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64)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64화(164/212)
164
초입부에 등장하는 몬스터는 던전 지역:파워스테이션의 여타 던전과 비슷했다.
거대한 딱정벌레 형태의 그래닛, 플라잉 그래닛, 돌격 그래닛 등이 나오거나, 코레 발전소에서 봤던 핏즈의 피조물인 핏즈의 화염 궁수, 거대 화염슬라임 등 그 패턴이나 HP를 유추 가능한 존재들을 상대하는 일이었기에 딱히 어려울 건 없었다.
그럼에도 진성은 어쩐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중이었다.
“! !”
거침없이 스킬을 사용하는 비비의 몸놀림 때문이었다.
새로이 습득한 스킬을 잘 활용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과거 진성 자신이 알려주었던 스킬의 콤보, 하나의 스킬을 여러 가지의 형태로 변형시키며 운용해야 하는 여자 메카닉 직업 특유의 전투 스타일은 더욱 갈고 닦아진 상태가 아닌가.
‘사이사이 넣는 평타 타이밍도 좋다. 모래바람의 베릭트에게 그때 특훈을 받아서 그런지 적중률도 상당해.’
유저였다면 모니터 너머로 확확 감소하는 몬스터의 체력 바를 확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비비 씨! 그 무기는 시간의 문에서 뜯어낸 거?”
“이, 잉!? 진짜 누가 썩은 물 아니랄까 봐, 이것도 알아보는 거예요?”
“그럼요. 딱 보니까 빌마르크 실험실, 하이퍼 메카타우한테서 뜯어낸 거구만.”
그렇게나 확연히 상승된 공격력은 역시 바뀐 무기에서부터 비롯되는 것.
그녀가 들고 있는 무기가 라는 이름의 자동권총임을 진성은 알아보았다.
“오히려 최신템은 알아보기 어렵지만, 그런 단종템이라면 쉬우니까요.”
현재 패치 버전 기준의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는 역시나 일반적인 방법으로 구할 수 없다.
진성 자신이 입고 있는 세트처럼 일반 던전 등을 클리어할 때 드랍된다는 정보쯤은 남아는 있겠으나, 실질적으로 그것을 획득할 확률을 생각한다면 사실상 단종된 장비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비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못 당하겠네. 놀라게 만들어 주려 했더니만. 아! 그래도 성능은-.”
“비비 씨의 손이 닿았으니 더 강하겠지, 뭐. 안 그래요?”
“-노잼…….”
불만스러운 듯 말하고 있었으나 은근하게 입꼬리가 올라간 게 그녀의 기분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레벨 85의 비비가 이토록이나 활약하고 있었으니 다른 한쪽은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안드로이드인지, 뭔지, 하여튼 싹~ 정리나 합시다. 에체 차장님이랑 루 과장님이 신경 좀 써줘요. 산 대리랑 분 대리도 오늘까지만 힘 내보고.”
“정령왕의 이름으로.”
“아하하핫, 그 정도야 기본이지.”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우워어어어어-!”
카시야스를 소환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진성은 잠시 궁금했으나 곧 쓸데없는 걱정임을 깨달았다.
카시야스가 없어도 정령왕 에체베리아와 루이즈 언니, 검은 기사 산도르와 분노한 검은 기사 산도르, 네 개체의 소환수를 운용하는 칠리새우의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저 채찍은 보면 볼수록 신기하네. 저게 무슨 템이냐고 물어나 볼 걸 그랬나.’
천계 내전, ‘안톤 쩔’, 반복되는 퀘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라 정작 저걸 잊고 있었다니.
진성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으나 그러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브브브브브브-!
[진성.]“알고 있어.”
다가오는 플라잉 그래닛을 보면서도 진성은 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마치 시간을 세듯 발을 톡, 톡 까딱거리는 이유는 물론 있었다.
“, , , -.”
진성은 타이밍을 맞춰 허공에 스킬을 사용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스킬이자 해당 콤보의 주력기를 사용하려는 순간, 진성의 손가락에서 빛이 번쩍였다.
의 효과였다.
장착 시 12초마다 3초 동안 무기가 증폭되는 효과.
그 타이밍에 맞춰 진성은 사용한 것이다.
“-!”
증폭 상태일 때 힘과 지능이 +100, 체력과 정신력이 +50, 물리 공격력과 마법 공격력이 +20% 증가하는 상태에서 사용한, 현시점 진성 자신이 지닌 가장 강력한 스킬의 효과는?
전방으로 쇄도하며 베어내고, 제자리로 돌아오며 다시 베어낸 후 그 자리에 기운을 폭발시켜 주변을 휩쓸어버리는 스킬, 의 결과는?
푸화아아아─────────ㄱ!
무언가가 분수처럼 폭발하는 소리에 비비와 칠리새우는 화들짝 고개를 돌려보았다.
“……70렙대 맞아?”
“진성 님……?”
진성을 향해 다가오던 수십 마리의 그래닛과 플라잉 그래닛이 일거에 베어져 뿜어진 피분수, 그리고 그 피분수가 폭발의 여파에 사방으로 후두둑, 튀어나가는 소음이었음을 깨닫고 나서는 할 말을 잃은 두 사람이었다.
“어으, 찝찝해. 빙의되고 나서 이게 제일 짜증 나지 않아요? 몬스터 사체에서 튀는 체액이 너무 기분 나쁘다니까. 나 은근 결벽증 있나 봐.”
하물며 곤충형 몬스터들의 피와 체액을 뒤집어 쓴 악귀나찰과 같은 모습으로 헛소리를 하는 진성을 보면서 둘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 * *
푸슈우우우우…….
강철로 된 문이 열리며 증기가 피어올랐다.
그래닛의 날갯짓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 사람은 잠시 긴장해야 했다.
“진상 님, 또 다른 몬스터 뭐 나와요?”
“저도 모르죠.”
“잉? 진상 님이 모르는 것도 있나?”
“구, 국내 던파에 애초에 나온 적도 없는 던전인데-. 내가 그거까지 알 리가 있겠어요?”
다소 민망한 진성이 괜스레 목청을 높여보았으나 비비는 오히려 즐거워진 것 같았다.
씨익 올라간 입꼬리로 그녀는 말했다.
“헤에…… 그렇구나. 진상 님도 모르는 게 있구나.”
그것을 동질감의 기쁨이라 해야 할지, 인간미를 발견한 기쁨이라 해야 할지.
비비 자신조차 명확히 이거다 할 수 없는 즐거움을 머금기도 잠시, 진성은 헛기침을 몇 번 한 후 입을 열었다.
“크흠, 뭐, 완전히 다 모르는 건 아니고. 하여튼 보스는 인간 여성의 모습을 본딴 안드로이드… 그리고 아마 귀검사형, 거너형, 격투가형 등 생김새에 따라 패턴이 다르다, 정도는 알고 있죠.”
비비가 다시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동시에 칠리새우로 하여금은 혀를 차게 만드는 정보였다.
“……보통 그럴 땐 ‘다 알고 있다’고 말하는 거 아니었나? 내가 빙의된 사이 세상이 많이 변했나벼.”
보스에 대한 것만 알고 있다면 어차피 ‘잡몹’ 따위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결국 가장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잡아떼다니.
칠리새우의 타박 아닌 타박을 들으며 진성은 멋쩍어 했지만 그사이 나선 건 비비였다.
“진상 님 입장에서는 그럴 만하죠. 교육 공대나 최초클팟 운영하려면 말 그대로 모든 걸 알아야 할 테니. 맞아, 진상 님 성격이 원래 그런 식이니까.”
저것이야말로 진성의 몸에 밴 습관이라는 것을 비비는 알았다.
겸손을 떠는 게 아니라 실제로 진성은 부족하다고 느끼기에 말하는 것임을.
그것을 보며 그냥 넘어갈 칠리새우가 아니었다.
“딱히 뭐라고 한 건 아닌데. 흐~음, 그러고보니 비비 당신, 이제 보니까 은근~히 진성 씨 편을 좀 드네? 원래 둘이 아는 사이라고만 말해놓고선 이제보니 ‘보통의 아는 사이’는 아닌가 봐? 응? 응?”
“무, 무슨 소리예요!? 진상 님이랑 내가 뭘-.”
“확실히 보통의 아는 사이는 아니죠.”
비비는 당황했지만, 진성은 오히려 고개를 끄덕였다.
칠리새우를 바라보던 비비의 고개가 꺾일 듯이 진성을 향했다.
“네, 지, 진상 님? 뭐가요? 진상 님이랑 나랑-.”
“스승과 제자 같은 거라고나 할까? 비비 씨가 원래 계수표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지만 실질 딜 싸이클 패턴 짜주고 연습시킨 게 나거든요. 칠리새우 님도 최신 버전 소환사 스킬까지 다 있었으면 제가 한번 알려드릴 수 있었는데, 그건 좀 아쉽네. 뭐, 없어도 이미 잘하고는 계시지만.”
그리고 진성의 말이 끝났을 때, 헬릭스 연구소에는 적막이 맴돌고 있었다.
“…….”
“…….”
칠리새우가 무슨 의도로 말을 꺼냈는지.
비비가 어째서 당황했고 또 할 말을 잃었는지.
“엉? 뭐, 뭡니까, 이 침묵은? 갑자기-.”
눈곱만큼도 알아채지 못한 진성이 그 분위기에 외려 당황한 순간.
쿠궁, 쿵…… 위이이이잉──────!
기계 장치의 가동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희희덕대던 세 사람의 분위기도 순식간에 변했다.
“저건 뭐지?”
“무슨 커다란…… 공?”
정체불명의 구체를 덮고 있던 외피가 열렸다.
해당 구체의 높이만으로도 진성의 가슴팍까지 올 정도로 상당한 데다, 그 지름 역시 진성이 양팔을 쭉 벌린 것보다도 길었다.
그 수는 무려 열 구. 부피가 상당한 구체를 구성하고 있던 조각들이 열리고, 그곳에서부터 빛이 번쩍이며 증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쯤은 세 사람 모두 인지한 상황이었으나 문제는 그 결과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만약 저게 튀어오르기라도 한다면……. 다들 알죠?”
“나야 라도 있으니 기습당해도 한 번은 괜찮지만.”
진성의 경고에 칠리새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잔뜩 긴장한 두 사람의 곁에서 비비가 말했다.
“근데 그럴 것 같진 않아요. 분명 구체처럼 생겼지만 접지면이 꽤 단단해요. 사실상 평평한 것 같고. 뭔가가 가동하고 있는 건…… 엔진? 모터? 그리고 또 들려오는 건 저 안에서 뭔가가 짜맞춰지는- 조립되고 있는 소리 같은데요?”
“……네? 비비 씨가 아는 거예요?”
역시나 그녀의 특기 분야와 연관이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까.
진성의 물음에 비비는 자신 없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모르는 건데. 들리는 소리가. 저 안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
그러나 말을 마칠 수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철컥, 철컥, 철컥-! 기이이이잉…….
쇳소리와 더불어 거대한 구체의 내피 한 겹이 다시금 열리는 소리.
그 소리가 끝날 즈음 세 사람의 눈에 보인 건 타원형의 무언가였다.
세 개의 뾰족한 발로 몸통을 지탱하고 있는 타원형의 높이는 대략 진성의 허리 언저리.
그 몸통의 옆으로 비죽비죽 솟아난 게 날Blade이라는 것을 알아본 시점에서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몬스터! 기계형!”
키이이이이잉─────────!
진성의 외침과 함께 그 날들이 회전을 시작했다.
“아마도 저 구체에서 만들어 내는 것 같으니 본체부터 타격할게요!”
“루 과장님! 구체부터 얼려주고, 산 과장, 분 과장은 바로 몸빵부터!”
비비와 칠리새우가 구체에 대한 타격을 개시할 즈음, 언뜻 이동에 불편해 보이던 타원형 기계의 삼발이 잠시 구부러졌다.
그 높이가 낮아진 건가, 싶었던 건 다리를 굽혔기 때문.
카가가각, 지면을 파헤칠 정도의 각력을 내뿜으며 열 기의 타원형 기계 몬스터들이 전부 도약했다.
그 몸통의 측면에 붙은 톱날의 회전만큼 그들의 도약과 쇄도는 재빨랐다.
“이, 이런-! 이런 식으로 공격을 할 줄은-.”
“쳇, <오라 실-.”
공격하던 비비가 잠시 머뭇거렸고 이미 방어 태세로 들어가려던 칠리새우의 곁에서.
“흑구!”
─────────────!
흑구를 외친 진성의 육신은 잠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봤다면, 헬릭스 연구소의 어느 방에 검은 연기가 흩뿌려진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할 법한 순간, 이미 진성은 비비와 칠리새우에게 접근하던 열 기의 기계 중 다섯 기를 절단 낸 상태였다.
“접근하는 건 내가 다 막아 줄 테니까! 원거리 스킬들로 저 생산시설부터 작살내세요!”
“네! 진성 님만 믿을게요!”
“그렇게 안 해도 어차피 카시야스 불러내면 되는 거였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수고 좀 해줘요!”
“그냥 고맙다고 하면 될 것을 꼭 말을-……. 음?”
괜스레 쑥스러워하는 칠리새우에게 한마디를 쏘아붙이려던 진성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눈이 향한 곳은 바닥이었다. 정확하게는 조금 전 진성 자신이 파괴했던 다섯 개의 개체들에게서 흩뿌려진 부품들이었다.
파괴한 기계 장치의 내부에 적혀있는 문자와 숫자.
여러 기계 장치들이 공통의 문자와 숫자를 공유하는 것으로 보자면 아마도 조금 전 진성이 파괴한 삼발의 타원형 기계장치들의 이름일 터.
그 이름을 보며 진성의 미간이 꿈틀한 이유는 하나였다.
처음 겪어보는 던전.
처음 보는 몬스터.
“……ZX-99 서브 1호?”
그러나 그 이름의 패턴만큼은 진성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ZX와 하이픈 숫자로 이루어지는 몬스터의 명칭.
“진상 님! 구체 하나 파괴 완료!”
“이쪽도 하나 시마이~ ZX-69? 이게 이름인가 본데요?”
칠리새우의 말에 진성의 고개가 휙 돌았다.
“ZX-69? 확실해요?”
“하이고야, 좀 그렇죠? 아무래도 이름이 껄쩍지근한 게-.”
그 와중에도 이상한 소리나 꺼내는 칠리새우였으나 지금 그녀의 말은 진성에게 닿지 않았다.
ZX-99. ZX-69.
이곳에 존재하는 두 기계체의 이름과 유사한 패턴을 가진 몬스터는 무엇이 있을까.
“ZX-5 스파키 감마…… ZX-5 스파키 베타…….”
그러한 기계장치를 몬스터로 부리고 또 이름을 붙인,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인물은 누구인가!
“설마……지젤?”
진성의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