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59)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59화(159/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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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란디네 발전소라고 특별히 다를 건 없었다.
“퍼만은 카 부장님이 확실히 책임지는 겁니다?”
“몇 번이나 말하나. 흐흐, 그 녀석 정도는 되어야 그래도 베는 맛이 있지.”
어느샌가 소환된 카시야스도 배를 벅벅 긁으며 칠리새우의 뒤를 느지막하게 따르는 중이었다.
최전방에서 전투를 치르는 건 그 외의 소환수들이었는데, 특히 정령왕 에체베리아를 비롯한 중급정령들과 산도르, ‘분도르’, 루이즈 등의 활약이 도드라지는 형태였다.
“통상의 전투 패턴이 이런 식인가 보죠?”
“그럼요. 이미 시스템이 자리를 잘~ 잡은 상태인데 굳이 건드릴 필요는 없으니까. 뭐, 안톤쩔을 돌 때는 이것만으로 당연히 안 되서 우르르르, 상급정령부터 아욱국에, 뭐에, 하여튼 싸그리싹싹 같이 가는 편이죠.”
소환사 리뉴얼 이전에 빙의되어 그러한 상태가 유지되는 중이라 할지라도 분명 상급정령을 소환하는 스킬은 있을 터.
그 외에도 마계화花 아우쿠소 등 역시 보유하고 있음을 칠리새우는 말해주었다.
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음, 그렇겠죠. 당연히. 아, 이미 레벨은 저보다 높을 게 당연하실 테니 <갈애의 라모스>도 있으실 테고?”
“당근.”
소환사의 2차 각성 시점에서 배우게 되는 스킬, <전설소환:갈애渴愛의 라모스>.
어영부영 레벨 72가 되어버린 진성 자신보다 당연히 레벨이 높은, 심지어 ‘안톤 쩔’을 몇 번이나 한 칠리새우의 레벨을 추정해보자면 당연하게도 2차 각성은 끝낸 상태일 것이다.
“당근…… 크흠.”
“갈 이사님 정도 되면 함부로 모시기도 힘드니까요. 카 부장님과 달리 갈 이사님은 살~짝 말이 안 통하거든.”
칠리새우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뒤따르던 카시야스가 불쑥 튀어나오며 으르렁거렸다.
“나는 쉽게 속여넘길 수 있다고 말하는 건가? 혹여라도 그런 건방진 의도라면-.”
“그럴 리가요. 강자를 탐하는 카 부장님의 노동 의욕과 열정! 그걸 본받자는 차원에서 말한 거죠.”
“-흠.”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카시야스의 분신을 보며 진성은 할 말을 잃었다.
적어도 하나, 지금 머릿속에 들려오는 [저 봐라, 저 무식한 녀석은~]하는 흑구의 말을 전할 필요가 없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어찌 되었든 이렇게나 소환수들과 교감을 나눈다는 점에서, 진성은 약간의 감동마저 느낄 정도였으니.
“진짜 소환사는 소환사네요.”
“어허, 렉븜이니 솬딱이니 하지만 우리만큼, 응? 아라드에 깊이 녹아든 직업도 없다니까요.”
그 마음을 읽은 것인지, 칠리새우 또한 치아를 활짝 드러내 웃으며 진성을 향해 V자를 만들어보였다.
파츠츠츠츳-!
진성에게 있어선 특별히 싸울 일도 없던 그란디네 발전소에서, 주요 네임드 몬스터를 조우한 것은 그 즈음이었다.
“힘이 돌아왔군……..”
거인 보투라.
광물의 육신을 지닌 거대 외눈박이 몬스터가 진성과 칠리새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란디네 발전소의 최종 보스, 허무의 퍼만을 가기 전 거인 보투라를 잡는 건 가물가물하나마 진성의 기억에도 남아있는 일, 따라서 특별할 게 없어야 함에도…….
“근데 느낌이 약~간 다르네요? 전기 울타리?”
“그쵸? 원래 이랬나 싶긴 한데. 처음 소울이랑 왔을 때 니베르가 콘이니, 비연이니 한 거 보면 아마 시나리오 같기도 하고.”
“아……! 그거구나!?”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중 한 번은 거쳐 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
니베르 그리고 콘, 비연과 함께 허무의 퍼만을 처치하러 가는 모험가의 앞을 가로막는 전기 장벽.
그것을 힘으로 뚫으려 콘이 스킬 <게이볼그 펀치>를 사용하지만, 물리력으로도 뚫리지 않는 매우 강력한 전기장이 펼쳐져 있는 상태였다.
결국 에너지를 공급하는 발전기를 직접적으로 터뜨리지 않는 이상, 강제로 뚫고 나가기는 어렵다는 판단하에 NPC 콘은 자신의 스킬마저 바꾸게 된다!
‘그래서 콘의 <게이볼그 펀치>가 랜드러너 무더기를 뽑아내는 걸로 바뀌어버리지. 제법 우울한 파워스테이션 쪽 던전 와중에 깨알같이 숨어있는 개그 포인트였어.’
즉, 전기장 너머에 있는 거인 보투라를 처치하려면 숨어있는 발전기를 찾아 무력화시키는 작업부터 필요하다.
진성은 눈동자만을 슬쩍 굴려 칠리새우를 바라보았다.
“으음…….”
카시야스는 물론이고 소환수 중 어떤 개체도 함부로 전기장을 뚫으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 중이었다.
그 모습이야말로 진성을 다소 실망시키는 부분이었다.
‘여러 번 했다면서? 설마 안톤 쩔까지 운운하던 사람이 여기서 막히나?’
이대로라면 굳이 칠리새우와 파티를 이룰 필요도 없지 않은가.
괜히 방해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진성 자신이 나서려는 찰나.
위이이이잉…….
눈앞에 있던 전기장이 증발하듯 없어졌다.
“에, 에너지가 사라졌다…….”
거인 보투라의 하나밖에 없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변을 좌우로 살피는 그 행동을 보며 진성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한결 흐트러짐 없이 곧장 거인 보투라를 향해 총공세를 가하려는 칠리새우였다.
“<저놈 잡아라!>, 걸레짝을 만들어 버려!”
페인트 탄을 던져 타겟을 거인 보투라 하나로 고정시키는 동시에 채찍을 휘두르는 소환사의 날렵한 행동은 당연히 이 모든 것이 ‘준비된 계획’이었음을 뜻할 것이다.
“우워어어어어-!”
“흡!”
────, ────, ────!
검은 몇 자루며, 쏘아져 나가는 불과 물의 원소 스킬은 몇 개나 되는가.
거인 보투라가 뭉개지는 모습 너머 작은 실루엣을 보며 진성은 헛웃음을 흘렸다.
“허, 허, 허…….”
그 웃음소리에 반응하듯 칠리새우는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씨익, 미소 지었다.
“결투장 최강 호도르는 잠입 액션도 최강! 메탈기어 호도르!“
<계약소환:기갑 호도르>, 소환사는 물론이고 여자 마법사 직업군의 타 직업도 배울 수 있는 기본 소환 스킬 중 하나.
그 실체는 고블린이긴 하지만 오히려 고블린이기에 할 수 있는 것도 있는 법.
거대한 소환수들로 거인 보투라의 시선을 끄는 한편, 전기장 너머로 호도르를 소환하여 전기장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발전기를 파괴하는 별동대 전략이라니.
“실제로 한두 번 해본 솜씨는 아니겠지만……합도 잘 맞네요. 소환수들은 기본적으로 거리가 멀어지면 개별 명령을 넣기 어려울 텐데.”
이렇게나 많은 소환수들에 대한 개별 통제 및 각각에 대한 상세한 지시?
게임 유저라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빙의된 자만이 누리는 특권이라 할 수 있을지도.
“나도 쉽지 않았다고요. 뭐, 그래도 호도르야 워낙 예전부터 함께 해왔으니까.”
물론 그중에서도 칠리새우 자신이 대단하기 때문이라는 어필에 진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흐흐, 하긴 오래되긴 제일 오래됐겠네. 그럼 호도르는 뭐예요? 카시야스는 부장이고. 산도르랑 루이즈 언니는 과장이었고. 중급정령들이 대리면 호도르는 사원? 인턴?”
그러곤 은근히 궁금했던 체계에 대해 물었다.
마치 특히나 스킬 레벨 등을 기준을 둔 것처럼, 기업의 직위로 나눠 부르며 소환수를 다루는 칠리새우의 특징에 빗대어보자면 호도르는?
“어허, 우리가 기본적으로 능력제, 성과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연공서열을 아예 무시하는 건 아니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말이야. 우리가 외국계도 아니고. 외국계도 한국에선 다 연공서열 어느정도 쳐주는 법이라고, 요즘은.”
“요즘……이라.”
“흠, 흠! 어쨌든! 나랑 쩨~일 오래되니만큼 원래는 부사장급, 전무 이사급이 되는 게 옳긴 하지만…… 우리 같은 점빵에 무슨 부사장이니 전무니 상무니까지 다 있을 필요는 없거든요. 그래서!”
칠리새우는 후다다닥, 달리다 갑자기 점프를 뛰었다.
두팔을 가슴에 모으며 웅크리듯 동작을 취하다 착지와 함께 팔을 내뻗는 동작과 함께.
“감사. 호 감사. 호우!”
칠리새우는 외쳤다.
진성으로선 어쩐지 민망한데다 심지어 당황스럽게 만드는 언행.
“코딱지만한 점빵이어도 법인이면 감사가 있긴 있어야 하니까. 구조상. 그럴싸하죠?”
“그, 저기, 칠리새우 님.”
“네? 왜요?”
“뭔가, 으음…… 축구선수에 대한 애정을 표시할 겸 그렇게 이름 붙인 거겠지만-.”
“아시는구나!? 2015년 발롱을 하필 또 메시가 받는 바람에! 근데 재작년이랑 재재작년은 우리형이 받았거든요! 캬하, 난 또 우리 진성 씨가 이렇게 축구를 좋아하는 줄 몰랐네?! 어느 팀, 누구 좋아해요?”
칠리새우는 신이 나 말했다.
그 진심을 알기에 진성은 조심스레 말해야 했다.
저렇게나 신나 보이는 한 선수의 팬에게 모든 진실을 일러주어, 보스를 앞두고 굳이 들뜬 분위기를 죽일 필요도 없을 테니까.
“아뇨, 그……. 이 자리에서 축구 같은 걸 이야기하는 게 좀, 저기, 그렇죠? 보스를 앞에 두고.”
2016년 초 빙의된 칠리새우에게는 너무나 타당한 호감 표시겠으나 비교적 최근 국내에서 일어난 사건 등을 생각한다면 진성에게도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칠리새우도 진성의 지적에 민망하다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 그런가? 미안해요. 사실 나도 이러지 않았는데 우리 집안이 제 위로 전~부 다 그래 가지고 막내인 나도-.”
“음? 막내?”
“-어허험! 아뇨, 갑시다.”
붉은 단발의 소녀는 후다닥 앞으로 달려나갔다.
진성은 그 작은 체구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어라라? 집안, 막내……?’
칠리새우에 대한 또 다른 생각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으나 그것을 억눌러야 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으니까.
“자, 카 부장님! 이제 퍼만밖에 안 남았다, 그쵸? 할 수 있죠?”
“몇 번이나 해온 걸 봐놓고도 묻는가, 미련하기는.”
“오케이, 그럼 가요, 고고!”
그란디네 발전소의 보스, 허무의 퍼만을 상대해야 할 때였기 때문이다.
칠리새우는 여타 소환수들과 함께 부리나케 달려갔다.
사도 안톤의 수하 중 최강을 꼽으면 그 후보에 반드시 들 법한 몬스터, 허무의 퍼만.
‘게임 레벨링 구조 때문에 초반부에 나타나 좀 그렇게 됐지만……. 아마 레이드에서 등장했다면 거의 준보스급이란 설정이 있어. 아마 빙의된 우리들에게는 그 정도의 난이도로 예상해야 할 거다.’
저렇게 웃으며 갈 정도는 아님에도 칠리새우의 모습이 비교적 경쾌해 보이는 것은 역시 믿고 있는 게 있기 때문일 터.
바로 그 ‘믿음의 기반’이 진성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물었다.
“……그 검의 주인은 어디에 있나, 인간.”
제4사도, 정복자 카시야스의 눈빛이 진성을 향해 매섭게 내리꽂혔다.
다크나이트의 육체로도 올려다봐야만 하는 위압감에 진성은 잠시 움찔거렸으나 곧 태연하게 답했다.
“검의 주인이라뇨? 전데요?”
“프하하핫, 날 속이려 드는군. 그것도 재미있어. 그 검의 주인……. 그리고 그 검술의 주인. 분명히 다른 두 명을 묻는 거다.”
카시야스는 호탕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검을 맞대는 것으로 상대방의 의도와 마음을, 그 진의를 읽어내는 감각.
그가 말한 것은 <솔도로스의 선택>에 깃든 기운의 주인인 솔도로스와 <신검의 타락한 손>의 신검 양얼을 말한 것일 터.
진성이 입을 다물자 카시야스는 배를 벅벅 긁으며 걸어 나갔다.
“언젠가는 만나게 되겠지.”
굳이 말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으나 진성은 어쩐지 참기 싫었다.
“……그때가 오면 조심해야 할 겁니다. 내가 빌린 기운은 백 분의 일, 천 분의 일도 안 될 테니까.”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오랜 유저로서 솔도로스에 대한 원망은 분명했지만, 그 이상의 존경 또한 있었기 때문이다.
카시야스는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제4사도는 인상을 찡그렸으나 이번엔 진성 역시 눈을 피하지 않았다.
피로 강철을 적시는 자는 호탕하게 웃었다.
“건방지게 나에게 그런……. 푸하하핫, 그래, 좋다. 나도 기대하고 기다리지. 하지만 그 전에…… 네가 나를 재미있게 해줬으면 하는데.”
그러곤 말했다.
“허무의 퍼만 등장! 카 부장님! 얼른요, 얼른!”
어느새 ‘보스방’에 다다른 칠리새우가 깡총거리며 외치는 중에도 카시야스의 걸음은 느긋했다.
그는 진성에게 말했다.
“네가 퍼만을 처치해라. 그렇다면 날 우습게 본 것을 한 번 용서해주지.”
“……으, 응? 네?”
“그게 아니라면 난 퍼만이 아니라 지금 당장, 네 녀석과 놀겠다.”
플레인:아라드에 빙의된 자에게 있어선 가장 끔찍한 협박과도 같은 발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