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44)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44화(144/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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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아아아───────ㅇ!
절망의 탑 96층에서 폭음이 일었다.
몇천 년간 쌓여온 창틀의 묵은 먼지마저 모조리 피어오를 정도의 압도적인 충격파였다.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진성 역시 솔도로스의 반응을 이끌어내겠다, 따위의 얄팍한 마음으로 움직인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말 그대로 솔도로스에게 치명상을 입히거나 또는 그가 죽더라도 어쩔 수 없지, 라는 정도의 진심 어린 각오.
그 각오를 실행하기 위해 <래피드 무브>와 <다크 크래셔>를 활용,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보다 더 빠른 시간에 쇄도했건만…….
[클클, 자아를 지닌 또 다른 물체인가.]진성의 앞을 막아선 건 고작 에고소드 클라리스였다.
솔도로스가 움직인 것은 찻잔을 바라보던 고개를 대략 15도가량 돌려 진성을 바라본 것 정도일까.
불쾌하다는 눈빛의 솔도로스를 향한 진성의 미간도 찌푸려졌다.
“<브리프 컷>, <바운스 블로우>, <피어스 스트라이크>!”
진성의 육신이 다시금 움직였다.
에고소드 클라리스든, 뭐든, 당장 눈앞의 장애물을 날려버리고 솔도로스에게 진심을 다한 공격을 먹여주자는 마음밖에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맹렬하게 회전하는 전기톱날이었으나 그것은 에고소드의 표면에 일어난 검기만을 긁어낼 뿐, 칼날에 직접적으로 닿는 것조차 힘겨웠다.
허공에 뜬 클라리스는 스스로 움직이며 가볍게 진성의 공격을 막아내자마자 곧장 <발도>의 공격을 가해왔다.
슈와아아아악-! 공기를 가르며 쏘아지는 검기의 크기.
그것도 사용자 없이 홀로 공격을 가하는 에고소드의 공격부터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으나 진성은 달랐다.
“비키라고! 에고소드라고 해봤자 흑구랑 다를 바도 없으면서-. <홉 스매쉬>-”
에고소드 클라리스보다 더 무서운 ‘에고 방어구’ 흑구가 있었으니까.
오히려 도약과 함께 ‘짤무적’ <홉 스매쉬>로 클라리스가 쏘아댄 <발도>의 검기를 상쇄하자마자 진성은 멈추지 않고 콤보를 이어나갔다.
“<스핀 어택>, <다크 웨이브>, <다크 볼>-.”
암흑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공격을 클라리스는 가볍게 쳐냈다.
엄밀히 따지자면 제대로 된 피격 한 번 당하지 않은 에고소드를 향해 진성은 왼팔을 뻗었다.
“-<다크 레이브>!”
전방의 적들을 진성 자신의 앞으로 끌어오는 스킬.
그 스킬은 먼저 피격되는 대상자가 있다 하더라도 해당 범위 안의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친다.
끼긱, 끼기기긱…….
“흠.”
즉, 솔도로스가 앉은 의자도 바닥에 끌리는 소리를 내며 진성을 향해 조금쯤은 움찔거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그 와중에도 앉은 자세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의자를 버티게 만든 건 대단한 힘이지만-.’
솔도로스를 어떻게든 움직이게 만든다.
진성 자신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든다.
“!!”
그렇다면 우선 클라리스부터 치워야 한다.
심장을 향해 검 끝을 겨눈 채 엄청난 속도로 쇄도하는 클라리스를 보며 진성은 숨을 토해냈다.
“좀 비키라고! 검은 검끼리 놀아! <팬텀 소드>!”
그러곤 휙, 허공에 진성 자신이 뽑아낼 수 있는 검의 기운을 소환해냈다.
클라리스는 진성의 가슴을 꿰뚫을 듯 찔렀으나 <팬텀 소드> 역시 잠시간의 무적이 포함된 스킬.
터어어어엉…….
“?!”
차마 인간을 가격했다곤 볼 수 없는 울림이 끝나기도 전, <팬텀 소드>의 본격적인 무형의 검들이 클라리스를 향해 소환, 쏘아지기 시작했다.
진성은 무형의 검들과 함께 클라리스에 협공을 가했다.
휘익, 휘익, 휘익, 휘익, 휘익-!
“<어퍼>, <다크 슬래쉬>, <웨이브>, <다크 크로스>-.”
짤막하게 이어지는, 저레벨 스킬들을 상당 부분 섞은 기본기에 가까운 콤보였다.
위협적이라곤 할 수 없었으나 <팬텀 소드>에서 쏘아지는 자잘한 무형의 검들과 함께 연계된다면 클라리스의 정신을 잠시 동안 끌어놓기엔 충분할 터.
그 정도의 찰나.
그 정도의 빈틈.
아마도 그것이 클라리스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틈이라 생각한다면!
진성이 굳이 자잘한 기본기 콤보 따위를 4번이나 연격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다섯 번째에 위치한, 최대 대미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스킬.
“한 방 먹고 생각 다시 하시죠, 사기꾼! <다크 웨이브 폴>!”
푸화아아아──────────ㄱ!
현시점 진성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스킬이, 콤보의 다섯 번째 위치에서, 가장 많은 대미지 증가 효과를 머금은 채 ‘솔도로스’에게 쏟아져내렸다.
솔도로스는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머리를 향해 어마어마한 양으로, 어마어마한 속도로 쏟아지는 암흑의 검을 보자마자 그는 움직였다.
다만, 앉은 자세 그대로, 그것도 의자 옆에 놓여있던 막대기를 하나 잡고선 휙, 휘두른 게 전부라는 점.
그것이 진성에게 있어서 안타까운 일이었다.
………….
솔도로스를 분쇄해버릴 듯 쏟아지던 암흑의 검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으니까.
“이런, 십.”
숫자를 센 건 아니었다.
욕을 단어로조차 완성시킬 수 없을 정도로 진성의 얼굴은 구겨져 있었다.
솔도로스는 말했다.
“재미있군.”
그것을 다행이라고 여길 수 있을까?
솔도로스의 반응을 이끌어 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할 수만은 없었다.
“그 몸에 붙은 것은 사도의 힘인가.”
수쥬국國 수쥬 항마단 소속 신장도 완벽하게 분석하지 못했던 것.
<시간의 문>에서 조우한 네메르도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던 것.
그림시커의 수장 아젤리아 로트조차 낌새도 알아채지 못했던 것.
전설의 웨펀마스터는 단 한 번의 검격을 받아냄으로써 그것을 파악해냈기 때문이다.
“없애겠다.”
솔도로스는 정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절망의 탑 96층의 솔도로스에 대해서라면 진성도 잘 기억하고 있다.
과거 6층 금발의 타일러에 대한 공략본 따위가 글로, 스크린 샷으로, 영상이 나돌았을 적, 그녀보다 더욱 강대한 APC들에 대한 공략본이 없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96층 솔도로스 패턴 파훼는 내가 써서 뿌린 적도 있으니…….’
그가 어떤 무기를, HP가 어느 정도 남았을 때, 어떤 방식으로 사용해 공격하는지.
무슨 스킬을, 어느 정도의 속도로, 얼만큼의 간격을 둔 채 쓰는지에 대해서 매우 상세한 공략을 진성은 인터넷에 공유한 적이 있다.
그 공략 덕분에 당시 나름대로 게임 던전앤파이터 커뮤니티 내에서 인기를 얻었을 정도였다.
웨펀마스터가 사용하는 스킬인 <발도>, <리 귀검술>, <류심 :쾌> 따위는 선先딜레이도 없이 사용하며, <환영검무>, <맹룡단공참>을 사실상 무한대로 쓰는 데다, 피하기도 힘든 크기의 <극초발도>를 날려대고, 심지어 버서커의 스킬인 <폭주>에 뜬금없이 ‘솔도로스의 환영’ 따위를 소환해내는 패턴을 보일 때도 있다.
그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야……하는 게 정상이잖아.’
그럼에도 진성은 <메카닉 지젤의 전기톱> 손잡이를 놓칠 것만 같았다.
손에서부터 주르륵, 흘러내리는 땀.
흑구의 기운을 없애버리겠다는 그의 선언은 그저 말이 아니라 정언명령과도 같은 무게가 있다고 해야 할까.
솔도로스는 한 걸음 내디뎠다.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서야 했다.
“저기, 그게-.”
조금 전까지 불길 같던 기세가 한 방에 진압된 기분이랄까.
솔도로스의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진성은 마른침을 삼키곤 말을 이었다.
“-통제할 수 있다면…… 사도의 힘이든,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건 잘 알고 있을 텐데요. 그리고 확실히 합시다. 이건 사도의 기운일 뿐, 사도가 아닙니다. 그 점이야말로 내가 이것을 통제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죠.”
[크크, 맞는 말이다, 진성. 만약 진정한 ‘나’였다면 저런 인간 따위 삽, 삽시간에 녹아내리게끔 만들어서…… 두려워하게끔 만들 수…….]진성은 놀랐다.
자신의 머릿속에 들리는 흑구의 음성이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울림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떨고 있어? 흑구가?’
냉룡 스카사를 앞에 두고도 아무렇지 않았던, 그 누구의 앞에서도 자신감을 내비치던 사도 디레지에의 또 다른 자아가 두려워하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답답한 건가. 아니면 소멸에 대한 두려움……. 흑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결국- 나밖에 없으니까.’
진성이 말한 것처럼 실제 디레지에라면 모를까, 실질적으로 진성에게 얼마만큼의 힘을 빌려주는 것 외에는 물리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흑구의 입장에서는 솔도로스가 말 그대로 사신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터.
“통제라.”
솔도로스는 그 한마디만 중얼거렸다.
진성은 솔도로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그저 두렵게만 보였던 눈빛이었다.
‘지금도 두렵긴 마찬가지야. 하지만…….’
두려움 외의 또 다른 감정이 진성의 가슴 속에서 피어올랐다.
솔도로스가 다시 한 걸음 다가왔다.
이번에 진성은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그 정체를 완전히 알 수 없는 힘. 그리고 통제.
진성은 두 가지의 단어를 곧장 대입하여 꺼낼 수 있는 반박을 떠올렸다.
“에고소드 클라리스도 그렇지 않습니까? 까딱 잘못했다간 클라리스 역시 ‘마검 아포피스’처럼 되어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솔도로스 님은 사용-.”
쉬이이이이잇-!
“-우왁?!”
솔도로스가 사용하는 에고소드 클라리스와 유사하지만 또 다른, 과거 비명굴 던전에서 악명 높았던 마검魔劍 아포피스와의 비교.
“클라리스.”
마치 그 점에 대해 분노했다는 듯 클라리스는 순식간에 진성의 목을 베러 날아왔으나 솔도로스는 이름을 불러 멈추게 만들었다.
클라리스는 분노한 듯 진성의 얼굴을 겨눈 채 좌로, 우로 흔들거렸으나 그뿐이었다.
에고소드는 곧 솔도로스의 곁으로 돌아갔다.
“음.”
솔도로스는 그런 클라리스를 한 번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사도의 힘을 통제할 수 있다, 통제한다는 측면에 대해서는 인정했다는 뜻인가?
그러나 그것에 대해 안심할 겨를은 없었다.
“허나……아젤리아를 속인 것은 용서할 수 없군.”
솔도로스가 말했다.
진성으로선 어안이 벙벙할 정도의 발언이었다.
“……네? 어, 저기- 속여요? 제가? 아젤리아 님을?”
“자네는 그녀가 보았던 예언의 모험가가 아니지 않은가. 또 다른 연단된 칼날도 아닌 자가 그녀를 속이고선…… 나를 사기꾼이라 부를 수 있는가.”
솔도로스는 손을 내밀었다.
허공에 떠 있던 에고소드 클라리스의 손잡이가 스르륵, 그의 손에 쥐어졌다.
진성은 솔도로스의 말을 완벽히 이해하진 못했다.
그러나 추측만으로도 얼추 해석할 수는 있는 일이었다.
‘아젤리아의 편지에……그런 내용이 있었나? 다, 단순히 시험해달라, 정도의 말이나 써있을 줄 알았더니…… 나를 또 다른 연단된 칼날 후보 중 하나라고 솔도로스한테 말한 거야?!’
사도 안톤을 지키려면 연단된 칼날이 그곳에 닿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진성 자신이 연단된 칼날이라고 말 한 적도 없으며 그런 뉘앙스를 비친 적도 없건만!
‘아젤리아 님! 왜 그런 걸 편지에 써서는!’
그냥 시험해보라는 말 정도만 써주면 되는 거였는데!
거기까지 생각이 닿고서야 진성은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솔도로스가 지금까지 진성 자신을 무시했는지를.
진성 자신은 연단된 칼날이 아니다. 연단된 칼날이 될 후보조차도 아니다.
그것을 눈빛 하나로 꿰뚫어 본 아라드 최고의 검사는, 결국 아젤리아의 편지로 인하여 진성을 상대할 가치가 없는 놈팡이라 인식해버렸다는 뜻이 아닌가!
무엇보다 답답한 건 이 모든 걸 일일이 설명할 시간도, 어휘도 없는 이 상황.
솔도로스가 직접 클라리스를 쥐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성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심전력全心全力…… 날 죽이겠다는 거다.’
솔도로스는 서서히 팔을 들어올리며 공격 준비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매우 느린 동작임에도 진성으로 하여금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드는 압력을 뿜어내며.
‘짤무적’이든, ‘무적기’든 몇 초의 시간을 벌 뿐이다.
그가 공격하기 시작한 이상 진성 자신은 살아나갈 수 없을 것이다.
“반성하게나. 저승에서-.”
솔도로스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쇄도할 것이다.
“사, 사기꾼 맞잖아!”
따라서 진성은 그 틈을 노려야만 했다.
“-으, 음?”
한순간의 호흡을 비집고 들어간 외침은, 솔도로스를 움찔거리고 또한 당황하게 만들었다.
[클클클……새로운 자살 방법인가, 진성.]그리 길지 않은 적막 동안 들린 건 오직 흑구의 목소리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