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58)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58화(158/212)
158
진성은 느긋한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칠리새우의 눈동자가 빠르게 구르다 뚝, 멈췄다.
진성이 뭐라 말할 필요도 없이 이미 합리화를 마쳤다는 뜻이다.
“아니……죠. 근데 상식적으로~ 전쟁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일어날 리가 없어요. 우리 닼나 선생님은 아마 군필- 전역하신 지 얼마 안 되셨나본데, 뭐, 그럴 수 있지. 보통 군대 다녀오면 꼭 주변에 전쟁에 대해 다 아는 척 으쓱거리면서 얘기들을 하고 다니니-.”
“저 예비군도 다 끝났는데요.”
진성의 경고이자 조언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려는 칠리새우였으나 진성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은근슬쩍 진성 자신의 연령대를 밝힘과 동시에 칠리새우의 나이를 추정해보려는 반격.
“아? 예비……군이 몇 살때 끝나죠?”
“에이, 다 아시면서.”
“모르는-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크흠, 그러면, 어…….”
칠리새우는 어물쩡 그것을 넘어갔다.
그러곤 재빨리 말했다.
“아! 그 내전이 에픽퀘 말하는 거죠? 시즌 퀘스트? 그게 진행 안 될 수도 있는데? 내가 계속 여기 있으면?!”
“지금까지 칠리새우 님이 안톤 쩔을 반복하면서, 던전 지역:파워스테이션을 계속 돌았던 것처럼 말이죠?”
진성의 되물음에 칠리새우의 표정이 조금쯤 펴졌다.
어차피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흐름이라면, 안톤 이후 메인 시나리오를 진행하지 않고 있는 칠리새우 자신은 안전할지도 모른다는 바람 섞인 안도였으나 진성이 용납할 리 없었다.
“그렇죠! 그렇지! 그거야-.”
“지금까지 온 사람이 없었긴 없었나 보네.”
“-네?”
결코 떼를 쓰거나 어거지를 부리는 게 아니다.
진성 자신 역시 겪었고 칠리새우도 겪었을 가능성이 높은 합리적인 상황에 따른 추론.
“모험가별로 개별 타임라인이 진행되는 건 아마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분명 인게임상 유저들이었다면 에픽 퀘의 타임라인이 달라 마주치지 않았겠지만, 우리는 어떠려나요? 흠, 프레이-이시스 레이드 단계까지 간 빙의자도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레인저- 이름이 뭐였더라, 그 사람…….”
심지어 2016년경 빙의한 이래 안톤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은 자라면, 분명 알 거라는 판단하에 따른 흘리기까지.
굳이 직업군을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칠리새우 역시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진성에게 있어 대화는 더욱 수월해지는 것이다.
“오, 알고 계시네요. 그분이 마계 다 지나고 여기 다시 내려왔을 때, ‘만난 적’ 있습니까? 아, 단순히 잠깐 대화한 거 말고. 그분과 ‘며칠 이상’ 지내본 적 있나요?”
“…….”
소환사는 입을 다물었다.
메인 시나리오 [천계전기]를 풀어나가야 하는 빙의된 모험가와 긴 시간 함께 한 적이 있는가.
진성의 질문에 칠리새우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아랫입술을 꽉 물고만 있을 뿐.
진성은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붉은 머리의 앳된 소녀를, 역시나 여유로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거기에 더해서 이렇게나 돈 자랑을, 쯔쯔, 저한테만 하신 게 아니라면 말이죠. 빙의된 인간 중에 거의 미친놈도 하나 있거든요. 칠리새우 님도 말씀하셨던 ‘그 버서커’…… 성격이야 대충 알 거라 생각합니다만, 성격뿐만이 아니라 아이템도 장난이 아닙니다. 아마 칠리새우 님은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를 에픽 템을 둘둘 두르고 다니는 놈이, 그런 놈이 만약 마계 다 끝내고 다시 여기로 내려오면?”
칠리새우가 아행을 만났다면, 아마도 던전 인근에서 조우했다면 분명 <계약소환:정복자 카시야스>에 의한 카시야스 분신 역시 아행을 만나봤을 터.
장비 아이템 뿐만 아니라 기타 빙의자들은 생각도 못 할 어드밴티지를 지닌 아행의 힘을 사도의 분신이 알아보지 못했을 리 없다.
“더 정확히는……. 칠리새우 님을 노리고 내려오면? 감당할 수 있겠어요? ‘규격 외’의 인간을?”
즉, 칠리새우에게 아행의 힘 또는 그 위협에 대한 가능성을 분명 언급했으리라는 가정하에 진성은 쐐기를 박는 것이다.
칠리새우에게 중대한 위협이 될 만한 건 메인 시나리오 [천계전기]만이 아니라는 것을.
뭇 빙의자들을 제압할 자신이 있다는 말 또한 일리가 있으나, 결코 보통이 아닌, ‘규격 외’의 빙의자가 있고, 그의 성격도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까지.
“버서커 진각까지 다 끝내고 심지어 그놈 템빨까지 더해지면. 아마 카시야스의 분신이 분~명히 한마디 헀을 텐데 말이죠.”
빙의되기 전부터 돈을 밝혔을, 게임 던전앤파이터 최초 ‘안톤 레이드 2인 클리어’를 해냈고, 역시 곧장 ‘2인 쩔’을 시작하며 뭇 유저들에게 거침없이 수금을 해냈던 사람.
심지어 빙의되어서까지도 여타 빙의자들에게, 진성은 그 방법이나 구조조차 상상하기 어려운 ‘쩔’을 해주며 이튼 공업지대에 내 집을 마련한 사람.
칠리새우는 물었다.
“어떻게……해야 하죠? 언제 내전이-. 저기, 아까 진성 님이라고 했던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진성의 이름을 불러주었다는 점만으로도 칠리새우를 공략하기 위한 진성의 전략이 100% 먹혔다는 뜻이자, 주도권 싸움에서 완벽한 승리를 취했다는 것.
진성은 씨익, 미소 지었다.
“저한테 협조하시죠. 칠리새우님의 재산을 든든~하게 지켜드릴 방법을 알려드릴 테니까.”
협조라는 이름 하에 칠리새우에게서 들을 정보와 물리적인 조력까지.
그 모든 것을 이미 예견한 듯 흑구의 웃음이 울려 퍼졌다.
[클클클…… 카시야스와 같이 다니는 놈이 그렇겠지. 너처럼 잔혹한 사기꾼을 당해낼 순 없을지니.]누가 사기꾼이라고? 라는 말을 삼키며 진성은 여전히 미소만 머금어 보였다.
깊어가는 밤, 이튼 공업지대의 칠리새우 자택의 조명빛은 꺼질 줄을 몰랐다.
* * *
“마지막 퀘스트를 클리어하지 않으면 된다?”
“처음엔 우연이었죠. 빙의되고 여기로 올라와 안톤을 처음 상대할 때, 저랑 같이 다니던 빙의된 소울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랑 안톤의 심장부까지 2인으로 갔다가-.”
“칠리새우 님은 후퇴하신 거고요?”
“후, 후퇴라기보단…… 크흠, 뭐, 그렇습니다. 일종의 전략상? 하여튼. 실제로 안톤의 체내에 들어간 건 그때가 처음이었으니…….”
칠리새우는 빙의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앞선 빙의자를 따라잡았다고 했다.
남귀검사 직업군의 소울브링어 육신을 지닌 이를.
레벨이나 수준이 비슷하여 그와 함께 빠른 속도로 메인 시나리오 흐름을 클리어하며 사도 안톤에 다다른 두 사람은 사실상 ‘2인 안톤 레이드’를 곧바로 진행했을 때 깨달았다고 한다.
‘에픽퀘에서 마지막 퀘스트만 클리어하지 않으면…… 메인 시나리오가 끝나지 않는다. 끝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롤백하듯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뜻인가.’
던전 지역:파워스테이션부터 이어져 던전 지역:안톤, 과거 ‘안톤 레이드’라 불린 지점까지가 사실상 하나의 시즌 흐름이라고 봐도 좋다.
<시간의 문> 이전의 천계도 마찬가지. 처음 천계에 올라와 카르텔로부터 황녀를 구하고 란제루스를 처치하기까지가 하나의 시즌 흐름일 터.
만약 그때 란제루스를 처치하지 않았다면? 황녀만 구한 채 돌아가려 했다면?
‘천계의 해당 시나리오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뜻? 그럼 황녀가 다시 카르텔에 납치당하는 흐름이 반복된다는 건가? 헐.’
당연히 진성을 비롯한 그 어떤 빙의자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기에 알 수 없었던 부분이다.
어떤 의미로는 시스템의 허점을 노렸다고도 할 수 있으나, 이것은 게임 던전앤파이터가 아닌, ‘빙의된 자만이 겪는 모험’이자 ‘진정으로 연단되어야 하는 칼날’의 시스템적 빈틈이라고 말할 수 있을 터.
‘아니, 다른 의미로는……. 이거야말로 네메르가 힘을 쓴 부분일 수도 있겠군. 연단되어야 할 칼날이 도망가버리면 ‘다시 한번’ 연단 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는 그런 건가? 허허, 참, 나.’
결국 그 원인은 파악할 수 없어도 그러한 결과를 칠리새우는 알게 되었고, 이후 소울브링어 빙의자와 헤어진 채 그냥 이튼 공업지대에 눌러앉았다는 게 지금까지 칠리새우가 겪은 삶이라는 뜻이다.
“소울브링어는 어떻게 됐는데요? 루크는 클리어했나? 마계까지는 닿았을까요?”
“모르죠. 크흠, 사실…… 안톤에 눌러 앉은 이유가 그거였으니까요. 루크, 마계…….”
“아.”
단순히 사도 안톤의 토벌 시점에서 안톤의 체내로 들어간 게 두렵고 역겨워서때문만이 아니다.
칠리새우가 안톤의 심장 앞에서 도망친 이유, 끝끝내 그것을 클리어하지 않은 진정한 이유는 이것이었다.
“2016년 4월쯤 빙의되었나……. 난 그다음의 던파를 몰라요. 루크? 난 루크 겜상에서 본 적도 없어. 마계? 거기 유저가 갈 수 있게 됐다는 것도 한참 후에 들어온 빙의자한테 들어서 알고 있으니까요. ‘죽은 자의 성’ 이름도 마찬가지고. 요즘은 거시기, 뭐냐, 선계? 선계는 개뿔이나. 그러니 내가 안톤을 죽이고 나면- 게임으로도…… 게임으로도 겪어보지 못한…….”
칠리새우는 이어질 말을 삼켰다.
진성은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안톤의 심장, 그 펄떡거리는 약동 앞에서 느낀 건 그저 안톤을 향한 두려움만이 아닌, 향후 칠리새우 본인이 나아가야 할 막연한 앞길에 대한 두려움, 미지에 대한 불안이었을 터.
“게다가 에픽퀘도 그래. 스토리가 다 뒤집어엎었다면서요? 내가 알던 그때의 이야기 자체가 아니드만.”
“아, 그, 그렇죠. 크흠, 최근이라기엔 꽤 오래전이지만 어쨌든 칠리새우 님 빙의되고 나서부터 2년은 더 흘렀을 테니…….”
“하핫, 우습지. 웃기지도 않지. 알고 있던 이야기는 증발했고,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만 남아있는 길을 걸어가라……. 내가 왜? 굳이? 잘못하면 진짜로 죽어버릴 텐데.”
“그래서 빙의된 후 이곳에 온 이래 줄곧 여기에만 계셨고-.”
“밖에선 어떤 패치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에만 있던 나’에게는 그런 게 적용이 되지 않았는지 스킬도 그렇게 됐습디다.”
“음…….”
퀘스트는 반복된다.
칠리새우는 항상 그 자리에 있다.
그렇기에 던전앤파이터의 세상, 플레인:아라드의 변화조차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인가.
진성이 잠시 생각을 가다듬는 사이, 칠리새우는 인위적인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아, 진성 씨도 던파 좀 오래 했다고? 하핫, 구버전에 재밌는 게 많아요. 여기선 크레인 뽑기 아직도 할 수 있다?”
“마티어스 네스만!?”
“와, 이름도 외우고 다녀요? 그 꼬맹이.”
“그렇구나……. 그래서 그런…….”
그 와중에도 진성에게 다행이라면 패치가 거듭되며 삭제된 크레인 게임이 NPC 마티어스 네스만을 통해 가능한 이유를 찾아낸 것이다.
‘칠리새우한테 구버전 패치가 적용되고 있으니까 그런 건가. 그렇다면 오염이 아니라는 뜻이군. 오염과는 다른 개념이야.’
또 다른 규격 외의 인간, 칠리새우의 존재 때문이라고 봐야 하는 것인가.
진성은 아직 눈앞의 소환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이미 몇 회나 반복되었다면 이것을 오염으로 간주, 처리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진짜 여기서 안톤쩔을 해주며 빙의자들을 마계로 보낸 사람이라면…….’
진성 자신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진성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는 듯 모르는 듯 칠리새우는 슬쩍 주제를 돌렸다.
“근데 진성, 진성, 진성…….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옛날에 나랑 파티하고 했었나요?”
“칠리새우 님의 예전 닉이 안톤 2인 레이드 최초클 그 분이면- 아마 저랑 직접적으로 만난 적은 없을 겁니다. 오히려 칠리새우 님은 절 싫어하셨을 것 같은데.”
“싫어할 이유-…… 아! 아아!? 뉴비! 헤딩 공대 파던 그 사람인가? 무슨무슨 진성, 그 닉네임!?”
“네. 본격 ‘쩔러’였던 칠리새우 님은 아마-.”
“싫어할 이유가 있나! 그때도 막 스토리 정리 같은 거 커뮤니티에 올리지 않았음? 나도 그거 봤어요!”
아직 너튜브로, 교육 공대로 유명세를 얻기 전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쑥스러운 일도 없을 터, 진성은 멋쩍게 웃었다.
“아, 그, 그러세요? 하긴, 그때는 아직 너튜브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이긴 하네요.”
“세상에 만상에 게임을 이렇게 즐기는 인간도 있구나~ 해서 신기해했던 기억은 나지. 백인백색百人百色이라지만 딱히 자기한테 돈도 안 되는 일을 막 정리해서 썰 풀어대고 말이야.”
다만, 그것이 꼭 칭찬일 리는 없다는 점을, 역시나 미묘하게 노회한 어투로 풀어내는 칠리새우를 보며 진성은 다시금 반격을 해버릴 수밖에 없었다.
“백인백색…… 교과서에서 한 번 들어본 표현인데. 저기, 실례지만 칠리새우 님은 연배가 혹시 어떻게…….”
진성의 물음에 칠리새우는 후다닥 거리를 벌리며 빙그르르, 한 바퀴를 돌았다.
“그, 그건 됐고! 그런 얘기를 뭐 하러-. 나처럼 커~여운 렉븜! 렉도 안 걸리니까 짱븜! 일반적인 솬딱이들과 다른-.”
“혹시 성별이라도 알려주신다면……?”
칠리새우는 끊어진 말을 더 이상 잇지 않았다.
진성의 물음에도 답하지 않았다.
“……갑시다.”
“저기, 칠리새우 님? 대답은-.”
“그란디네 발전소 넘어가고 하면, 어이고야, 그러고 보니 안톤 쪽에 아마 한 사람 더 있을 것 같긴 한데. 참, 요즘 빙의자들이 많긴 많아요, 그쵸?”
끝까지 대답을 회피하며 칠리새우는 후다닥 발걸음을 옮겼다.
앞장서 걸어가는 붉은 단발머리의 앳된 소녀, 그 뒷모습을 보며 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 퍼센트.’
일종의 확신을 덤으로 얻은 채, 두 사람은 던전 지역:파워스테이션의 마지막 던전, 그란디네 발전소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