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40)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40화(140/212)
140
선지자 에스라가 어떤 생각으로 그런 일을 저지르는지, 물론 진성은 알고 있다.
그런 일을 행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 또한 알고 있다.
‘……아젤리아 로트의 사망. 거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촉발되는 사건들이지.’
해당 시점의 그림시커는 지금 세를 불려 나가는 그림시커의 규모보다도 월등히 커져 있을 터, 그나마 아젤리아 로트라는 구심점이 있었기에 유지되었던 그림시커 내부의 갈등은 그녀의 사망으로 인해 극단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게다가 아젤리아의 뒤를 이어 온건파의 수장으로 올라선 에스라가 내린 최후의 결단이 바로 그거니까……. 으음.’
진성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며 에스라를 바라보았다.
에스라의 얼굴에서 그 눈동자만이 스르륵, 움직여 진성을 향했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에스라의 미간이 잠시 움찔하긴 했으나 그뿐이었다. 진성은 물러서지 않았다.
에스라는 말했다.
“……수장의 말을 듣겠소.”
진성으로선 안도의 한숨이 나올 정도의 발언이었지만 그걸 드러낼 리는 없었다.
아젤리아는 상쾌한 미소를 보이곤 다시 진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저를 만나고자 하신 이유는요, 진성 님?”
“아, 저기, 원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었는데 일단 그럼 사도와 관련된……정보부터 말씀드릴게요. 간단히 요약하면, 천계에 있는 사도는 안톤이라 불리는 개체입니다. 불을 먹는 안톤, 거대한 정도가 아니라 그냥 섬이 걸어 다닌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큰 생명체지요.”
진성은 아젤리아의 질문에 재지 않고 답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에너지원입니다. 따라서 과학이 발달한- 아, 천계는 마법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문명 체계가 발달된 상황입니다. 언제 기회가 닿을 때 보게 되시겠지만 어쨌든, 과학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선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러니까 마나 같은 겁니다만, 천계에선 그러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가지고 있죠. 초 대용량의 발전發電 설비입니다.”
아젤리아가 혹여나 알아듣지 못할까 중간중간 첨언까지 넣어가는 진성의 설명.
그것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안톤은 해당 발전 설비를 마치 자신의 식량고처럼 사용하기 위해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를 내쫓기 위해 천계의 모든 군사가 모여 있지만, 안톤은 혼자가 아니거든요. 섬처럼 거대한 개체에 기생하는 또 다른 생명체들과 정신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죠. 대규모의 외부 타격은 말씀드렸듯 에너지를 자원으로 하는 그에게 있어 ‘좋은 영양분’이 될 뿐이고, 상륙해서 처치하자니 그곳에 기생하는 생명체의 힘에 밀리는, 그러한 결착 상태지요. 결국-.”
진성이 아무런 조건도 없이 자신이 아는 정보를 푸는 이유라면 역시나 간단했다.
“-현재 천계의 힘만으로는 사도 안톤을 토벌하는 게 불가능하므로 어떤 종류의 한 방……. ‘결정적인 무언가’가 있을 때까지 사도 안톤은 천계에서 날뛰게 될 겁니다.”
아젤리아의 곁에 있던 에스라마저 팔짱을 풀게 만들 정도의 상황.
말하자면 진성 자신의 능력을 아젤리아뿐만 아니라 에스라에게도 증명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에스라는 이제 아젤리아보다도 반 보 앞서 나왔다.
줄곧 뒤에 있던 그의 태도가 변했다는 것만으로도 진성의 계획이 먹혔다는 방증일 터.
“크흐으음……. 그 말이 사실이오? 그보다 그걸…… 아직 천계에서 기밀에 부쳐지고 있는 사도에 대한 정보를 어찌 알고 있단 말이오?”
에스라는 조심스레 물었다.
진성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젤리아 님께 들었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크, 크흐으음…….”
에스라는 민망해진 듯 아젤리아의 눈치를 보았다.
사도 안톤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천계의 황국에서도 조심스레 다뤄지고 있다.
현시점 아라드 대륙에서 그 일에 대해 자세히 알 만한 자라면 천계와 공식적인 동맹을 맺은 데 로스 제국의 극소수 인원들밖에 없을 터.
‘덩치를 제법 불렸을 텐데, 그림시커 내의 누구도 이 정도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이겠군.’
어차피 곧 풀리게 될 정보다.
이 정도의 정보로 우위를 누리려 하는 것보다 아젤리아, 에스라에게 먼저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진성은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게 있었으니.
아젤리아는 진성의 말을 종합하고 있던 듯 잠시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연단된 칼날……사도를 꿰뚫을 칼날이 사도 안톤에게 도착하게 된다는 뜻인가요? 곧 그런 일이 벌어지면- 진성 님은 사도 안톤이 처치될 거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러곤 말했다.
진성이 원하는 부분까지 도달한 그녀의 두뇌 회전에 감탄하기도 잠시.
진성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미 ‘예언’을 알고 있다는 점을 공유하고 있는 두 사람이다.
<창신세기>에 나오는 ‘연단된 칼날’이 사도들을 꿰뚫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두 사람이다.
무엇보다 아젤리아의 목표는 무엇인가.
바로 그 ‘연단된 칼날’들이 사도들을 꿰뚫지 못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사도를 지킴으로써, <창신세기>의 예언이 실행되지 않게끔 만듦으로써 아라드를 지키는 것이다.
바꿔 말한다면?
“네. 안톤을 지키고 싶으시다면 연단된 칼날이 그에게 도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겁니다.”
큰 의미에서 칼날의 연단을 방해하는 자, 일종의 <오염의 원인자>와 같은 목표를 지닌 채 행동하는 인물이 바로 아젤리아 로트라는 의미다.
“하지만 어떻게…….”
아젤리아는 에스라를 바라보았다.
에스라는 고개를 저었다.
“수장,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니오. 사도를 지키는 것과 칼날을 부러뜨리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
에스라의 답변은 오히려 진성을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큰 의미에서 <오염의 원인자>가 아젤리아 로트를 비롯한 그림시커-온건파와 궤를 같이 한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 목표의 세부적인 사항까지 비추자면 결국 이러한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것!
아젤리아는 에스라의 말에 곧장 끄덕였다.
“맞는 말이에요. 희생은- 적어도 그러한 희생은 낼 수 없어요. 진성 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한들-.”
“그래서 제안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네?”
진성이 굳이 사도 안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다소 긴장된 분위기를 조성했던 이유.
그리고 아젤리아를 만나려 했던 이유.
“저를 절망의 탑에 계신 분께 소개해 주십시오.”
진성은 말했다.
아젤리아와 에스라, 두 사람이 눈을 휘둥그레 뜨게 만들 발언을.
* * *
두 사람은 잠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절망의 탑을……어떻게 아시고…….”
절망의 탑에 대해 아는 자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림시커 단원이라 할지라도 에스라에 의해 가입/활동을 시작한 인원들이라면 전혀 모를 정도다.
“그, 그보다- 아니, 외부인이- 그림시커도 아닌 인물이 어떻게…… ‘그 사람’을…….”
하물며 진성이 지금 말한 건 절망의 탑이 주요한 게 아니다.
절망의 탑 안에 있는 사람.
절망의 탑 안에 수많은 사람이 있으나 존칭까지 써가며 언급할 만한 사람은 결국 한 명밖에 없을 터.
“제가 그분을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해서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린 것 같은데…… 설명하자면 너무 길거든요. 하핫.”
진성이 만나고자 하는 이, 천계에서 아행과 검격을 나눈 이후 줄곧 생각했던 이.
솔도로스.
솔도로스를 만나려는 것이 진성의 목표였다.
그러나 그를 만나러 가기 위한 계획은 조심스레 짤 수밖에 없었다.
“진성 님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안타깝게도 제가 진성 님을 그분께 직접 소개할 수는 없을 것 같군요. 강경파의 대표가 된 그분은 물론, 그분을 따르는 자들은 제가 절망의 탑에 접근하는 것도 거부할 테니까요.”
아젤리아의 말 그대로였다.
현재 그림시커는 아젤리아를 필두로 한 온건파와 솔도로스를 대표로 한 강경파로 나뉜 상태다.
<창신세기>의 예언을 막아야 한다는 대의는 같으나 그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대치하는 두 그룹은 사실상 이름만 같은 그림시커일 뿐 다른 조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다.
당연히 진성은 알고 있는 점이다.
‘하하호호 웃으며 소개받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렇다고 아젤리아를 거치지 않은 채 그냥 절망의 탑으로 간다 한들 솔도로스를 만날 수 없다는 점이고.’
진성 홀로 무계획적으로 절망의 탑에 간다?
96층에 거처를 둔 솔도로스를 만나기 전에 진성 자신이 절단 날 가능성이 있다.
설령 96층까지의 난관을 뚫고 솔도로스 앞에 도달한다 해도 그가 진성 자신을 상대나 해줄까?
‘……내가 잘난 척 떠들어봐야 솔도로스는 말 그대로 아라드 최강의 검사. 빙의된 육신이고 나발이고 나는 한방컷이겠지.’
따라서 진성은 아젤리아를 찾았던 셈이다.
그녀와 직접 절망의 탑으로 가서 원하는 자를 만날 수 없다하더라도…….
“그럼 편지라도 한 장 써주실 수 있을까요?”
“그건……. 그리 갑자기 말씀하셔도-.”
아젤리아는 당황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이 어떤지 진성은 보았다.
‘고통의 마을 레쉬폰’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도 아젤리아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진성의 정체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을 때부터 그녀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 점에 대해 진성은 전혀 몰랐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꼭 저를 잘 부탁드린다는 뭐, 그런 소개장 같은 건 아니어도 됩니다.”
“네?”
즉각적인 거부가 아니다.
절대로 안 된다는 강력한 부정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젤리아 님께서 생각하시기에 그분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 아무 거나 한 줄이면 되거든요. 펜은 칼보다 강하니까.”
밀어붙이면 반드시 통한다는 것!
어차피 진성이 이러한 편지를 원하는 것도 솔도로스에게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기 전에 아젤리아의 편지 운운하며 한 박자를 살아남기 위함이지 않은가.
[클클, 펜이 칼보다 강하다…… 나는 펜도, 칼도 모두 녹여버리는-.]진성은 흑구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아젤리아의 답변을 기다렸다.
애초에 진성이 사도 안톤에 대한 정보를 줄줄이 읊어주고, 또한 사도 안톤이 곧 처치될 가능성에 대해 일러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아젤리아는 잠시 고민했으나 진성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불안감을 느끼겠지. 사도를 지키고 싶은 입장에서…… 아젤리아도 불안할 거다. 그렇다면 그 편지에 어떤 내용이 들어갈지는 대충 예측할 수 있어.’
그림시커 온건파의 수장으로써 책임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을 터.
그 와중에 진성 자신이 솔도로스를 직접 만나고자 말하지 않았나.
‘아마도…… 아마도 아젤리아는-.’
솔도로스에게 전하는 편지에 적을 것이다.
이 자를 시험해달라고.
즉, 진성 자신을 시험해보라고.
이러한 흐름까지 사고가 도달하는 건 그리 자연스럽지 않다.
그럼에도 진성이 아젤리아의 편지 내용을 예측할 수 있는 이유라면 역시나 하나였다.
‘아젤리아 사후, 그녀는 모험가, 유저를 솔도로스에게 보낸다. 솔도로스는 유저야말로 아젤리아가 남긴 유언이자 메시지라고 생각하며 유저를 테스트한다.’
먼 훗날, 아젤리아의 유지를 이어받은 모험가가 겪게 될 일을.
진성 자신이 유저로서 겪었던 일을.
진성은 지금 시점의 자신으로 테스트해보고자 하는 셈이었다.
휘이이이익……! 아젤리아가 손을 휘젓자 허공에 편지지 한 장이 떠올랐다.
펜은 보이지 않았건만 내용은 무슨 수로 담은 거지?
이미 그 안에 내용이 담긴 것일까? 어쩌면 그러한 내용을 담은 편지지를 항시 지참했던 건?
진성이 의문을 가지기도 잠시였다.
곧 봉투 안에 들어가 단단한 봉인까지 마친 우편물이 진성의 앞으로 날아왔다.
“그분을 뵙게 된다면…… 이걸 보여주시면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진성은 [인벤토리]를 열어 조심스레 우편을 갈무리했다.
다시금 팔짱을 껴고 있던 에스라가 입을 열었다.
“그분을 뵙지 못한다 하더라도 수장의 편지는 그분의 ㅈ-.”
“에스라 님.”
“-크, 크흠, 실언했소.”
그러나 그의 말은 곧 아젤리아에 의해 막혔다.
그럼에도 진성은 알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했을지.
‘솔도로스를 만나지 못하게 되거든 그 제자에게라도 전해라……는 조언을 해줄 참이었겠지. 흐흐, 에스라 님, 의외로 마음이 따뜻하시구만.’
신검 양얼에 대한 존재를 언급하려던 그는 아젤리아에 의해 입을 다물어야 했던 것.
충분한 조언이 될 수 있었던 말을 아젤리아가 막은 이유 또한 간단하게 해석할 수 있다.
아젤리아야말로 진성 자신의 진정한 능력과 힘을 시험해보고 싶어하고 있을 테니까.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바쁘실 텐데, 들어들가세요.”
“……우리가 언제 다시 또 볼 수 있다는 건가요?”
꾸벅, 인사와 함께 발길을 옮기려던 진성을 향해 아젤리아는 물었다.
진성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조심히 가십쇼!”
그러곤 발걸음을 옮겼다.
순식간에 멀어져가는 진성의 뒷모습을, 남겨진 두 사람은 멍하니 바라봐야만 했다.
“저자는……절망의 탑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묻지 않고 가고 있소, 수장.”
에스라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는 듯 황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젤리아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알고 있다는 뜻이겠죠. 놀랍네요.”
“하지만 솔도로스에게 저자를 보내도 되는 것이오? 수장이 어떤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지 대략적인 예상이 되기에 오히려 불안하구려.”
에스라는 물었다.
아젤리아는 잠시 고민했다.
그러곤 답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아라드를 재앙에서 구하는 것, 그 절대적인 사명을 완수하는 게 우리의 지상과제니까요. 절망의 탑에서 기나긴 수련을 쌓은 분들이 과연 진성 님을 어떻게 대할지……기대되는군요.”
진성이 들었다면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더욱 험난한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답변이었다.
에스라는 진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천계에서 내려온 모험가에 대해서 수장과 논하고 싶은 말이 있소만. 최근 수쥬국國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에 더해서, 모험가가 과거를 넘나들고 있다는 소문이 귀에 들어왔소.”
“자세한 이야기는 돌아가서 하지요.”
아젤리아는 고개를 끄덕인 후 몸을 돌렸다.
북쪽으로 나아가는 진성과 남쪽으로 걸어가는 아젤리아의 사이에서, 에스라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는 북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진성……이라.”
그러곤 이내 아젤리아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