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82)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82화(182/212)
182
<월식> 형상의 검을 휘둘러 [시간의 대검]과 같은 효과를 낸 직후.
노블스카이호의 선두를 갉아먹을 정도로 가까이 쏟아졌던 안톤의 브레스가 차원의 균열처럼 보이는 곳으로 모두 빨려 들어가 사라진 직후.
황혼의 바다는 더욱 어둡게만 느껴졌다.
안톤의 브레스가 뿜어내던 빛에 일순 적응해버린 시야로 인하여 더욱 짙게 느껴지는 어둠.
사고를 정지시킬 정도의 사태 앞에서 노블스카이호의 인원들은 잠시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어두워진 황혼의 바다가 다시금 밝아졌기 때문이었다.
────, ────, ────…….
진성을 향해 쏟아지는 금빛의 광휘는 한순간의 명멸로 끝나지 않았다.
도대체 몇 번이나 번쩍거리는 것일지. 그의 레벨이 한두 개 오른 게 아닌 것만큼은 확실했다.
“하아…… 하아…….”
물론 지금의 진성에게 그런 것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튕겨져나갈 것만 같은 에너지 덩어리를 부여잡고 있었던 손아귀에 갑작스레 찾아온 텅 빈 느낌, 그 공허함에 그의 양손은 부들부들 떨리는 중이었다.
검게 물든 손을 펴며, 진성은 그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곧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직까지 떨림이 남아있었으나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쥐어진 주먹이었다.
‘됐어…… 됐다. 해냈어! 역시!’
믿었던 것은 하나였다.
죽은 자의 성에서 빠져나올 때 보았던 차원의 틈, 어쩌면 시공간의 중첩.
현재하는 진성 자신 외에 수많은 진성들을 보았던 바로 그때, 그 모든 진성 자신의 모습이 곧 미래 시간대의 진성임을 이해했을 때 그는 ‘알았다’.
가깝게는 당장과 아무런 차이도 없어 보이는 진성 자신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보았던 또 다른 한 명의 진성 자신이 쥐고 있던 검.
그것이 바로 다크나이트의 무기, <월식>이 있었다.
고작 그 한 번의 관찰이었다.
그러나 언젠가 진성 자신이 다크나이트의 설정상 무기인 <월식>을 사용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만큼은 확고하게 생긴 셈이었다.
다만 ‘무기 아바타’로서 획득하는 <월식>이 불가능함은 진작부터 알고 있던 바, 따라서 진성은 줄곧 생각했던 것이다.
칠리새우가 어떻게 <포식의 욕망>과 다른 채찍을 들고 있는지.
진성 자신의 눈에 익은 그 채찍이 <채찍질>의 스킬과 엮여 있고, 그것을 형상화 또는 구체화하여 사용하는 중이라면.
그녀에게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만 된다면 <월식>을 활용한, 다크나이트 본연의 검을 활용한 기술 역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성은 확신했다.
자신을 믿었다.
그리고 해냈다.
결과에 대한 성취감과 놀라움 그리고 자신감이 뒤엉켜 진성의 감정을 밀어올렸다.
진성만이 아니었다.
눈가에 맺힌 물기 때문에 진성을 아른아른하게 보는 사람도 있었다.
“난……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칠리새우는 중얼거렸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잠시 있었다.
그럼에도 진성을 탓하지 않은 건 칠리새우 자신의 안목이 어떠한 결과를 냈는지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대표로 있을 때도 꼭 그랬지. 내가 면접 봐서 뽑은 신입사원 중에- 내가 점수 잘 준 애들 중엔 6개월 버틴 친구가 없었어. 대부분 3개월 만에 때려치우고 어쩌고 하느라 괜히 나이 많은 부, 차장님들 눈치를 봤던 내가…….’
투자는 과감하게. 결과는 자기책임.
그러한 신조로 살아온 그녀에게 있어 과감한 투자가 최상의 결과를 가져온 적은 매우 적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신조를 믿었고 그 각오로 진성에게 투자를 한 셈이었다.
따라서 붉은 단발머리의 소녀의 볼을 타고 한 방울 눈물이 흘러내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성공……한 거야. 목숨을 건……내 생애 최고의 투자에서.’
플레인:아라드로 빙의되어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에.
그저 게임에서 했던 것처럼 ‘쩔’로 돈을 벌어왔던 게 아니었나.
게임 던전앤파이터에 취미 이상의 노력을 쏟아붓기로 결정했던 것도.
진성을 믿기로 한 것도.
“칠리 언니! 진성 님이-.”
“역시 중요한 순간에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그쵸?! 그쵸! 내가 말했잖아요! 진성 님은-.”
“역시 난 대단해에에에에에-!”
모두 자신의 선택이었기에 칠리새우는 비비를 멍하게 만드는 함성을 질러가며 기뻐할 수 있는 것이리라.
* * *
“……잉?”
비비는 기뻐서 방방 뛰는 칠리새우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비비의 입장에서 그녀를 이해할 수는 없는 것, 사고방식조차 다른 언니에게서 잠시 눈을 뗀 비비의 시선이 향할 곳은 한 군데 뿐이었다.
“진성 니이이이이이임!”
비비는 진성을 향해 달렸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과 발걸음을 잡아채는 이가 있었으니…….
입을 쩍 벌린 채 여전히 표정조차 수습하지 못하고 진성을 바라보고 있는 흰 머리의 인물이었다.
“하이람 님! 어때요!? 우리 진성 님 어때요? 아까 뭐라고? 진성 님 엄청 욕했죠? 안톤에게 이미 넘어갔다느니, 어쨌다느니, 우리를 팔아먹었다느니, 그쵸? 막 진성 님한테 총 쏘려고 했죠!?”
하이람 클라프.
안톤의 브레스가 뿜어지기 대략 20초 전, 그가 진성을 향해 마구잡이로 내뱉은 욕지거리와 행동이 어떠했는지 비비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하이람 또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일까.
“그, 그건…… 크흠.”
하이람은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가 알아서 잘못을 뉘우치겠거니, 하며 넘어갔겠으나 비비는 달랐다.
눈치가 없는 것인지.
알아도 모르는 것인지.
“잘못했다고 말해요.”
“뭐……요?”
“잘못했다고 말하라고요. 진성 님한테.”
확실히 하지 않으면 넘어가지 않는 그녀의 특성상, 당연히 하이람에게 한마디를 던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이람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거랑은 다르지, 모험가! 난 해안수비대의 대장으로서- 통제할 수 없는 위험에 대해- 그것도 이러한 도박수에 대해서는……겨, 결과가 좋지만 그것이 결코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입장에 있으니-.”
“알아요. 진성 님을 믿지 못한 거에 대해서 잘못했다고 말하라는 게 아녜요. 아마 진성님을 진심으로, 완전 백 퍼센트 믿고 있던 건 나밖에 없을 테니까, 그건 바라지도 않아.”
그의 반응 자체를 나무랄 순 없었다.
그것은 비비도 이해하는 바였다.
타인을 진심으로 믿는다는 게, 심지어 ‘비비 자신만큼 믿는다’는 건 비비 스스로 보기에도 불가능하다고 말할 정도가 아닌가.
따라서 비비가 말한 건 진성을 믿지 않은 점에 대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진성 님이 안톤한테 이미 회유당했다고, 인류를 배신하고 사도의 편에 붙었다고 막 매도했던 거. 그 점에 대해서는 사과하세요.”
진성을 향한 모욕.
신뢰하지 않는 것과 매도하고 모욕하고 비난하는 건 다른 궤도에 있음을 그녀는 짚은 셈이다.
“모험가 너-.”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듯 하이람이 나서려 했으나 그 앞을 슬쩍 막아서는 이가 있었다.
“하이람 대장님. 저 역시 대장님의 불안을 이해하고는 있습니다만 역시 그러한 언행이 올바르진 않았다는 점 또한 말씀드리고 싶군요.”
“-라이오닐, 너까지 이러기야?”
“제 생각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운 라이오닐은 모자를 스윽 눌러쓰며 답했다.
해안 수비대의 대장 하이람 클라프.
지벤 황국 정규군 대령 운 라이오닐.
둘 사이에 불꽃이 튀는 것도 잠시였다.
“……빌어먹을, 알았어. 알았다고! 젠장, 하지만 확실히 말해줬으면 좋았잖아? 저쪽 함선에 타고 있을 제국군 녀석들 중에서도 저 진성인지 나발인지가 뭘 한다고 말했을 때 ‘가능하다’고 말해주는 놈은 없었으니까! 특히나 기사단의 단장이라는 녀석도 불가능할 거라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말이다! 그러니 그렇게 나선 게 결국 안톤에게 붙어먹은 거라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이람은 갑판을 발로 팍, 차며 불만을 토로했다.
비비의 커다란 눈동자가 깜빡거렸다.
“잉? 누구- 누구요? 저쪽 배에 누가 타고 있다고요, 하이람 님? 기사단 단장? 설마-.”
하이람 클라프로 하여금 진성을 믿지 못하게 만든 이유이자.
“그래, 모험가 너도 알고 있지? 반 발슈테트! 그 인간이 말했다고!”
진성을 의심하게끔 슬그머니 바람을 불어넣은 자가 누구인지 드러난 것이다.
“아…….”
이 시기의 천계군 함선 어딘가에 제국군이 동승한다는 건 메인 시나리오 흐름에도 나오는 것.
그제야 비비는 그 부분을 떠올렸다.
‘하이람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굳이?’
반 발슈테트와 진성이 사이가 좋지 않은 건 알고 있었다지만 이렇게까지 굴 일이었을까.
비비는 곧장 진성에게 이 말을 전하려 했다.
“지, 진상 님!”
“비비 씨! 준비 됐죠?!”
“잉? 그보다 할… 말이…….”
그러나 비비는 진성에게 그 말을 전할 수 없었다.
비비를 향해 고개를 돌린 진성의 눈.
미소를 짓고 있는 다크나이트의 얼굴에서 더없이 어둡고 또한 더없이 반짝이는 흑색의 눈동자.
“끝낼 시간이다, 안톤.”
역안이 된 진성의 눈을 보며 비비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진성이 말을 마치자마자 함교의 문이 벌컥 열렸다.
“작전대로 수행하라! 운, 지금 당장 전 함대에게 통신! 본 함선의 냉각빔 충전이 완료되었음을 전하고, 발포에 맞추도록 지시하라!”
“알겠습니다, 총사령관님!”
잭터 이글아이는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호령했다.
모두가 안톤의 브레스를 막은 일로 정신이 없을 무렵에도 잭터는 함교 내에서 냉각빔의 충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운의 빠릿빠릿한 대답과 함께 노블스카이호의 냉각포가 안톤의 검은 화산을 겨눴다.
“하이람 대장! 나엔!”
그와 동시에 잭터는 외쳤다.
하이람과 나엔 시거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나엔 양!”
브레스가 막힌 충격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한 안톤의 다리 근처에서 거대한 차원 이동 장치의 문이 열렸다.
세븐 샤즈의 한 사람, 나엔 시거는 더듬는 말투로 있는 힘껏 소리쳤다.
“게, 게이볼그 프로젝트, 바, 발동!”
───────────……!!!
거대한 게이볼그의 주먹이 안톤의 다리 관절을 타격하는 소리.
그 주먹보다 거대한 괴수의 비명.
브레스가 사라진 후 고요하던 황혼의 바다는 다시금 혼돈의 도가니가 되었다.
“아, 안톤의 기동력 상실 확인! 그러면 이제-.”
“냉각빔, 발포!”
괴로워하는 안톤을 향해 황혼의 바다에 집결한 전함대의 냉각빔이 쏟아졌다.
안톤이 고통으로 현실을 깨닫고 도망가려 해도 이미 관절이 부서진 이상 쉬이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 노블스카이호의 사람들은 모두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화산이…….”
“마그마가 얼어붙었어. 됐어. 화산 내부도 식었을 거야!”
“됐어, 됐다고!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시뻘건 용암을 터뜨려대며 그와 함께 수하들을 날려보내던 안톤의 검은 화산의 활동이 완전히 멎어버리는 순간.
그들이 직감한 것은 승리였다.
진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서에 다소 차이가 있어도 안톤의 이동 방향 등에 대해 조금 오차가 있었어도 끝끝내 메인 시나리오의 흐름과 같아졌다면, 남은 일은 하나다.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컨텐츠였던 안톤 레이드와 같은 수순이기도 했다.
1페이즈는 안톤의 저지.
“운!”
“예, 총사령관님!“
그리고 2페이즈는 안톤의 토벌이다.
“모험가들 그리고…… 진성과 함께. 저 빌어먹을 괴물의 숨통을 끊게.”
잭터 이글아이, 황국군 총사령관의 우렁찬 목소리가 황혼의 바다에 울렸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전 함대에 전하도록.”
잭터는 한마디를 더 얹었다.
건쉽으로 달려가던 비비나 칠리새우 그리고 운만 놀란 게 아니었다.
“영웅과 함께 할 기회를 얻고자 하는 자는 지금 당장 건쉽에 탑승, 출격하라고 말이네.”
영웅이 누구라곤 콕 짚어 말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조차 없었으니까.
잭터 이글아이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고 있으며 그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사람.
진성은 잭터의 극찬에 씨익, 미소 지었다.
남은 것은 사도 안톤의 토벌.
단순 레벨 업 외에도 칠리새우와의 연계를 통해 사용할 수 있게 된 다크나이트 본연의 무기, <월식>의 용법까지.
노블스카이호를 비롯한 천계군의 함선 곳곳에서 건쉽이 이륙했다.
안톤은 울부짖었다.
그러나 날아오는 건쉽을 막아낼 그의 화산은 여전히 차갑게 식은 채였다.
마침내 사도 안톤 토벌을 위한 최종장이 열렸다.