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65)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65화(165/212)
165
─────, ─────, ─────!
비비의 <마그네틱 필드>는 기계장치들에 대한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마치 EMP를 쏜 것처럼 갑작스레 퍼진 자기장으로 인하여 기계형 몬스터들의 행동이 전반적으로 느려지게 된 것을 안 이후부터 그들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었다.
정확하게는 두 사람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었다.
“분 과장! 칼날 조심!”
“우워어어어어-!”
“처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아하하핫, 다 얼려주겠어!”
기대치 않았던 광역 디버프 역할을 한 비비의 스킬에 이어, 칠리새우가 소환한 검은 기사 산도르와 루이즈 언니의 마무리까지.
ZX-69와 그로부터 생산된 ZX-99의 부품들이 폭죽처럼 곳곳에서 터져나가는 중이었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인데다 실제로 서로가 서로를 불편해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전투에서만큼은 합이 잘 맞았다.
물론 그것이 꼭 좋은 건 아니었다.
[집중하라, 진성.]“집중은- 하고는 있는데!”
비비와 칠리새우가 본격적인 활약을 하고 있다는 것은 즉, 진성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ZX라는 코드네임이 뜻하는 바를 눈치챈 시점에서 진성은 잠시 생각을 정리해야만 했으니까.
‘니베르 중장이 말했지. 지젤을 이튼 공업지대까지 추격했고, 슬라우 공업지대 인근을 포위했으나…… 끝끝내 찾지 못했다고. 어째 조각이 맞아떨어져 가는 것 같은데.’
진성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일리가 있다.
장소 또한 적합하다.
몬스터들이 득시글거리는 데다, 기본적으로 설비들이 파괴된 것으로 알려졌기에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
심지어 파워스테이션의 총책임자인 NPC 라니스터 또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칠리새우에게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
‘완전히 잊힌 장소.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장소.’
즉, 몸을 숨기기 좋은 장소.
심지어 추격을 따돌리고 잠시 숨어있기에만 좋은 게 아니다.
이곳은 연구소이자 생산시설, 지젤 로건에게는 사실상 종합 선물 세트와 같은 장소라고 봐도 좋을 터.
‘하지만 여기는 원래 멜빈 리히터- 아!’
탄식을 하는 도중 진성은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리곤 칼날을 회전시키며 쇄도하는 ZX-99를 반으로 갈라버리며 소리쳤다.
“비비 씨! 멜빈은 뭐라고 말 안 하던가요?!”
진성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아행이 잘난체했던 정보가 옳다면 이곳은 멜빈 리히터와 관련이 있는 던전이다.
NPC 리아 리히터, 즉, 멜빈 리히터의 ‘안드로이드 여동생’을 만들기 위한 연구와 생산이 이루어졌으며, 동시에 리아 리히터를 만들기 전의 프로토타입 안드로이드가 남아있는 장소다.
그렇다면 이곳에 대해 알고 있고, 멜빈과 어느 정도 친해진 비비가 혹시 무언가 다른 정보를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진성에게는 들었고.
“잉? 멜빈요? 갑자기 멜빈 님은 왜요?”
“……음? 여기…… 멜빈이 알려준 거 아녜요? 아니면 애초에 여길 어떻게 알았길래?”
“잉? 아닌데요? 그냥 안드로이드 어쩌고 하는 소문이 들려서 온 거예요. 멜빈 님은 황도에 있을 때도 이런 거 한~마디도 안 했는데.”
그 기대는 곧장 무너져버렸다.
아행이 말해주었고, 진성이 기억하고 있는 던전 헬릭스 연구소의 보스 몬스터 이름이 무엇인가.
‘ML인가, MLA인가 하여튼 그랬어. 멜빈Melvin 리아Lia 안드로이드Android, 뭐, 그런 게 아니었나? 아행이 틀린 정보를 떠벌였- 아냐, 그럴 리 없어. 내 기억도 확실하다.’
아행의 성격은 차치하더라도 그가 가져오는 정보만큼은 결코 잘못된 게 없었다.
어떤 의미론 당연했다.
진성 자신 앞에서 잘난 체를 하기 위해 온갖 정보를 긁어모았던 그가 아닌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콧대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교차 검증까지 끝내가며 확실하게, 틀림없는 정보를 올려야만 그 자존심을 채울 수 있을 테니, 아행이 가져온 대다수의 정보는 거의 다 옳다고 봐도 좋았다.
그렇다면 이곳은 멜빈 리히터 또는 리아 리히터와 반드시 관계가 있어야만 한다.
멜빈이 아니라면 리아 리히터는 어떨까.
“그, 그럼 리아는? 리아 리히터가 혹시 뭐라고 했다거나-.”
“전혀요. 여기가 멜빈 님이나 리아 님이랑 관련이 있는 곳이에요?”
진성은 다급하게 물었고 역시나 허무하게 기대는 깨져야 했다.
아랫입술을 지그시 무는 진성의 곁에서 칠리새우가 말했다.
“뭔진 몰라도 지금 가로세로 퀴즈 맞추기 같은 거 할 시간 없을 것 같은데요. 새로운 몬스터 앞에 두고 한눈팔다가 뺨때기 맞을라.”
“드론! 어…… ZX-77 이라고 쓰여있는 거 맞죠? 그리고 저건 랜드 러너인가? ZX-78?”
벌써 레이저를 충전 중인 드론 몇 기, 그리고 아장아장 걸어오는 것 같으나 그 폭발력은 분명 치명적일 자폭 로봇 형태의 랜드 러너까지.
‘ZX-99, ZX-69, ZX-77, ZX-78……. 이젠 확실하다고 봐야 한다.’
진성은 생각했다.
이곳에 지젤이 있다.
저런 코드네임을 붙일 사람은 지젤밖에 없다.
그리고 헬릭스 연구소가 멜빈 리히터, 리아 리히터와 관련된 게 아니라, 이곳에 지젤이 있다면 그 이유는…….
‘오염. 푸하핫, 그래…….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게 맞지. 자칫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갈 만한 부분을, 다른 사람이라면 찾아내지도 못할 부분을 오염시키는 게 너한테도 좋을 테니까.’
<오염의 원인자>가 수작을 부렸다는 뜻이리라.
가슴이 뜨거워지는 동시에 진성은 머리가 차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 헬릭스 연구소에 진입할 수 있고.
어째서 이곳이 멜빈 리히터와 무관해졌는지.
이제는 하등 중요치 않게 된 셈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거겠지.”
오염임이 확실하다면 오히려 그것에만 집중하면 된다.
지젤을 찾고.
그를 쫓아낸다.
그가 헬릭스 연구소에 어째서 숨어들어왔는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최대한 그가 허튼짓을 못 하게 막는다.
“비비 씨, 칠리새우 님! 잘 따라오세요, 최대한 빠르게 갑니다!”
“잉? 진상 님? 갑자기 무슨-.”
그러기 위해서는?
비비는 진성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으려 했다.
그러나 진성이 나지막이 읊조리는 게 조금 더 빨랐다.
“흑구. 그리고……. 솔도로스. 양얼.”
───────────……!!!!
비비의 시선은 분명 진성을 향해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무어라 그의 입이 움직이는 것까지도 분명히 보았다.
“-어? 어디? 진상 님!? 사라졌다?”
그럼에도 비비는 놓쳤다.
시야 속에 있던 진성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이유가 무엇인지.
심지어 방금 전까지 비비 자신이 상대하던 각종 ZX 시리즈들이 곳곳에서 폭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비비는 안경을 고쳐 올리며 그저 눈만 껌뻑거려야 했다.
진성은 이미 다음 방으로 또 다음 방으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 * *
ZX-77의 드론이 반으로 갈라지며 터졌다.
부유하던 기계 장치들이 추락하며 지면에 닿기도 전, 주변의 ZX-99 역시 Z자 형태로 베어지며 파지직, 단말마처럼 전류를 흘려보내야 했다.
‘나랑 헤어진 지 얼마나 됐었지? 내가 멜빈과 매일같이 토론, 입씨름, 검증, 제작, 수정……한 달 보름 정도 됐던가? 그리고 시란이랑 보름 정도 돌았으니 기껏해야 두 달 아냐?’
비비에게 있어선 이제야 겨우 진성의 ‘잔영’이 보인달까.
그것 역시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G, 목표물 재설정, 타겟 진성. 포착 가능해?”
“삐빗-. 뿌-뽀. 타겟 설정 불가.”
여자 거너 직업군의 메카닉, 2차 각성 명칭 옵티머스.
1차 각성과 2차 각성의 차이는 그저 스킬만 몇 개 더 배운 정도로 끝날 게 아니다.
여자 메카닉의 곁에 항시 쫓아다니는 일종의 드론형 도우미, 진성 역시 알아보았던 ‘마르바스의 하인’은 이미 ‘G-오퍼레이터’라는 개체로 업그레이드까지 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인게임에서라면 그냥 버프 효과 정도겠지만 난 다르잖아……. 실질적인 전투 분석까지 가능해졌다고. 내가 미처 못 보는 목표물이나 나에게 다가오는 투사체에 대한 경고까지 해줄 수 있는데.’
비비가 던전 지역:파워스테이션을 빠르게 끝낼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칠리새우와의 일부 협업 때문이 맞다.
그러나 ‘안톤 쩔’ 같은 제안을 거부한 이유는 분명했다.
그녀에게 자신이 생겼으니까. 굳이 아쉬운 소리까지 하며 성격도 잘 맞지 않는 칠리새우와 다닐 필요가 없다고 여겼으니까.
진성과 다니며 마음가짐과 전투 패턴이 바뀐 데다, 2차 각성까지 끝내며 스스로 자신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믿음이 있기에 ‘쩔’도 받지 않았고, 그 와중에도 진성과의 약속을 위해 헬릭스 연구소까지 물어물어 왔건만…….
“쯔쯔쯔…… 하면 잘하는 사람이 꼭 그렇게 밍기작~밍기작 거린다니까.”
비비의 곁에서 칠리새우가 중얼거렸다.
이제 두 사람이 굳이 나설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빠르게 몬스터가 정리되는 상황이었으므로 한결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언니는 알고 있었어요? 진성 님이 저 정도인 거…….”
언니라는 단어에 칠리새우는 잠시 움찔했으나 그뿐이었다.
진성을 유심히 바라보다 작은 한숨을 폭, 내쉬고 답했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알았겠어. 그래서 비비 당신이 끼어드는 사태가 벌어진 거였는데. 어쨌든 뭐…… 평범한 스토리충이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았지.”
“잉? 스토리충? 진성 님이 교육공대 운영하던 거 몰라요? 던파 너튜버들 중에선 꽤 상위권인데, 유명한데.”
“교육공대? 그냥 쩔이나 해주고 돈이나 받으면 되는 것을 왜 그런 쓰잘데기 없는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아니, 그리고 애초에 던파가 너튜브로 먹고 살 정도의 케파가 되나? 사이즈가 나오나?”
질문인지 자문인지.
중얼거리는 칠리새우의 말을 들으며 비비는 고개를 저었다.
“……역시 언니랑은 잘 안 맞네요.”
“비비 당신도 빙의된 지 3년 가까이 됐다면서요. 나만큼- 아니, 그냥 지금부터 딱 3년만 더 지내봐. 나처럼 안 되고 배기나. 돈이 최고라니까…… 우리가 무슨 사도 다 때려잡고 칼날이 되겠어, 뭐가 되겠어. 그냥 벌이 괜찮은 곳에 자리 잡고 집이나 구해서 살면 그만인 것을.”
이미 달관한 사람인 것처럼 말하는 칠리새우를 비비는 흘끗거렸다.
피식, 웃으며 한마디를 내뱉는 표정엔 약간의 우월감이 보였다.
칠리새우의 가치관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분명 비비 자신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있었으니까.
“하긴, 저도 그렇게 생각은 했었죠.”
“그쵸? 그래, 그게 정상이지. 아, 근데 우리 몹 잡을 때는 합이 좀 맞는 것 같은데, 7:3으로 여기서 나랑 안톤 쩔이나 같이-.”
“진성 님을 만나기 전에는. 저도 황도에 쭉 있을 각오로, 천계까지만 도착하면 거기서 눌러 앉자고 매일매일 다짐하면서 살았으니까.”
진성을 만나기 전까지는.
연단된 칼날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모험가가 되어야 한다……그러한 말에 100% 동감한 채 움직이고 있는 빙의자는 과연 몇이나 될까.
칠리새우는 잠시 비비를 바라보았다.
“……흐응.”
그러다 가볍고 짧은 콧바람을 내뿜었다.
비비는 그것이 자신을 비웃는 콧방귀가 아님을, 또한 더 이상 말하기 싫어 무시하는 게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비비 자신의 말에 동의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굳이 말로, 논리로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워 잠시 생각을 가다듬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하겠지. 이 언니도 보통 사람은 아니니까. 나조차도 안톤 최초 2인 클 얘기는 들어봤었는데. 이후 2인쩔로 얼마나 사람들을 열광시켰는지도 알고 있어.’
칠리새우는 분명 실력자다.
그렇기에 진성의 능력을 알아볼 것이고, 그렇기에 기대와 우려, 아니, 그 감정들 이전에 느끼는 두려움 따위에 사로잡혀 있으리라고 비비는 생각했다.
“진성- 진상 님! 왜 멈췄어요?! 완전 서커스 하듯이 쇽쇽 지나가더니!”
비비는 칠리새우가 생각을 정리하도록 그대로 둔 채 앞으로 달려나갔다.
조금 전까지도 계속 이어지던 폭음이 멈춘 지점.
비비는 멀찍이 서 있는 진성의 등을 보았다.
“진상 님! 왜 멈……춰……?”
그에게 다시 이유를 물어보려 한 비비였지만, 그 말은 자연스레 이어지지 못했다.
웅웅웅웅웅웅──────…….
진성 너머로 보이는 것은 마치 문이라고 해야 할까.
거대한 고리처럼 생긴 구조물의 내부에선 푸른빛과 보랏빛이 일렁거리며 뒤섞이고 있었다.
에너지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기운이 흐르며 뒤섞이고 일부 넘치듯 새어 나오고, 다시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비비는 할 말을 잃었고.
진성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었기에 동작을 멈춘 것이다.
헬릭스 연구소, 지젤이 있으리라 판단한 장소.
ZX로 코드네임이 명명된 기계들보다 더욱 경악스럽게 만드는 장치.
“……차원 이동 장치…… 포탈?”
그것은 거대한 포탈이었다.
사람 한 명이 들락거릴 수준이 아니라, ‘게이볼그 펀치’라도 튀어나올 수 있을 만한 규모 앞에서 진성의 사고 흐름은 잠시 멈춰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