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62)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62화(162/212)
162
[왼쪽 어깨다, 진성.]“오케이, 나도 봤어. 이제 슬슬-.”
진성은 을 한껏 뒤로 젖힌 채 달려들었다.
단순히 베어내는 게 아니라 왼쪽 어깨서부터 카시야스를 세로로 토막 내려는 기세로 그는 검을 내리그었다.
물론 들려오는 것은 금속과 금속이 맞부딪치며 내는 호쾌한 소리뿐이었다.
“호오. 이 정도는 되나.”
카시야스는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그가 일부러 진성에게 빈틈을 보여주었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진성과 흑구, 모두 알고 있었다.
자신의 실력 수준에서 카시야스의 빈틈을 완벽하게 노리고 들어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캉, 캉, 카아아아앙-!
세 번째의 연격을 끝내며 카시야스의 반대편으로 진성은 몸을 비틀어 빠져나갔으나 정작 방어를 하고 있던 카시야스는 제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으니.
‘솔도로스’나 ‘양얼’의 힘을 빌리지도 않은 채, 오직 진성 자신이 지닌 고유의 능력과 흑구의 민첩성과 유연성만을 빌린 상태로는 턱도 없는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진성은 미소 짓고 있었다.
조금 전 카시야스의 칭찬으로 보아, 빈틈을 내비치는 것 또한 조금씩 수준을 올리고 있었다는 뜻일 터.
진성이 빈틈을 발견한 것, 그리고 그 빈틈을 향한 속공 역시 카시야스에게는 나름대로 합격점을 받을 수 있는 수준에 다다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당연하죠. 그보다 더한 것도 됩니다.”
하물며 아직 전부 보여준 게 아니었으니, 진성으로선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카시야스의 빈틈을 노렸던 최초의 공격, 그것 역시 흑구로부터 빌려온, 새로운 ‘규격 외’의 활용 방식이었다.
‘레쉬폰의 디레지에가 사용하는 일종의 기본 공격이지만……. 못지않게 날카로운 회전 돌진 공격이었어.’
고통의 마을 레쉬폰의 보스, 검은 질병의 디레지에가 사용했던 공격 패턴인 를 활용하여 카시야스에게 인정을 받은 이후의 대련에서 진성은 여러가지 시도를 거듭했다.
디레지에 하면 당연히 대표적인 게 독기 또는 질병과 관련된 힘이었다.
그 광역으로 주변에 피해를 입힐 수 있는 힘.
‘안타까운 점이라면 역시 물리적 특성만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건가, 쩝.’
그러나 발현되지 않았다.
이나 과 같은 패턴은 진성 자신이 사용할 수 없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확인되었다고 봐야 했다.
‘타고난 특성, 그런 건 내가 쓸 수 없다. 몸이 독기나 질병으로 이루어진 디레지에 외에 플레인:아라드에서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그런 건 아무리 ‘규격 외’의 활용이라도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솔도로스의 ‘검로劍路’나 양얼의 ‘극에 달한 검술’ 등은 모두 기술이어도 제3의 물질을 통해 구현되는 것이다.
그러한 힘이라면 진성 자신이 어느 정도 빌릴 수 있다.
양얼과는 신체적으로 유사하며, 솔도로스와는 같은 검의 소유자이기에.
그러나 오직 하나뿐인, 그것도 노력이나 기타 물질을 활용하더라도 획득할 수 없는 특성은 빌려와 발현할 수 없는 것이다.
흑구의 목소리가 울렸다.
[클클클……. 내 힘이 설마 그것으로 끝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진성.]“흐흐, 당연히 아니지. 레쉬폰의 디레지에라면 그랬겠지만……. 지금 네가 존재하듯 디레지에는 ‘하나’가 아니니까. 정확하게는 디레지에의 힘을 부여받은 존재가 하나가 아닌 거지만.”
진성은 흑구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카시야스를 노려보며 줄곧 미소를 짓고 있던 이유이자 자신감의 근원.
[그렇다. 나는 한 번 노린 먹잇감은 결코 놓치지 않으니…….]“으음, 사실 차원의 균열 속에 있는 너로 따지면 사실 내가 바로 그 ‘먹잇감’이 된 거긴 한데-.”
[물론이다. 내가 너와 함께하는 본질적인 이유 역시 그것이지 않느냐.]“-눈치상 이럴 땐 ‘넌 이미 먹잇감에서 벗어났다’ 같은 말을 해줘야지, 하여튼.”
[크크, 나에게 그런 자비를 원하나.]“아니, 사실 기대도 안 했어, 그러니……. 힘이라도 제대로 빌려줘. 조금 전처럼.”
진성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을 꼬나쥐었다.
여전히 그 힘은 빌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흑구의, 디레지에의, 정확하게는 디레지에로부터 분리되어 나간 존재의 힘이 있으니!
이제는 사라진 던전, 에 나왔던 보스 몬스터가 있다.
차원의 균열 속에서 찢기고 재생되기를 무한히 반복하던 중 그 불타는 복수심으로 인해 태어난 디레지에의 또 다른 분신이 사용했던 공격 패턴 중 하나.
“.”
보스 몬스터의 이름은 ‘검은 마물의 편린’.
문자 그대로 검은 마물, 검은 질병의 디레지에로부터 떨어져나온 조각
[클클클…… 나와는 또 다른 나의 부분이여, 지금, 이곳에 깃들라.]그 시절 유저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패턴, 이 진성과 흑구에게서 재현되었다.
타겟이 된 유저를 연속해서 다섯 번 공격하는 것!
─────, ─────…….
카시야스의 입이 오, 하는 모양으로 바뀌었다.
“크하하하핫! 그런가, 그 망할 똥개가 가진 기술인가?!”
물론 그뿐이었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두 번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내며 그는 웃었다.
흑구의 목소리가 진성의 머릿속에 울려퍼졌다.
[그 아가리 째로 집어 삼켜주마, 무식한 칼잡이 녀석!]진성도 이해할 수 있는 기합이었다.
던전 보스가 사용하는 의 다섯 번 공격 중 단 한 번이라도 피격된 유저가 어찌되었는지.
‘검은 마물의 편린에게 집어삼켜졌었다. 으음, 잠깐만. 그럼 내가 카시야스를 잡아먹는?’
────────……!
세 번째 공격 역시 카시야는 막아내었다.
흑구는 다시금 소리쳤다.
[진성! 집중하지 못할까!]“지, 집중은 하고 있다고! 카시야스에게 직빵으로 먹히게 만들려면 틈을 찾아야-……틈.”
──────────!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진성은 기억해냈다.
디레지에의 스킬을 쓸 수 있다.
디레지에이지만 디레지에가 아닌 자, 검은 마물의 편린의 스킬을 쓸 수 있다.
디레지에이지만 또 다른 자아, 흑구의 힘을 빌릴 수 있다.
또한 고통의 마을 레쉬폰에서, 검은 질병의 디레지에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디레지에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중첩되며 진성은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틈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잔기술 따위를 걸 수도 없는 카시야스를 상대로 어떻게 틈을 만들 수 있을까.
‘시간. 공간…….’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을 써야만 할 것이다.
그 방법은?
‘……디레지에와 함께 있을 때. 써 본 적이 있어.’
진성 자신이 가진 고유의 힘을 발현하는 것.
‘누군가’의 도움이 있을 때만이 가능했지만 어쨌든 성공시켜본 적이 있다.
아직은 트리거밖에 안되지만, 결국 발사체가 있다면 트리거로서의 가치가 성립되는 것 아닌가.
즉, 이토록이나 디레지에의 힘을, 그에게서 뻗어나온 온갖 종류의 힘을 사용했다면.
차원의 균열 속 디레지에, 그 본체와 함께 있을 때 진성이 사용해보았던 힘은?!
의 다섯 번째 공격이 시행되려는 찰나.
카시야스는 눈을 부릅떴다.
“그거다. 그 눈!”
진성은 듣지 못했다. 들리지도 않았다.
완전히 생각에 빠져버린 채, 공격을 준비하던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개념과 단어는 단 하나였으니까.
일시적으로 대상의 시간을 멈춘다.
일시적으로 대상의 공간을 차단한다.
강제로 그에게서 빈틈을 창조해낸다.
차단, 시간.
“브레이크……타임…….”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역안黒白目의 눈으로.
대검을 치켜들며.
카시야스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그 입가에 미소가 걸린 순간.
“어…… 카 부장님! 폭발 조심하세요! 하늘에서부터 후두둑!”
칠리새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시야스는 고개를 돌렸다.
“폭발…… 핫!?”
카시야스의 당황이 진심임을 느꼈으므로 진성의 집중력 또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다섯 번째 으로 쇄도하던 진성의 눈동자가 또르르, 하늘을 향해 굴렀다.
그리고 곧 고개까지 치켜들어야 했다.
푸슈우우우우우……!
하늘에서부터 떨어지는 정체 모를 무언가들.
그 수마저 무수하여 저것이 ‘공격’이라면 분명 치명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뭐, 뭐야? 여기 마을 판정 아닌가? 왜 공격이-. 흐, 흑구! 튀엇!”
[클클, 이런, 이런, 저 냄새나는 고깃덩어리를 집어 삼킬 기회였건만-.]“그럴 때가 아냐, 이런, 젠자아아아앙-!”
카시야스는 순식간에 거리를 벌렸다.
진성 또한 죽을힘을 다해 하강하는 무언가들로부터 도망쳤다.
아니, 치려 했다.
그 순간, 진성 자신의 귀에 들린 목소리만 아니었어도.
“지이이이이이이인~”
길게 늘어지는 한 음절만으로도 진성은 그 발원지를 바라봐야만 했다.
멀찍이서부터 기나긴 금발을 흩날리며 다가오는 자.
“사아아아아아아앙~”
소환사인 칠리새우의 근처까지 달려왔으므로 그 실루엣과 칠리새우의 키가 확연히 차이남을 알 수 있었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껑충한 키, 여성.
그러한 신체적 특징 외에도 이미 목소리만으로 또한 진성 자신을 부르는 호칭만으로도 알 수 있었으니…….
“니이이이이이이임-!”
여자 거너 직업군의 메카닉, 천계에서 벌어지는 첫 번째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인 ‘황녀 구출 및 카르텔 토벌’ 당시 만났던 빙의자.
“……비비 씨?”
비비를 보며 진성은 소리쳤다.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놀라움이나 진성 자신을 알아보고 다가오고 있다는 반가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헤어질 때와 거의 비슷한 감정을, 재회에서도 느껴야 한다는 점에서 진성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근데 왜 나를 폭격하는 건데?!”
─────────────……!!!
도대체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안 되는 것인지.
과 .
그리고 여자 메카닉의 2차 각성 이후 습득하는 스킬 에 더하여, 말 그대로 ‘2차 각성 스킬’인 의 무차별 폭격이 이튼 공업지대의 어느 공터에 가해졌다.
그 폭음과 후폭풍에 뭇 천계인들이 한바탕 대피하는 소란이 일었던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 * *
“카 부장님이 한 번 참아요. 모르고 했다는데.”
칠리새우는 카시야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멍청하긴, 그 말을 믿나? 저 인간 여자가 그럴 리 없다. 네 녀석에게 도움을 받을 때도 뻔뻔하기 짝이 없었던 인간이 아닌가! 나한테도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던 게 기억나지 않나?!”
그 어느 때보다도 길길이 날뛰는 카시야스의 모습이라니.
곁에서 바라보던 진성조차도 도저히 틈에 끼어들 수 없을 정도인 것도 놀라운 상황에서……
“잉? 말대꾸요? 아뇨, 아뇨, 그냥 카시야스 님께 알려드린 것뿐인데요. 마계에 계셨으면서도 역시나 과학에 대해, 공학에 대해 아무래도 잘 모르시니까 제가 가르쳐 드리기라도 할 겸-.”
“크아아앗, 닥쳐! 베어버리기 전에!”
“자, 잠깐, 카 부장님! 아이, 진짜! 비비 당신은 좀 뒤로 물러나요, 하여튼 입만 열면 문제라니까.”
“잉? 이게 도대체 뭐가 문제지?”
비비는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기 할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칠리새우가 어떻게든 카시야스를 뜯어말리는 모습을 보며 진성은 피식, 웃었다.
“오랜만이네요, 비비 씨. 아까 그건 도와주려고 하셨다고?”
비비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환히 웃었다.
이미 스킬로 확인한 바 있으나 그녀의 뒤편에 둥둥 떠다니는 드론의 모습이 바뀌었다는 것.
그녀가 여자 메카닉 직업군의 2차 각성, [옵티머스]가 되었음을 진성은 알 수 있었다.
마치 그것을 자랑이라도 하듯 비비는 말했다.
“진상 님! 그럼요! 카시야스 님이 대단하긴 한데 아무래도 앞뒤 분간 못 하는 성향이 있다 보니-.”
또다시 카시야스의 성질을 돋우는 한마디.
“-저러셔서. 혹시 진상 님이랑 싸움 난 줄 알고 도와드리려고 한 거죠. 소환사 언니 성격이 별로 좋은 편은 아니기도 하고.”
그리고 칠리새우와 진성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드는 한마디까지 덧붙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