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60)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60화(160/212)
160
당황 속에서도 진성은 침착함을 찾았다.
분명 제4사도, 정복자 카시야스의 협박이라면 가장 끔찍한 일 중 하나일 터.
하지만 지금 눈앞의 카시야스는 어떠한가.
“잠시- 잠시만요? 아니, 그, 카 부장님! 이시잖아요. 소환사가 저렇게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있는데 그러면 안 되죠!”
그는 칠리새우와 계약한 소환수다.
<계약소환:정복자 카시야스>를 통해 나타난 카시야스의 분신이다.
그럼에도 이런 뻔뻔한 발언을 할 수 있다니?
“누구냐…… 안톤 님의 힘 앞에 무릎을 꿇을 자들이…….”
진성만이 아니었다.
벌써 허무의 퍼만이 깨어나 본격적인 패턴을 시작하려는 시점에선 칠리새우 역시 몸이 달 수밖에 없는 것!
“카 부장님, 빨리요! 퍼만이 깼다니까!?”
“지, 진짜 계속 이럴 겁니까?”
칠리새우에 이어 진성마저도 카시야스를 재촉했으나 카시야스는 입이 찢어지라 하품이나 하는 중이었다.
툭 불거진 배를 내민 자세 그대로, 칠리새우와 진성의 발언에는 관심도 없다는 표정을 짓기도 잠시.
카시야스의 시선이 마침내 퍼만에 닿았다.
찰나의 번뜩임이 그의 눈에 어린 순간, 사도의 분신이 말했다.
“아니면 약속해라. 퍼만은 내가 끝장내주지. 대신.”
역시 강자를 보면 참을 수 없는 투쟁심이 끓어오르는 것일까.
“대신?”
카시야스는 진성을 향해 조건을 내밀었다.
스르릉, 매우 느린 속도로 검을 꺼내고 있음에도 어쩐지 살벌한 소리와 함께 그는 말했다.
“난 아직 그 역겨운 역병놈과 제대로 붙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네 놈, 네 놈의 그 눈 역시……. 프흐흐, 퍼만을 끝낸 이후 다시 한번 붙어보겠나.”
“……아.”
분신이라 하여 능력 자체가 감퇴되는 일은 없는 것인가.
솔도로스와 양얼 뿐만 아니라 진성이 빌렸던 힘, <검은 질병의 흑랑> 세트 안에 깃든 흑구의 본신本身, 제6사도, 검은 질병의 디레지에까지 그는 인지해낸 것인가!
“더럽기 짝이 없는 역병견犬에게 본때를 보여줘야하지 않겠나. 은근슬쩍 나를 무시하고 다니는 걸 내가 모를 거라 생각-.”
[크크크크, 진성…… 진성! 미룰 필요도 없다, 지금 당장! 나를 감히 개라고 칭한 저 무식한 칼잡이 녀석의 목을 베어버려라. 나의 모든 힘을 빌려줄 테니!]“-했나. 아마 ‘지금도’ 그러고 있을 것만 같은데.”
카시야스의 발언 중간중간 흑구의 목소리가 진성의 머릿속에 울렸다.
그 어느 때보다도 흥분한 흑구가 길길이 날뛰었으나 진성은 오히려 당혹감을 갈무리한 채 차분한 마음을 지닐 수 있었다.
‘그래, 실제로 흑구에게서 힘을 더 뽑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데다…… 지금까지 나 스스로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상황을 몇 명이나 증언했다.’
흑구의 힘을 더 확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만이 아니었다.
카시야스는 분신이므로 결국 칠리새우의 적절한 통제와 진성 자신이 지닌 HP 회복 포션 등으로 ‘안전하게 실력을 숙달시킬 수 있는 기회’라 느낀 것만도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의 진성에게 카시야스와의 대련으로 얻을 수 있는 그러한 이득들은 다 부차적일 뿐이었다.
진성이 카시야스의 강짜 속에서 진심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점이자, 그의 얼토당토않은 제안을 곧장 쳐내지 않은 이유라면 당연히 하나였다.
‘내 눈. 도대체 내 눈이 어떻길래?’
아직까지 제대로 확인한 적 없는 진성 자신의 눈동자에 대한 언급.
카시야스는 알고 있는 것일까.
진성 자신이야 직접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 자신의 눈이 어떻게 되는지, 혹시 진성 자신의 무언가가 변한다는 걸 카시야스는 알아채지 않을까.
본인의 상태이기에 오히려 얻기 힘든 그러한 정보를 카시야스를 통해 입수할 수 있다면?
“……좋습니다. 우선 퍼만부터 처리하시죠. 카시야스 님과 상대하는 건 적절한 시기를 잡아 상대해 드릴-.”
진성은 카시야스에게 그 제안을 수락한다 말했다.
아니, 말하려 했다.
“<필살검 천귀살>!”
마치 순간이동하듯 사라져버린 카시야스의 신체.
빈 공간에 뒤떨어져 남겨진 그의 목소리.
잠시 흩날린 진성의 머리칼.
멀찍이서 들려오는 것은 퍼만이 흘리는 단말마였다.
“안톤……님…….”
허무의 퍼만, 사도 안톤 휘하 타르탄 중 최강으로 꼽혀도 손색이 없는 그란디네 발전소의 보스.
그 몸은 이미 여섯 개로 쪼개어져 흘러내리거나 증발하는 중이었다.
말 그대로 찰나에 모든 것이 끝났다는 뜻이다.
“……어?”
“흠.”
벌써 검집에 검을 꽂아 넣은 카시야스의 단 일격으로.
“히야아앗?! 뭐야, 뭐야? 카 부장님! 보통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처럼 싸우더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래? 심지어 그 스킬은 내가 평소에 써주려 해도 안 쓴다고 우기더니만?! 아니, 이렇게나 강했다고? 무슨 옛날 그란디네 발전소를 노가다 던전 취급할 때처럼 클리어해버린다고?”
“천귀살은 너의 명령 따위가 없어도 내가 직접 쓸 수 있는-.”
“어, 거봐, 명령 맞죠? 제가 평소에 명령하는 거죠?”
“-다, 닥쳐! 말이 헛나왔다! 내가 하고픈 말은 네 녀석의, 그, 건방진-.”
“자, 자, 수고하셨습니다~! 나갑시다, 모두!”
진성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칠리새우는 엄지를 치켜들어 보이곤 연신 박수나 치고 있었다.
* * *
“미안해요, 제가 말리려 해도-. 알다시피 카 부장님 같은 분을 함부로 할 수가 좀, 그렇다니까. 느낌 아시죠?”
칠리새우는 진성에게 바짝 붙어 중얼거렸다.
역시나 사회생활에 닳고 닳은 사람처럼 능숙한 말투에 진성은 작은 한숨을 내쉬어야했다.
“소환사라면서요. 명령. 채찍. 안 된다고요?”
“차라리 갈 이사님이나 에체 차장님이 낫지. 두 분도 협조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그나마 좀 어떻게 정리가 되는데 유독-. 직위 때문이 아니라 그런 면이 아무래도 있어서요. 카 부장님 없으면 좀, 뭐랄까……안 돌아가는 느낌?”
현실감이 듬뿍 담긴 목소리와 표정으로 칠리새우는 말했다.
진성은 피식, 웃었다.
칠리새우가 하려면 못 할 리 없다.
아무리 말을 이렇게 해도 카시야스를 향해 채찍질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는 존재다.
“말은 그렇게 해도 결국 시험해보고 싶은 거면서.”
“네? 시험요? 무슨?”
“능청 떠시기는.”
“무슨 능청? 모르겠는데?”
그럼에도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칠리새우의 의도를 알기에 진성은 고개를 저은 것이었다.
끝까지 잡아떼는 모습 또한 어쩐지 현실의 직장인과 같은 느낌이라는 생각과 함께.
진성은 말했다.
“대신 칠리새우님도 제 부탁 하나 더 들어줘야 해요.”
“이미 안톤 같이 가기로 해놓고 또? 그리고 이건 제 탓도 아닌- 아, 오케이. 알겠습니다. 사실 제 잘못이 없잖아 있기도 하니, 가능한 한 범위 내에서 노력해볼게요.”
부정하려던 칠리새우도 곧장 말을 바꿨다.
이런 식의 표현 역시 능숙하다고 해야 할지. 그러나 진성에게도 나쁠 건 없었다.
자각하지 못한 비밀을 알 수 있는 동시에, 목숨까지 위협받을 일이 없다는 점.
그리고 칠리새우만이 갖고 있는 권한이라면?
“마티어스 네스만…… 이거 끝나면 거기서 크레인 게임 좀 땡기게 해줘요. 충~분히 뽑을 수 있게.”
진성이 생각해 놓은 또 다른 이득 또한 있는 것이었다.
게임 던전앤파이터에 존재하는 아이템은 수없이 많다.
특히 소모품류에서는 비슷한 효과를 지닌 온갖 종류의 아이템들이 있다.
HP나 MP를 회복하는 용도 또는 속성이나 속성저항, 공격력 등을 올려주는 용도의 아이템들.
그중에서도 특히 희소한 게 있었으니……진성은 바로 그것을 찾으려는 셈이었다.
“어, 재료는-.”
“그거야 물론 칠리새우님이 내주시는 거고. 원래대로라면 천계전기 관련으로-.”
“오케이! 알겠습니다.”
칠리새우는 이제 두말없이 받아들였다.
시원한 척 내질렀으나 이미 손익계산은 전부 끝났다는 뜻일 터,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이튼 공업지대에 거주하며 얼마나 많은 빙의자들에게서, 얼마나 많은 자본을 쌓았을지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제 시끄러운 짓거리는 다 끝인가.”
“후우, 그런 것 같군요. 그럼…… 준비되셨나요?”
진성은 <솔도로스의 선택>을 꼬나쥐었다.
카시야스의 눈이 잠시 커다랗게 뜨였다.
그는 곧 폭소했다.
“음? 으하하하핫! 준비!? 준비가 되었냐고 물은 건가, 지금?”
“그렇게 웃을 것까지야, 크흠, 아무리 그래도 매너를 지키자는 거였는데…….”
마계에 오르기 전 에컨 행성에서부터 현재까지 사도 카시야스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약육강식弱肉强食, 강자존 약자멸强者存 弱者滅의 무규칙 현실을 헤쳐나온 카시야스에게 있어 진성의 말랑한 질문은 웃음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셈이었다.
“크크, 그래, 재미있어. 준비. 준비라…….”
그러나 카시야스의 입장에선 너무나 말랑하기에 생경하게 다가오는 말이기도 할 터.
그는 흡족한 표정으로 진성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 준비되었다. 그 더러운 역병견의 힘을 다시 한번 보이거라.”
[클클클, 너무 만만하게 봤군, 진성. 아까 저 무식한 칼잡이의 뱃가죽을 도려냈어야 하는데.]진성은 카시야스의 호언에 어쩐지 따스함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의 머릿속에만 들리는 흑구의 음성에 이유 모를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막연하게는 카시야스가 더 거침없고 디레지에가 더 초연할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말이지.’
진성 자신이 지닌 지식과 실제 간의 차이에 대한 감상은 거기까지였다.
후우, 하아…… 호흡을 가다듬으며 진성은 말했다.
“흑구, 힘을 빌려줘.”
얼핏 육안상으로 달라진 게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카시야스는 물론, 칠리새우도 곧 볼 수 있었다.
슈우우우우─────.
“음.”
“와…… 뭐야, 저건?”
다소 흐릿하지만 일렁거리는 검은 기운이 진성을 감싸는 모습.
그 육체 하나하나를 단단하게 또 날카롭게 뒤덮는 느낌.
카시야스는 슬그머니 검 손잡이 위에 손을 올렸다.
두 번의 실수는 없었다.
“<래피드 무브>, <다크 크래셔>-.”
──────, ──────!
철과 철이 부딪치는 파열음이 두 번, 칠리새우는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려야 했다.
“우왓!?”
푸화아아아아악-!
불어닥치는 후폭풍과 먼지가 이튼 공업지대 한켠, 유저라면 결코 접근할 수 없는 공터에 불어닥쳤다.
[느리다, 진성, 느려. 나의 속도는 이것으로 끝이 아닐지니.]“알고 있어! -<브리프 컷>, <바운스 블로우>, <피어스 스트라이크>!”
흑구의 독려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진성은 깨닫고 있었다.
카시야스가 서 있는 자세, 그 포지션과 태도만으로도 알 수 있었으니까.
‘솔도로스와 양얼의 힘을 빌리지 않은 상태에선 역시…… 한 발자국 움직이게도 못 만드는 건가?’
<래피드 무브>와 <다크 크래셔>를 통해 빠르게 스쳐 지나가듯 공격하고 이후의 콤보를 통해 배후에서부터 찔러 들어오는 패턴은 분명 그에게 한 번 시전한 적이 있건만, 지금과 그때의 결과값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차지 익스플로젼>이 아니라 대미지가 다소 약하긴 했겠지만 그래도- 으음, 그렇다면 다음은…….’
움직이지 않는다면 움직이게 만들어보겠다는 전략.
<홉 스매쉬>, <스핀 어택>, <다크 웨이브> 그리고 <다크 볼>까지.
“흠…….”
허공에서 빠르게 회전하는 암흑의 기운은 분명 겉보기만으로도 위압감을 주겠으나 카시야스에겐 아니었다.
가볍게 검을 휘둘러 기운을 흐트러뜨리려는 그 동작의 틈, 진성은 이번 콤보의 다섯 번째 스킬을 사용했다.
“<다크 레이브>!”
보스 판정이 나지 않는다면 분명 그 역시 끌려올 터.
진성은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절망의 탑에 있던 솔도로스한테도 먹혔어. 카시야스도 아니고 그 분신이라면 분명히 먹힐 줄 알았다고!’
스르르, 몸이 무너지듯 진성 자신을 향해 가까워지는 카시야스에게 무엇을 할지는 이미 계획한 바였다.
<어퍼>, <다크 슬래쉬>, <웨이브>, <다크 크로스>로 짧은 기본기 콤보를 순식간에 욱여넣은 후 다섯 번째 콤보 스킬이자 주력 스킬인 <다크 웨이브 폴>의 극대화된 대미지를 통해 카시야스를 타격하겠다는 것!
‘좋았어, 이제 바로-……아?’
그러나 진성은 알 수 없었다.
카시야스가 끌려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고작 이 정도였나.”
<다크 레이브>의 흡인력으로 인해 자세가 다 무너졌다고 생각했으나 투귀이자 검귀가 그 상황에서 자신의 균형을 되찾지 못할 리 없었다.
“말도 안 돼, 무슨-.”
상체가 60도 이상 기울여진 상태에서 끌려오는 다리에 힘을 주어, 마치 못을 박듯 하체를 고정한 후 그대로 상체를 일으켜버리는 모습이라니?
심지어 그 후 잠시 몸을 웅크리는 동작은?!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
[진성! 나에 대해 안다고 하지 않았나!?]“뭐? 너에 대해 아는 게 뭐 어떻다는 건데? 지금 이 시점에?“
[나는-.]흑구의 갑작스런 고함과 진성이 그에 답하기까지는 찰나였다.
그러나 그 찰나, 이미 카시야스의 모습은 사라진 상태였다.
─────────────!
이튼 공업지대의 공터에서 폭음이 울렸다.
“<오라 실드>, 반반비리비!”
떠밀려오는 후폭풍은 칠리새우조차 즉각 방어용 스킬과 회피 스킬을 동시에 사용하게끔 만들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