’
사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데 로스 제국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천계의 과학과 기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반.
그리고 카르텔이 망하고 나면 갈 곳이 없어지는, 더 이상 자신의 연구욕을 충족할 수 없는 지젤.
만에 하나라도 두 사람이 손을 잡는다면?
지젤이 마가타를 타고 아라드로 내려가 데 로스 제국에 기웃거리기라도 한다면?!
‘이런 미친, 이게…… 이게 오염이자- 동시에 앞으로의 오염에 대한 전조가 되기도 하는 상황이구나?! 막아야 해!’
진성은 심장이 쿵덕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엔조 시포는 벌써 비비의 치명타에 상당 부분 훼손이 진행된 상태다.
진성은 고민했다.
그러곤 빠르게 결정했다.
그 사이, 사이보그 엔조 시포의 육신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메인 시스템 재가동……불가. 임무 실패. 시스템 종료.”
“이런 기술을 보게 될 줄이야. 힘들게 천계에 온 보람이 있군.”
다시 일어서지도 못하는 기계 육체를 바라보며 반은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 * *
반의 목소리가 들린 것일까.
지젤은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반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래, 크힐힐, 저 녀석도 기술에 관심이 있어 보이는데. 그렇다면 내 기술을 미끼로 녀석의 힘과 거래-.”
그 순간이었다.
톡톡.
지젤은 자신의 어깨를 건드리는 감촉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가 볼 수 있는 건 없었다.
“-히얏!? 흐업, 헙-!”
순식간에 선글라스를 빼앗긴 그의 얼굴에 모래가 흩뿌려졌기 때문이다.
입자가 고운 모래 때문에 온 얼굴에 주름이 질 정도로 눈을 질끈 감으며 지젤은 소리치려 했다.
물론 비명이라고 자유롭게 지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검은 손이 이미 그의 입가를 막고 있었으니까.
그것이 바로 진성의 선택이었다.
“카르텔 소속 과학자 지젤. 천계뿐만이 아니라 미들 오션 아래에 있는 아라드 대륙에서도 너에 대한 현상수배가 내려졌다. 널 체포한다, 지젤 로건.”
한 손으로는 지젤의 입을 막고, 또 한 손으로는 그의 손목을 제압하며 진성은 말했다.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는 사실상 진심 가득한 협박이라고 봐도 좋았다.
눈과 입을 봉인 당한 채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누군가는 당장 다리에 힘이라도 풀려버릴 터.
그러나 지젤은 발버둥 쳤고 마침내 진성의 손을 뿌리쳤다.
“킬킬킬, 멍청한 놈! 누군지 모르지만 내가 그리 쉽게 당할-.”
여전히 시력이 회복되지도 않았으며 기세등등하게 외치는 지젤이었으나, 애당초 과학자일 뿐인 그가 어떤 도움 없이 진성의 포박을 어떻게 풀려났겠는가.
자신만만하게 웃는 지젤의 몸통을 진성은 뻥, 차버렸다.
“-흐아아아아아……!”
데굴데굴 굴러가는 지젤의 비명이 협곡에 아스라이 퍼졌다.
순식간에 멀어져가는 지젤의 모습은 흑구에게도 재미있는 모습이었을까.
[클클, 내 힘을 빌린 것까진 좋았지만…… 이렇게 죽일 거였으면 그냥 처리해도 되지 않았나, 진성.]“죽인 거 아냐. 그나마 이쪽이 제일 경사가 완만해. 그리고 내 손 떨쳐낼 때 품속에 포션도 하나 넣어놨고.”
장난스럽게 말하는 흑구의 목소리를 들으며 진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 죽을 만한 인물이 아님을 알고 있다.
‘인게임에서 얼마나 끈질겼는데. 그 생명력을 보자면……. 쩝, 굳이 포션 하나 넣어 줄 필요도 없었나? 괜히 오지랖이었나.’
진성은 잠시 생각하다 곧 고개를 털었다.
, 흑구의 힘을 빌려 지젤이 눈치조차 챌 수 없는 속도로 다가서 제압한 뒤, 그의 뇌리에 ‘길드든 국가든 아라드에서 현상수배를 인정하는 개인/단체에게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불안을 심기까지.
적어도 진성이 목표로 했던 바는 다 이룬 상태에서 쓸데없는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 * *
“진상 님! 뭐예요!? 어딜 갔다가- 근데 무슨 소리 안 났어요?”
“아뇨? 소리는 무슨. 오, 엔조 시포 다 처리했네! 역시 비비 씨. 그리고…….”
어느새 다가온 비비가 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진성은 엄지를 세워주곤 고개를 돌렸다.
사이보그 엔조 시포의 몸통을 회수하는 반.
그 또한 진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남성은 당장이라도 맞붙을 듯 눈빛을 쏘아댔으나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마법사 길드의 이상현상 비상대책위원으로서…… 지금은 집중해야 할 부분에 집중하길 권합니다.”
진성은 부드러운 어투로, 그러나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 또한 마찬가지였다.
“데 로스 제국의 아이언 울프 기사단장으로서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경어인지 반말인지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던 모습 따위는 온데간데없는 공적인 모습.
그만큼 사이보그 엔조 시포의 사체가 갖는 의미가 중요하다는 방증이었으며.
‘……역시. 검만 잘 휘두른다고 단장까지 될 수는 없는 거겠지.’
한없이 가볍게 까불다가도 이토록 진중한 모습의 반이 데 로스 제국에서 어떤 위치와 영향력을 갖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엔조 시포의 신체를 확인한 서부 무법지대의 황도군 주둔지에서 잠시간의 소란이 일었다.
어찌 되었든 카르텔의 한 축이 완전히 무너진 게 증명된 이상 젤딘이 가만히 있을 리는 없었다.
하츠를 비롯한 아이언 울프 기사단의 사전 정찰 결과, 카르텔의 사령부가 위치한 협곡의 위치 또한 자세히 알아낸바.
“됐다. 이걸 타면 협곡 안쪽까지 비행할 수 있을 거야.”
“이거 병사들 수만큼 있는 거겠죠?”
그러한 협곡으로 올라갈 수단 또한 서부 무법지대로 이동해 온 멜빈에 의해 해결되었다.
다만, 자원이 부족한 현실이 해결되지 않았을 뿐.
“뭐? 예비용으로 몇 개 더 만들긴 했지만 나 혼자 어떻게 다 만들어?”
짜증 섞인 멜빈이 되묻자 젤딘은 민망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럼…… 병사들은 여전히 육로로 갈 수밖에 없는 거군요. 으음…… 특공대가 돌입해서 카르텔 사령부 내부에 소란을 일으키는 사이에 병사들을 진입시키는 수밖에 없겠군요. 저격병이 있다면 그들도 처치하고-.”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에 누가 있을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셈이었다.
비비 그리고 진성.
사실상 특공대가 되어 줄 두 사람이 멜빈이 만든 비행장치를 타고 협곡 위로 이동, 카르텔 사령부를 휘젓는 사이, 반과 제국군 그리고 젤딘, 닐스 등과 황도군이 육로로 협곡 위까지 이동한다는 작전 개요는 모두가 이해한 상황이었다.
“진상 님, 같이 갈 거죠?”
그럼에도 비비는 물었다.
“음? 그거야-.”
진성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여기까지는 같이 가달라고요. 그 이상은 나도 조르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그의 말을 끊으며 이어진 비비의 발언에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응? 지금 그게 무슨? 네?”
무슨 뜻인가.
여기까지라도 같이 가달라, 그 이상은 조르지 않겠다?
진성은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반과 진성 자신의 싸움이 치러진 이후부터 지금까지, 비비는 진성 자신에 대해 한마디의 질문도 던지지 않았다는 점.
‘그러네. 생각해보니…… 마법사 길드가 뭐냐, 이상현상 어쩌고가 뭐냐, 비비 씨 성격상 그런 걸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는데.’
평소처럼 눈치도 없이 마구잡이로 질문을 던지며 진성을 당황스럽게 만들었을 법한 상황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이보그 엔조 시포의 사체를 수습하는 반과 함께 얌전히 주둔지로 돌아왔고, 지금 이렇게 작전 개요를 들으며 움직일 채비를 갖추고 있을 뿐이다.
그러던 와중 진성 자신에게 던진 말이라고 한다면…….
‘그래. 어쩌면…….’
황도에서 비비가 진성 자신에게 물어본 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진성 스스로 알고 있다.
비비는 예측할 수 없는 언행으로 사람을 당혹게 만들지만, 그것이 멍청하기 때문에, 바보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진성 자신조차 생각할 수 없는 범위로까지 사고가 나아갔기에, 진성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부터 접근하는 천재적인 모습을 보이는, 지금의 비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진성 자신과 반의 대화를 들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모험가 비비! 진성 님과 함께 출발하겠습니다!”
손을 번쩍 드는, 연단된 칼날이 될 모험가는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그녀의 시선은 칼날이 되지 않아도 되는 빙의자를 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