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75)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75화(175/212)
175
안경으로 왜곡되었음에도 비비의 눈동자는 더없이 커다랗게 보였다.
허공을 가르는 칠리새우의 채찍질과 그 채찍질이 끝나기도 전 벌써 반응하는 소환수들의 움직임까지.
토그의 공략법 자체는 간단하다.
토그를 향해 부유하며 다가가는 네 가지 속성 구슬 중 자신이 사용할 속성의 구슬만 토그에게 접촉시키면 된다.
즉, 다른 세 속성의 구슬을 파괴만 하면 간단하다.
“속성 구슬이 생각보다 더 작네요. 속도도 빠르고……직접 쏴서 맞추는 건 힘들겠어요.”
“그렇겠죠. 그렇다고 스킬을 써버리자니 내가 공략해야 할 구슬이 터져버릴 위험도 있고.”
그러나 말이 쉽지, 그것은 게임상에서도 수월한 일이 아니다.
자칫 잘못했다간 자신이 사용해야 할 속성 구슬까지 깨뜨려버리는 실수가 나오기도 하며, 조금만 신경을 안 써도 어느새 다른 속성 구슬이 토그에게 흡수되어 자신이 공략하려는 속성의 대미지가 사실상 무효화되어버리기 때문!
“거기다 토그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니……. 구슬 패턴에 회오리에 아주 난리를 치는구만.”
하물며 그것을 빙의된 채로, 현실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건 얼마나 많은 집중력과 숙련도를 요하는 일이겠는가.
거기에 더해, 현재 패치 버전의 던전앤파이터처럼 에픽 장비를 전 부위 착용한 것도 아니다.
‘안톤 쩔’로 줄곧 아라드의 생활을 꾸려왔다면, 그녀가 구할 수 있는 장비 역시 이곳에서 나올만한 것들이나 이전 단계에서 나왔을 장비가 한계일 터.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게 던파의 장비니까. 대부분이 교환불가라 직접 파밍하지 않으면 구하기도 힘들다. 안톤 끝내고 마계나 그 너머의 지역에 가서 템을 맞춰왔을 리도 없으니 결국 장비 수준은 고만고만하다는 뜻일 텐데.’
그렇다면?
빙의자는 유저보다 상대적으로 여러 제약을 받고 있다. 어쩌면 과거 안톤 레이드 시절의 아이템만도 못한 상태에 가까울 수도 있다.
토그는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다. 어쩌면 공략이 불가능할 지경이 될 수도 있을 정도다.
따라서 당연히도 인정해야 했다.
“에체 차장님! 마무리!”
바로 그 토그를 5분 여가 되기도 전에 마무리해버리는 칠리새우의 솜씨를.
<정령소환 : 정령왕 에체베리아>의 속성 공격이 무력화된 토그를 향해 작렬한 순간.
“정령왕의 이름으로, 소멸하라.”
“우워엇- 안……톤 님-.”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이 뱉은 말에 거짓 한 점 없음을 증명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쿠우우우웅……안톤의 피부로 쓰러진 즉시 그 피부에 흡수당해가며 사라지는 토그의 모습에, 칠리새우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곤 진성과 비비를 바라보았다.
“자, 대충 이 정도면 어때요? 체감 굳?”
진성은 재빨리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흐으으음…… 나쁘진 않은데…….”
“나쁘진 않다? 허허, 요즘 친구들은 국어사전부터 다시 봐야 한다니까. 이게 나쁘지 않다?”
칠리새우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그리고 진성의 ‘연기’가 귀엽다는 듯 피식거리며 물었다.
나쁘지 않다는 진성의 평을 장난으로 이해했기에 그렇게 반응한 것이었으나…….
“빙의된 상태에선 와본 적 없지만 인게임에선 속성 구슬 방향은 고정이잖아요? 그럼 바로바로 처리할 수 있었을 텐데. 아무래도 속성 구슬 찾는 게 살~짝 시간이 느린 느낌이었고…… 그리고 굳이 명明속으로 잡으신 이유는 마티어스 네스만한테서 크레인 게임으로 <알리시아 플라스크> 얻은 걸 빨아서 그런 거죠? 1분간 명속성으로 고정시켜주는? 근데 안톤 쩔 시절에도 아마 수水속성으로 패는 게 소환사는 딜이 제일 컸거든요. 아마 지금도 소환사 한정으로는 그게 더 낫지 않을까 싶은데 혹시 실험은 해보셨는지……? 저였다면 실험을 위해서라도 <잭프로스트 플라스크>를 사서 테스트 해봤을 겁니다.”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고인물, 썩은물, 석유! 뉴비들을 가르치는 교육 공대로 먹고 살아왔던 진성에게 있어 95%의 효율 따위는 중요치 않다.
100%, 지금보다 더 완벽하고 확실한 공략을 위해서라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자세의 진성이 보기엔 이런 감상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
“……”
칠리새우는 눈만 껌뻑거려야 했다.
어쩐지 그녀가 할 말을 대신 해주는 것처럼 비비가 중얼거렸다.
“진짜 이럴 때 정떨어지는 거 알아요, 진상 님?”
“저, 정떨어지기는! 알려주는 건데. 아니, 뭐, 엄밀히 따지면 알려주려 한다기보다는 혹시 확인해보셨나~ 싶어서. 물어보는 거잖아요.”
“……그런 태도가 더 열받아. 차라리 확 막 가르치는, 고압적인 자세면 욕이라도 한 바가지 부어줄 텐데. 그쵸, 언니?”
키가 겅중한 비비는 자신의 가슴팍밖에 오지 않는 칠리새우의 팔짱을 꼈다.
칠리새우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맥 빠진 얼굴로 끄덕거렸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진성은 물었다.
“그래도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토그는 아슬아슬하게 합격점이지만……이후의 공략 루트를 어떻게 정하셨고,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건지에 대해서 한번 들어 볼까요?”
토그 하나 제대로 잡았다고 칠리새우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진성 자신의 지식이나 공략법, 그 정보를 정확히 이해했기에 특별히 반박을 하지 않고 있다.
거기에 더하여, 다소 막무가내처럼 보이는 진성의 요구에 다시금 피식, 미소를 짓고 있는 여유까지.
진성의 의도를 파악했기 때문일까, 칠리새우는 거침없이 말을 꺼냈다.
“보스 잡고 돌아가서 함포 방어전 하고~ 다시 와서 관절 파괴- 아, 아그네스 잡는 거죠. 그리고 때에 따라 그 시점에 노블스카이 한 번 더 갈 때도 있고, 그냥 패스해서 배리어 깨고 검은 화산으로 직행할 때도 있었고.”
“함포 방어전은 꼭 해야 하는 거예요? 격전지는 필요 없고?”
“격전지는 레이드 때도 시간 벌기 위해 했던 거니까. 클 챙기는 게 가능하다면 그 시절에도 패스했던 걸 여기서 할 필요는 없더라고요. 함포 방어전은 이번 보스 잡으면 바로 화산을 뿜어대는 데다~ 나중에 안으로 들어가려면 식혀놓기는 해야 하니까. 냉동포를 쏴놔야지 아니면 진짜 개고생도 그런 개고생이 없어요. 예전에 한 번 시도했다가 하마터면 실패-.””
칠리새우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성의 머릿속에선 그림이 그려졌다.
과거 안톤 레이드와 얼추 비슷하면서도 메인 시나리오의 흐름과는 상당부분 일치하게끔 가는 루트, 이러한 흐름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늦어.’
그러나 늦다.
안톤의 몸과 노블스카이호를 적어도 두 번 이상 왕복해야 한다고?
거기에 드는 시간도 고려해야 하고, 무엇보다 빙의자가 셋이나 된다.
그 공략법 숙지에 있어 부족함이 없는 인원들인 것이다.
‘최대한 빠르게 안톤을 끝내고 아행을 따라잡아야 해.’
무엇보다 진성 자신이 목표로 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할 때는 해야 한다.
진성은 결정을 내렸다.
“이번 보스 처리하고 바로 아그네스 뛰어서 끝내고 노블스카이로 돌아가죠. 상황에 따라 비비 씨가 남아서 함포 방어전 하는 동안 칠리새우 님이랑 제가 배리어 몇 개 깨놓고, 비비 씨가 돌아와서 안톤 관절이랑 다리 작살낸 다음 셋이 바로 검은 화산 진입, 마테카를 처리하는 방향으로.”
이렇게 줄이면 한 번만 왕복하면 된다.
이동 시간을 줄일 수 있을뿐더러 일도 동시에 진행되므로 실제 ‘레이드’와 같은 협력을 통해 안톤 토벌까지 최고로 효율적인 동선을 짤 수 있는 것!
칠리새우는 눈을 끔뻑거렸다.
그렇게 할 수 있겠어? 라는 질문을 할 겨를은 없었다.
진성의 사고는 최고, 최선의 효율을 위해 내달렸고.
“잉? 정해졌으면 뭘 그리 고민들 하고 있어요!? 바로바로, 고고!”
그것에 한 치의 의심조차 없는 비비는 벌써부터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칠리새우는 헛웃음을 흘리면서 두 사람의 뒤를 쫓았다.
“……다르긴 다르네, 확실히.”
세 사람이 ‘안톤 레이드’의 ‘검은 연기의 근원’ 던전 내 보스, ‘섬멸의 네르베’를 처치하기까지는 그로부터 20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마저도 대부분의 시간을 거대한 안톤의 육신 위를 뛰어다니는 데에 보냈음을 고려한다면 실질 전투 및 공략까지 걸린 시간은 더욱 짧았다.
칠리새우가 또 한 번 경악한 건 당연한 일이리라.
* * *
‘안톤 레이드’의 ‘견고한 다리’는 레이드 시절부터 악명 높았던 던전 중 하나다.
칠리새우가 가볍게 정리했던 네임드 몬스터 ‘토그’가 초반 단계의 수문장이라면 ‘견고한 다리’에 나오는 ‘염화의 크레이브’ 또한 뭇 유저들을 눈물짓게 만든 몬스터이기 때문.
물론 진성과 비비, 칠리새우 세 사람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비비 씨도 다 알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이, 잉? 무슨 소리에요!? 나도 던파 몇 년을 했는데.”
“하긴, 그 정도니까 내가 퍼섭에서 초대했던 거겠지.”
“자기가 해놓고 무슨 3인칭처럼 말하고 있대.”
진성과 칠리새우의 활약으로 인해 잠시 잊힌 것 같으나 비비 또한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한 실력 했던 인물이다.
애당초 네메르에 의해 선택되어 플레인:아라드로 빙의된 자들에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칠리새우는 티격태격 달려 나가는 두 사람을 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곤 말했다.
“아참, 뭐, 알고들 있겠지만 아그네스가 회유를 한 번 하니까…… 헛소리다~ 생각하고 그냥 바로 싸우면 됩니다. 설마 이 중에 타르탄에 붙을 간신배가 있진 않을 테고?”
“잉? 그런 게 있었나?”
“아, 그러네요. 아그네스가 한 번 꼬시려고 들긴 하죠. 모험가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으니까.”
상급 타르탄 ‘찬란한 불꽃의 아그네스’, 현재 진성 일행이 누비고 있는 던전 ‘견고한 다리’의 보스 몬스터.
메인 시나리오의 흐름에서 그녀는 모험가에게 권유한다.
자신들과 손을 잡자고, 자신들과 함께 마계로 돌아가 마계를 지배하자고.
이미 다른 사도와 싸워 승리를 쟁취한 모험가의 위명을 알고 있다며 유저를 설득하려 든다.
그리고 ‘유저’가 일언지하에 그것을 거절하면, 아그네스와의 결투가 시작되는 구조다.
“생각해보니 그것도 궁금하긴 하네. 던파야 온라인 겜이니까 선택지가 없어서 무조건 싸웠다지만…… 진짜 손잡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빙의된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없으란 법은 없잖아.”
그 부분을 생각하던 칠리새우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진성은 즉답했다.
“근데 빙의된 사람이라도 대부분 안 그럴 겁니다. 아그네스가 모험가에게 설득을 할 수 있는 이유도 사실 시로-……아니다. 후, 칠리새우 님은 모르겠구나? 이 부분의 스토리. 그냥 말 안 할게요.”
그러다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2016년경 빙의된 칠리새우라면 그 이후 업데이트 된 던전앤파이터의 메인 시나리오 흐름을 모르고 있을 것이기 때문!
“어? 어? 그거 사람 제일 열받게 하는 말투인데? 뭔데요?”
“스포하긴 싫어요. 흐흐, 칠리새우 님이 나랑 같이 앞으로 쭉~ 움직이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
정보를 무기 삼아 칠리새우를 협박하는 건 아니었다.
진성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칠리새우 역시 즐겨주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나오는 선의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물론 받아들이는 자의 입장에서는 애간장이 탄다는 게 문제일 뿐이었다.
“치사하게 그런 식으로-. 크흠, 비비 당신이라도 좀 말해봐. 이게 스토리 뭔지 알아?”
“잉? 스토리? 무슨 스토리?”
“……됐다.”
안톤 레이드 시절의 패턴 파훼법은 전부 기억해도 역시나 메인 시나리오는 젬병인 비비의 반응에, 칠리새우는 고개를 저어버렸다.
사도 안톤의 육체 위에 있음에도 별다른 긴장감 없이, 너무나 순조롭고 평화롭게 흘러가는 분위기라는 것을 진성이 느낄 즈음.
탓탓탓탓…….
달려가던 칠리새우는 말했다.
“저기다. 이제 저쪽 바위만 돌아가면 아그네스가-.”
그 순간, 진성은 느꼈다.
무언가가 공간을 찢고 나오는 느낌.
또한 ‘안톤 쩔’을 몇 번이나 치렀다던 칠리새우가 예고조차 하지 않았던 사태!
[진성!]“피해요! 모두!”
흑구의 목소리와 진성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콰아아아아아앙-!
그리고 무언가가 안톤의 등딱지를 깨부수듯 떨어졌다.
“끄잇!?”
“이, 잉?! 뭔데, 뭔데?!”
칠리새우는 두 바퀴를 뒹굴며 나가떨어졌고, 비비 역시 피어나는 흙먼지를 보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진성은 보았다.
“뭐야?”
검은 연기에 가까울 정도로 피어난 흙먼지, 안톤의 갑피를 타격하고 그것을 부숴 튕겨낸 가루의 너머에서, 붉은 기운이 어른거리는 중이었다.
“아그네스? 아그네스가 이런 기습을 한 적은-.”
“아뇨, 칠리새우 님. 저건……아그네스가 아녜요.”
칠리새우조차 그것을 ‘찬란한 불꽃의 아그네스’라 착각했으나 진성은 알 수 있었다.
아그네스와는 실루엣이 다르다.
흙먼지가 가라앉음과 동시에 허공으로 둥실둥실 떠오르는, 근육질의 남성형 실루엣.
이곳은 안톤의 육체 위다.
설령 안톤의 ‘면역 체계’에 가까운 타르탄이라 할지라도 안톤의 신체를 함부로 파괴할 순 없다.
그렇다면 누가 안톤의 갑피를 부숴낼 정도의 기습을, 그러한 결단과 그러한 파괴력을 누가 지닐 수 있는가.
“……마테카. 전능의 마테카……!?”
아그네스를 조우하기 직전 진성 일행을 기습한 건 ‘안톤의 두뇌’이자 ‘안톤 그 자체’, 안톤과 완전히 일체화된 타르탄 종족의 왕.
전능의 마테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