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29)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29화(129/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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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은 잠시 그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다크 데킬라를 벌컥거리던 주정뱅이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무인의 그것으로 바뀌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순수하게 시란의 표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면이 있기 때문이었다.
“기다 아니다 딱 말해봐라. 맞나.”
어찌 되었든 G.S.D가 아수라 안대를 착용하고 있는 상태인 것은 맞다.
그가 APC로서 유저와 던전 안에서 행동할 경우 사용하는 스킬 또한 아수라의 것이다.
초기의 설정이 어찌 되었든 현시점에서 G.S.D는 가장 유명한 ‘아수라’ 직업군의 검사라고 봐도 과언은 아닐 터, 그런 의미에서 시각을 포기하고 파동으로 단련한 그들은 안대를 차고 다니지 않던가.
“어, 아, 봉사……G.S.D 님을 말씀하시는 거죠? 제 스승님……예, 맞습니다.”
G.S.D를 그저 눈이 먼 사람으로 낮잡아 일컫는 ‘봉사’라 부르다니?
시란이 일반적인 성격이 아니라는 건 진성도 익히 알고 있음에도, 그것은 다소 위화감이 드는 발언이었다.
‘적어도 예의는 아는 사람이다. 엉뚱하다는 느낌에 가깝지 괴팍함과는 거리가 있어. 근데 G.S.D를 봉사 할배라고 부른다고?’
시란은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NPC들과도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와중에도 언제나 호감형 캐릭터에 가까웠던 시란이 이런 방식의 표현을 하다니?
진성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시란은 술을 한 모금 더 들이켰다.
“근데 내는 못 믿겠다 안카나.”
그러곤 말했다.
이건 진성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샤란은 물론, G.S.D와 오랜 친분이 있었던 대장장이 신다 NPC조차 진성 자신이 G.S.D의 제자라 말했을 때 믿기 힘들어 할 정도였으니까.
따라서 진성은 곧장 [인벤토리]를 뒤적였다.
“아, 네. 아간조 님께서 말씀하셨더라도 믿기 힘드실 수 있죠. 그래서 직접 G.S.D님께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잠시만요, 어디 있더라…….”
반드시 눈앞에서 확인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들이 진성 자신에게 따지고 들어도, 그 즉시 텔레포트 포션으로 헨돈마이어의 G.S.D에게 날아가 확인시켜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치아라, 고마.”
“……네?”
문제는 포션을 마셔서 직접 확인하기도 싫다고 나오는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것이랄까.
시란은 진성에게 받은 다크 데킬라 한 병을 완전히 다 비워버리곤 그 병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절대 제자는 받지 않을기고 또 받은 제자도 없다켔는데 이제와서-.”
거칠게 놓는 것 같았으나 돌바닥에 닿는 유리병에선 짤그랑 소리 한 번 울리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동시에 완벽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멈출 줄을 몰랐다.
[진성, 온다!]“흐앗?!”
“-제자가 나와뿟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가!?”
카아아아앙──────────!
시란의 갑작스러운 쇄도에 진성은 뒤로 물러서며 <메카닉 지젤의 전기톱>을 치켜들어야만 했다.
쇠와 쇠가 부딪치는 강력한 마찰음이 쇼난의 골목길에 울렸다.
“자, 잠시만요, 시란 님! 저기, 저는 수쥬국國의 국왕이신 쇼난 아스카 님께- 진:청룡대회의 우승자 권한으로 시란 님을 소개받은-.”
“시끄럽구로, 문디 자슥! 봉사 할배의 제자라꼬 이바구하면서 니는 지금 그게 할 행동이가?”
“-예? 예?”
시란은 연속해서 무기를 휘둘렀다.
도刀의 달인이 휘두르는 공격 한 방, 한 방에 실린 것은 힘뿐만이 아니었다.
“크윽.”
진성 자신이 들고 있는 무기야말로 톱날형이다.
오히려 상대방의 무기를 막아 세우거나 상대방 무기의 날을 무디게 만드는데에 특화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건만.
‘놓치겠어, 이 작은 톱날들 사이에 자신의 무기를 끼워넣고- 내가 무기를 놓치게끔 만들려 하고 있다!?’
역으로 시란이 톱날 사이에 자신의 도刀를 끼워 넣어 비껴 올리는 방식으로 진성 자신을 무력화시키려고 하는 게 아닌가!
조금만 더 손아귀의 힘이 약했더라면, <메카닉 지젤의 전기톱>이 조금만 더 가벼웠더라면 이미 놓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란은 힘 외에 확실한 기술, ‘검술’을 보여주는 중이었다.
“봐라, 이봐라, 마! 이래놓고 봉사 할배의 제자라꼬? 아간조 글마한테 무슨 이바구를 했는지 몰라도 나는 절~대로 안 속는다카이!”
그 와중에도 역시 진성의 정체를 믿을 수 없다는 말까지.
막무가내로 나오는 시란의 발언에 진성은 당황했다.
‘이런 성격이 아닌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덮어놓고 의심하는 스타일은 절대 아니야. 오히려 4인의 웨펀마스터 중 가장 유연한 사고를 지니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시란이 이런 짓을 하는 거라면…….’
테스트. 진성 자신을 시험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진성으로서도 그저 당황만 하고 있을 순 없는 법이었다.
“그러니까! 우선 겨뤄보자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그럼 저도 진심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 얘기 한 번 잘 들어보십쇼! <어퍼>, <스핀 어택>, <트리플 스탭>-.”
콤보를 시전하며 우선 시란의 시험을 통과하고 나서 자세히 설명해야겠다는 수정된 계획을 수행하려는 찰나.
“필요없다카이! 내캉 봉사 할배랑 알고 지낸 시간이 있다 안카나! 거까진 몰랐제?”
시란은 말했다.
어떤 의미로는 특별할 것 없는 발언이었으나 진성은 달랐다.
“……아?”
머릿속에 몇 가지 의구심이 떠올랐다.
최초로 의심이 가기 시작했던 시란의 태도부터 진성은 되새겨보았다.
1. G.S.D를 봉사 할배라 부른 게 얕잡아 본 게 아니라 친분에 따른 것이라면?.
2. 시란이 조금 전 스스로 말한 것처럼 G.S.D와 오래도록 친밀한 관계를 쌓아왔다면?
1, 2번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당연한 이유라면 진성 자신 때문이었다.
‘4인의 웨펀마스터가 기본적으로 G.S.D와 어느 정도 안면이 트여있고, 적당히 친분이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지만……. 시란과 G.S.D가 이렇게나 깊은 관계라는 걸 내가 몰랐다고?’
알았어야 한다.
시란은 현시점의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도 맹활약하는 주요 NPC 중 한 사람이고, G.S.D는 과거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모든 귀검사들의 스승격 존재일 정도로 중요했던 NPC이다.
그 둘의 관계성에 대해서 다른 유저라면 몰라도 진성 자신은 알고 있어야한다.
‘그냥 아간조가 G.S.D와 아는 것처럼 시란도 그 정도로만……이……아니다!? 아, 아아?!’
그 순간, 진성의 머릿속에 떠오른 게 있었다.
현시점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는 직접적으로는 한 번도 엮인 적이 없는 시란과 G.S.D다.
하지만 예전에는?
‘피나비의 춤! 미친, 세컨드 임팩트 패치 때 나왔던 그거!? 거의 2009년에 패치됐던 그 시절, 피나비의 춤 히어로즈 퀘스트에서…… 있었어!’
시란과 G.S.D가 직접 만나 대화하는 장면이 있었다.
유저는 ‘형상화된 시란의 꿈’이라는 APC와 함께 던전을 클리어하기도 했다.
‘2009년에…… 지금으로부터 도대체 몇 년이나 전인지 모를 그 시절에!’
진성에게는 정말 까마득한 그 옛날의 기억 속에서.
압도적인 레벨을 자랑하던 APC 시란이, 당시 유저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압도적인 스킬을 사용하던 그 시절에.
“고마 앞으로는 거짓부렁하고 댕기지 말그래이, <환영검무>!”
시란과 G.S.D의 관계성은 존재했다.
그리고 그 관계성 자체는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에, 마침내 진성은 도달한 것이다.
그럼에도 진성의 눈은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렇다 해도 시란과 G.S.D의 관계 설정에 대한 것만 남아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지금 눈앞에 날아오고 있는 것은?
“젠장, 근데 그 장면도, 그 퀘스트 자체가 패치로 뒤집어지면서 다 사라졌는데! 히어로즈 난이도는 왜 자꾸 문제가 터지는 거냐고, 삭제된 주제에!”
가뜩이나 좁디 좁은 골목길을 가득 채우며 날아오는 검풍劒風.
그것은 그 시절 APC였던 시란이 유저와 함께 다니며 적을 쓸어버렸던 바로 그 기술이었으니까.
‘피할 수 없어. 도망갈 곳도 없다. 무엇보다 이게…… 오염이라면!’
진성은 마른침을 삼켰다.
골목 양쪽의 벽을 갉아내며 쏘아지는 검풍을 회피하는 건 이미 틀렸다.
“후우우우…….”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베어낸다.
날아오는 검풍들을 모두 베어내고 이것이 오염인지 오염의 전조인지 그것도 아니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인지 확인한다.
“하아아아……..”
진성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곤 검을 휘둘렀다.
그의 눈이 역안으로 변했다.
───────────……!!!
* * *
진성이 노린 결과는 검풍을 베어내는 것이었다.
자신을 향한 공격을 무위로 돌린 후, 시란과 조금 더 깊은 대화를 통하여 오염 여부를 확인하자는 생각이었다.
“……엉?”
그러나 지금, 진성은 그저 당황해야만 했다.
다행인 점이라면 당황한 게 진성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기 뭐꼬? 우예된 일이고?”
시란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와 <시간의 문>이 열린기고?”
지금 두 사람이 서 있는 장소는 <시간의 문>의 내부였으니까.
“시란 님이……여신 거 아니고요?”
진성은 물었다.
시란은 주변을 살피면서도 강력하게 손사래를 쳤다.
“무슨 소리고? <시간의 문>을 여는 건 보통 일이 아이다. 내 것 맹키로 막 이유도 없이 그럴-……. 자, 잠만. 그카고보이 니는 우째 알았노?”
그러다 진성을 향해 목이 꺾이라 고개를 돌리는 것이었다.
진성은 그를 마주 보았다. 정확히는 그의 눈동자를 살폈다.
혹시나 오염은 있는가.
진성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시란과는 어느 정도로 다른가.
‘……같아. 나야 기껏해야 일러스트나 보고, 시란의 대화 스크립트나 좀 보고, 컷씬으로 등장했던 시란밖에 모르지만……. 같다. 오염된 게 아니야.’
분명 그가 보여주었던, 압도적인 검풍을 쏘아대는 <환영검무>는 과거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APC로 등장했을적 시란과 같았으나 그것만 따질 게 아니라는 의미다.
‘4인의 웨펀마스터 중에서도 특출난 실력의 보유자로서 이 정도는 오염이 아니라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는 뜻이군.’
시란의 실력이 구현화되었을 때 납득할 수 있는 정도라는 것.
무엇보다 오염이 아니라는 가장 큰 증거는 결국 또 있지 않은가.
‘적어도 <시간의 문> 안쪽까지 들어온 이 시점에도 유저는 없어. 비비 씨의 경우도 있었으니 유저가 아니라면 빙의된 누군가라도 함께 있었어야 했는데. 즉, ‘모험가’가 함께 있어야 하는데…….’
모험가가 없다.
<시간의 문> 안에 있는 건 시란과 진성 오직 두 사람뿐이다.
그렇다면 오염은 아닐 터.
“이바구해봐라! 봉사 할배도 그건 모를낀데!”
시란은 생각을 정리하는 진성을 다그치듯 말했다.
다소 불안해보이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진성은 오히려 침착해졌다.
“제가 G.S.D 님의 제자라는 걸 믿지 못하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뭐, 뭐라꼬?”
“그럼 G.S.D 님이 모르는 걸 제가 알고 있다고 해도 잘못된 건 아니겠죠.”
“머라카노, 내캉 말장난 하나? 지금 중요한 게-.”
“네, 중요한 점만 말씀드리는 겁니다. 제가 G.S.D 님의 제자이든, 제자가 아니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진성은 말했다.
지금 이 장소에 진성 자신과 시란이 있게 된 이유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는 게 첫 번째 자신감의 이유라면.
“저는 <시간의 문>을 들어와 본 적이 있습니다. 차원의 틈을 열고 그 균열에 들어가 본 적도 있습니다. 저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진성의 기억으로부터 떠오른 대화 때문이었다.
“-메멧을 알고 있습니다.”
타임로드 메멧을 알고 있는 자.
<시간의 문>을 드나 들어본 적이 있는 자.
“저 또한 차원의 힘을 다스리고 <시간의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죠.”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외전 캐릭터인 ‘다크나이트’와 ‘크리에이터’를 선택했을 때, 시란과 대화하면 출력되는 ‘직업 전용 특수 스크립트’의 존재가 마침내 진성에게 떠오른 것이었다.
시란의 눈이 휘둥그레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