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28)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28화(128/212)
128
진성은 헤벌쭉한 미소를 머금으며 단상에 올랐다.
그러한 경험 역시 유저일 때에는 겪어보지 못한 일이기도 했다.
‘흐흐, 그냥 카드 몇 장 뒤집어지고 끝~ 할 때에 비한다면……. 역시 이럴 때는 현실인 게 좋구나, 좋아.’
무투대회를 관람하기 위해 참석한 수쥬인들이 보내는 뜨거운 눈빛들은 말할 것도 없다.
아직도 진성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이유 또한 뻔한 것이었다.
“세상에, 저 시즈키를 이겼다고! 이번 대회 유력한 우승 후보였는데!”
“그럼 이제 누가 나와야 하는 거야? 다음번에 저 외부인을 상대하려면-.”
“외부인이라니! 진:청룡대회에서 이긴 무투가를 그저 외부인 취급할 수는 없지 않나, 안 그래?”
“-크, 크흠, 말이 그렇다는 거지! 어쨌든 그럼 이제 저 사람을 이기려면…….”
“풍진 사범이라도 불러와야 하나?”
“아니, 아니, 어쩌면 섀넌이라도-.”
“예끼,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지.”
“으하하핫, 하여튼 당분간은 재미있겠어! 무투대회의 무인들 승부욕이 활~활 타오르겠다고!”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싸움 구경이며 무엇보다 아직 성사되지 않은 싸움에서 ‘누가 이길지 따져보는 일’이야말로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가장 쉬운 주제였기 때문이다.
관람객들의 입에서 나오는 온갖 이름들을 들으며 진성은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오오, 자신감이 있나 본데!? 누가 와도 할 수 있다! 이런 태도겠지?”
“좋다! 다음 진:청룡대회에도 나오라고! 난 진성, 당신을 응원할 거니까!”
그것이 자신감의 표출이라 생각한 뭇 관람객들은 더욱 큰 응원과 함성을 보냈다.
여전히 진성은 미소 짓고 있었다. 당연히 자신감이 있다는 이유 따위는 아니었다.
‘벨 마이어 공국에 있는 풍진이 올 리가 없고……. 섀넌? 푸하핫, 이 사람들아, 사라져버린 전설의 무투가 섀넌 마이어를 만나려면 선계에 올라가기 직전까지는 되어야 한다고. 아, 그럼 지금은 데 로스 제국에 침투해서 비밀 임무를 수행 중이려나? 하여튼 당신들이 그렇게 얘기해봐야 나랑 붙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말씀!’
그들이 말하는 NPC들과 진성 자신의 대결 따위는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걸 뻔히 알고 있었으니까.
거기에 더하여 진:청룡대회의 우승 상품과 특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으니까.
“진성. 축하해요.”
“아…… 가, 감사합니다, 국왕 전하.”
그럼에도 진성은 자신을 치하하기 위해 나온 쇼난 아스카를 보며 당황해야 했다.
쇼난 아스카 때문이 아니었다.
‘우가 같이 있는 거야 그러려니 하겠다만……. 신장? 4인의 대신관이 왜-.’
그녀의 곁을 호법처럼 지키고 선 4인의 대신관이자 퇴마사의 대표 NPC라 할 수 있는, 신장 때문이었다.
진성의 뇌내에서 빠른 사고의 흐름이 일었다.
‘-……아. 설마.’
수쥬국國의 무투대회 따위에 신장이 온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그가 이곳에 왔다는 건 매우 특별한 경우라는 뜻이며 현재 진:청룡대회에서 매우 특별한 경우가 발생한 이유는 하나, 결국 진성 자신이 아닌가.
신장이 속한 수쥬 항마단이나 그가 4인의 대신관 중 하나라는 점.
거기에 더해 그가 퇴마사라는 것까지 곁들여 생각한다면.
‘설마 흑구를 봤나? 흑구에 대해 눈치를 챘나? 그럴 리가 없……지만은 않아. 그래, 퇴마사잖아. 애초에 신수니 흉수니를 다루는 사람, 그중에서도 아라드 대륙 최고의 실력자니까!’
어쩌면 신장이 이곳에 온 이유는 물론, 쇼난 아스카가 진성 자신에게 미묘한 시선을 보내는 게 전부 흑구와 관련된 일은 아닐지!
[크크크…… 저 불그스름한 건 뭐지? 생명체……라기엔 기운의 형상화에 가까운 것 같은데. 놈이 날 노려보는 것 같지 않나, 진성.]흑구도 그것을 눈치챈 것처럼 말했다.
그런 흑구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없다는 점이 진성에겐 안타까운 점이었다.
흑구에게 말을 걸었다간 가뜩이나 의심을 사고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게 뻔하지 않은가.
진성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흑구는 오히려 흥분한 채 떠들기 시작했다.
[확실하다. 저 녀석이- 저 인간과 저 건방진 빨간 녀석이 나를 느끼고 노려보고 있다. 진성, 힘을 빌려주마. 지금 이 자리에서 나의 위엄을 보여주자. 저 건방진 녀석들의 육신을 갈갈이 찢고 또 찢어-.]“크흠, 콜록, 콜록! 콜록!”
겨우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란 그저 기침으로 흑구의 헛소리를 끊는 것뿐인 진성이었다.
그런 진성을 쇼난 아스카를 비롯한 우, 신장 등이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았다.
정작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진성은 알 길이 없었다.
* * *
진성이 막 우승자로 결정된 시점에서부터, 심사위원석 부근은 조금쯤 다급한 분위기가 되었다.
신장은 다소 장난스러운 분위기로 쇼난 아스카에게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물었으나, 칙사 우와 같은 성격의 인물에게는 웃어넘길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설마 시즈키 님까지…… 아스카 님, 정녕 저자를 친위대로 발탁하실 건 아니시지요?”
“저자가 원한다고 한다면…… 진:청룡대회의 우승 특전으로서, 설령 왕께서 거부권을 쓰기에도 모양이 좋진 않겠지요.”
신장은 진성의 기운을 사신수/사흉수로 구분할 수 없기에 퇴마할 수 없다는 합리적 판단을 내린 것처럼, 진성의 향후 처우에 대해서도 합리적으로 생각하려 했다.
그것을 듣고만 있을 우가 아니었다.
“시, 신장 님! 그렇게 쉽게 말씀하실 게 아닙니다. 개방 정책 이후 여러 국가와의 교류를 통해 본국의 경제도 활성화되고 있다지만…… 그만큼 타국에서부터 꿍꿍이속을 품고 오는 자들을 막아내는 경계 또한 느슨해졌으니까요. 만에 하나 저자가 데 로스 제국의 밀정이라면! 그런 자를 아스카 님의 친위대로 두게 된다는 뜻을 모르시겠나요? 게다가 데 로스 제국만이 아니죠, 최근 들어 그림시커라는 단체로 빠져나가는 무투가들도 적잖은 와중에 하필이면 정체도 불분명한 자가-.”
당면한 수쥬의 상황이 어찌 되는지.
수쥬 항마단 소속으로 퇴마 등의 활동에만 전념하는 신장과 달리, 외교부터 국방, 그 모든 걸 포함한 내정까지 신경 써야 하는 우에겐 결코 쉽게 볼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실질적인 적대국, 데 로스 제국이 있다.
전신인 펠 로스 제국 시절에도 그들은 수쥬국과의 동맹을 무단파기하며 침공해온 전력이 있다.
그 시절 이후부터 줄곧 제국에 대한 수쥬국의 신뢰는 사라진 상태가 아닌가.
데 로스 제국의 현시점 황제와도 쇼난 아스카가 나름대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을 정도이니, 벨 마이어 공국과 데 로스 제국의 사이보다 어떤 의미로는 수쥬국과 데 로스 제국의 사이가 더 좋지 않다고 봐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신장 또한 그러한 정세까지는 파악하고 있었기에, 뒤늦게나마 멋쩍은 사과를 해야만 했다.
“미, 미안합니다. 우 님을 곤란하게 만들려는 건 아니었습니다만…….”
“저만 곤란하면 다행이죠. 문제는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우의 불안은 해소되지 않았다.
적어도 신장이 한 말 자체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진:청룡대회의 우승자는 왕실 친위대로 발탁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자격이 주어질 뿐 채용 확정은 아니다. 국왕인 쇼난 아스카가 그것을 뭉개버리는 것도 당연히 가능하다.
그러나 우승자가 그것을 강력하게 원한다면?
이미 특전을 손에 쥔 진:청룡대회 우승자에 대한 국왕의 예우라는 측면에서 결코 보기 좋을 리가 없다.
“그것도 저런 기운을 가진 자가…… 나의 친위대가 되기를 자처한다면…….”
쇼난 아스카의 표정이 굳었다.
그런 사정 속에 그들은 진성을 우승자로서 축하하기 위해 단상으로 내려갔던 것이고.
“크흠, 콜록, 콜록! 콜록!”
도저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연기인지, 실제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헛기침이나 하는 진성을 마주한 상태였다.
진성은 허겁지겁 말을 내뱉었다.
“우승, 크흠, 우승 특전은…… 이미 들었습니다. 왕실의 친위대로 뽑힐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고 이야기들을 하더군요.”
“……맞아요. 엄밀히 따지면 곧장 특채하는 게 아니라 그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지만…….”
쇼난 아스카는 말끝을 흐렸다.
곁에 있던 우와 신장의 표정도 급격히 굳어가기 시작했다.
이 자가 정말로 왕실 친위대를 원한다면.
신장조차 명확히 파악하기 힘든 넨念을 두른 자가 국왕의 바로 곁에 있게 된다면!
꿀꺽.
누군가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울렸다.
진성은 말했다.
“그거 대신에 혹시…… 저를 시란 님께 소개시켜 주실 수 있을까요?”
애당초 수쥬국國으로 왔던 목표이자 퀘스트를 위해 반드시 안면을 터야 하는 인물, 4인의 웨펀마스터 중 한 사람인 도刀의 시란.
그에 대한 수쥬국 국왕 쇼난 아스카의 보증이 있다면, 향후 진성 자신이 움직이는 데 매우 큰 힘을 얻게 될 것이 아닌가.
‘다만 쉽진 않을 거야. 아무리 유저가 없다지만 이런 식으로 특전을 바꾸는 건 저쪽에서도 그저 받아들이기에 쉽지만은 않겠지. 무엇보다 신장까지 와서 흑구의 기운을 알게 모르게 느끼고 있는 가운데 그런 일을-.’
진성은 걱정했다.
그리고 걱정은 곧 당황이 되었다.
“무, 물론이지요! 좋습니다. 당장 시란 님을 찾으라는 수배를 내리고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놓도록 하죠.”
“……네? 이렇게 빨리-.”
“금번 진:청룡대회의 우승자, 진성! 수쥬는 당신을 환영합니다!”
마치 진성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확정을 지어버리겠다는 듯 말하는 쇼난 아스카의 태도부터, 어느새 다가온 칙사 우가 진성의 팔목을 잡곤 번쩍 들어 우승을 축하하는 퍼포먼스까지?!
“와아아아아아-!”
“진성! 진성! 진성!”
“어, 어어? 어?”
진성 자신이 한 부탁이야말로 그들이 가장 바라마지않던 점이라는 것을, 아마도 그는 끝까지 알 수 없을 것이다.
현재 레벨은 67, 진성은 끝끝내 어리둥절한 얼굴인 채 무투대회장을 빠져나왔다.
* * *
쇼난 아스카가 시란을 찾기 위해 파견한 친위대로부터 연락을 받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진성이 예상하고 있던,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유저의 캐릭터로서 시란을 만나던 장소가 아니라는 것!
즉, 현재 수쥬를 오가며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을 유저들에게는 진성 자신이나 시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터이니, 그를 맞이하기 위해 후다닥 달려나갈 수 있는 셈이었다.
시란은 골목길에서 휘적휘적, 비틀비틀 걸어오는 중이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곳이었음에도, 그렇게 흔들리는 육신의 어느 곳도 양옆의 벽에는 부딪치지 않는 모습.
‘아마 지금 시점에서도 나이가 50대 후반은 되었을 거야. 4인의 웨펀마스터 중에서도 가장 연장자인데다…… 가장 뛰어난 실력자가 시란이다.’
고작 벽에 부딪히지 않는 정도 따위로 시란이 4인의 웨펀마스터 중에서도 가장 특별하고 뛰어나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겠으나 이미 ‘배경 설정’을 알고 있는 진성의 입장에서는 그런 모습 하나하나도 눈에 띄는 특징이었다.
기척을 느낀 듯 시란은 우뚝 멈춰섰다.
그러곤 고개를 들며 술이 든 호리병으로 입을 한 번 축이곤 말했다.
“니가 우가 말한 가가?”
거나하게 취한 것 같으면서도 그 눈빛이 결코 흐리멍텅하지 않음을 진성은 보았다.
문제는 그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점뿐이었다.
“아……옙! 진성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여기, 약소하지만 선물입니다.”
현실에서도 사투리를 제대로 이해 못 하는 진성의 입장에서, 하물며 게임 던전앤파이터 식으로 조금 더 뒤섞여 들리는 느낌의 수쥬식 방언이었으니!
그나마 맥락으로 이해한 채 흑요정들의 국가, 펜네스 왕국에서 구해놨던 를 전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빠릿빠릿한 자세를 보였다고는 할 수 있으리라.
“캬하,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사람 보는 눈이랑 술 보는 눈 하나는 기가 막히다카이. 이마이 좋은 걸 우째 가져왔단 말이고? 처음 보는 사람한테 줄라꼬 준비한 건 아닐낀데.”
시란은 진성이 건넨 술병을 들고 감탄했다.
진성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평소 존경해마지않던 시란 님을 뵐 수 있는 기회인데요. 기뻐해주시니 오히려 영광입니다.”
몸에 밴 듯한 예의범절은 분명 흠잡을 데 없었다.
시란 역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진성으로선 무난하게 흘러가는 기분이 드는 게 당연했다.
시란을 좋은 인상으로 만나려 했던 건 비단 오염 때문만이 아니다.
퀘스트 중 오염된 무언가를 찾기 위해 그에게 협조를 받으려는 계획 때문만이 아니다.
진성 자신이 시란으로부터 확실하게 배울 수 있는 점 하나가 있다.
‘퀘스트 이름 그대로지. 이번 메인 시나리오 흐름의 명칭 그대로야. 시란은 지난 ‘비명굴 사건’ 이후로 능력을 얻었으니까.’
그는 을 열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의, 원하는 장소로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는 ‘비명굴 사건’ 당시 획득하게 된 정체 모를 능력으로 인해 을 열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
만약 그러한 능력을 어떻게 다루는지.
그 능력을 통제할 수 있는 어떤 종류의 노하우라도 진성 자신이 배울 수만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을지 몰라. 나도 어쨌든 유사한 경험을 해봤으니까.’
검은 질병의 디레지에가 차원의 균열을 다시금 깨고 나오려 했을 때.
그리고 [차원의 꼬임으로 길 잃은 자들]을 만났을 때.
진성 자신의 [능력]이 발현되었다.
엄밀히 따지면 진성 본인 혼자 한 일은 아니지만, 분명히 가능했다.
‘그리고 그때의 그….. 잘생긴 사람도 말했었잖아. 몇 번 겪다 보면 성장하고, 단련될 거라고. 근원적인, 근본적인 능력이 있으니까. 내 힘으로 가능한 일일 테니까.‘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앞으로는 어떨까.
진성이 잠시 자신의 계획과 생각을 되짚는 사이, 를 어느새 갈무리한 시란은 진성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니캉 봉사 할배의 제자라꼬.”
“……예?”
진성으로 하여금 잠시 해석을 필요하게 만드는 표현이었다.
그러나 굳이 시간을 들일 필요는 없었다.
“아간조 글마한테 다 들었다카이.”
이어지는 시란의 발언까지 들었을 때, 진성은 그의 투기가 이미 변하고 있음을 깨달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