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67)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67화(167/212)
167
진성은 눈을 부릅떴다.
아래로 쑥 빠져버려 추락하는 감각이 들 거라 생각했으나 그것은 찰나일 이었다.
곧 상하좌우가 모조리 뒤섞여버리는 기묘한 감각에 팔다리를 허우적대야 했으니, 차원을 건너뛰는 상황을 몇 번이나 겪은 진성조차도 당혹스러운 느낌이었다.
‘몸이 갈갈이 찢기……지는 않은 것 같은데-.’
지젤이 스스로조차 실험체 삼아버린 도박수가 만약 실패로 끝날 경우, 진성 자신과 지젤, 두 사람의 몸이 차원의 균열에서 분해되는 결과가 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걱정스러운 점이라면 역시 차원의 틈에서 완전히 길을 잃는 것.
[클클클, 힐더 그년조차도 이토록 차원의 틈을 많이 돌아다닌 적 없겠지.]지금도 그런 신세에 처한 제6사도, 검은 질병의 디레지에의 존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흑구의 자조 섞인 혼잣말을 듣고 나서야 진성 역시 어렴풋하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엇다.
털컹.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것은 단단한 지면이었다.
어딘가에 발이 닿았고 중력의 방향 역시 제대로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
올바로 섰다는 감각이 돌아오자마자 진성은 <솔도로스의 선택>을 꼬나쥐었다.
“흑구, 낌새가 느껴지면 바로 알려줘.”
지젤의 기습만이 아니다. 이 장소가 애당초 어디인지 모르니 뜬금없는 위협이 있을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을 염려한 진성의 말이었으나 정작 흑구에게 돌아오는 답변은 시원치 않았다.
[크크, 차가운 공간이로군. 그 멍청한 과학자가 주변에서 숨죽이고 있다는 것 정도는 느껴지지만……. 방향을 종잡을 순 없다. 거리는 조금 떨어진 정도다.]사도 카시야스의 번개 같은 기습조차 진성보다 먼저 느끼고 경고하던 흑구건만.
흑구의 능력으로도 거리만을 어렴풋이 알 뿐 방향을 파악할 수 없다?
‘지젤이 마련한 대피용 아지트? 뭔가 그런 종류의 장소일까?’
진성은 당황스러운 가운데에도 귀를 기울였다.
일단 첫 번째 문제라면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극히 어두운 장소, 말 그대로 손톱만큼의 광량도 없는 것인지 너무나 새카만 공간이다.
기이이잉────── 쿠우웅…….
철컥, 철컥, 철컥, 삐리비리리리릿-.
그 와중에 들려오는 건 기계가, 또는 무언가가 작동하는 것과 같은 소음이었으니.
진성이 긴장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함부로 소리를 낼 수도 없다.
흑구와 매우 작은 목소리로 나눈 대화는 주변의 소음 덕에 지젤이 듣지 못한 것 같으나 그렇다고 소리를 높여선 안 될 것이다.
아무리 아둔한 자라도 소리의 방향을 기준으로 거리를 잡아 대략적인 발원지 정도는 가늠할 수 있을 터, 지젤 역시 신체적 전투 능력이 제로에 가까운 거지 이런 건 가능하리라.
‘그래도 다행이라면…….’
진성은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한 손으로 <솔도로스의 선택>을 쥐고,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으나 진성 자신에게는 느껴지는 <신검의 타락한 손>을 단단히 당겨 착용한 후 슬그머니 빈 손이 향한 곳은 허공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진성 자신의 [인벤토리].
‘불빛이 없다면-.’
만들면 된다.
치이이이익……!
달빛주점에서 사고 남은 <폭염탄> 중 하나를 꺼내어 도화선을 당기자 곧장 발화가 되었다.
폭발 전 <폭염탄>의 도화선에 붙은 작은 불만으로도 진성은 주변을 빠르게 훑을 수 있었다.
‘지젤은- 없다? 그세 어디로 이동했나? 이 어둠 속에서?’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빠르게 돌아보아도 지젤은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 눈에 들어온 상황은 이곳이 건물 내부라는 것.
벽과 바닥은 모두 금속 재질로 되어 있는 데다, 온갖 종류의 배관이 가로지르고 기계 장치 등이 설치되어 있을 뿐 아니라 사용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여전히 운용 중인 장소일 터.
‘헬릭스 연구소……랑 느낌은 비슷하지만 달라. 전혀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이곳이 훨씬 더 수준이 높다.’
사도 안톤이 전이되는 과정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던 헬릭스 연구소에 비한다면 그 깔끔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데다, 벽면의 이음새가 깔끔하고, 바닥도 구배 없이 일정하게 보이는 것만으로도 이곳이 얼마나 잘 설계되었고 관리되는 중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문제는- 읏?!’
쾅-!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것이 아니었다.
바닥면에 일정 간격으로 설치되었던 매립등에 빛이 들어오는 소리.
조명의 색은 보랏빛이었다.
삽시간에 은은한 보랏빛이 공간을 전부 밝혀졌기에, 진성은 눈을 감으면서도 <폭염탄>의 도화선을 빠르게 제거하여 폭발의 염려를 없앴다.
“지젤! 당장 나……오……면?”
가장 먼저 확인하려는 요소는 지젤의 행방이었다.
부득이 필요시 솔도로스와 양얼의 힘까지 빌려 지젤을 제압하려 했던 진성이었으나 잠시 그 생각은 멈춰야만 했다.
빛이 완전히 밝혀지며 자신이 어느 공간에 있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까.
“여긴…… 어둠의 제단?”
던전 ‘어둠의 제단’.
현재 패치 버전의 게임 던전앤파이터 기준으로는 던전 지역:루크 실험실에 존재하는 던전이자…….
‘루크 레이드 시절의 거기잖아!? 그럼 여기가 지금-.’
신新 제9사도, 건설자 루크의 거처.
진성 자신과 지젤이 있는 곳은 [죽은 자의 성]이라는 의미였다.
* * *
“죽은 자의 성!? 루크는- 흑구!”
[클클클, 말을 잃은 노인 말인가. 그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데. 그보단…… 어둠, 그저 깊고 깊은 어둠의 기운만이-.]“그게 루크가 지닌 힘의 원천 중 하나야, 빛과 어둠! 마계에서 도망 나와 죽은 자의 성을 만든 이유도 그 에너지들을 수집하기 위해서였을 텐데…….”
진성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도 루크의 거처라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이곳은 죽은 자의 성 가장 지하에 위치한 장소다.
“아니, 그나저나 여길 어떻게 온 거지?”
따라서 진성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곳에 온 건 헬릭스 연구소 바닥면이 포탈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젤이 가동시켜버린 차원 이동 장치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젤이 이 장소를 알 리가 없어. 죽은 자의 성은 마계의 틈을 뚫고 나와 천계와 연결된 장소. 천계와 마계를 잇는 통로다. 나중에 사도 안톤이 사망하며 내뿜은 에너지의 파동, 그 뒤틀림으로 인해 죽은 자의 성을 은폐하던 장치가 오작동하며 천계인들의 눈에도 드러나게 되는 거였지. 아직 안톤이 살아있는 지금이라면 보이지도 않게 완벽히 차단되어 있을 텐……데.’
진성은 등골이 섬뜩해지는 걸 느꼈다.
죽은 자의 성은 분명 대단한 장소다.
그러나 그곳이 얼마만큼 발달한 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지어졌는지는 어떻게 알았을까.
무엇보다 사도 루크의 사망 이후 지젤 로건이 그 자리에 포탈을 열고 나타날 수 있었을까.
위치를 알아야 한다.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
죽은 자의 성이 현재 플레인:아라드를 통틀어 가장 발달한 수준의 과학 기술이 적용된 장소이고, 그곳에서 지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자료나 정보가 있을 거라는 확신을 그는 어떻게 얻을 수 있었는가!
-크헬헬헬…… 죽은 자의 성? 루크? 마계? 이런 기술력이라니!-
지젤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진성은 알 수 있었다.
어쩌면 그 모든 게 바로 지금, 이 순간 결정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지젤! 여길 어떻게-.”
진성은 지젤에게 소리치려 했다.
-네 녀석이 생각하는…… ‘내가 가장 가선 안 될 장소’라는 개념으로 포탈을 열어 본 것이었는데, 호오, 호오, 그런가. 그랬나. 크헬헬헬헬!
그러나 이어지는 지젤의 발언에 진성은 입을 다물어야했다.
단순히 좌표를 기준으로 여는 게 아니라, 그런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마이스터 쿠리오조차도 못 했던 일이야. 개념을 실체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서 포탈을 열 수 있다니!?’
천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두뇌로 꼽히는 7인의 마이스터 중 한 사람, 그중에서도 특히 차원 이동과 관련된 분야의 대가인 쿠리오조차 해내지 못했던 일.
그것을 지젤이 이뤄냈다는 뜻인가!?
진성은 주변을 훑어보았다.
지젤은 어디로 갔을까.
당장이라도 그를 찾으려 했으나 그보다 지젤의 말이 조금 더 빨랐다.
-아무래도 외부인을 좋아하는 장소는 아닌 듯 하니…… 켈켈켈, 마지막으로 고맙단 인사는 해야겠군. 다신 보지 말자고, 더러운 검은 팔의 검사여.-
파츳, 파치치칙……!
그 인사와 함께 익숙한 소음이 들려왔다.
차원 이동 장치의 가동 소리. 진성은 곧장 고개를 돌렸다.
보랏빛 창연한 공간의 복도 저 멀리에서 번쩍인 푸른빛.
“멈춰! <추격 포식>! <래피드 무브>, <다크 크래셔>-.”
흑구의 움직임에 더하여 진성 자신이 보유한 가장 쾌속한 스킬까지.
진성은 순식간에 다가갔으나 아직도 멀찍이 보이는 푸른 자기장 속으로 꼬질꼬질한 흰색 덩어리가 뛰어들었다.
그 순간 푸른 자기장은 사라졌다.
진성은 바보가 아니다.
당장 [인벤토리]를 열어 뽈칵, 마개를 열어젖힌 채 들이키는 것은 텔레포트 포션.
‘빨리, 당장 헬릭스 연구소로!’
목울대가 요동칠 정도로 빠르게 들이켰으나 그게 전부였다.
“……어?”
진성 자신은 여전히 죽은 자의 성, 어둠의 제단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있었다.
당황했으나 얼어붙진 않았다.
진성은 다시금 텔레포트 포션을 꺼내어 들이켰다.
‘헬릭스 연구소가 안 된다면 슬라우 공업단지. 파워 스테이션 인근으로, 빨리!’
그러나 역시 아무런 낌새도 발생하지 않았다.
“설마…….”
이곳은 죽은 자의 성.
사도 루크가 왕으로 군림하던 헤블론 행성에서 이룩했던 모든 과학 기술이 집약되었다고 봐도 좋은 장소다.
또한 ‘마계 최고의 마법사’인 힐더의 눈을 피하기 위해 루크가 만든 요새다.
‘텔레포트 포션이 안 먹혀. 마법의 작용을 차단하고 있어서……?’
마법사 길드의 샤란이 대단한 마법사라곤 하지만 그녀가 만든 수준의 ‘텔레포트 포션’으로는 죽은 자의 성 전역에 걸린 차단 기능을 파훼할 수 없다는 뜻이리라.
[클클클…… 불이 켜진 지도 시간이 꽤 됐지, 진성.]“……응. 외부의 침입을 감지해서 켜진 거라면 아마 곧 몬스터들이 들이닥치겠지.”
[어떻게 할 건가.]“이럴 순 없어. 이래선……안 돼.”
진성은 주먹을 쥐었다.
쫓아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지금 진성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죽은 자의 성이 천계에 걸쳐있다지만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가 이튼 공업지대까지 닿을 수 있을까?
사도 루크를 받드는 그의 피조물 또는 그에게 힘을 받은 수하들이 이제 몰려올 것이다.
몰려올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이곳에 어떤 위명을 가진 존재들이 거주하는지 알고 있는 진성의 입장에선, 그들 중 하나만 나타나도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만 할 터.
‘불가능해. 적어도 지금 내 실력으로는…… 설령 솔도로스와 양얼의 기운까지 빌린다 해도, 힘이 부칠 가능성이 높다.’
파워스테이션의 발전소들을 돌아보며 느꼈기에 알 수 있다.
명시적인 지속 시간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 힘을 빌린 진성 자신의 육체가 견디질 못할 것이다.
‘발전소 하나 정리하고도 전신 근육통이 생겼어. 카시야스와의 대련 이후엔 HP 포션을 먹고도 곧장 회복되지 않았다.’
극히 짧은 순간에, 그것도 조절해가며 힘을 나눠 써야만 버틸 수 있다.
그렇다면 죽은 자의 성을 빠져나갈 수 없다.
“……후우우우…….”
진성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물리적으로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부 차단된 상황에서.
진성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건 단 하나의 가능성, 마지막 남은 희망과도 같은 일이었다.
사도 카시야스의 분신과 대련하며 느꼈던 기묘한 감각.
자신이 무얼 하려 했는지 명확히 인지하지 못한 상황이었으나 그 ‘무언가’는 분명 이루어질 뻔했다.
그렇다면 지금도 할 수 있을 터.
“하아아아아…….”
진성의 주변에서 검은 기운들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안개와 같은 질감의 검은 기운들은 진성의 몸을 담쟁이덩굴처럼 타 올라갔다.
그 기운이 향하는 곳은 진성의 얼굴이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한 곳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진성의 얼굴, 더 구체적으로는 눈동자.
새하얗던 눈동자가 까맣게 물들어갔다.
현재 레벨은 74.
스킬을 새로 배운 것도 아니다.
아이템을 획득한 것도 아니다.
변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진성은 믿고 있었다.
변한 건 없지만.
변할 걸 알기에.
어두컴컴한 가운데 보랏빛 조명만이 공간을 물들이고 있던 죽은 자의 성에서.
역안이 된 눈으로, 진성은 검을 치켜들었다.
그러곤 <솔도로스의 선택>을 내리 베었다.
───────────……!!!!
잘린 것은 금속의 벽면이 아니었다.
잘린 것은 시공간이었다.
그 순간, 금빛의 광휘가 진성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레벨 75.
다크나이트가 자각自覺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