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24)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24화(124/212)
124
유저라면 천계에서 있었던 일을 알리기 위해 벨 마이어 공국의 스카디 여왕을 만나는 게 우선일 것이다.
이후 모험가를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은 대검의 아간조와 대화를 하게 되고, 곧장 의뢰인인 수쥬 왕국의 시란을 만나러 가는 흐름으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진성의 입장에서는 그런 식의 자연스러운 흐름 따위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진성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또한 거침없었다.
‘오랜만에 와봐도 변한 게 하나 없네. 아니지. 없는 게 좋은 거지. 벌써 뭐가 변하면 오염밖에 없을 테니까.’
벨 마이어 공국의 웨스트코스트 인근.
바삐 돌아다니는 유저들의 면면은 물론, 유저들에게는 보이지 않을, 활발한 상업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골목을 보며 진성은 푸근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 와중에도 역시 진성이 고향처럼 느끼는 장소, 마법사 길드의 내부에서는 언제나처럼 시끌벅적한 이야기가 오가는 중이었다.
유저들에게는 보이지 않겠으나 마법사 길드 소속의 요인들은 벨 마이어 공국에서 의뢰받은 연구 개발 과제들을 처리하느라 바쁘기 때문.
‘교수들, 대학원생들이 하는 무슨 국가사업이라고 해야 하나. 일종의 R&D라고 해야 하나.’
하늘성의 대마법진 유지/보수처럼 마법사 길드에서 정기적으로 수행하는 활동이 많음에도 일반적인 게임 던전앤파이터 유저들에게는 보여지거나 느껴지진 않으니 말이다.
이런 차이점이야말로 실제로 빙의된 진성 자신이 느끼는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으리라.
또한 진성이 굳이 텔레포트 포션을 사용하지 않고 마법사 길드 건물의 입구로 걸어 들어가는 이유이기도 했다.
“오랜만입니다, 샤란 님.”
“어머나, 이게 누구야! 이게 누구야!”
그렇게나 바쁜 마법사 길드를 이끌어가며 세세한 임무까지도 놓치지 않는 길드장, 샤란은 만사를 제쳐두고 진성을 향해 다가왔다.
이러한 환대에 진성은 어쩐지 뿌듯함까지 느꼈으나 한 가지는 알지 못했다.
“흐흐, 이렇게까지 반겨주실 줄은 몰랐-.”
반가움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샤란은 거의 숨조차 제대로 쉬지 않고 말할 정도였다.
“나는 말이죠, 도대체 소식도 없고! 천계에서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줄 알고-. 아니, 실제로 벌어지긴 벌어졌다면서요? 제국에서 오가는 마가타를 통해 겨우~겨우 소식은 들었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서 말이지. 그래도 우리 길드 소속이면 말이죠, 정기적으로 뭐, 보고하라는 말은 않겠어. 진성 씨를 길드장 직속 이상현상 비상대책위원으로 임명한 것도 나니까, 근데! 그래도 이렇게까지 아무런 언질 없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면 길드장 입장에서 얼~마나-.”
“선물. 아라드에서 구하기 힘든 겁니다. 천계의 물건들이에요.”
결국 진성은 [인벤토리]부터 열어야만 했다.
“-얼~마나……믿음직스러운지 몰라요? 내 맘 알죠?”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문화/산업적으로 발전한 천계의 물건들은, 마법이 기반이 되는 아라드 대륙의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터.
무엇보다 ‘마법사 길드’의 길드장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최고의 선물인 셈이었다.
조금 전까지 숨도 쉬지 않고 떠들던 잔소리를 뚝 끊어버리는 샤란을 보며 진성은 헛웃음을 흘렸다.
“안 가져왔으면 다시 나가라고 했겠네요, 참, 나.”
“그, 그건 아니고. 근데 우와, 이게 다 뭐람? 이거 어떻게, 어디에서 쓰는 거예요? 그것도 알려줘야-.”
“데 로스 제국이 천계의 지벤 황국과 공식으로 동맹을 맺었습니다.”
여전히 물건을 관찰하기 바쁜 샤란을 향해 진성은 말했다.
우뚝 멈춰버린 동작에 더불어 바뀐 그녀의 표정까지.
“-……자세한 얘기는 방에서 할까요?”
마법사 길드의 길드장이자 ‘벨 마이어 공국’ 소속의 샤란은 조용히 제안했다.
진성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 * *
진성이 일러준 사실 자체는 간단했다.
아라드의 데 로스 제국과 천계의 지벤 황국의 공식 동맹.
또한 카르텔 조직에 의해 상당한 피해를 입은 지벤 황국, 특히 황도를 재건하기 위해 데 로스 제국에서 복구 작업용 물자를 지원하기로 했으며 그 지원대의 통솔 및 호위를 위해 아이언 울프 기사단이 투입되었다는 것.
“공국에게는 썩 좋지 않은 흐름이겠군요.”
샤란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천계에서의 주도권은 제국이 먼저 가져가게 된 셈이겠죠.”
“후우…… 아깝게 됐네요. 그렇다고 겨우 뚫어 놓은 하늘길을 막을 수도 없고.”
샤란은 진성이 가져온 총기를 이리저리 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정도의 기술력, 이런 정도의 문명 수준을 갖춘 국가가 제국의 편에 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는 한숨이었다.
진성 또한 그녀의 한숨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늘성의 대마법진을 뚫고 천계와의 통행을 가능케 만들어 준 일등공신이 샤란이었음에도 막상 알짜배기는 제국이 다 챙겨버린 느낌이 들 터.
벨 마이어 공국의 스카디 여왕에게도 고심거리가 될 게 뻔하지 않은가.
따라서 진성은 말하는 것이었다.
“뭐, 그렇다고 공국에 위협이 된다거나 하진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앞으로도 별일 없을 겁니다.”
“네? 그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구나.”
진성의 말이 입발린 위로라고 말하려던 샤란의 표정이 바뀌었다.
천계와 관련된 일로 떨어져 있던 시간이 약간 된다지만 그렇다고 잊을 리가 없다.
“네. 오히려 언젠가, 천계에서 벌어질 큰 사건으로 인해 제국은 천계를 부흥만 시켜놓고 떨어져 나가게 될 겁니다.”
진성은 말했다.
샤란은 진성의 말을 잠시 곱씹다 답했다.
“그 빈자리는 우리 공국을 비롯해서, 아라드 대륙의 평화를 지키려는 우리들이 될 거고?”
진성은 샤란의 말을 들으며 미소만을 머금을 뿐이었다.
그제야 샤란의 얼굴도 조금쯤 풀리기 시작했으니.
“……진짜 나는 아이리스 님한테도 점을 안 보는데. 우리 진성 씨 말이라면 안심이 된다니까.”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르다.
지금의 샤란에게 있어 진성은 사실상 ‘가장 믿음직한 안내인’이 아닌가.
그리고 그녀가 보내주는 신뢰에 기반한 이야기를 다시금 꺼내었다.
“그래서 말인데……아이리스 님은 어때요?”
진성은 천계로 떠나기 전에 샤란에게 말해놓았다.
아이리스 포춘싱어, 혹 그녀가 특이한 행동을 하는지 알아봐달라고.
샤란은 그 청록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말했다.
“별일 없었어요. 진성 씨가 특별히 당부한 것도 있고 해서- 누구 시키지도 않고 내가 직접 마크하면서 관찰해봤는데, 이상할 만하다고 생각한 행동은 한 적이 없어. 누구랑 특별히 연락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요.”
“으음…… 다행이네요.”
공사다망한 마법사 길드장의 확언은 진성에게 안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굳이 더 따지지도 않는 진성을 보며 오히려 샤란이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였다.
“응? 다행? 그러고 끝? 혹시 숨겨진 뭐가 있다거나, 더 의심하지 않고?”
실제로는 샤란 때문만은 아니었다.
천계에서 내려와 이제부터 진성이 갈 곳, 아라드에서 혹여 오염의 가능성이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 또한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건만.
‘이제 곧 힐더에 의한 아이리스의 정신 지배가 풀릴 테니까. 꼭두각시 노릇을 마침내 벗어나게 되는 시점까지 다 왔으니…… 지금 별일 없으면 얼추 아이리스 쪽은 안심해도 되리라는 판단이 들긴 하지만……!’
굳이 샤란에게 그런 말까지 할 필요는 없다.
지금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 진성 또한 잘 알고 있다.
“네. 샤란 님이 그 정도로 말씀하시면 확실한 거겠죠.”
“……천계에 다녀오더니 뭔가~ 어른스러워졌네, 진성 씨?”
적어도 샤란의 눈빛이 변한 것이 그 방증이 될 테니까.
진성은 웃으며 말했다.
샤란의 눈빛을 다시금 바꿔버릴 한마디이기도 했다.
“600살이 보기에는 다 어린애 같을 텐데요, 뭐.”
“나, 나 아직 600살 아니거든요?! 숙녀의 나이를 그렇게 막, 막, 부풀리거나 그러면-.”
“흐흐,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말씀드릴 건 다 한 것 같고…… 당분간은 수쥬국에 좀 가 있으려고 하는데요. 카곤 님께 마가타 좀 부탁드려도 되겠죠?”
“-어휴, 얄밉게 또 할 말만 쏙 하고 빠지는 것 봐. 알았어요, 카곤한테는 연락해 둘게요.”
“고맙습니다. 아참, 그리고 아이리스 님은 지금 길드 안에 있죠?”
“아마도? 왜요?”
“이번에 가져온 장비들 사용하려면 미리 작업할 게 있어서.”
[보조장비 장착]과 [마법석 장착] 퀘스트는 아이리스 포춘싱어로부터 시작된다.일정 수준 이상으로 강해졌음을 그녀로부터 증명하고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해 새로운 장비 슬롯을 뚫는다는 흐름의 퀘스트다.
즉, 젤딘에게 받아온 확인증을 아이리스에게 건네줌으로써 진성은 해당 퀘스트를 한 번에 끝내버리는 계획인 것.
유저 시절과 지금은 사뭇 다르겠지만 지금까지의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흐름으로 보아 분명히 가능하리라는 확신도 있기에 진성으로선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장비?”
“네. 돌격대장한테 뜯어온 게 있거든요.”
무엇보다 새롭게 열릴 장비 슬롯에 착용할 아이템 또한 구비해놓은 상태니까.
반지 아이템인 <돌격대장의 고밀도 증폭 반지>.
마법석 아이템인 <돌격대장의 코어스톤>.
그리고 과거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그 위상을 드높였던 <돌격대장의 어택 맥시마이저>.
‘아직 렙이 딸리긴 하는데 <패왕의 계약>이 있으니 조만간 착용될 테고……. 크크, 요즘 유저들이야 쓰지도 않겠지만 말이지, 나 때는! 아니, 지금도 내 레벨대 수준에서 쓰기에는 기가 막힌다고!’
이미 그로부터 유래된 아이템들을 사용해 본 진성에게는 말 그대로 ‘노다지’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없어서 못 썼던 최고급 장비들로 분류될 것들의 수확이라 할 수 있었으니.
“그럼 가보겠습니다, 샤란 님!”
진성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리스를 만나러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샤란은 그런 진성의 뒷모습만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여튼…….”
그렇게 아이리스를 만나 계획처럼 새로운 장비 슬롯을 열고.
카곤을 만나 샤란의 안부를 전하는 동시에 마가타를 얻어타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벨 마이어 공국 남부의 웨스트코스트에서 떠오른 마가타는 그란플로리스, 붉은 숲을 지나며 수쥬국國으로 향하고 있었다.
‘문제는 시간의 문 퀘스트에 어떻게 내가 끼어드느냐 하는 건데…… 하늘성이나 베히모스까지는 그럭저럭 잘 했다만.’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비행선에서 진성은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해야 했다.
하늘성에서 G.S.D와 샤란을 만난 덕분에 아이언 울프 기사단의 틈바구니에서 움직일 수 있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베히모스 위로 전이된 사도 로터스를 상대하기까지 진성은 어느 정도 권한을 확보한 셈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유저의 눈에 띄지 않는 거야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 사람의 눈을 피해 시간의 문으로 들어가긴 쉽지 않을 거다.’
이제부터 유저와 함께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를 진행하는 NPC는 시란이다.
4인의 웨펀마스터 중 한 사람인 도刀의 시란은 그 검술 외에도 넨念을 능숙하게 다루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시란의 지휘하에, 유저는 <시간의 문>을 넘나들며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을 재조사하는 방식으로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가 진행하게 된다는 뜻이다.
‘당장 시간의 문을 여는 힘 자체가 시란에게 있는 거니까. 당연히 시란의 눈을 피해서 시간의 문으로 뛰어들고~ 이런 건 불가능할 거야. 그렇다면 내가 제일 먼저 할 일은…….’
그러니 진성 자신이 우선 시란에게 믿음을 주어야 한다.
시란의 허락하에 <시간의 문>으로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을 얻어야 한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음에도 진성의 표정이 다소 어두운 건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시란이야말로 워낙…… 성격이 괴팍하다고 해야 할지, 하여튼 그런 느낌의 캐릭터인데다가-.’
마법사 길드장 샤란과 은둔고수 G.S.D의 이름이 있었기에 진성은 아이언 울프 기사단에게 인정을 받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외부의 권위나 권력을 등에 업은 채로 시란을 상대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마저도 불가능에 가까울 테니!
‘-국왕인 쇼난 아스카도 말빨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닐 거다.’
쇄국 일변도의 수쥬국國이 아라드의 여타 국가와 교류를 시작하게 된 것은 현재의 쇼난 아스카가 왕위에 오른 이후다.
아라드를 돌며 말 그대로 온갖 것을 직접 보고, 듣고, 깨달은 천재 넨마스터이자 명군明君으로 평가받는 그녀가 진성 자신의 한두 마디 따위에 흔들릴 일은 없을 터.
‘그렇다면 결국, 역시…… 그렇겠지. 수쥬니까. 수도를 다른 말로 ‘무인武人의 도시라고 불리울 정도니까……. 그 방법밖에 없겠구나.’
진성은 약간의 한숨을 내뱉으며 각오를 다져야 했다.
저 멀리 수쥬국國의 수도, 무인의 도시 ‘쇼난’이 그의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