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6)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6화(16/212)
016
마음은 조급하지만 함부로 나설 수도 없었다.
세리아와 여자 격투가의 옆에 있는 반 발슈테트는 제국 아이언 울프 기사단의 단장이기 때문이다.
‘부단장인 하츠가 내 얼굴을 기억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제 와서 반과 함께 올라가 봐야 문제만 커지겠지.’
그렇다면 그 곁에 있는 아간조, 대검의 아간조를 노렸어야 했나.
하지만 진성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항상 달빛 주점에 있던 아간조가 보이지 않은 이유, 결국 이미 그 시점에서 아간조는 쭉 여격가 유저와 함께 다닌다는 설정이 되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남아 있나.
이미 세리아와 ‘캐릭터 모험가’인 여자 격투가는 위층으로 가는 계단을 걷는 중이었다.
아간조와 반 발슈테트 그리고 레니 또한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으니.
그들은 곧 아이언 울프 기사단의 전진 기지를 거치게 될 테고, 그대로 하늘성의 최상층을 향해 나아가게 될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레니가 하늘성 끝까지 가는 스토리는 없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진성은 던전 지역:하늘성의 스토리를 되뇌었다.
최종 보스인 지그하르트를 처치하려 ‘모험가’인 유저는 노력하지만, 그는 바칼의 힘으로 만들어진 마법진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공급받고 있었다.
‘아간조, 반과 함께 대항하는 것까진 기억나. 지그하르트가 죽지 않아서 당황하던 느낌은 기억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흐름에 레니는 없다.
퀘스트의 대사를 전부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전반적인 흐름이라면 꿰고 있는 진성에게 있어 의문은 그것이었다.
‘지그하르트에게 마력이 공급되고 있다는 걸 깨닫는 역할……도 레니가 할 리가 없어. 그건 세리아-. 아닌데, 세리아가 아니야. 그걸 하는 건-.’
그러다 깨달았다.
이미 모두가 올라가 자신 외에는 몬스터도 없는 텅 빈 하늘성에, 또 다른 누군가가 올라오고 있음을.
‘마법사 길드의 샤란! 그래, 샤란이 지그하르트의 비밀을 파헤치는 역할이었다. 그리고 그런 샤란을 하늘성에 무사히 데려다주는 게-.’
계단 위로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을 보았을 때, 진성은 마침내 기억해냈다.
대머리보다도 눈에 띄는 건 X자 형태로 눈을 가리고 있는 붉은 안대.
‘……G.S.D.’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조금 오래 즐긴 유저라면 모두가 기억하고 있을, 사실상 던전 지역:하늘성에서 반복되는 사냥으로 레벨을 올리던 그 시절 많은 도움을 받았던 NPC, G.S.D였다.
‘샤란이 하늘성 꼭대기까지 가기에는 위험하니까 G.S.D가 호위를 한다……는 느낌이었어. 맞아.’
세리아와 유저인 여자 격투가 그리고 반, 아간조보다 약간 뒤늦게 쫓고 있으나 그들과는 결국 조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하늘성을 오르는 이가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든 샤란과 G.S.D를 이용해서-. 제국 기사단에 들켜도 쫓겨나지 않을 정당한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진성은 두 명의 NPC를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샤란을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G.S.D라면 어떨까.
‘그래도 한때 귀검사 직업의 교관 같은 NPC였잖아. 그나마 그 시절에 나눴던 대화 같은 걸 생각한다면 이쪽밖에 없어. 시험해볼 수 있는 건-.’
시험해봐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음은 없을 테니까.
저벅, 진성은 결국 각오를 마치고 앞으로 나섰다.
* * *
“어머나?! 이런 곳에 사람이-.”
“……아까부터 인기척은 느끼고 있었으나 위협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무시하려 했네만……생각이 바뀐 겐가.”
주춤거리는 샤란과 곧장 검 손잡이부터 쥐는 G.S.D를 보며 진성은 일단 양팔을 번쩍 들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부터 민망하지만 수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위협적인 존재가 아님을 대놓고 드러내는 진성의 태도에, 샤란의 표정이 빠르게 바뀌었다.
“……하늘성 한복판에서 만났는데 수상한 사람이 아니다? 당신은 누구죠? 무엇보다 아간조 님을 비롯한 모험가 일행이 조금 전 올라갔을 텐데, 그 모습까지 쭉 지켜보다 지금 나섰다는 뜻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그리고 역시 마법사 길드의 길드장다운 추론을 펼쳤다.
합리적인 그녀의 질문에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
진성의 눈이 빠르게 좌우로 움직였으나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은 뻔했다.
“도움을 드리고자 하는데 혹시…… 저도 따라가면 안 될까요? 여기, 하늘성의 최상층부까지 가시죠? 대마법진 조사할 겸. 제가 이래 봬도 어쨌든, 뭐, 용인들도 상대할 수 있고. 지금 같은 때에 한 사람의 도움이라도 있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저 노골적으로 자신을 끼워달라 제안하는 수밖에.
다만, 대마법진을 조사한다는 목적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하는 게 나았을 거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을 뿐이다.
“대마법진의 조사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헨돈마이어에서부터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나 본데. 그러니 더욱 의심되는군요. 순수하게 도우려는 의도가 아닐-.”
“순수하게 도우려는 의도입니다! 진짜로!”
“-흐음, 어떻게 할까요, G.S.D 님?”
진성은 말 그대로 정성을 다해 외쳤다.
샤란은 진성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G.S.D에게 물었다.
눈을 가리고 있는, 현시점 아라드 대륙 최강의 검사로 손꼽히는 자는 조용히 말했다.
“팔에 깃든 귀鬼의 힘을 어떻게 소화했는지 모르겠으나 아직 그것을 완전히 다룰 줄은 모르는 상태로군. 도움을 줄 능력이 있다는 자네의 말은 필시 거짓이 아닐 터.”
진성은 자신이 빙의한 육신, 다크나이트의 배경 설정에 대해 G.S.D가 삽시간에 파악했다는 점에서도 놀랐으나 우선 중요한 건 긍정적으로 들리는 그의 말투였다.
“예? 예! 그렇습니다! 이게 그러니까-.”
“그러나 우리로선 신중해지지 않을 수 없군. 돌아가게나.”
“……네?”
안타까운 점이라면 결과까지 긍정적이지 않다는 점일까.
G.S.D는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분위기를 살피던 샤란 또한 그의 뒤를 쫓았다.
진성은 그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신중해야 한다? 신뢰가 없다는 뜻?
‘믿을 수 없는 건, 그래, 그렇다 치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순 없다.
오히려 신중해야 하기에 진성 자신의 합류를 인정하게끔 만들어야 한다면!?
저들로 하여금 진성 자신을 데리고 다녀야 한다, 라는 마음을 먹게끔 만들려면!
“그랜드Grand 소드마스터Swordmaster 던컨Duncan.”
진성은 뜬금없이 말했다.
두 NPC의 발걸음이 동시에 멈췄다.
침묵은 잠시였다.
“……설마?”
부연 설명 따위 없어도 샤란은 진성이 내뱉은 말을 이해했다는 듯 놀란 눈을 했다.
적어도 진성이 기억하고 있는 배경 설정은 확실히 통하는 중이었다.
현재 아라드의 그 누구도 G.S.D가 무엇의 약자인지, 그의 본명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G-. G.S.D 님? 본명이…….”
샤란은 말까지 더듬었다.
진성의 말이 사실이라 곧장 확신한 건 아니겠으나, 적어도 G.S.D의 발걸음조차 멈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녀는 알았기 때문일까.
그러나 G.S.D는 그저 한쪽 입꼬리만을 올릴 뿐이었다.
“아직도 나를 그런 식으로 지칭하는 자가 남아있었나. 그 옛날 모두 사라진 줄 알았건만…….”
“네? 그 말씀은-.”
“언젠가 그렇게 불린 적은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네. 물론 내 본명이 던컨도 아니고.”
“……그러시군요.”
샤란은 그럼 그렇지, 라는 뉘앙스로 답했다.
어쨌든 진성의 입장에서 한 가지는 확실히 해낸 셈이었다.
“저자는 그럼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을까요?”
“나이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이나, 나이와 경험 그리고 지식이 꼭 비례하진 않는 법이겠지.”
두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는 것.
진성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어…… 하하, 네, 맞습니다. 예전에 들어본 적이 있어서 한번 말씀드려봤네요.”
그러나 이렇게 시간을 번 것도 오래 가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역시 이건 아닌가 보군. 옛날 아수라 직업군 키울 때 G.S.D를 그런 식으로 불렀던 기억이 나서 던져본 건데-. 하긴, 그 이후에도 밝혀진 바가 없으니 당연히 가명 같은 거라곤 생각했지만…….’
그랜드 소드마스터 던컨이 G.S.D를 풀어낸 게 아니라는 것 또한 인지하고 있는 점이었으니.
진성은 다음 수를 던져야 했다.
“그랜드 소드마스터 던컨은 그냥 관심을 끌려고 해본 말이지만, 저는 진짜로 G.S.D 님이 그런 이름을 쓰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 뜻까지 말이죠.”
그리고 그 다음 수야말로 진성만이 내뱉을 수 있는 말이었다.
G.S.D는 무엇의 약자인가.
뭘 줄여서 표현하고자 했던 걸까.
게임 던전앤파이터 유저라면 한 번이라도 의문을 가졌을 법한 질문.
‘김선달, 감성돔 등등의 놀림거리는 많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지. 아마 그냥 네오플 측에서 이제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나돌고 그랬지만…….’
진성은 달랐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좋아했던 그는 간혹 의문을 가졌고 고민해보았고 또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에.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는 않군.”
“네, 가시죠, G.S.D 님.”
다시금 등을 돌려 떠나려던 G.S.D와 샤란을 보며, 진성은 자신만이 품고 있던 또 하나의 가설을 말할 수 있는 셈이었다.
그가 자신의 본명 또는 G.S.D의 명칭을 알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와중에도 G.S.D를 고집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은 아닐까.
G.S.D가 무엇인지 해석할 수 있는 자.
즉, 굳이 단서 따위를 주지 않아도 그 점에 대해 알 수 있는 자.
‘한때 G.S.D가 솔도로스 아니냐는 루머가 있었던 적도 있지. 당연히 지금은 아닌 걸로 밝혀졌고 실제로 스토리 상에서 아무 연관도 없다. 나 또한 G.S.D가 그레이트 솔도로스Great Sol Doros가 아닐까 생각해봤지만 어쨌든 결코 성립될 수 없는 말이야.’
G.S.D는 솔도로스가 아니다. 공식적으로는 관련도 없다.
그럼에도 진성의 머릿속에서만큼은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었다.
‘내 머릿속에서만큼은 G.S.D와 솔도로스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았기에 떠올릴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방향성.
“절망의 탑의 후손Grand Son from tower of Despair……이라면 어떨까요.”
솔도로스가 남아있는 절망의 탑.
시간의 흐름이 외부와는 다른 신비한 공간.
‘인게임에서는 이렇게 자유로이 대화할 수 없기에 확인할 수 없었지만, 혹시나! 어쩌면! 하는 마음으로 줄곧 생각해봤었다.’
G.S.D가 그곳 출신 또는 그곳 출신의 후예이지 않을까.
따라서 절망의 탑 출신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그 외에는 누구도 추측조차 할 수 없는 G.S.D라는 가명을 고집하는 동시에 그 의미를 가르쳐주지 않는 건 아닐까.
상상만으로도 두근거리는 기대감과 가능성 또한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즐기는 진성만의 방법이었으니.
진성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G.S.D를 바라볼 수 있는 셈이었다.
샤란은 진성을 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그건 또 뭔지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청년이네. 그 상상력만큼은 높이 살 테니 나중에 마법사 길드나 한번 찾아와요. 천~천히 이야기나 한번-……으, 응?”
진성의 말을 의미 없는 농담으로 치부해버리려던 그녀였으나 그녀는 말을 마칠 수 없었다.
적어도 진성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G.S.D 님……?”
당황할 수밖에 없다.
진성 자신에게도 X자의 붉은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있는 G.S.D의 ‘눈빛’이 보일 정도였으니까.
“절망의 탑이 뭐길래-. G.S.D 님?”
샤란은 다급하게 물었다.
그러나 노년의 귀검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진성도 마찬가지였다.
샤란만이 정신없이 눈동자를 굴리며 두 명의 남성을 번갈아 보기를 몇 분이나 되었을까.
“나는 절망의 탑이 뭔지 모르고 그곳의 후예도 아니네. 하지만…… 자네에게 묻고는 싶군.”
G.S.D는 진성의 말을 부정했다.
“원하는 게 무언가.”
그러곤 물었다.
일련의 흐름은 맞지 않았다.
그러나 진성은 그런 상황에 놀라거나 당황치 않고 답했다.
“제가 원하는 건 하나뿐입니다. 샤란 님 그리고 G.S.D 님과 함께 하늘성을 오르는 거요. 기왕이면 좀 상황이 부드럽게 흘러가는 게 좋을테니-. 아! 제가 G.S.D 님의 제자? 일단 그런 ‘설정’으로 함께 가는 건 어떨까요?”
처음부터 진성의 목적은 하나였으니까.
“……그러지. 자네, 이름은?”
G.S.D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오히려 그 부분에서 진성은 잠시 고민했다.
“진성……이라고 불러주시면 되겠네요.”
이 다크나이트는 진성 자신이 마지막으로 접속했던 캐릭터 그 자체는 아닐 터.
슈우우욱-.
진성은 미세한 소음을 들었으나 거기에 신경쓰지 않았다.
어쨌든 자신이 마지막으로 로그인했던 다크나이트 캐릭터의 닉네임, ‘마따끄진성’으로 NPC들에게 인식되지 않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다행스러웠으니까.
“진성, 진성……. 알겠네. 가지.”
G.S.D는 진성의 이름을 몇 번 읊조리곤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눈치를 보던 샤란은 황급히 그를 쫓으며, 그 와중에도 진성을 흘끗거렸다.
셋은 하늘성을 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