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46)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46화(146/212)
146
솔도로스가 진성 자신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당연히 진성의 입장에서는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진성은 자못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었다.
절망의 탑에 다녀오며 획득하게 된 또 하나의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행은 양얼을 만나지 않았다. 어쩌면 절망의 탑 자체에 들어가지도 않았을 수 있어.’
진성은 신검 양얼에게 물어보았다.
아행이란 자를 만난 적이 있는지. 그리고 <신검의 검은손>을 그에게 주었는지.
실제의 양얼에게 있어선 거뭇하게 때가 탄 장갑 따위에 지나지 않겠으나 유저의 입장에선 ‘보조장비’ 부위의 장비 아이템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게 바로 <신검의 검은손>이다.
그리고 [싸우자!]시점에서 아행은 그 힘을, 정확하게는 빙의자만이 가능한 방식의 힘을 그 아이템에서 끌어내어 진성 자신을 압박한 바 있다.
‘사실상 신검 양얼의 검술과 손목의 스피드가 몸에 깃드는……그런 느낌이었지. 뭐, 그래봐야 손만 빨라진 느낌이고 그 외의 육체가 따라오질 못해서 다행이었어.’
만약 그의 실력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버서커 직업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 더 높았더라면 진성 자신이 위험했을 수 있다.
신검의 능력을 그렇게 활용하는 아행의 모습을 보았기에 진성 자신 또한 ‘절망의 탑’을 목적지로 정했던 것이건만.
‘정작 아행은 양얼을 만나지 않았다…….’
양얼에게서 직접 장갑을 건네받는 방식이 아니었다면 그가 <신검의 검은손>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은?
진성이 모를 리 없었다.
다만, 알고서도 당황스럽다는 게 문제일 뿐이었다.
‘시모나한테서 구입한 거구나. 애초에 절망의 탑까지 오지도 않고…… 망자의 협곡 입구 부근에 있는 시모나를 찾아서 얻어낸 걸 거야.’
게임의 월드맵을 기준으로 보자면 절망의 탑은 던전 지역:망자의 협곡 내에 위치한 개별 던전이다.
진성 자신이 절망의 탑으로 가기 위한 최단 루트를 찾기 위해 움직였기에 오히려 마주치지 못했으나,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유저라면 그란플로리스와 스톰패스의 사이, 던전 지역:망자의 협곡으로 들어서는 지점 인근에서 NPC 시모나를 만날 수 있다.
아행이 바로 그 NPC 시모나를 찾았고, 일반적인 ‘상점’ 기능과는 조금 다른 아이템을 판매하는 그녀로부터 <신검의 검은손>을 획득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진성이 당황스러운 건 NPC로부터 구입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첫 번째 당황스러운 점은 시모나에게서 항아리를 구입한 방법이다.
‘시모나한테서 항아리를 사려면 재료가 필요해. 하지만 현재의 던파 유저들한테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야. 그럼에도 아행은 바꿔 먹었다는 거지.’
현재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유저도 NPC 시모나로부터 <신검의 검은손>을 획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모나의 상점 기능에서 [(구)컨텐츠] 카테고리에서 <영웅의 보조장비 항아리>를 판매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요한 재료가 문제다.
‘항아리로 바꾸기 위해 필요한 건 <절망의 탑 정복>이라는 템이야. 옛날에 절망의 탑을 100층까지 클리어하면 줬던 거다.’
절망의 탑 100층에 있는 자는?
양얼이다.
그리고 양얼은 아행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즉, 항아리를 구하기 위해 필요한 재료를 아행이 얻을 순 없다.
다른 방법을 썼다고?
‘뭐, 나처럼…… 이래저래 막 시모나의 약점을 쥐고 흔들어서 항아리를 빼앗는다던가, 시모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팔아서 어떻게어떻게 할 수는 있겠지. 있는데!’
그렇게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게 바로 두 번째 문제 때문이었다.
항아리에서 해당 아이템을 뽑는 데엔 확률이 적용된다.
항아리로 교환할 재료가 있다 해도 해당 항아리에서 나오는 아이템이 랜덤이다. 절망의 탑에서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 테이블에서 무작위 추출인 것이다.
‘겨우겨우 항아리 하나를, 하다못해 훔쳐서 도망갔다 쳐도! 그 수백 가지가 넘는 경우의 수 중에서 딱 <신검의 검은손>을 뽑았다……?’
그럴 확률은 없다고 보는 게 옳다.
그렇다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행은 무슨 수를 썼을까.
그가 몸에 둘둘 두르고 있던 온갖 종류의 에픽 등급 장비까지 함께 엮어 따졌을 때 과연 어떤 결론이 도출되는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기에, 진성은 그저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그의 머릿속에선 이미 아행이 어떤 술수를 부렸을지.
구체적으로는 <오염의 원인자>에게 도움을 받은 어비스의 근원으로부터 어떤 어드밴티지를 얻었는지 그림이 그려졌으니까.
“개사기야, 개사기……. 나만 안 되냐고, 왜.”
만약 진성 자신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아행은 말 그대로 진성 자신이나 일반적인 빙의된 모험가와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아나가고 있을 터.
“하아…… 진짜로…….”
그럼에도 한숨을 내쉬는 진성의 표정이 그저 어둡기만 하지 않은 이유?
“안톤에서 개고생 좀 해야 돼, 그 인간은.”
현재 그가 처해 있을 상황.
그리고 진성 자신이 그를 따라잡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꿰고 있기 때문이었다.
진성이 비비와 함께 아직 천계의 황녀 에르제를 구출하는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를 할 즈음, 아행이 천계에 있었던 건 <시간의 문> 퀘스트를 모두 마쳤기 때문이다.
시란과 함께 하는 <시간의 문> 메인 시나리오 흐름을 모두 마친 다음 향하는 장소인 천계.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라면…….
‘던파 최초의 레이드, 안톤 레이드가 얼마나 무서운지. 당신도 잘 알고 있겠지?’
제7사도, 불을 먹는 안톤의 토벌이다.
비비가 했던 말을 진성은 기억하고 있다.
‘하물며 빙의된 자들이 던전을 돌 때에는 다른 난이도가 적용된다. 인게임 캐릭터로 에픽 퀘 팍팍 밀어버릴 때와는 차원이 달라. 심지어 패턴이 추가된다거나, 피통이 말도 안 되게 늘어난다거나 하는 것과도 다른 개념이지.’
말 그대로 현실에서 몬스터를 상대할 때 겪을 만한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는 것.
키보드로 캐릭터를 조작하는 게 아니다.
바닥에 떨어진 돌맹이 하나까지 모두 신경 쓰며 기동해야 하고, 직접 적을 겨누고, 휘두르고, 쏴서 맞춰야 한다는 점 자체가 이미 난이도의 급격한 상승을 야기한다.
실제로 몬스터의 HP가 무지막지하게 늘어나는 건 아니겠으나 자신의 공격이 대상에게 제대로 적중하지 않을 확률까지 고려해야 하는 것부터, ‘체감상’몬스터의 HP 또한 늘어난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때 그 레인저 유저가…… 아마도 프레이-이시스 레이드에서 이상하리만치 딜이 들어가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였겠지. 당시 모니터로만 상황을 보던 나는 눈치챌 수 없는, 그런 종류의 난이도 적용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안톤 레이드는 어떨까.
온갖 종류의 파훼 패턴을 필요로 하며, 그것도 게임 던전앤파이터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동원되었던 ‘20인 레이드급’의 안톤 토벌이 결코 쉽지 않으리란 건 당연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어쩌면 안톤에서 영원히 뺑뺑이……칠 리는 없나, 쩝.’
사실 아행이 개고생을 하고 있으리라는 상상 따위는 진성에게 엄청 큰 위안까진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과거 빙의되었던 레인저가 이미 프레이-이시스 단계까지 간 바 있다.
그렇다면 아행 정도의 인물이 클리어하지 못할 리는 없다는 뜻이다.
‘그 인간도 성격이 지랄 맞은 것뿐이지 실력이 없는 건 아니니까 하물며 어드밴티지까지 먹은 빙의자면 더욱 그럴 리 없겠지.’
다만, 최단 시간 안에 돌파해 왔던,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말도 안 되는 쾌진격은 다소 느려졌을 거라고 볼 수 있는 정도일까.
[클클, 안톤이라……. 그 먹보 자식을 상대할 수 있다는 건가, 진성.]“상대 많이 했었지.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다만, 크크, 나 정도의 힘이 없는 이상 쉽지 않았을 텐데.]흑구의 자신만만한 뻔뻔함을 진성은 굳이 상대해주지 않았다.
적어도 그가 한 말 자체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맞아. 피씨방에서 안톤 레이드 공대원들 구하는 데에만 3시간, 4시간씩 그냥 돈 날리면서 기다려야 했을 정도로 장난 아니었다고. 직업 배분도 그렇지만 초창기에는 5개 파티, 20명이나 필요했으니……. 어휴,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걸 어떻게 했나 몰라? 버퍼 직업도 하나밖에 없던 그 시절에.”
[……뭐라?]“흐흐, 아냐. 하여튼, 뭐.”
최초의 레이드답게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했던 레이드.
그 이후 수차례에 걸친 난이도 하향 패치를 겪은 끝에 현재 패치 단계의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는 더 이상 레이드나 토벌전으로서 작동하지 않게 된 컨텐츠, 안톤 레이드.
‘요즘의 유저들은 아예 모르겠지. 안톤 레이드에서 안톤 토벌전으로, 그리고 다시 토벌전조차 없어져 버린 던전…… 아마 에픽 퀘스트 쭉 밀어버린 사람들은 안톤 던전에 다시 갈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거야. 신경도 안 쓸 테니.’
게임 내에서의 레이드 컨텐츠로는 사라졌다.
무엇보다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를 클리어하다 사도 안톤을 완전히 처치하고 나면 그 거체가 마을 판정이 되는 맵으로 변해버리기에, 다시는 안톤과 관련된 던전 컨텐츠를 즐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유저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아직 갈 수 있어. 내 기억이 맞다면 최신 패치에서도 천계의 ‘노블 스카이’쪽으로 가면 안톤 관련 던전을 들어갈 수 있다. 단순히 에픽 퀘스트로서 접근하는 게 아니라 개별 던전으로서의 접근. 그렇게 보자면 아마 그게…….’
빙의된 자들이 겪게 될 던전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가장 쉬운 메인 시나리오의 흐름, 즉, 에픽 퀘스트보다는 훨씬 더 높은 난이도겠지만.
‘그렇게 보면 가능하다. 아행 그 인간을 금방 쫓아갈 수 있어. 얼른 쫓아가서 아주 쥐 잡듯 잡아가지고 네메르가 부여한 추가 임무를 수행……하면 되긴 될 텐데, 으음. 그러고 보니 아행 그 인간은 도대체 뭐 때문에 온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진성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또 다른 의문이었다.
아행이 이곳에 온 궁극적인 이유, 그가 이루려는 최종 목표는 무엇일지.
비비를 비롯해 빙의된 자들을 무어라 부르는가.
‘연단된 칼날, 아니, 정확하게는 연단되어야 하는 칼날의 후보들.’
모험가 또는 연단된, 연단될 칼날이다.
진성 자신은 네메르가 무어라 칭했는가.
‘나는 부집게야.’
그리고 아행은?
『그는 칼날이 아니되 오직 종말이요, 심연이자 혼돈이라. 칼날이 아니라 칼날을 녹일 불일지니.』
진성은 네메르의 말을 되뇌이며 마법사 길드의 1층으로 들어섰다.
‘그렇다면 만약-.’
그러나 더 이상은 네메르니, 아행이니 하는 주제에 집중할 수 없었다.
“아, 진성 씨? 이번에야말로 오랜만이라는 말도 부족하네! 어디서, 얼마나 있었던 거예요?!”
“네, 네?”
샤란이 진성을 보자마자 버선발로 달려왔기 때문이다.
진성은 곧장 깨달았다.
평소처럼 부재중 자신이 무엇을 했었는지 궁금해하는 정도의 말투가 아니다.
사실상 타박에 가까운 어조라니?
“나, 원 참! 이상현상 비대위가 말이야, 진짜 비상사태가 터졌을 때는 자리에도 없고! 마법사 길드가 완전 한바탕 뒤집어졌던 거 알아요?”
“어라? 갑자기- 왜요? 아니, 그보다…… 제가 자리를 얼마나 비웠죠?”
“엄청나게 됐죠, 엄청나게!”
구체적인 일수를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 반응하는 샤란의 목소리.
진성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절망의 탑……. 진짜 그렇게 적용되는 거였나? 나한테도- 직접적으로?!’
절망의 탑 내부는 외부와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솔도로스가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련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한 ‘설정’이 빙의된 진성 자신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었다고?!
도대체 며칠이 넘는 시간이 흘렀을까.
‘아니, 제대로 된 대답을 안 해주는 거 보면 일 단위가 아닐 수도 있어. 어쩌면 월 단위? 서, 설마 연 단위는 아니겠지만-.’
“내가 그래도 한 달까지는 참으려 했는데, 진짜 그 이상으로 되는 건 너무한 거라고요. 알아요? 내가 예전에 준 코인도 안 잃어버렸구만, 확인도 안 했어요?”
샤란은 야속하다는 듯 말했으나 진성은 오히려 덕분에 침착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한 달은 조금 넘었으나 두 달 이상, 진성이 걱정하는 수준의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는 뜻일 테니까.
“코인……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는데요.”
과거 베히모스에서 카곤의 마가타를 부를 때 진성이 사용했던 비상 연락용 코인.
샤란과 진성간의 비상 신호를 송수신하는 코인조차 절망의 탑 내부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 해도 한 달 이상은 타격이 크다. 그럼 아행이 벌써 마계로 넘어갔다고까지 봐줘야 하는 건가? 젠장, 당연히 이제부터 쫓아가면 확실하게- 내 모든 걸 발휘해서 쫓을 수 있겠……지만…….’
여전히 옆에서 잔소리를 하는 샤란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진성은 계획을 수정하려 했다.
그러나 그 사고思考는 의도대로 진행될 수 없었다.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지났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또한 지금 진성 곁에 있는 샤란이 재잘거리는 사건, ‘마법사 길드가 뒤집어질 정도의 비상 사태’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아?!”
진성의 눈길을 잡아끄는 자가 있었다.
그녀와 눈을 마주친 순간, 진성은 현 사태를 완벽하게 파악했다.
“끝……났구나.”
“네? 뭐라고-……아니, 잠깐, 진성 씨? 설마?”
샤란이 무어라 말하고 있음에도 진성은 귀담아들을 수 없었다.
현악기 ‘마레리트’를 들고 수줍게, 구체적으로는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반성하고 자책하는 얼굴의 인물.
“진정한 인사는……오늘 처음으로 하는군요. 안녕하세요, 아이리스라고 합니다.”
아이리스 포춘싱어가 말했다.
힐더의 꼭두각시 상태에서 벗어난 채로.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에서도 중요한 기점이 되는 구간, <시간의 문> 퀘스트가 모두 끝났음을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