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53)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53화(153/212)
153
<오염의 원인자>가 카시야스를 보낸 게 아니었다.
진성 자신을 처리하기 위해, <부집게의 사명>을 띤 자를 처치하여 향후 오염을 더 활발히 풀 수 있는 초석을 다진다는 계획이 아니었다.
카시야스는 그저 소환된 것이다.
여자 마법사 직업군의 소환사 직업 1차 각성 스킬, <계약 소환:정복자 카시야스> 스킬을 통해서.
“아앗- 아아악!”
오염이 아니라는 기쁨보다도 먼저 들이닥치는 감정은 역시나 부끄러움이었다.
지금까지 굳세게 쥐고 있던 <솔도로스의 선택>마저도 느슨해진 손에서 살짝 흘러내릴 만큼 힘이 풀려린 진성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당연했다.
‘분신…… 저거 본체도 아니야! 분신이었어! 이런 젠장!’
흑구의 힘을 빌려오고, 양얼의 힘을 빌려오고 게다가 솔도로스의 힘까지 빌려서, 레벨 70에 획득한 스킬까지 비장의 무기로 사용해가며, 말 그대로 현재 시점의 진성 자신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능력과 자원을 발휘해 상대한 적이…….
‘본체에 비하면 반의반?! 아니, 반의반의 반! 반의반의 반의 반!’
도대체 얼마나 약화된 카시야스였던 걸까.
50%는커녕 많이 쳐줘야 10% 남짓이 될까 말까 한 분신체를 상대로 싸워놓고 마치 사도마저 제압하는 힘을 지녔다며 까불어댔단 말인가!
[크, 크크크……..]“흑구, 네가 말해줬어야지! 쪽팔리게!”
[나라고 알 것 같나. 저런 무식한 놈과 분신 소환의 계약을 맺은 자 따위가 있는지 없는지…… 하긴, 그래도 난 본능적으로 어렴풋하게나마 눈치를 채긴 했다. 진성 네가 아무리 강해졌다 한들 첫 번째 공격에서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지 않았을 때 이미-.]“시끄럿! 말해주지도 않아놓고, 그때도 도망치라고 난리를 쳐놓고서는-.”
“크하하하핫, 미쳐버린 건가? 하던 일은 마저 하지.”
진성은 불안감 조성에 한몫한 흑구를 탓해보았으나 그런다고 상황이 바뀔 리는 없었다.
오히려 진성의 실질적 혼잣말을 듣고 있던 카시야스가 배를 벅벅 긁으며 다시금 칼을 꼬나쥐는 중이었다.
진성 역시 허겁지겁 그를 바라보며 손사래를 쳐야 했다.
그가 소환사의 스킬로 나타난 분신임을 알게 된 시점에서 그와 싸울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가 진성 자신을 기습했기에, <오염의 원인자>에게 물들어버린 채 전이된 제4사도일 거라는 오해로부터 비롯된 전투를 이어 나갈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아뇨! 저기! 잠시만요! 카시야스 님, 뭔가 우리 오해가 있었던 터라, 굳이 우리가 이렇게 싸울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진성에게는 없다.
그러나 설령 분신일지언정 강자를 찾고 또 강자와 싸워 이기는 것만을 삶의 목표로 살아가는 카시야스에게는 먹히지 않는 제안이었다.
“흥, 꽁무니를 빼려는가. 놓칠 수 없지. 조금 더 지체했다간-.”
곧장 진성을 향해 쇄도하려는 듯 그의 허벅지가 꿈틀거렸다.
그러나 그 근육이 폭발적인 에너지의 분출을 내기 직전.
“카 부장님! 멈춰요! 명령입니다!”
다시금 소환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체구 때문인지, 열심히 달리는 것처럼 보임에도 그 속도는 느리기 짝이 없는 달리기라고 해야 할까.
“-크아아아앗, 너, 나에게 명령 어쩌고 하는 말은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카시야스는 곧장 검집에 검을 꽂아넣으며 소리쳤다.
아직도 느릿느릿 달려오던 소환사가 앳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명령이면 명령이지, 그러면, 뭔데! 하여튼 정당한 계약의 소환자로서 말하는 거니까, 곧장 멈추십쇼. 카시! 야스!”
“계약 관계가 주종 관계란 뜻은 아니다, 꼬맹이!”
카시야스는 이제 진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팔짱을 꼈다.
그리고 마침내, 소환사는 진성과 카시야스의 근처에 당도했다.
“뭐래, 채찍만 들면 아무 말도 안 하고 따라주시면서 꼭 말로는…….”
“다, 닥치지 못할까?! 한 번만 더 채찍 운운했다간 내가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말했을-.”
“크흠, 어쨌든 멈춰주세요, 카 부장님.”
카시야스는 길길이 날뛰었으나 소환사는 깔끔하게 그 반응을 무시하는 중이었으니.
진성은 그저 눈을 껌뻑껌뻑거리며 바보처럼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카시야스가 소환사의 분신이고, 그 분신을 상대로 ‘솔도로스’가 된 것처럼 기분을 냈던 부끄러움이나 민망함, 그런 감정은 이미 진성에게서 사라진 다음이었다.
“근데 이분은……. 누구?”
붉은 단발 머리의 소녀는 반짝이는 눈으로 진성을 바라보았다.
호기심 가득한 앳된 얼굴을 진성도 마주 봤다.
그 얼굴이나 카시야스에게 한마디도 밀리지 않는 태도만이 놀라운 게 아니었다.
카시야스와 ‘대화’를 한다는 점이야말로 지금 진성의 넋을 뺀 이유였다.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유저가 소환물 카시야스와 대화할 수는 없다.
이런 일은 결국 소환사의 머리 위에 닉네임이 보이지 않는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다.
소환사는 진성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외쳤다.
“아, 아, 빙의자시구나?! 도대체 최근에 뭔 일이 일어나는 건지, 빙의가 풍년이네! 어이고야, 반갑습니다!”
제법 살갑게 다가와 주절거리는 소환사의 언행에 이제 진성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졌다.
소환사 역시 빙의된 유저다.
그리고 여러 빙의자를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풍년’이라는 다소 오래된 표현까지 사용할 만큼 꽤나 많은 빙의자를, 그것도 최근에 집중적으로 만났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최근이 아닐 때에도 종종 빙의된 자들을 만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빙의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을 확률이 높다.
또한 빙의자를 보며 이렇게 반갑게 말한다는 뜻은 즉, 빙의자와 만났던 기억들이 대부분 긍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카시야스를 무슨 팀원 대하듯 말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진성 자신에게 말을 붙이기까지의 태도들 역시 그러한 방증일 터.
“네, 반갑……습니다.”
순식간에 소환사에 대한 1차적인 판단을 마치면서도 진성은 완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반갑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악수를 청하듯 손을 턱 내미는 소환사의 태도에는 역시나 조금쯤 휘말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진성 역시 손을 슬그머니 내밀었다.
소환사는 곧장 진성의 손을 잡았다.
그러더니 곧 진성의 팔뚝을 주물주물 만지기 시작했다.
당황한 진성이 팔을 빼자 소환사는 아쉽다는 듯 그러면서도 놀랍다는 듯 재잘거렸다.
“진짜 새까맣네 그래, 응? 뭔가 오돌토돌한 느낌이 날 줄 알았더니 매끄럽기도 하고……. 다크나이트로 빙의되면 이런 느낌이구만. 아니, 근데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닼나로 빙의했어요? 얼마 전에 패치- 아니, 이젠 얼마 전은 아니겠지만 하여튼 패치되어 가지고 레벨 70 이상 캐릭터가 있어야만 생성할 수 있지 않나? 그 시스템 적용 때문에 빙의될 때는 닼나 선택 안 되는 줄 알았는데. 몸이 두 개일 수는 없으니까- 아, 잠깐! 설마 나보다 먼저 빙의된 사람인가? 이제 꼴랑 여기까지 온 거예요?”
이번에야말로 진성의 혼을 쏙 빼놓는 말의 홍수였다.
“……네?”
앳된 외형에 어울리지 않는 중년의 수다스러움 때문이 아니다.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으나 그녀에 대해 알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는 또 있었다.
‘다크나이트 생성 제한……? 그게 ‘얼마 전에 패치’ 됐다고?’
다크나이트는 게임 던전앤파이터에 2012년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외전 캐릭터라는 특수성과 그 조작의 난도로 인하여 특정 레벨 이상의 ‘본캐릭터’가 있어야만 생성할 수 있게끔 일시적인 제한이 걸린 적이 있었다.
‘그거 2015년도 일일 텐데?’
지금으로부터는 제법 오래된, 2015년 8월경에.
따라서 진성으로선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진성 자신에게 ‘자기보다 먼저 빙의되어놓고 이제 겨우 안톤 근처를 왔느냐’는 말을 한다고?
본인이?
눈앞에 있는 빙의된 소환사야말로 2015년 8월 이전부터 ‘연단된 칼날의 후보’가 될 정도로 게임을 즐겨왔던 유저인 동시에 2015년 8월로부터 가까운 시일 내에 빙의가 되었으면서…….
‘자기야말로 도대체…… 도대체 그럼 몇 년째 여기 있는 건데!?’
아직도 던전 지역:파워스테이션, 넓게 보면 제7사도, 불을 먹는 안톤의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조차 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닌가!
당황한 진성을 보면서도 소환사는 그저 흥미로워하며 사람 좋은 미소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걸 무어라 말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하는 진성과 그런 진성에게서 어떤 반응을 기대하는 것처럼 바라보는 소환사의 미묘한 침묵 사이에서.
“칠리새우 님! 치, 칠리새우 님! 도대체 어디로 가신 겁니까?! 아직 파트리스를 처치하지 못한 채 갑자기 사라지시면 어떻게 합니까?!”
들려오는 것은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이곳은 던전 지역:파워스테이션 내의 일반 던전, 트롬베 발전소.
아직 보스인 전율의 파트리스를 처리하지 못한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가 진행 중인 상황임을 마침내 진성과 소환사, 둘 모두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아차차차, 내 정신 좀 봐. 네! 가요! 카 부장님이 갑자기 이탈하는 바람에, 죄송합니다, 금방 갈게요!”
“너, 너, 내 이름은 카시야스다! 에컨의 패자覇者! 그런 내 이름을 자꾸 이상하게-.”
“자, 갑시다! 카 부장님! 저쪽 소장님들 화나게 하면 우리만 손해라니까. 빨리 따라오셔!”
소환사는 어느새 손에 쥔 채찍을 휙휙 휘두르며 달려 나갔다.
카시야스는 그런 소환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망할 놈의 칠리새우.”
그 중얼거림이야말로 진성을 세 번째로 당혹케 만드는 것이었다.
‘……저게 진짜 이름이야? 칠리새우?’
2015년 하반기 도는 2016년 상반기로 추정되는 빙의된 소환사, 그 이름이 ‘칠리새우’임이 확인되었으니까.
도대체 몇 년을 그런 이름을 지닌 채 플레인:아라드를 살아왔을까.
[크, 크크크크…….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쩝, 이거야 원. 그렇다고 따라가지 않을 수도 없고.”
흑구만큼이나 당황스러운 진성이었으나 할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법.
눈앞의 소환사 ‘칠리새우’가 니베르 중장이 말한 ‘모험가’임을 확인해야 한다.
현재 트롬베 발전소에서 전율의 파트리스를 상대할 모험가가 소환사 한 명뿐이라면, 결국 소환사의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가 오염되었다고 봐야 할 터, <부집게의 사명>인 진성이 그저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일단은 상황 파악부터 해야겠지. 그리고 오염원을 확인하고 해결하는 일부터 끝낸 다음…… 저 사람과 대화를 해봐야겠어.’
무엇보다 그렇게나 오래된 빙의자라면, 지금까지 만난 빙의자가 많다면.
소환사로부터 아행과 관련된 정보는 물론 그 외 진성 자신에게 도움이 될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발걸음을 옮기던 진성의 뒤에서 오랜만에 타꼬가 소리를 냈다.
“꼬르르륵, 꼬륵!”
[클클클, 멍청한 녀석…… 카시야스를 만났다고 즐거워하고 있나.]진성으로선 명쾌히 이해할 수 없는 소리지만 역시 흑구는 다른 듯했다. 진성은 모르는 척 둘의 대화를 들으며 소환사를 쫓았다.
“꼬륵!? 꼬르르르, 꼬르르.”
[로터스의 형상만을 간직할 뿐 그 능력조차 없는 너를 이제 와 카시야스가 찾을 거라 생각했나. 크크크, 게다가 ‘마계 시절 카시야스는 내가 두려워 오지 않았었다’니…….]“꼬륵! 꼬르륵, 꼬륵!”
[저 무식한 칼잡이 녀석이 두려워한 유일한 사도는 바로 나…… 카인이 놈에게 첫 번째 패배를 주었다면 첫 번째 굴욕은 내가 주었다고 할 수 있지.]그러나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사도 로터스의 형상을 지닌 타꼬.
사도 디레지에의 또 다른 자아 흑구.
두 개체가 제멋대로, 심지어 자신에게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여 떠드는 걸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엄밀히 따지면 로터스는 마계의 바다에서 동면 중 아니었나? 카시야스가 해저 끝까지 잠수할 수도 없고 당연히 못 가는 상황이라 싸우지 못한 거였을 텐데, 그걸 가지고 또-. 하여튼 사도의 자아라는 것들이 뭔가 하나같이 이상한 소리들을 하고 있대.”
“꼬, 꼬록! 꼬로록!”
[이, 이 녀석의 말은 거짓이지만 내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님을 모르느냐, 진성!]진성은 타꼬와 흑구의 강력한 반발을 귓등으로 넘기며 새삼 깨달았다.
사도 카시야스는 결코 우습게 볼 존재가 아님을.
카인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그를 패배시킬 수 있는 또 다른 사도가 사실상 없음을.
‘근데 그런 카시야스를…… 카 부장이니, 뭐니 부르는 칠리새우라……’
따라서 벌써 한껏 멀어진 빙의된 소환사에 대한 궁금증 또한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