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55)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55화(155/212)
155
진성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삭제된 스킬인데? 어떻게? 왜?’
2017년 하반기 이후로 여자 마법사 직업군의 소환사 캐릭터를 키운 유저라면 아마 있는 줄도 모르는 스킬일 것이다.
검은 기사 산도르와 비슷하지만, ‘도발 오라’를 가지고 있어 몬스터들의 어그로를 끌어내기 쉬운데 반해 정작 공격력은 검은 기사 산도르와 비슷하거나 그 이하로 효율이 떨어졌던 소환수.
‘검은 기사 산도르’와 ‘분노한 검은 기사 산도르’, 두 개체를 동시에 소환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산도르’가 마치 직급이나 직위와 같은 것은 아니냐는 농담까지 나돌 정도로 유명했지만 결국은 사라져버린 소환수.
‘산도르랑 구분하기 위해 분도르로 불렀었어. 아마 분 과장이라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지은 거겠……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진성은 묻고 싶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지금 쓴 스킬은 어떻게 배웠냐, 왜 아직도 남아 있느냐.
애당초 그 스킬이 지금은 삭제되어 사라졌다는 사실 자체를 알고는 있느냐.
그러나 의문만 목구멍으로 차오르는 게 아니었다.
진성의 머릿속에서는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어째서 칠리새우에게 <계약소환:분노한 검은 기사 산도르>가 남아 있을까.
지금까지 얻은 정보로 그가 빙의된 시점을 유추했을 때 떠오르는 가능성이 있었으니…….
두 가지 생각에 말문이 턱 막혀버린 진성은 우선 전황을 살펴야만 했다.
당장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플라잉 그래닛을 상대하는 칠리새우와 그의 소환수 사이에 끼어들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지켜라!”
“에너지를 지켜라!”
“분 과장이 몸빵하고! 산 과장, 칼질 제대로!”
칠리새우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적당한 두 산도르는 어깨를 들썩이며 달려나갔다.
“우워어어어어-!”
“예,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잠시, 칠리새우는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루 과장님, 아이스 니들!”
“아하하핫! 알겠다고, 알겠어!”
콰아아아아───────ㅇ!
칠리새우의 상세한 지시가 떨어질 때마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소환수들.
진성은 알 수 있었다.
“<환수 폭주>. 소환수들의 공속, 이속 증가……. 그리고 마지막은 <교감>인가?”
<교감>, 계약 소환수와의 교감을 통해 추가적인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스킬.
해당 스킬에 대해 잠시 생각하던 진성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루이즈 언니의 교감 스킬은 메테오일 거다. 그리고 <교감>은……. 역시 2017년 소환사 리뉴얼과 함께 새로 생긴 스킬이야.’
그것은 칠리새우가 과거의 스킬을 어째서 가지고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추론으로부터 얻어낸 결과였다.
만약 칠리새우가 2017년 5월 개편 이전의 소환사 스킬을 지니고 있다면.
빙의 시점 기준의 스킬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면.
개편 이후의 소환사 스킬은 당연히 없을 가능성이 크다.
진성은 뚫어져라 칠리새우를 바라보았다.
작은 체구에 붉은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는 소환사는 그러한 시선을 충분히 느낄 법도 했건만 개의치 않은 채 박수를 짝짝 치며 오더를 내리는 중이었다.
“자, 자, 놀 시간 없습니다, 다음 방으로! 이제 방 두 개 더 정리하면 보스니까! 파트리스 나오면 카 부장님이-.”
“흥, 난 참견하지 않을 거라 했을 텐데. 퍼만이 아니면 끼어들지 않겠다.”
“-에휴, 그러시던가. 그럼 파트리스 때 에체 차장님이랑 샐 대리, 라 대리까지 다 불러야겠네. 갑시다, 이동! 이동!”
두손을 훠이 훠이 흔들며 소환수들을 내모는 모습은 도대체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너무나 평온하게, 진성 자신 앞에서 스킬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단서까지 아무렇지 않게 흘리는 그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샐 대리, 라 대리. 만약 지금 칠리새우가 말한 게 샐리스트와 라트리아라면……확실해진다.’
역시 비교적 최근 소환사 캐릭터를 키우기 시작한 유저라면 존재 자체도 모를 법한 정령들이다.
현재는 하급정령과 상급정령 그리고 혼합정령과 정령왕 등을 소환해낼 수 있지만 과거엔 달랐다.
혼합정령이 존재하기 전, 하급정령과 상급정령 사이에 위치해있던 ‘중급정령’.
‘화 속성의 중급정령 샐리스트, 수 속성 중급정령 라트리아. 중급정령은 두 속성을 한 개체씩 생성할 수 있는 덕에 효율이 다소 떨어졌던 명 속성이나 암 속성 중급정령 대신 대체로 화, 수의 두 가지 속성을 사용했었지……. 과연.’
칠리새우에게도 상급정령 소환 스킬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러 중급정령을 부르겠다 한 것은 ‘칠리새우에게 있어선’ 중급정령과 상급정령의 대미지 차이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일 터.
‘DPS를 따지면 아마…… 화 속성 중급 샐리스트가 화 속성 상급 플레임 헐크급 비스무리 했던 것 같은데. 쩝, 이럴 때 비비 씨가 있었으면 계산 팍팍 해줬겠지. 그래도 아마 얼추 맞을 거야.’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효율을.
그저 물량으로 밀어버리는 게 아니라 칠리새우는 소환사다운 소환수 활용법을 보여주는 셈이었다.
문제는 지켜보는 진성의 입장에서, 과거의 스킬을 마주했다는 기쁨이나 흥분, 호기심 그리고 칠리새우의 운용법에 대한 감탄만을 느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게 오염……인가? 삭제된 스킬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유저, 아니, 빙의자가 있는 게 오염?’
삭제된 스킬을 가지고 있는 빙의자.
만약 이것이 오염이라면 진성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꿀꺽, 진성이 마른침을 삼키는 사이 산도르, ‘분도르’, 루이즈는 이미 플라잉 그래닛 등을 모조리 말살하며 쾌진격을 마쳤다.
어느새 트롬베 발전소의 보스, 전율의 파트리스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칠리새우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아.”
“네?”
“음……. 아녜요, 아녜요. 갑니다~!”
무언가를 말하려다 만 듯한 태도에 살짝 미소까지 머금으며, 어쩐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칠리새우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 역시 진성에게는 다소 위화감이 드는 행동이었다.
그저 스킬 때문만이 아니었다.
‘어디 산책이라도 가듯…… 전율의 파트리스가 그렇게까지 만만한 보스는 아닐 텐데.’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흐름이 아니더라도, 빙의자에게 적용되는 수준의 난도라 해도 패턴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니다.
그러나 과거, 아이템 파밍 등을 위해 이곳을 반복해서 클리어해야 했던 유저들을 괴롭게 만든 것은 파트리스가 내뿜어대는 압도적인 대미지가 아니었던가.
‘하물며 소환사는 말할 것도 없다. 파트리스가 광역으로 뿌려버리는 공격을 소환수들이 맞지 않게 일일이 컨트롤할 수도 없었으니까. 적정 레벨 수준의 던전 치고는, 하물며 빙의자가 클리어해야 하는 던전 치고는 앞선 두 발전소와 차원이 다를텐데-.’
저벅, 저벅, 저벅-!
칠리새우는 경쾌한 발소리를 내었다.
치짓, 치지지짓────…….
전기가 번쩍인 순간.
마침내 일반던전 트롬베 발전소의 보스, 전율의 파트리스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가소롭군…….”
전기를 흡수하여 태어난, 전기 그 자체로 이루어진 존재는 말했다.
목소리가 울릴 때마다, 그 기묘한 육신이 움직일 때마다 곳곳에서 스파크가 일었다.
“가소롭다는데, 카 부장님?”
“너에게 말한 것이지.”
“카 부장님한테 말한 것 같은데. 진짜 안 나설 거예요?”
칠리새우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카시야스를 도발했다.
그런 것에 넘어갈 카시야스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지 않았나. 이제 이런 피래미 따위를 상대하진 않겠다고!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이 빌어먹을 녀석만 벌써-.”
인상을 찌푸리며 칠리새우에게 역정을 내는 그때.
생긴 것과 달리 여성체인 파트리스가 소리쳤다.
“이곳을 파괴한 것 정도로는 나를 쓰러뜨릴 수 없다!”
콰아아아앙, 바닥을 내리찍는 동작과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전기가 흩뿌려져 나갔다.
파츠츠츠츳──────────!
그에 반응하듯 곳곳에서 그래닛을 포함한 ‘잡몹’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치사하게 진짜 안 나서면- 에잇, 에체 차장님! 샐 대리, 라 대리! 전부 출근하세요!”
칠리새우는 카시야스에게 불만을 표하면서도 곧장 채찍을 휘둘렀다.
<정령소환:정령왕 에체베리아>, <중급정령:샐리스트>, <중급정령:라트리아> 스킬의 발동과 함께, 역시나 현재 패치 버전의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는 ‘중급정령’들이 칠리새우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항상 하던 대로만 하면 됩니다! 목표는 파트리스!”
칠리새우는 곧장 무언가를 꺼내어 파트리스에게 던졌다.
빙글빙글 날아가는 투척물의 정체는 알 수 없었으나 그 효과는 뻔한 것이었다.
‘<저놈 잡아라!> 스킬이군.’
소환수들에게 최우선 공격목표를 강제 지정해주는 스킬, 그래닛 등의 ‘잡몹’은 신경쓰지 않겠다는 전략은 진성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흡!”
“끄아아아아앙-!”
“이것만 잡으면 되는 거지?”
“정령왕의 이름 아래 죽어라.”
산도르, ‘분도르’, 루이즈, 정령왕 에체베리아.
그 외에 샐리스트와 라트리아까지 가해지는 공격 앞에서 파트리스의 푸른 전기가 일렁거렸다.
진성은 전장에서 한 발자국 떨어진 채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나쁘지 않아. 파트리스에서 짜증 나는 부분 중 하나가 체력이 많다는 점인데. 카시야스가 빠진 이상 잡몹들의 공격은 그냥 소환수로 때우면서 딜 자체는 집중하는 게 옳다.’
매우 능숙하게 파트리스를 상대하는 칠리새우의 능력은 역시나 인상 깊었다.
공격에선 훌륭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과연 수비적인 대처는 어떨까.
오염과 칠리새우, 두 개념을 두고 고민하는 진성의 앞에서 때마침 파트리스가 소리쳤다.
“끄으으, 이 녀석들……. 재미있는 걸 보여주지!”
바닥을 강하게 내리찍으며 파트리스는 양팔을 뻗었다.
촤차차차차찻-!
“으앗?!”
진성조차 화들짝 놀랄 만큼 순식간에 바닥면을 타고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전기충격.
그것은 단순한 공격이 아니었다.
전기에 반응한듯 바닥면 곳곳에서 끊어진 전깃줄이 튀어 오르기 시작했으니까.
마치 살아 꿈틀거리는 뱀장어처럼 펄떡이는, 그 굵기만으로도 성인 허벅지만한 전선의 절단면에는 붉거나 푸른 전자電子들이 이슬처럼 맺히는 중이었다.
‘……패턴이구나. 이거, 그 짜증나는 패턴 중 하나다.’
붉은 전자는 유저에게 대미지를 입히고, 푸른 전자는 파트리스의 HP를 회복시키는 패턴.
제각각 솟아오른 일곱 개의 전선에서 마구잡이로 전자가 쏘아지는 데다, 허공을 떠다니는 전자 중 하나에 부딪친 후 다른 색상의 전자에 한 번 더 피격되면 폭발 효과까지 나버리는 파트리스의 공격 중 하나!
진성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며 결단을 내렸다.
칠리새우의 공격을 바로 도와주거나 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 푸른 전자 정도는 진성 자신이 막아주려 했다.
붉은 전자를 맞지 않고, 푸른 전자만 진성 자신이 피격당해 흡수해버린다면 파트리스의 HP가 회복되는 일은 없을 터, 진성은 곧장 푸른 전자에 몸을 던졌다.
‘으음, 좀 찌릿하지만 역시 대미지를 입는 건 아니야. 붉은 전자에 피격되는 것만 조심하면 된다. 소환수가 많은 칠리새우에게는 특히나 정신없고 혼란스러운 패턴일테니 간접적으로 이 정도……만……?’
이렇게 도와주려는 게 진성의 판단이었다.
직접적으로 돕자니 아직 ‘오염’과 칠리새우, 그 사이에서의 생각 정리가 되지 않았기에 우선 이번 던전을 끝낸 이후 대화를 해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보이는 칠리새우는 어떠한가.
진성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붉은색 단발머리의 소녀를 쳐다보았다.
“어떻게……언제…….”
파트리스의 패턴은 조금 전 시작했다.
도합 일곱 개의 송전용 전선이 튀어나오기 전까지, 소환수들은 모두 뭉쳐 파트리스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빠르게 안전지역으로 몽땅 대피를 시켰다고?
그것도 ‘패턴이 시작하자마자’?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이런 패턴의 존재를 미리 알고, 또 어느 시점에 발동될 것인지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그런 칠리새우는 또한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진성을 마주 보고 있었다.
소환사는 말했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네. 파트리스 패턴 기억하는 사람 아무도 없었는데. 나도 몇 번이나 겪고 겨우 알아챈 걸 어떻게 아셨대? 잘난 체 하던 버서커 그 인간도 나자빠졌던 패턴을…….”
앳된 외모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중얼거림 속에서, 진성은 우선 하나는 환신할 수 있었다. 칠리새우는 아행을 만났다.
다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리 중요치 않은 정보였다. 아행을 만난 것보다 더욱 당황스러운 건…….
‘……몇 번이나 겪었다? 몇 번이나?’
진성은 그 말을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