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80)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80화(180/212)
180
하이람 클라프는 헛웃음을 뱉었다.
“채찍으로 안톤이라도 후려치시려고?”
“하이람 대장.”
“그렇잖습니까, 총사령관님. 나선 건 좋지만 우리는 목숨이 두 개, 세 개씩 있는 사람들이 아닌데.”
잭터의 만류에도 하이람은 굳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진성은 하이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도 목숨은 하나입니다.”
“아, 그러셔? 모험가라는 족속들은 어째 그렇게 살지 않길래 한 말이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전 모험가가 아닙니다. 하이람 대장. 그리고……모험가가 아니기 때문에. 저는 반드시 막아낼 거고요.”
각오를 넘어서 귀기라고 표현할 수 있는 눈빛이 하이람을 향해 쏘아졌다.
해안수비대의 대장도 그 눈빛을 받은 순간만큼은 그저 잇소리를 내는 것 외에 특별한 반박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주변의 인물들마저 갑작스러운 긴장 고조에 마른 침을 삼킬 즈음, 붉은 단발머리의 소녀는 채찍을 잡고 우물거렸다.
그녀의 답변보다 먼저 나선 것은 운 라이오닐이었다.
하이람만큼 적대적인 태도는 아니라지만 진성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건 모두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제가 무지하여 진성 님의 의견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만……혹시 이해시켜주실 수 있으십니까. 모험가님이 들고 있는 채찍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말씀이신지요.”
“운만이 아니네. 나 또한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 나뿐만 아니라 모두를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줄 수 있겠는가.”
운 라이오닐은 자신까지 낮춰가며 진성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잭터 이글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운보다 한발 더 나아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그것으로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정도의 확신까지 주기를 바랐다.
진성으로선 바라던 바였다.
그가 세운 계획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우선해야 할 일은 안톤이 브레스를 광범위하게 뿜어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죠. 다른 함선들은 이대로 퇴로를 유지하여 안톤의 브레스 사정거리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포위망은 유지하는 방식으로 움직여줬으면 합니다.”
진성은 자신의 계획을 차츰차츰 풀어내었다.
“브레스를 막아낼 수만 있다면 분명 빈틈은 생길 테니까요. 그때 브레스 범위에서 벗어났던 후방의 함선들과 노블스카이호가 타이밍을 맞춰 냉각빔을 발포, 검은 화산을 식히는 즉시 건쉽을 출격시켜 그의 몸에 침투할 수 있을 겁니다.”
세세한 전술적 움직임조차 필요치 않은 작전이었다.
다른 함선들은 항로를 유지, 노블스카이호만이 선두를 돌린다.
“……모험가님의 말씀대로라면 노블스카이호는-.”
“네, 다시 안톤을 향해야겠죠.”
안톤을 향해서.
안톤이 노블스카이호 하나만을 향해 브레스를 모아 쏘도록.
“한 척으로 일점돌파인가.”
잭터 이글아이의 목소리가 잠시 떨렸다.
그것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
모두가 의심하는 가운데 안경을 고쳐 쓰며 슬쩍 끼어든 인물이 있었다.
“성공하기만 한다면……일거양득이겠군요. 이미 안톤의 위협을 뿌리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니 말입니다.”
“유르겐 공.”
현재는 군함이 된 노블스카이호의 선주, 네빌로 유르겐이었다.
그는 곧장 잭터를 향해 말했다.
“무얼 망설이고 계십니까, 에를록스 님. 안톤이 이튼을 향해 이동하고 있는 이상, 한 걸음이라도 더 옮기기 전에 막아야 하는 게 당연한바, 진성 님이 내세운 계책 외에는 별다른 방법도 없는 게 사실이지 않습니까.”
총사령관을 향한 재촉은 곧 진성의 제안을 당장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이곳의 모두에게 하는 말과도 같은 것.
잭터 이글아이는 매서운 눈초리로 진성을 바라보았다.
“허나…….”
미처 말을 마치진 않았으나 그가 어떤 심정일지는 진성 역시 알고 있었다.
과연 진성이 해낼 수 있느냐는 것.
진성을 마냥 믿기에는 잭터를 비롯해 이곳에 있는 모두의 신뢰도가 다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런 점에서 진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믿으셔도 됩니다. 겐트의 수비대장을 비롯하여 황도군 소속 니베르 중장 이하, 카르텔 추격 섬멸 작전에 함께 했던 모든 이들이 입을 모아 진성 님의 힘을 칭찬하곤 했으니 말이지요. 저 역시 이분이 결코 허튼소리는 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진성 자신이 황도에서, 무엇보다 네빌로 유르겐의 귀에 들어갈 정도의 활약을 했기에 그의 보증이 따라붙는 것일 테니까.
그럼에도 신중한 총사령관을 향해 한마디를 덧붙이는 일까지도 그는 놓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다른 방법을 모색할 여유도 없지 않겠습니까. 설령 실패해도 최소한의 희생, 성공한다면 확실한 수확. 현명한 판단을 기다리겠습니다.”
진성은 적극적으로 나서는 네빌로 유르겐에게 고마웠으나 동시에 당황해야 했다.
원래의 메인 시나리오는 이런 흐름이 아니다.
둘은 원래 반목해야만 한다.
‘지금까지 희생된 사람도 많고 카르텔로부터 되찾은 황도도 아직 뒤숭숭하니까 안톤은 그만 놓아주자는 네빌로 유르겐……그리고 지금까지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또한 언제 다시 마계에서 천계로 올지 모르고, 안톤의 말이 진실임을 확인할 수 없기에 사살해야 한다는 잭터 이글아이.’
오랜 친우이기도 한 두 사람의 성향 차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예견된 미래를 위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결국 노블스카이호의 선주로써 권한을 행세하려는 네빌로와, 그런 네빌로를 강제로 건쉽에 태워 황도로 보내버리는 현장 군권 총사령관 잭터의 대립이 발생하는 파트다. 그로 인해 결국 둘은-.’
완전히 틀어지게 된다고 봐도 좋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며 쌓여왔던 대립이라는 유리컵, 그 위에 떨어진 마지막 한 방울이 바로 이번 상황이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지금은 그런 일을 고려할 때가 아니었다.
당장 안톤을 막지 못한다면, 그 브레스를 진성 자신이 막아내지 못한다면 어차피 이곳의 모두는 증발해버릴 터, 그런 미래는 오지도 않게 될 테니까.
“진성……정말로 막을 수 있는 건가. 저 안톤을, 불을 먹는 녀석이 토해내는 불을?”
잭터 이글아이는 진성에게 물었다.
진성은 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칠리새우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붉은 단발머리의 소녀는 채찍을 만지작거리며 우물거렸다.
잠시 후, 황혼의 바다에서 후퇴하던 황도군 함대에 변화가 생겼다.
여타 선박들은 퇴각하는 방향으로 항로를 유지하는 도중 중앙에 위치한 단 한 대의 선박은 항로를 180도 틀기 시작했다.
노블스카이호의 선두船頭와 안톤의 거북처럼 생긴 대가리가 서로를 마주보았다.
30분이 남았다.
* * *
칠리새우는 끙끙대는 진성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알려주긴 했지만 스킬의 형상화는 쉬운 게 아녜요. 근본적으로 재료가 필요하다고나 할까? 물질이나- 어, 물질이 아니더라도 어떤 근원이 있어야 하거든. 나야 채찍이라 쉬웠다지만-.”
푸화아아악─────……!
그 순간, 진성이 쥐고 있던 <솔도로스의 선택>에서 검은 기운이 풍겨져 나왔다.
그러나 찰나일 뿐이었다.
“됐ㅇ……을리가 없지. 그게 그리 쉽지 않다니까는.”
“칠리 언니! 진상 님한테 다 알려줘 놓고, 칠리 언니도 진상 님 믿으니까 여기 남아놓고 왜 자꾸 초 치는 소리를 해요?”
칠리새우가 한숨을 내쉬자 그런 그녀의 곁에서 비비는 언성을 높였다.
민망해진 칠리새우는 무어라 말하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나선 건 진성이었다.
“아뇨, 괜찮아요, 비비 씨. 칠리새우 님이 도망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여기서 ‘후퇴’해서 다시 리셋해도 됐을 텐데 남아 준 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하니까.”
사도 안톤의 브레스를 진성이 막아내지 못한다면 끝이다.
실패라는 말로 끝날 게 아니다. 이들은 유저가 아니니까.
죽음이다.
원래의 현실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그런 상황을 인지한 상태에서도 칠리새우가 남아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진성은 알고 있었기에 비비를 말린 것.
“그래……초 치는 게 아니라 이게 내 응원 방식인데…….”
칠리새우 역시 민망함이 가시지 않은 듯 슬쩍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그 작은 목소리는 비비도, 진성도 들을 수 없었을 뿐.
‘결국 칠리새우 님이 꺼낸 채찍은 <채찍질> 스킬을 형상화한 것……거기까지는 내 추론이 맞았어.’
진성은 칠리새우가 해준 이야기를 곱씹는 중이었다.
4분 남았다.
* * *
“<채찍질>!”
챠아아아악-!
전방을 향해 스킬을 사용한 칠리새우의 손에 채찍이 쥐어졌다.
그러나 금빛 찬란한 채찍은 허공을 후리자마자 곧장 증발하듯 사라져버렸다.
“잉? 사라졌잖아요? 그냥 스킬이랑 뭐가 달라요?”
“그러니까…… 이 스킬을 붙잡아 둘 수 있는 게 필요하다는 얘기지.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내가 몇 번 테스트를 해보긴 했는데-.‘
칠리새우는 조심스레 허공에 손을 뻗었다.
분명 아무것도 없던 그 손에 다시금 금빛 알갱이들이 모이며 채찍의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이런 겁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특성에서부터 만들어 낸다고 해야 할까? 채찍이 갖고 있는, 다른 무기나 도구와는 다른 성질이나 속성을 완벽하게 이해하면 되는 거죠.”
“그, 그걸 지금부터 진상 님이 하라고요? 말도 안 돼! 아니, 진상 님이야 잘할지도 모르지만 너무 어려운 주문-.”
“그러니까 말하잖아. 비비 당신은 너무 앞서가려 해서 탈이야. 하여튼, 특성에 대한 이해는 너무 고차원적이니까 알기 쉽게 배우려면…….”
칠리새우는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었다.
늘어진 끈과 같은 것을 쥔 채로 그녀는 집중했다.
허공에서 갑작스레 금빛 알갱이들이 모여든다, 라고 생각했을 때 이미 그녀의 손에는 다시금 금빛 찬란한 채찍이 쥐어진 상태였다.
“이런 방식인 거지. 비슷한 형태에서부터 만들기. 이건 그냥 노끈을 꼬아서 내가 대충 만든 건데도 모양이 채찍처럼 생겼으니 ‘옮겨 간’ 느낌인 거지.”
“지금 진상 님도 검을 쥐고 있잖아요. 근데 안 되는데?”
“연습은 해야지. 알려준다고 바로 하면 천재게?”
비비의 물음에 칠리새우는 말했다.
둘은 비교적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았다.
진성 역시 어렴풋하게는 알 것 같았다.
1. 특성으로부터 추출.
2. 형태로부터 복사.
두 가지 방식 중 당장 사용할 수 있는 2번으로 진성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뤄야만 한다는 뜻.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것…… 그 형태는 분명하다.’
결국 그것은 검이다.
진성 자신이 쥐고 벨 수 있는 검이다.
그렇다면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19분이 남은 시점이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시도를 해봤는지.
“하아, 하아……”
진성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여전히 까만 것은 오직 그의 팔뿐, 그가 쥐고 있는 검들은 본래의 형상 그대로였다.
뿌우우우우우우우-!
뿌우우우우우우우-!
함선의 경적이 강하게 울렸다.
[안톤과의 거리 전방 3해리!] [예상 에너지 응집률 91%!] [과거 데이터 기준 약 1.6해리 거리에서 에너지 분출 예상!] [안톤의 에너지 분출까지 남은 시간 약 1분!]진작부터 관측되기 시작했던 안톤의 에너지는 이제 뿜어지기 직전이 되었다는 뜻, 말 그대로 위기는 코앞까지 다가왔다.
노블스카이호와 안톤의 거리는 대략 5.5km.
“지, 진상 님! 할 수 있어요, 한 번 더!”
“하이고야…… 오래 산 삶은 아니었는데 여기서 이리 끝나는구나. 갈 때가 되니 아쉬움이 한가득이구만.”
비비는 열심히 진성을 향해 부채질을 해주었으나 칠리새우는 이미 고개를 젓는 중이었다.
진성을 믿겠다고, 따르겠다고 말한 자신의 판단을 후회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진성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58초.
이제 망원경 따위가 없어도 안톤이 모으는 브레스는 육안 관측이 가능해졌다.
불그스름한 마그마를 줄줄 흘리며 다가오는 거대한 거북형 괴수에 황도군 인원 몇몇이 주저앉았다.
39초.
노블스카이호에 탑승한 자들 중 몇몇은 고개를 들어보았다.
황혼의 바다에 어쩐지 해가 뜬 것처럼 허공에 빛이 풀어졌기 때문이다.
그 이유라면 간단했다.
안톤의 거체보다 더 위압적인 것은 그 입가에 품어진 샛노란 에너지 덩어리, 황혼의 바다를 황혼이 아니게끔 밝히는 그것이었으니까.
20초.
나엔 시거가 기절했다.
운 라이오닐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하이람 클라프가 진성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11초.
황혼의 바다 전역이 일순 샛노랗게 변했다.
노블스카이호와 안톤과의 거리는 대략 1.6해리, 약 3km
4초.
안톤이 불을 뿜었다.
─────────────!
0초.
황혼의 바다가 새까맣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